제314화
66화. 엘븐 코인을 아시나요?
1.
북쪽에서 돌아온 후, 난 알거지가 됐다.
맨 처음 ‘일 처리하는 데 100억 원 정도 들 거다.’라고 싸장님이 경고했을 땐, ‘우리 싸장님이 좀 과장이 심하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최종적으로 진짜 그 정도 들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싸장님이 준 경비 내역을 아가씨에게 보여주며 ‘진짜 이 정도 드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지. 아가씨는 한숨과 함께 그저 고개만 끄덕이셨고.
우리 싸장님, 돈 계산에 얄짤 없더라.
임시로 우그 타람에 보관해둔 ‘밀수 금괴’ 70kg은 시세의 90%의 가격-60억으로 몽땅 빼앗겼고, 그동안 은행에 저축해뒀던 월급 5억까지 살뜰하게 뜯어가셨다. 그러고도 남은 35억 가량의 채무는 월급에서 갚아나가기로 했고. 사실상, 탈탈 털렸지. 뭐, 증여받은 주식이 남아 있긴 하지만……. 회사가 아직 돌아가지도 않는데 그건 재산도 아니지.
이것만으로도 억울해 죽겠는데, 방학 동안 우그 타람에만 처박혀 있어야 했다.
혹시 모르니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뉴 송파구에만 있으라는 국정원의 권고(의 탈을 쓴 경고)를 받았거든. 그냥 곱게 따라야 했지. 덤으로 ‘정신 감정’도 새로 받았고.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쭉쭉 흘러 어느새 3월, 개학 직전이 되어서-.
“하아아……. 이 자유의 공기.”
국정원은 내게 ‘외부 활동 허가’를 내려줬다.
오전 10시, 뉴 송파구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난 양팔을 벌리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몸에 내리쬐는 이 따사로운 햇살……. 역시, 사람은 햇볕을 쬐어야 해! 그렇게 싱글벙글하는 내 모습에 같이 올라온 서예린은 ‘별꼴이네.’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거, 누가 보면 감옥에 있다가 나온 줄 알 듯?”
“말도 마요, 예린 씨도 2개월 동안 못 나오면 이럴 거니까! 진짜. 하루에 한 번이라도 바깥 공기 쐬는 게 은근히 크다니까요?”
“흠.”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아가씨가 절 보러 우그 타람에 방문할 때마다 우리 싸장님 눈치가 얼마나 보이던지……. 이제 바깥에서 만나니 그럴 일도 없죠!”
“허, 좀 적당히 하셈.”
“크흠, 저보단 아가씨가 더 적극적이에요. 정말로.”
혀를 차는 서예린에게 작게 헛기침했다.
나야 뭐 어른답게 참을 수 있긴 한데……. 우리 아가씨가 10대답게 ‘혈기’가 좀 왕성해서 말이지. 마력 각성자답게 체력도 좋고. 싸장님은 딱히 아무런 말도 안 했지만 아가씨가 방문할 때마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는지 몰라. 가르치는 하프 오크 녀석들에게 반쯤 놀림받기도 했고.
하지만, 이젠 그런 눈치를 안 봐도 되지!
싱글벙글 웃으며 터미널 근처 24시간 카페로 향하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가 보인다.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모습, 안에 다른 이들도 많았지만 역시 단연 돋보이는 미모시다. 우리가 카페 안에 들어가자 눈치채시곤 손을 흔드신다.
나와 서예린이 음료를 시키고 아가씨가 있는 테이블에 앉자-.
“자, 새벽아. 이거 선물.”
“넹?”
아가씨가 옆좌석에 놔둔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게 내미신다. 따끈따끈한데……. 안을 보니까 두부가 들었네. 내용물을 확인하고 내가 떨떠름해하자 아가씨는 씨익 웃으신다.
“다음번엔 사고 치지 말자?”
“……거, 두부는 어디서 구하셨어요? 따끈하니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요즘은 대형 마트에서도 즉석 손두부를 팔더라고. 오늘 나온다는 소식 듣자마자 가서 사 왔지. 빨리 먹어.”
아가씨의 재촉에 봉지째로 들어서 한입 먹었다. 음, 오크들 취향에 맞춰진 우그 타람 급식만 먹다가 담백한 두부를 먹으니 좀 색다르긴 하네. 그렇게 조금씩 두부를 우물거리고 있는데, 서예린이 입을 열었다.
“근데, 오늘 뭐 함?”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날 바라보며 묻는 아가씨, 그에 어깰 으쓱였다. 그냥 ‘오늘부터 자유롭게 나가도 된다.’고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나온 거라서 말이지. 그런 내 모습에 서예린이 자기 몫의 초코 셰이크를 쪼옥 빨곤 말을 이어나간다.
“일단, 점심부터 먹고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음?”
“흠, 그럼 뭐 먹지? 엽떡? 마라탕? 치즈 닭갈비? 곱창?”
바깥에서 자주 먹는 메뉴를 줄줄이 말하는 아가씨, 그에 서예린은 팔짱을 끼며 고갤 젓는다.
“출소날인데, 오랜만에 좀 ‘제대로 된 식사’ 어떰?”
“아니, 출소라뇨. 저 감옥에 갇혔던 거 아닌데요.”
“그게 그거 아님?”
내 반발에 서예린이 콧방귀를 뀌는 가운데, 아가씨는 고갤 끄덕이신다.
“하긴, 오늘 같은 날에 좀 거하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 뭐 생각해 놓은 거 있어?”
“근처에 새로운 ‘마법 요리’ 레스토랑 어떰?! 거기, 맛이 대단히 특이하다고 함!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미각의 한계’, 그 이상을 마법으로 뇌에 때려 넣는다고!”
눈이 몽롱하게 풀리며 강아지처럼 침을 흘리는 서예린, 그에 아가씨가 괜찮냐는 듯이 날 바라보신다. 마법 요리라, 확실히 먹어보면 대단히 독특하긴 하지만…….
“너무 비싸지 않나요?”
솔직히, ‘돈지랄’이다.
극적인 맛도 없으면서 더럽게 비싸. 게다가 일종의 ‘마법 오염’도 미세하게나마 쌓이고. 요즘 빈궁한 내 처지엔 사치다. 사주는 거라면 거절하지 않겠지만……. 우리 모임은 더치페이가 기본이거든. 내 거절이 의외인지 두 사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드는 가운데, 난 한숨을 내뱉었다.
“저 돈 없어요. 알거지랍니다.”
“뭔 소리임?? 너 월 1억 받는다 하지 않음?”
뭔 말을 하냐는 듯이 대꾸하는 서예린, 그에 난 요즘 내 처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모아놓은 돈, 방학 때 벌인 일의 뒷수습하느라 다 꼬라박았어요. 그러고도 모자라서 월급을 받는 족족 30만 원만 남기고 다 털리고 있고요.”
“아니, 한 달에 30만 원이면 너무 타이트하게 돈을 갚는 거 아니야? 좀 여유를 가지고 갚는 게 나을…….”
“싸장님이 ‘한번 괴로워 봐야 다신 이런 짓을 안 하지.’하면서 억지로 뺏어가요.”
나도 천천히 갚으려 했지. 하지만, 우리 싸장님이 그 꼬라지를 보기 싫어하시는걸? 조언을 하려던 아가씨도 내 대답을 듣곤 고갤 절레절레 젓는 가운데, 서예린은 가볍게 입맛을 다시곤 고갤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내줌. 나중에 갚으셈.”
“뭐, 그러면 감사하게 먹겠……. 아니, 예린 씨도 요즘 돈 부족한 거 아니었나요?”
“내가 돈이 왜 부족함?”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는 서예린, 그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그 ‘칼’ 받아 간다면서 남아 있는 돈 제게 다 줬잖아요. 게다가 방학 동안엔 조교 노릇도 하지 않아서 월급도 못 받았을 테고…….”
내가 일시적으로 빈털터리가 됐지만, 서예린은 진짜 빈털터리다.
미국에서 광고 찍은 값으로 받은 500만 달러를 고작 명품 옷 하나에 FLEX해버린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을 받지 못해서 돈을 벌면 항상 탕진하기 일쑤다. 아가씨 말로는 같이 다니는 자신도 좀 놀랄 때가 많다고.
그래도 돈을 잘 벌어서 빈털터리티는 안 나는데……. 요즘 서예린이 돈을 벌 구석이 없었다.
방학 전에 남아 있던 돈은 ‘부정한 삼위일체’를 외상으로 받아 갈 당시에 싹 다 내게 헌납(3천만 원 정도밖에 없더라.)했고, 국정원이나 정부 기관의 의뢰도 없어서 돈을 받지도 않았다. 방학 중에 미르의 조교 일도 안 해서 월급도 못 받았을 테고.
“예린아, 설마 너 카드 뚫었어? 내가 신용카드는 절대 쓰지 말라고…….”
“거, 사람을 뭘로 봄?”
이어지는 아가씨의 말에 테이블을 ‘탕! 탕!’치며 발끈하는 서예린, 그에 아가씨도 입을 다물자 서예린은 숨을 크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코인 팔아서 돈이 좀 있음. 걱정 마셈.”
“……코인? 아, 골디안 코인이 있었구나?”
서예린의 대꾸에 아가씨가 납득하는 얼굴로 고갤 까닥인다.
코인이라고 하면 이전 세상에선 ‘비트 코인’을 떠올리지만, 여기는 ‘골디안 코인’을 떠올린다. 골디안 상회에서 발행하는 화폐 비스무리한 걸로. 하지만, 서예린은 고갤 젓는다.
“골디안 코인 아님.”
“……다른 코인도 있어?”
“엘븐 코인이라는 거임!”
“엘븐…… 코인?”
아냐는 듯이 날 바라보는 아가씨, 나도 고갤 저었다. 엘븐 코인? 그런 건 처음 듣는데? 나와 아가씨가 이해를 못 하자 서예린은 어깰 으쓱인다.
“나도 실물은 보지 못해서 뭔지 모르겠음. 그 거래소? 라는 곳에 숫자만 나오는 거 있음.”
“설마, 비트 코인이에요?”
“맞음! 비트 코인!”
설마해서 물어봤더니 서예린이 ‘짝!’하고 박수를 치며 고갤 끄덕인다.
비트 코인, 내가 있던 세계에선 하나에 수천만 원이 넘는 데이터 쪼가리. 하지만, 이 세상에서 비트 코인은 가치는 낮다. 나도 북한 폭력 조직을 뒤엎으면서 ‘수천 개’를 얻어 본 적이 있어서 잘 알아. 하나에 5~6만 원 정도밖에 안 되더라. 좀 실망해서 위키를 검색해보면서 찾아봤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코인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에 ‘세상이 병신이 됐기 때문’이다.
비트 코인 하나에 50~60만 원 정도 되던 시기에 미궁 사태가 발발하고, 달러가 순간적으로 휴지 조각이 되면서 코인의 가치도 급락했다. 사실, 코인이라는 것이 일종의 투자할 곳이 없이 자본이 갑자기 쏠리는 것에 가깝긴 하지. 이 세상은 재앙으로 인해 경기 침체가 됐으니 뜰 리가 만무하고.
“비트 코인? 아, 그거…….”
이 세상에선 전자 장비 덕후 기질이 있는 아가씨도 그제서야 고갤 끄덕일 정도로 마이너 중의 마이너한 분야. 어쨌든 우리가 고갤 끄덕이자 서예린은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작년에 미국 갔을 때, 부수적으로 작은 광고 하나 찍음! 사진 한 방 찍는 건데, 10분이면 끝난다고 함! 보수는 5,000달러, 거기에 엘븐 코인이라는 걸로 5,000달러어치를 준다기에 ok함. 그래서 돈 받고 사진 찍음, 그리고 코인이란 건 잊어버리고 있었음!”
“오호? 근데요?”
“요즘 돈이 부족해서 뭐 돈 구할 건수가 없나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기억나서 거래소 켜봄! 5,000달러어치라는데 10만 달러가 돼서 팔아 버림!”
팔짱을 끼며 생글생글 웃는 서예린. 저런 무식한 년이 수익 실현을 하는구나, 나는 개같이 꼬라박……. 어? 이 세상에서 난 코인을 한 적 없는데? 아니, 이런 생각이 물 흐르듯이 드는 걸 보니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의 난 코인에 크게 한번 데였구나.
한숨을 내쉰 후, 나는 순수하게 서예린의 이익 실현을 축하했다.
“잘 빠져나오셨어요. 코인이란 게 변동이 워낙 심해서……. 스캠(Scam)이라고 사기도 횡행하죠.”
“하긴, 좀 이상하긴 함? 5,000달러어치가 10만 달러가 되다니? 뭐, 20배 이상 남겼으니 됐음! 아무튼 고?”
“넵!”
서예린의 제안에 나도 고갤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