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17화 (311/350)

제317화

67화. 코인 붐은…… 왔다!

1.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특히나, 자신의 돈이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깐깐하게 따진다. 테라-리프가 공개한 영약 ‘엘디쉬 엘릭서’는 분명 놀라운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테라-리프가 하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무려, 1만 명이나 복용 가능한 분량?

그것만으로도 믿기 힘든데, 그 값을 ‘비트 코인’이라는 이상한 데이터 쪼가리로 받겠다고 한다.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사기꾼은 널렸으니까. 진짜 1만 개의 엘릭서를 만들 수 있다 한들, 굳이 그런 ‘괴상한 것’으로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의심과 불신에 테라-리프의 창업자 ‘엘 마르’는 당당히 응했다.

개설한 SNS 계정으로 활발하게 사람들과 소통(주로 욕설)을 주고받았고, 신문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흔쾌하게 응해 민감한 질문도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그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집중되면서 유명 TV 토크쇼에도 출연 제의가 왔고-.

“모두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테라-리프의 창업자,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남자! 엘 마르 씨입니다!”

-와아아아!!

엘 마르는 이번에도 피하지 않았다.

미국 NBC 방송국의 심야 생방송 토크쇼, 청중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푸른색 머리칼이 인상적인 남자가 무대에 들어섰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잘생긴 양복 신사, 머리칼 틈으로 삐져나온 길쭉한 귀는 그가 미궁에서 나온 아인류(亞人類)인 엘프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청중들의 환호에 웃으며 손을 흔든 엘 마르는 게스트용 소파에 앉으며 웃었다.

“아, 이거 정말 꿈같은 일이군요!”

“꿈과 같은 일이라고요?”

진행자의 대꾸에 엘 마르는 엘프 특유의 중성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저도 심야 토크쇼를 잘 보거든요. 특히, 이 ‘늦은 밤’을 제일 많이 봤죠. 요즘은 일이 바빠서 못 봤지만. 1년 전에 반룡-퓌쑈 씨가 나오는 걸 보고 ‘나도 언젠가 저기에 설 수 있을까?’ 했는데……. 꿈을 이뤘어요.”

“하하, 그만큼 엘 마르 씨가 엄청나다는 거죠.”

엘 마르의 소감에 웃는 진행자, 코미디언 겸 배우답게 그는 능숙하게 다음 대화를 이끌어갔고 엘 마르도 미궁 출신답지 않게 재치 있게 맞받아쳤다. 즉흥적인 애드리브와 우스갯소리 수준의 말장난, 그리고 약간의 콩트까지. 그렇게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진 뒤-.

“……그러고 보니 ‘비트 코인’이라는 아주 생소한 것으로 엘디쉬 엘릭서의 값을 받겠다고 하셨는데요,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이유를 듣고 싶군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비트 코인이라는 주제에 도달했다. 그에 엘 마르는 예상했다는 듯이 빙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죠.”

“믿을 수 있다고요? 비트 코인이?”

과장된 표정을 짓는 호스트에 엘 마르는 어깰 으쓱였다.

“현 시대에서 은행과 국가는 안타깝지만 망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게 설령 ‘찬란히 빛나는 문명’이라도 말입니다. 제가 지상에 올라오기 전, 이 ‘위대한 나라’도 룬 수호자라는 미궁의 광기에 의해 한 번 주저앉았지요. 지금도 자유를 수호하는 위대한 국가입니다만……. 빛이 바랜 것은 사실이죠.”

“그렇긴 합니다만.”

그에 진행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15년 전, 뉴욕에 생성된 ‘미궁의 입구’에서 튀어나온 3마리의 룬 수호자들. 3개의 재앙에 미 동부 전역이 작살나버렸다. 서부에 위치한 도시들은 멀쩡했기에 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명칭을 중국에 헌납해야 했다. 씁쓸해하는 진행자를 보며 엘마르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당시에 미국의 달러는 일시적으로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발행 주체’가 타격을 입으면 돈의 가치도 상당 부분 타격을 입죠. 하지만, 비트 코인은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비트 코인의 특징은 탈(脫)중앙화입니다. 명확한 발행 주체가 없기 때문에 돈이 휴지 조각이 되는 일은 없죠. 그뿐일까요? 전자 지갑에 있으면 휴대도 간편해요. 골디안 코인과 같습니다. 다만, 골디안 코인이 상회 소속만 휴대가 간편한 것을 일반인도 가능하도록 바꾼 거지요.”

“흐음…….”

좀 미심쩍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는 진행자의 모습에 엘 마르는 쓰게 웃었다.

“뭐, 사실 그러한 재난을 걱정할 것이면 골디안 코인으로만 받아도 됐죠. 굳이 제가 모험처럼 엘븐 코인을 받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이유는?”

“미국 내, 다른 아인종들을 위해서입니다.”

비트 코인으로 값을 받기로 한 것이 ‘이종족’들을 위해서였다? 의아해하는 표정의 진행자를 향해 엘 마르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안타깝지만, 미궁 출신 대다수는 이 바깥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다르니까요. 특히나, 경제에 대한 것은 미궁 출신들에겐 마법과도 같습니다.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경제 분야는 순혈 인간들의 반독점 체제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노하우의 차이 아닐까요?”

“그렇긴 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 하지만, 문제긴 문제죠.”

진행자의 말에 고갤 끄덕여 동의하면서 엘 마르는 TV 카메라를 보며 설득하듯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코인’은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판입니다. 기존의 질서가 없는 ‘새로운 경제 분야’, 그렇기에 저희 미궁 출신들도 과감히 뛰어들 수 있지요. 게다가 비트 코인은 ‘채굴’이라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누구나 벌 수 있는 겁니다.”

“흐음.”

“이러한 이점들이 있기에 ‘비트 코인’에 주목했습니다. 전, 미궁 출신들이 당당하게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종족에도 관대하며 열려 있는, ‘자유, 평등, 정의’를 가진 이 나라에서 말입니다.”

엘 마르의 말에 진행자는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사실, 잘 모르기에 고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경제학자들은 ‘본질적으로 폰지 사기’, ‘21세기판 튤립 파동’ 등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탈중앙화 시도’라면서 호평했으니까. 무엇보다 아메리칸드림을 언급하는데 초를 치기도 그렇고.

준비해놨던 질문지를 한 번 힐끗 본 후, 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엘 마르를 향해 곧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 ‘엘븐 코인’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엘 마르 씨가 ‘엘븐 코인’의 개발자와 연관되어있고, 미리 대량의 비트 코인을 선취매했으며, 이번에 가격을 의도적으로 펌핑했다고요. 엘디쉬 엘릭서가 발표되기도 전에 코인 가격이 급등한 정황이 발견돼서 일종의 ‘거대한 사기극’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고요.”

“확실히, 수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리허설 때엔 없었던 돌발질문, 하지만 엘 마르는 막힘없었다.

“전 이전부터 비트 코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3년 전 엘븐 코인이 만들어질 때부터 관여했죠. 엘프들을 위한 코인이라는데 어찌 관심을 안 가지겠습니까? 당연히, 그 가능성을 믿고 대량으로 구입했죠.”

“그러면 엘릭서 발표 전에 가격 펌핑이 있었던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솔직히 말하죠. 순전히 제 실수입니다. 이 점, 국민 여러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카메라를 향해 고갤 꾸벅 숙이는 엘 마르, 금융 범죄로 취급될 만한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는 말에 진행자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가운데 엘 마르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전, 저희 회사의 직원들에게도 자주 엘븐 코인에 대해 말해서 말했습니다. 이 엘븐 코인이 언젠가 통화로 사용될 것이라고 믿는다고요. 그리고 우리 제품이 나오면 엘븐 코인으로 사게 하겠다고 평소에 자주 말하고 다녔죠.”

“그러면…….”

“예, 이번에 엘릭서 제작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직원들을 중심으로 엘프 사회에서 암암리에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나중에 알았을 때엔 어쩔 수 없더군요.”

작게 한숨을 내쉬는 엘 마르, 그에 진행자는 고갤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가려 했지만 엘 마르가 선수 치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절 못 미덥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엘디쉬 엘릭서가 발표된 이후에 수많은 음해들이 쏟아졌죠. ‘테라-리프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는 회사고, 그런 기술력을 가질 리가 없다.’면서 말입니다. 코인으로 장사하려고 사기 치는 놈이라는 말도 들었죠.”

“뭐, SNS상의 악플인 만큼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셔도…….”

“하지만, 저희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증명할 자신도 있고요.”

곧바로 그는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투명한 정육면체 크리스털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 든 것은 붉은 보석 같은 형태의 다면체, 그 중심에서 빛나는 황금빛 광채에 진행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지더니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엘디쉬 엘릭서.

불과 한 주 전에 회춘해서 화제가 된 전 할리우드 여배우를 쇼에서 인터뷰했기에 더더욱 잘 알았다. 세트장에 있는 청중들의 시선 또한 집중된 가운데, 엘 마르는 TV 카메라가 좀 더 엘릭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말했다시피 저흰 약물을 계속 생산해낼 수 있지요. 그 재료 또한 충분히 공급할 수 있고요.”

“그, 그렇군요.”

“아, 이건 제 개인적인 선물입니다. 지금 드시죠.”

손에 쥔 크리스털 케이스를 진행자에게 넘겨주는 엘 마르, 방청객석에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퍼지고 선물을 받게 된 진행자도 숨을 삼켰다. 세트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 돌발 상황에 말을 못 하고 있는 가운데 엘 마르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홍보용으로 하나만 쓰려고 했는데 좀 힘들더군요. 나중에 한번 인증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전 영상을 보셨다면 알겠지만 ‘노화 역전’은 단숨에 보이는 게 아니어서 말이죠. 그리고 노화 역전도 그리 드라마틱하진 않을 겁니다. 워낙 젊으셔서.”

“어, 그, 그럼요! 예! 예!”

허겁지겁 고갤 끄덕인 후, 진행자는 뭐라 하기도 전에 단숨에 케이스의 약물을 꺼내 섭취했다. 먹는 순간, 방청석에서 안타까움과 부러움이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약물을 섭취한 진행자는 숨을 크게 내쉰 후-.

“그럼 엘 마르 씨? 이러한…….”

흥분에 가득 찬 얼굴로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방송국에서 요청받았던 의심거리 질문들은 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그저 무한한 호의뿐. 그렇게 홍보에 가까운 나머지 토크쇼가 이어진 뒤, 엘 마르는 막바지에 가서 엘릭서의 생산 수량에 대해 언급했다.

“엘릭서를 만드는 과정은 솔직히 가내수공업에 가깝습니다. 고도의 마법력과 정교함이 필요하기에 공산품처럼 단숨에 수백, 수천 개의 분량을 만들 수는 없어요. 아무리 신경 쓴다고 한들, 한 달에 10개 분량 정도가 한계죠.”

“그렇군요! 그러면 다음 달부터 10개 분량이 나오는 건가요?!”

“예, 다음 달 1일에 제품이 나올 겁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엘 마르, 그와 함께 생방송 토크쇼는 막을 내렸다.

* * *

생방송이 나가고 두 번째 엘디쉬 엘릭서의 공개에 사람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테라-리프는 약속대로 다음 달 1일에 10개 분량의 엘디쉬 엘릭서를 공개했다. 그리고, 판매는 예고한 대로 비밀 경매 방식으로 이뤄졌다.

익명성을 위해 낙찰된 이들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몇 세계적인 재벌들이 젊어졌다는 사실은 얼마 안 가 SNS와 뉴스를 통해 알려졌고, 그들 중 몇몇은 자기가 영약을 먹는 장면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탐욕에 눈이 멀어버릴 수 있다.

아직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훨씬 더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긴가민가하던 이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인판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이미 미친 듯이 떡상을 거듭한 ‘엘븐 코인’을 필두로 코인판에 본격적으로 불길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코인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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