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1화
막간. 수상한 정황, 흑막, 그리고……
1.
코인 광풍이 몰아치면서 각국의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이 ‘정체불명의 자산’은 아무리 봐도 폰지 사기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설령,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암호 화폐가 추구하는 ‘탈중앙화’-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또 다른 통화라는 것은 국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에 각국 정부는 나름 대응했다.
국민들에게 ‘암호 화폐는 돈이 아닌 디지털 징표에 가깝다.’, ‘그 어떤 법도 없기에 세력이 날뛰기 쉽다.’고 위험성을 알리는 한편, 코인에 대한 규제나 세금을 매기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암호 화폐의 광풍은 꺼질 수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일확천금의 꿈에 눈이 돌아갔고, 몇몇 행운아들의 인증이 속속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었다.
특히나, 미국은 더더욱 심했다.
“X발, 빌어먹을 아인(亞人) 새끼들. 다 총으로 쏴 죽여 버려야 해.”
“Sir, 그거 인종 차별 발언입니다. 걸리면 옷 벗게 될 수…….”
“닥쳐! 그리고, 걔네들 인간이야?! 솔직히 아니잖아? 마틴 루터 킹 목사께서 돌아오셔도 그 X새끼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샷건을 쏴버렸을 거다!”
미연방수사국(FBI), 지능·경제 범죄수사팀. 상관인 팀장-흑인 남성-의 중얼거림에 백인인 수사관이 능청스럽게 말하자 상관은 ‘꽥!’ 노성을 내질렀다. 그러한 상관의 빡침에 백인 수사관은 살짝 ‘큼! 큼!’ 헛기침을 하며 고갤 꾸벅 숙인 후,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도망쳤다.
코인의 광풍이 가장 크게 몰아치는 곳은 미국이었다.
미 정부는 어떻게 비트 코인에 대해 규제를 해보려 했지만, 그러한 시도는 이종족들의 집단적인 반발에 부딪혀서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인간이 우리를 가난하게 만든다!’, ‘인간이 이종족이 돈을 벌 만한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구호 아래에 말이다.
FBI로선 미치고 팔짝 뛸 이야기였다.
“X발.”
부하 직원이 나간 뒤, 팀장은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를 책상에 처박았다. 비트 코인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지도 2달, 미국의 수많은 창의적인(?) 경제 사범들을 상대해온 그들이 보기에 암호 화폐는 100% 폰지 사기판이었다.
‘엘븐 코인’ 자체도 수상하다.
개발자의 모호한 신상, 거래 흔적을 찾기 힘든 특징, 등장 전의 코인의 흐름……. 그의 동물적인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어떤 거대한 세력이 작정하고 장난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엘 마르’라는 인물도 믿을 수 없다.
10년 전에 미궁에서 나온 엘프 마법사, 마법사라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존재지만 그의 수준은 그냥저냥이었다. 그런 인물이 5년 전에 정체불명의 회사를 세웠더니 이번에 괴물 같은 신약을 내놨다.
그 ‘신약’에 대해 알아볼 수도 없다.
미식품의약국(FDA)의 검사? ‘적용한 극비 기술은 외부로 유출시킬 수 없다’, ‘인간이 기술을 유출해서 자기네들이 적용하려 한다.’면서 철저하게 귀쟁이 새끼들의 도움을 받아서 막아내고 있다. 게다가 오크와 드워프로 불리는 이종족들에게도 ‘인간들이 우릴 핍박한다!’ 언플하면서 자기네들을 지지하게 만들고.
“그래도 얼마 안 남았다. 이 X 같은 귀쟁이 새끼…….”
‘빠드득!’ 이를 갈며 그는 고갤 들어 모니터 액정에 뜬 엘 마르의 면상을 응시했다. 지금까지 FBI에 물을 먹인 새끼였지만 놈은 ‘엘븐 코인과 골디안 주화로 값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세금을 내긴 힘들다.’면서 감히 세금을 제때 안 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골디안’이라는 코드 108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골디안 코인’은 일종의 ‘전략 자산’이기에 곧바로 납입해도 된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세금을 안 내려고 미적댔고, 그 사실에 빡돈 국세청은 이미 미 최강 전투부대인 ‘죽음과 세금(Death And Tax)’을 보낼 준비를 끝냈다. 대통령이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고 막곤 있지만 얼마 안 가 허가가 떨어질 거다.
그렇게 팀장이 엘 마르의 면상을 보며 이를 득득 갈고 있을 때-.
-벌컥!
“팀장님! ‘나이트 워커(Night Walker)’에 의뢰한 조사 보고서가 왔습니다!”
한 부하 직원이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며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유리벽으로 되어있어서 들어오기 전에 볼 수 있었다지만 대단히 무례한 행동, 하지만 그 다급한 표정에 그는 별 질책 없이 곧바로 부하 직원이 내미는 서류철을 받았다.
“엘릭서를 정제하는 곳으로 알려진 테라-리프의 공장엔 아무런 장비도 없었답니다! 내부는 텅텅 빈 공터예요! 게다가 정제를 할 만한 마법사도 없고 마법적인 흔적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파일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것은 공터처럼 ‘텅~’ 비어있는 공장 내부 사진들, 거기에 엘 마르가 어떤 인물에게 가방을 받는 듯한 모습도 들어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팀장이 이를 악무는 가운데, 부하 직원의 보고가 이어졌다.
“추가로 사진에 찍힌 ‘엘 마르에게 가방을 건네주는 남자’는 중국의 비밀 요원이랍니다. 확인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했으니 나이트 워커 쪽에서 의뢰비의 20%를 더 받겠다고 하더군요.”
“염병할 칭크(chinky) 새끼들…….”
중국인의 멸칭(蔑稱)을 중얼거리며 그는 다 읽은 파일을 책상에 내던지곤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미 동부가 룬 수호자에 의해 작살나면서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른 ‘중국’, 이 빌어먹을 새끼들은 자랑스러운 조국이 휘청거릴 때 대놓고 약탈했다. 수많은 과학·군사 분야의 중요 인력을 빼갔고 거부하면 심지어 납치까지 했다.
당장, 국가 간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작질.
룬 수호자에 의해 국가의 절반이 날아갔지만, 남아있는 전력만으로도 미국은 그 당시 중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참았다. 인류 위기의 순간에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 공격할 수는 없었기에.
근데, 이 개자식들은 16년이 지난 뒤에도 이렇게 계속 시시때때로 수작질이나 부리고 있었다.
물론, 미국이라고 이런 수작질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맹세코 이렇게 대놓고 전 세계를 상대로 폰지 사기를 벌일 정도는 아니다. 피곤한 눈가를 주무르며 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 우리 손에서 다뤄질 수준을 벗어났군.”
“…….”
“곧바로 국장님께 보고하겠네. 나이트 워커의 추가 요금 정산에 대해서도 말이야.”
“다행이네요. 질책은 안 받겠어요.”
“좋아하기엔……. 충격파가 만만찮을 거야.”
코인의 대폭락이 올 거다. 예상되는 부작용만 해도 한가득이고. 도대체 어떻게 될는지. 자료를 가져온 부하에게 혀를 차면서 대꾸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내던졌던 서류철을 들고 국장실을 향해 움직였다.
2.
심상치 않은 ‘코인의 광풍’은 중국에서도 기승이었다.
중국 지도부도 곧 자국의 대응을 정하기 위해 총지도부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고, 그 사실은 대중들에게도 파다하게 퍼졌다. 베이징의 한 모처, 당 중앙정법의원회 서기-저우칭은 느긋하게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이번 일에 대한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순조롭군.”
지난 수년 동안 준비한 국안부의 작품, 그가 국안부장이었던 시절에 직접 계획한 일이었기에 더더욱 관심이 많았다. 만족스럽다는 듯한 저우칭의 말에 옆에서 함께 걷던 현 국안부장-페이진펑은 담담히 대꾸했다.
“100% 순조로운 것은 아닙니다. 바지사장 놈이 벌써 돌발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뻔뻔하게 우리에게 줘야 할 ‘골디안 주화’를 몽땅 빼돌리더군요. 주의를 줬음에도.”
“뭐,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 내의 일이잖나?”
“그래도 화가 납니다. 귀중한 영약을 투자했는데…….”
짜증 난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끝을 흐리는 페이진펑, 바지사장이 팔아치우고 있는 것은 중국에서도 얼마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아무리 상정한 범위 내의 일이라지만 값조차도 받질 못한다니……. 그런 페이진펑의 모습에 저우칭은 피식 웃으며 다 훑어본 보고서를 넘겼다.
“그나저나, 미국 친구들에겐 좀 미안하군. 피해가 꽤 클 텐데 말이지?”
“거, 처음 계획안을 내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하, 농담일세. 농담. 경쟁자는 확실히 짓밟아놔야지. 특히나, 국민 대부분이 인간이 아니게 될 놈들은 더더욱. 그런 영약을 아까워하지 말고 미국이 입을 피해만 생각하자고.”
쾌활하게 웃는 저우칭, 그에 페이진펑도 고갤 끄덕여 동의했다.
결국, 인과응보였다. 미국이 패권국이었던 시절, 놈들이 자기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구린 짓을 저질렀던가? 중동, 남미와 중미……. 그리고 ‘자랑스러운 조국’에까지. 이제,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약간의 이자’까지 쳐서.
그렇게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걸어가고 있을 때-.
-삐비비빅, 삐비비빅.
페이진펑이 손목에 차고 있던 전자·마법 시계가 울렸다. 그에 저우칭은 받아 보라는 듯이 턱짓하고 페이진펑은 살짝 목례한 후 받았다. 이어서 마법으로 이뤄진 <전언>이 머릿속에 흘러들어 오고-.
“일이 틀어졌습니다.”
“틀어졌다?”
페이진펑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미간을 좁히며 되묻는 저우칭에 그는 입술을 질겅이며 입을 뗐다.
“내부 협력자로부터 온 정보인데, ‘나이트 워커’가 바지사장의 공장이 텅 빈 것을 확인하고 FBI에 알렸다고 합니다. 거기에 우리와 연관이 있단 것도 파악했다고 하고요. 꼬리를 잡혔습니다. 제길, 더 부풀어 올랐을 때 터트려야 하는데…….”
이를 악무는 페이진펑, 그에 저우칭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갈등’을 지필 수 있는 최소한의 불길은 이미 피어올랐으니까. 다음 스텝은 준비됐겠지?”
“그건, 걱정 마십쇼. 전부 준비됐습니다.”
“그럼 됐어. 그나저나…… 나이트 워커 놈들. 여전히 기승이구만.”
“여전히 신출귀몰합니다.”
한숨을 내쉬는 페이진펑, 저우칭이 국안부장이었던 시절에도 ‘나이트 워커’는 국안부에 아주 골치 아픈 집단이었다. 미 정부의 의뢰만 받는 특이한 집단, 이종족인 것 같은데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간에 저우칭은 고갤 끄덕였다.
“이거, 미국 놈들이 눈치챘으니 당 대회를 열어서 의견을 수렴하는 시늉을 할 여유도 없겠군. 현재까지 매각 상황은 어떻나?”
“어제까지 거래소에 있는 물량을 20% 떨어냈습니다.”
“좋아, 어서 빨리 주석께 가지. 꼬리를 잡혔으니 더 빨리 털어내야지.”
그 말과 함께 복도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저우칭, 페이진펑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3.
일요일, 중국 공영 방송(CCTV)에서 ‘긴급 속보 자막’이 뜨고 이어서 ‘정부가 암호 화폐를 불법으로 규정했다.’는 내용이 중국을 강타했다.
그 ‘어떤 종류의 코인’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통보, 소지하는 것도 불법이며 코인 채굴 행위 또한 불법으로 못 박았다. 다른 국가였다면 그 통보에 어마어마한 반발 여론과 폭력 시위가 벌어질 만한 일이었지만 중국에선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것-심지어 반항하는 국민조차도 으깨버릴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고.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은 당에 반항할 생각하지도 못하고 묵묵히 그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 첫 번째 악재에 전 세계 코인판이 흔들렸다.
세계 제1위의 코인 거래량을 자랑하는 중국의 ‘하우더 코인 거래소’, 세계 제3위인 ‘비트하오’의 주가가 바닥으로 처박혔고 대량으로 코인들이 타국의 거래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밖으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물량에 다른 나라의 코인 시장이 일제히 폭락하는 가운데-.
그 첫 번째 악재 이후, 불과 2시간도 지나기 전에 두 번째 악재가 미국에서 터졌다.
‘엘븐 코인’을 보장하는 ‘테라-리프’의 사기 가능성 의혹, 엘릭서가 정제되고 있다는 테라-리프의 공장 내부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폭로된 것. 심지어 발표자는 신문기자 같은 이들이 아니라 FBI의 국장이었다. 그에 엘 마르는 SNS로 반박했지만 코인의 신뢰성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고…….
코인판에 ‘대공황’이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