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4.
일요일에 열린 ‘코인판 지옥도’.
싸장님께 전화를 걸어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내고 싶다.’고 양해를 구한 뒤, 난 미르도 결석하고 아가씨의 곁을 지키면서 코인판이 돌아가는 꼬라지를 지켜봤다.
……근데, 그 꼴이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FBI의 폭로에도 엘 마르는 숨지 않았고, 오히려 더 활발하게 SNS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건재함+무고함을 알렸다. 그러한 엘 마르를 잡기 위해 미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지만…….
체포에 실패했다.
엘 마르가 거주하고 있는 엘프들의 자치구, 그 안에서 추종자들이 그를 둘러싸면서 보호했다. 체포하기 위해선 그런 추종자들을 쓸어버려야 하는 상황. 미궁 출신 이종족답게 추종자들의 전력도 꽤나 강했고 몇몇은 어린애를 끌고 온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엘 마르의 체포가 늦어지면서 관심을 먹고사는 언론이 접근하기 시작했고-.
엘 마르가 당당히 인터뷰하면서 사건이 또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갔다.
* * *
“이건 명백한 인권 탄압입니다!”
엘 마르 소유의 저택, 추종자에게 둘러싸인 엘 마르는 방송국 카메라를 향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전 세계인들에게 토로했다. 그러한 주장에 방송국 소속의 ‘여성 엘프 앵커’-타종족은 빠꾸 먹었다-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지만, FBI는 테라-리프 내부의 정제 공장에 아무런 설비도 없다고 하던데요? 그 증거로 사진과 그 내부 영상을 보였고요.”
“당연히 없지요! 그곳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정부가 기업 비밀을 이렇게나 파고들려 하니 몰래 숨길 수밖에요! 그리고, 고작 그 사진 몇 장이 증거라고요? 허.”
가당찮다는 듯이 코웃음을 친 엘 마르는 당당하게 의자 옆에 내려둔 금속 상자를 집어 들어 무릎 위에 올려두면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았다.
“저희 엘디쉬 엘릭서는 ‘진짜’입니다. 증거? 이미 보셨잖습니까? 저희에게 엘릭서를 구입한 분들의 모습을! 이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
“FBI가 고작 텅 빈 공장 내부 사진으로 우리가 사기꾼이라고 말할 때, 저희 테라-리프는 약을 공급해서 증명했습니다!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엘 마르의 주장에 엘프 리포터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FBI는 테라-리프가 가짜라고 경고했지만 그들이 선보인 엘릭서만큼은 진짜였다. 그리고, 같은 종족으로서 믿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고. 그사이, 엘 마르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뒤를 몰래 캐는 꼴이라니……. 이러니 숨길 수밖에요! 제가 인간이었다면 이런 차별을 당했을까요? 다짜고짜 명백한 증거도 없이 저를 체포하려고 하고?? ‘아인(Demi-human)’이라고요? 저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링컨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아, 아니. 엘 마르 씨…….”
“그리고, 이런 주장을 굳이 중국이 코인을 규제한다고 했을 때 발표했습니다! 불과 2시간 만에 허겁지겁!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이 아닌 이들, 이종족들이 돈을 버는 꼴이 못 미더워서 코인이란 새로운 경제판을 박살 낸 겁니다!”
과격한 주장에 당황하는 리포터, 그녀가 당황하건 말건 엘 마르는 분하다는 듯이 무르팍에 올려놓은 금속 케이스를 주먹으로 ‘쾅!’ 내리치며 다른 손으론 마치 정부를 향해 삿대질하듯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검지를 뻗었다.
“당신들은 정말 잔혹한 자들입니다! 말로만 평등과 정의를 외치죠, 이게 진정 자유의 나라입니까? 네? 저희를, 인간이 아닌 이들을 대놓고 자본의 노예로 만들려는 자들이??”
“진정하시죠, 엘 마르 씨.”
“푸후우우…….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리포터의 제지에 크게 숨을 내뱉는 엘 마르, 이어서 그는 무릎에 올려놨던 금속 케이스를 활짝 열어젖혔다.
그와 함께 크리스털 상자에 들어간 붉은 보석들이 드러난다. 마치, 안쪽에서 황금빛이 일렁이는 것 같은 루비. 세상을 뒤집어버린 ‘엘디쉬 엘릭서’였다. 그 수량만 무려 3개, 보란 듯이 카메라를 향해 들이밀며 엘 마르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건, 저희 회사의 모처에서 만들어진 추가 ‘엘릭서’입니다. 월초라서 여분 분량 3개밖에 없지요.”
“오…….”
“자, 이렇게 저희는 지금까지 엘릭서를 공급하면서 계속 ‘증명’했습니다. 거짓이라고요? 이것까지 총 25개나 공급했습니다! 이게 거짓으로 보입니까? FBI, 당신들은 뭘로 이게 거짓이라고 증명할 거죠? 고작 사진?!”
한 번 더 카메라를 향해 삿대질하며 엘 마르는 당당히 선전포고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들을 인간의 노예로 만들려는 더러운 정치적·경제적 공작! 하지 마십쇼!”
* * *
그러한 엘 마르의 인터뷰가 실시간 속보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ORK LIVES MATTER!
ELF LIVES MATTER!
DWARF LIVES MATTER!
ALL MANKIND LIVES MATTER!
대규모 종족 차별 시위 사태로 번졌다.
미 정부에서 엘 마르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지상의 인간들에 대한 열등감, 미궁에선 별 볼 일 없던 인간들에게 밀린다는 시기감, 이종족들이 막대하게 투자하던 코인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꺼졌다는 박탈감과 절망감……. 그런 울분에 찬 이들에게 ‘모두 인간이 우리를 박해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좀 잘사는 지역에 있는 아인(亞人)들은 차별반대주의자 인간들과 함께 행진하며 평화 시위를 벌였고, 단순무식한 오크들이 모인 지역에선 이전 ‘흑인 폭동’처럼 총기난사를 비롯한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그에 주방위군이 투입되어야 했고.
그렇게 미국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엘븐 코인’은 극적인 반등이 있었다.
엘 마르를 보고 믿음이 간다는 이들(주로 이종족들)이 다시 달라붙었고, 그에 고꾸라지던 엘븐 코인의 값은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다른 코인들은 별다른 반등을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 분위기에 광분에 찬 코인판 커뮤니티의 분위기 또한 좀 달라졌다.
[BJ 3억슨] : 미국 개새끼들!! 짱깨 놈들은 그렇다고 해도 네놈들까지 이렇게 코인판을 뒤집어놔야 속이 시원했냐!
[오랑우탄] : X발, 엘븐 코인만 다시 올라가네.
[침팬지] : X같다, 증말…….
코인으로 쪽박을 찬 이들의 분노가 미 정부 쪽으로 향했고-.
[엘프만세] : 븅신 새끼들 ㅋㅋ, 우월한 엘프가 만든 엘븐 코인이랑 잡코인이랑 같냐?
[3대 770] : 진짜 인간 새끼들 죽여 버리고 싶네, 어떻게 이렇게 종족 차별하냐? 진짜 엘 마르에게 감정 이입돼서 울었다.
[오랑우탄] : 튀기 새끼들 왔노.
[크림빵 통조림] : 병신아, 튀기가 아니라 괴물이지. 쟤들 혼혈 아니잖아.
[오랑우탄] : 아, 글쿤. 괴물 새끼들 왔노.
[익명 152] : 오크 ip는 보지 못하는 댓글입니다.
[익명 697] : 귀쟁이 ip는 보지 못하는 댓글입니다.
[먹바퀴] : 인간이 아닌 ip는 보지 못하는 댓글입니다.
[3대 770] : X같은 인간 새끼들…….
[ㄹ전사] : 엌ㅋㅋ 븅신 새끼, 저걸 믿넼ㅋㅋ.
이종족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커뮤티니에 속속 등장했다.
엘 마르의 발언이 진짜든 아니든 간에 그 덕분에 ‘코인의 전반적인 폭락’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덕분에 아가씨는 다시 멘탈을 추스르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나?
코인 투자는 포기했다. 이미 내 밑천은 털린 지 오래인걸? 대신에 아가씨의 옆에서 일을 돕는 데 전념했다. 일종의 자문? 거래소를 세우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아서인지 아가씨가 날 많이 신뢰하셔. 솔직히, 더 아는 것도 없는데 말이지.
“자, 이게 이번에 최종 평가까지 들어온 코인들이야.”
비트 넥스의 사장실, 난 아가씨가 건네주는 파일철을 받아 들었다. 고작 5개, 아가씨가 운영하는 비트 넥스가 코인 상장이 깐깐하기로 정평 나 있어도 이건 너무 적었다.
“고작 5종류? 너무 적지 않아요? 상폐된 코인도 많으니 더 추가해도 될 텐데요?”
“좀 깐깐하게 받았거든.”
“코인 종류가 많아야 거래량이 늘고 수수료가 많아지실 텐데…….”
“괜히 잡코인 받았다가 신용만 더 떨어져. 아무튼, 한번 살펴봐.”
아가씨의 요청에 난 찬찬히 파일을 넘기며 내용을 훑었다. ‘기반 프로젝트의 투명성’, ‘거래에 대한 지원 가능성’, ‘투자자의 공정한 참여 가능성’……. 내가 말한 항목들이긴 하지만 솔직히 모르겠네. 대충 아가씨가 선정했으니 맞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음?”
맨 마지막 다섯 번째 코인을 보곤 흠칫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뭔가……. 뭔가 익숙한 이름의 코인, 내가 멈칫하자 아가씨는 파일을 훑곤 빙긋 웃으신다.
“역시, 너도 이거 보고 신박하다 생각했구나?”
“그,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너무 전문적인 용어가 많아서 정확히 이해하기 힘드네요.”
“새로운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이란 거야. 기존 테더(Tether)가 1개에 1달러로 가치를 패깅한다면, 이건…….”
유창하게 설명하는 아가씨,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천천히 파일철을 넘겨 갔고-.
“……1대1 담보 없이 스테이블 코인에 종속되는 코인을 만들고, ‘알고리즘에 의해서 종속되는 화폐 공급량을 조절’해서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거지. 이름은 지구와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이름을 따서…….”
“안 돼욧!”
마지막에 첨부된 회사 대표의 이름과 사진을 보는 순간 ‘꽥!’ 소릴 질렀다. 기억이 먹칠되어서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신할 수 있다! 이건 함부로 상장했다간 크게 X 돼! 말을 끊어버리는 내 외침에 아가씨는 두 눈을 끔뻑이더니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제 직감이 속삭여요, 하지 마요. 이 사람, 관상을 보니까 함부로 믿다간 크게 데일 상이야.”
별다른 이유 없이 관상 타령하는 내 주장에 턱을 쓰다듬는 아가씨, 하지만 이내 어깰 으쓱였다.
“솔직히, 나도 좀 믿기진 않긴 했어. 내가 배운 경제학 상식으로 이 패깅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 이런 게 가능하면 물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과 똑같으니까. 뭐, 물어보니까 보증금 등으로 안 깨지게 하겠다고 했는데…….”
“믿지 마세요! 깨질 거니까!”
연이은 내 완고한 반대에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갤 끄덕였다.
“알았어. 이건 우리 거래소에 상장 안 할게. 솔직히, 이게 가장 그나마 좀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 같았는데 말이지.”
“믿어줘요. 이거 진짜진짜 위험해서 그런 거니까.”
“그래서 상장 안 하잖아.”
별 근거가 없음에도 날 믿어주시는 아가씨, 후회하진 않으실 거다. 확신해. 이건 초대형 지뢰니까. 그렇게 고갤 끄덕이고 있는 와중에-.
-위잉~
내 스마트폰이 울린다.
액정을 보니까 서예린의 톡, 그러고 보니 아가씨 곁에 붙어 있느라 서예린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지 못했네. 아가씨에게 ‘서예린의 톡’이라고 알린 후, 난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예린] : (거래소 스크린샷)
[서예린] : 봄?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투자 고수를?! 이게 하락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임! 경배하셈!
“미……친.”
스크린샷을 보니까……. 자산 내역이 700억?! 아직 그 정도까지 반등하진 않았을 텐데? 자세히 보니까 가지고 있는 엘븐 코인 수량이 더 늘었다?! 도대체 돈을 또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어코 엘븐 코인을 추가 매입한 것 같았다.
그 자랑질 가득한 톡을 함께 보며 나와 아가씨는 시선을 교환했다.
“아가씨, 엘븐 코인…….”
“사기일 확률이 높아.”
대답하면서 아가씨는 속 입술을 질겅였다.
“그래서 난 거래소 계좌에 있는 ‘엘븐 코인’들은 닥치는 대로 해외 거래소로 던지고 있어. 확실히, 다들 꺼림칙해서인지 넘기는 게 좀 힘들긴 하더라.”
“……어!? 그래도 되는 거예요?”
거래소에 예치된 코인을 임의로 팔아치우다니? 나름 정의로운 아가씨의 성격으론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화들짝 놀라는 내 반응에 아가씨는 피식 웃는다.
“관련법이 없는걸? 혹시나 해서 ‘가입 약관’에서도 분명히 써놨어. 괜히, 삼촌이 거래소 가지고 찝쩍댄 게 아니야. 이래도 된다고 해서 생각한 거지.”
“근데, 만약 진짜라면…….”
“은행처럼 최소한의 인출 비축분은 준비해놨으니 걱정 마. 틀렸으면 수수료 장사하면서 천천히 갚아나가야지, 뭐. 근데, 난 이거 80% 확률로 사기라고 봐.”
서예린도 야수의 심장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가씨도 만만찮다. 거, 왜 내 곁엔 이런 야수 같은 여자들만 있는지……. 난 쫄려서 못 하겠는데 말이지. 어쨌든 내가 아가씨와 대화를 나눌 동안에도 서예린의 톡은 이어졌다.
[서예린] : 저점에 추가 매수 잘 했음. 꺼-억!
[서예린] : 이제 얼마 안 남음. 딱 기달! 내가 걸어줌!
[서예린] : (코린이 팻말을 들고 의기양양한 서예린의 스크린샷)
이거, 아무리 봐도 크게 데일 것 같은데……. 말린다고 들을 년도 아니고.
“아가씨, 예린 씨 계좌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못해. 신뢰 문제도 있고.”
“후우.”
이거 참 난감하네. 엘 마르가 진짜라면 아가씨가 망하는 거고. 사기꾼이라면 서예린이 망하고……. 그래, 서예린이 천억 찍고 매도한 뒤에 떨어지면 좋겠네.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난 반쯤 자포자기인 심정으로 ‘천억 찍으면 바로 매도ㄱ, 아가씨도 위험하다 경고함.’ 톡을 보냈다.
그렇게 아가씨 곁을 지키다가 부디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금요일에 잠들었고…….
“X발.”
코인의 신은 그런 내 기도를 이번에도 박살 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