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4화
5.
휴일 동안, 엘프 거주지에 있던 ‘엘 마르’가 돌연 사라졌다.
미 정부에 납치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전조도 없이 돌연 미국 시간으로 ‘금요일 밤’에 증발했다. 그렇게 엘 마르의 실종 소식이 나간 뒤, ‘더 충격적인 소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미 국세청, 세금 포탈 혐의로 테라-리프 강제 수색. 거주지 무장 엘프들과의 마찰.
-남겨진 엘 마르의 영상?
그 정점이 바로 ‘엘 마르의 조롱 영상’이었다.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시간으로 토요일 밤에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한 ‘셀카 동영상’, 그 내용은 엘 마르가 엘디쉬 엘릭서를 들어 올리면서 ‘이것과 엘븐 코인으로 크게 한탕 해먹고 빠질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이 모든 게 사기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찍힌 것 같은 동영상.
영상 분석 전문가들은 ‘조작된 것은 아니며 최근 게 아니라 1~2년 전에 찍힌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밝혀진 후, 엘 마르를 옹호하던 몇몇 언론들은 다급하게 자신들의 죄를 만회하기 위해 일제히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테라-리프, 공개된 설비는 없었다? 엘프 지자체, 그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은폐.
-테라-리프의 직원들, 대부분 월 500달러 정도만 받고 이름만 올려둔 ‘유령 직원’들.
-엘프들의 폭발적인 재산 증식, 쓰레기 땅을 거액에 팔아치우다! 확인된 계획적 사기 정황.
-정부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이종족들.
그런 각종 폭로와 함께 코인 시장에 2차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바닥을 찍고 다시 힘차게 튀어 오르는 것 같던 ‘엘븐 코인’의 시세는 이번에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해 가치가 1달러 이하로 처박혔다. 다른 코인들도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신저가를 갱신하며 처박혔다.
“허, 허허허…….”
그렇게 휴일간 일어났던 뉴스를 확인하고 켠 코인 커뮤니티는……. 월요일 아침인데도 아주 화끈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80억을 태운 종말론자] : 귀쟁이 X발 새끼들아!! 엘 마르가 영웅?? 범죄자 새끼면 재깍재깍 쳐 바쳐야 할 것이지!! 이 꼴을 만들어?
[마루쉐] : 음~ 엘븐 코인, 깔삼하게 슛~! 숏 치지 않은 븅신 새끼들 없재??
[엘프만세] : 모든 엘프가 범죄자는 아닙니다. 그 당시엔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3대 770] : X발, X까! 개 같은 귀쟁이 새끼들. 내 눈에 띄기만 해봐. 두들겨 팬다. 아니, 죽인다. 걸리기만 해봐, 송파구 걸어 다닐 생각하지 마라 X새끼들아.
[오랑우탄] : 오크야, 개 같다니? 개에게 사과해라. 개는 귀쟁이처럼 비열하게 사기를 치지 않아.
[3대 770] : 인정한다. 개는 좋은 친구지. 맛있기도 하고.
[침팬지] : 어휴, X발;; 괴물 새끼들 수듄…….
엘프에 대한 분노가 아주 만연해 있었으며…….
[코인 안한 흑우 없제] : 전 재산 3억에 2, 3금융까지 모두 다 끌었다. 근데 망했네. ㅎㅎ 그동안 즐거웠다, 얘들아. 남은 200만 원 게시판에 뿌린다.
[반인반룡어셈블] : 왜 그러냐 불안하게.
[ㅇㅇ] : OO은행 1002-1-……. 굽신굽신.
[ㅁㄴㅇ] : 구라치지 말고 인증해봐~ 븅신아.
[코인 안한 흑우 없제] : (완전히 꼬라박힌 수익 그래프와 대출 잔고)
[살렺] : 뭔, 자살갤이냐. 자살 암시하는 놈들이 왤케 많아?? 제발 그만 좀 해!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이 수도 없이 올라온다.
존버, 또 존버하라고 글을 써주고 싶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엘 마르라는 사기꾼 때문에 비트 코인 시장 전체의 신뢰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 이런 상황에서 비트 코인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난 전문가가 아니니까.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인생이 실시간으로 진창에 처박히고 있었다.
다시 뉴스를 검색해보니 고작 토·일만 지났음에도 코인 투자 비관 일가족 자살 기사가 몇 개나 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와 서예린은 어떻게 됐을까? 특히나, 서예린. 그 미친년은 어디서 돈을 구해서 또 엘븐 코인 풀매수했었지…….
좀 불안한 느낌에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곧바로 서예린에게 전화를 걸자-.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하아.”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음이 나온다. 그냥 매도하고 자고 있어서 휴대폰이 꺼진 것이면 좋겠구만.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이어서 아가씨에게 전화하니-.
-응, 새벽아. 일어났어?
다행히 아가씬 정상적으로 받는다. 목소리도 좀 피곤해 보이긴 하다만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고. 그에 난 살짝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뉴스 보니까 제가 자는 동안 코인판에 불이 떨어졌던데!?”
-아, 진짜 말도 마. 쪽잠 자고 있는데, 직원들이 속보라면서 뉴스를 보여줬을 땐 진짜 식겁했다니까?!
내 질문에 푸념을 쏟아내는 아가씨, 저번 주 월요일처럼 사람들이 몰려올까 봐 미리 준비하고 또 매도 주문 쏟아지는 것 처리하고 현금인출 주문을 처리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또 이틀 동안 꼬박 밤을 새웠다고.
-……그래도 엘 마르가 아예 대놓고 어그로를 끌어서 거래소에 대한 분노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아. 지금까지도 별문제 없고.
“휘유, 그나마 다행이네요.”
아가씨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아가씨는 이 쓰나미를 잘 지나친 듯하다. 그러면…….
“근데, 예린 씨는 어떻게 됐어요? 전화를 해봤는데 꺼져있어서.”
-……하아.
그 질문에 한숨을 내쉬는 아가씨,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답변이 되었다. 결국, 탈출하지 못했구나……. 똑같이 한숨을 내쉬자 아가씨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걔, 토요일부터 전화 안 받더라. 어쨌든, 이번엔 여기 올 필요 없어. 그것보다 미르 등교해서 예린이 멘탈 케어 좀 해줘. 나도 수요일까지 아무런 일 없으면 목요일부터 등교해서 예린이 볼 테니까.
“어, 회사를 비워도 괜찮겠어요?”
-어느 정도 안정화 작업 끝냈고 직원들도 업무에 익숙해졌어. 무엇보다 해커 놈들이 이젠 그리 공격을 안 하고 있어. 털어 봤자 쪽박이란 거지. 이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하하하…….”
어쨌든 아가씨의 말에 씁쓸하게 웃은 뒤, 난 전화를 끊고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섰다.
6.
서예린을 만나기 위해 미르에 등교했지만 서예린은 그날 결석했다.
싸장님의 도비로서 오전 시간만 미르에 있었긴 했지만 아예 나오질 않았다. 전화와 톡을 보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는지 계속 보질 않고. 하긴, 멘탈이 터졌을 만도 하지. 결국, 어영부영 오전 수업을 끝내고 난 우그 타람으로 출근했다.
“그래, 잘 쉬다가 왔냐?”
실험 가운과 방독 마스크를 쓰고 연구실에 출근하자 기업에 공급할 공업재료를 정제하고 있던 싸장님이 생글생글 웃으며 반겨주신다. 그에 난 한숨을 내뱉었다.
“네, 뭐……. 100억을 날렸지만 말이죠.”
“말은 똑바로 해라, 100억이 아니라 ‘1,000만 원’이지.”
내 말을 정정해주는 싸장님, 전직 코인러로서 그 말이 사실인 걸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어. 100억이 내 손에 있었는데 말이지. 연이어 한숨을 내뱉자 싸장님은 하던 정제작업을 끝마치고 다가와 내 어깨를 탁 친다.
“얀마, 100억이라고 해도 네겐 푼돈이잖아?!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해!”
“싸장님, 저 진짜 남은 통장에 잔고 50만 원밖에 없습니다, 여친에게 빌붙고 우그 타람에서 숙식 생활하기에 망정이지 진짜 간당간당해요.”
월봉 1.1억의 슈퍼능력남이지만 빚이 35억이라서 버는 족족 빼앗기고 있다. 진짜 난 알거지야. 그런 내 대꾸에 싸장님 피식 웃는다.
“대신에 ‘소브’의 주식 1,500억어치를 가지고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마력 각성제도 만들 수 있고.”
“…….”
“그런 대단한 사람에게 100억은 푼돈이지. 안 그래?”
싸장님의 반박에 입을 다물었다.
‘마력 각성제’의 위력은 나도 봤다. 북쪽이라지만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대놓고 학살극을 벌인 나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국가가 묻어 주게 만들었지. 주식은 연말에 배당금 받기 전까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만. 생각해보면 싸장님 말이 맞다. 그래, 다 맞다. 하지만…….
“그런 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애매하잖아요.”
“……뭐? 너, 설마 남들에게 자랑 못 한다고 아쉬워한 거였냐?”
“음, 쪼끔은요?”
황당하다는 듯이 묻는 싸장님에 고갤 끄덕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 세계의 나’가 가진 욕망 같았다. 여름 방학 때, 여자애들의 비키니 차림 보려고 ‘우미각! 우미각!’거렸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다 코인 관련 주제가 나올 때, ‘아, 가볍게 1,000만으로 100억 벌고 코인판에서 손 뗐어요. ㅎㅎ’ 하면 얼마나 멋질…….
-빠각!
“커흑.”
잠깐 달콤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싸장님의 앰부쉬가 내 옆구리에 작렬한다.
살짝 중지를 튀어나오게 쥐고 후려치는 주먹, 그 찌르는 듯한 타격에 가슴팍 근육이 수축-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맞은 부위를 붙잡자 드러난 뒤통수 쪽으로 연거푸 2연타가 날아온다. 내 반사 신경으로도 대응하기 힘들 교묘한 공격……!
-빠각!
“아오오오옥……!”
연거푸 파워 꿀밤으로 후려치는 싸장님, 머리뼈가 살짝 금 간 느낌에 뒤통수를 붙잡고 주저앉자 싸장님은 휘두른 주먹을 가볍게 ‘훅!’ 불곤 손가락을 까닥였다.
“어휴, 진짜 주먹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네! 진짜 어그로를 끄는 덴 타고났어요!”
“끄으으응…….”
“도비야, 자랑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단다?? 응? 이런 상황에서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자랑?? 그런 게 괜히 적을 만드는 거야! 차라리 100억을 꼴았다고 동정표를 얻어라! 그게 인간관계엔 더 좋을 테니까!”
싸장님의 말에 아가씨네 회사에 찾아왔던 코인 투자자들이 떠올랐다.
거래소가 별 잘못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도 무작정 쳐들어왔던 사람들……. 그래, 우리 싸장님 말이 100번 맞지. 그래도 내 안의 ‘승인 욕구 몬스터’는 여전하지만.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며 고갤 끄덕이자 싸장님은 몸을 돌리며 따라오란 듯이 손을 까닥였다.
“됐고, 네가 쉴 동안 ‘영혼·생명 연구소’에서 우리에게 분석 요청한 물품이 왔다. 가자.”
앞장서는 싸장님, 나는 맞은 부위를 쓰다듬으며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