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27화 (327/350)

제327화

5.

뉴 송파구에서 나온 후, 택시를 타고 ‘비트 넥스’ 사옥에 도착했을 땐 아침 8시가 지나있었다.

사람이 몰려들 걸 대비한 듯, 건물 입구와 1~2층 창문은 방범 셔터와 창살이 내려가 외부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장식일 뿐. 이전처럼 건물 뒤편 골목으로 간 후, 벽을 타고 올라가 회사 안에 들어섰다.

출근 전이라고 해도 좀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도는 회사 내부.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살짝 목례하면서 난 곧바로 아가씨가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사장실 내부의 모습에-.

-♬?♪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방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아가씨의 스마트폰이 울리고, 반파된 소파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던 아가씨가 고갤 든다. 초췌한 얼굴로 잠시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아가씨는 이내 크게 숨을 내뱉고는 한 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 손바닥 안에서 강력한 자력(磁力)이 일어나 금속으로 된 스마트폰을 끌어당긴다.

“어, 새벽아. 뉴스 보고 전화했어?”

날아온 스마트폰을 쥐자마자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하는 아가씨, 살짝 피곤함이 섞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난 쓰게 웃었다.

“저, 지금 문밖에 있어요.”

“……!?”

“들어가도 돼요?”

앞에 있다는 말에 흠칫하다가 어질러진 사장실을 보며 낭패한 표정을 짓는 아가씨,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신다.

“왜 왔어. 올 필요 없는데.”

“올 필요가 없긴요. 걱정되는데 당연히 와야죠.”

대답하며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아가씨는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린다.

“하하, 잠깐 이성을 잃어서…….”

아가씨의 취향에 맞춰서 세련되게 꾸며졌던 사장실, 하지만 지금은 화분을 비롯해서 온갖 물건들이 박살 나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벽 곳곳에 번개에 맞은 듯한 그을림의 흔적은 덤이고. 적당히 모르는 척하면서 자리에 앉고 싶은데 앉을 자리도 없네.

“여기 앉아.”

아가씨가 그나마 멀쩡한 소파(번개에 맞아서 가죽이 잔뜩 뒤틀렸다.)를 세워서 두드리고, 난 거기에 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해요.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모함하는데 당연히 화가 나죠! 저번 겨울방학 때 겪었던 일 생각나요? 그때, 국정원 놈들이 별 증거도 없이 절 범인으로 몰았을 때 얼마나 화가…….”

“…….”

“아, 물론 그 내막은 좀 다르지만요. 큼큼! 아가씨는 완전히 무죄죠!”

……위로하려다가 예시를 잘못 꺼냈네. 그땐, 진짜 내가 범인이었으니까. 헛기침하며 빠르게 말을 돌린 후, 난 아가씨를 향해 빙긋 웃었다.

“아무튼, 도와드릴게요. 저 국정원에 강력한 인맥 있는 거 아시죠? 차장님에게 전화해서…….”

“고맙지만 됐어.”

고갤 저으며 내 말을 도중에 끊는 아가씨, 설마 말실수 때문에 아가씨 삔또가 상한 건가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바라보자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신다.

“벌써 온갖 곳에서 비트 넥스에 대해 떠들고 있는걸? 아무리 국정원이라고 해도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여론을 가라앉히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여론조작이 일상화된 세상이라고 해도 이런 거대한 어그로를 단숨에 덮는 건 힘들겠지.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런 내 대꾸에 아가씨는 쓴웃음을 짓는다.

“새벽아, 그런 부탁 너무 자주 하는 것도 민폐야. 그리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도 해야 하는데 차장님에게 뭘 해주려고 그래?”

“걱정 마세요, 저 능력 좋잖아요? 정 뭣하면 ‘마력 각성제’로…….”

“하지 마.”

또 한 번 내 말을 끊는 아가씨, 이어서 초췌한 두 눈을 부라리며 단호하게 말하신다.

“애초에 이 난리가 난 근원적인 이유는 ‘엘릭서’ 때문이야. 그리고, 마력 각성제는 그만한 파급력을 갖췄고. 괜히, 잘못했다간 일만 더 복잡해질 거야. 그러니까 진짜~진짜~ 하지 마.”

“하지만…….”

“새벽아, 날 걱정해줄 필요 없어.”

앉은 소파에 등을 뉘며 아가씨는 고갤 저으신다.

“어차피 며칠 뒤엔 ‘잠잠해질 일’이야, 잠깐 고개 숙이며 지나치기만을 기다리면 돼.”

빙긋 웃는 아가씨, 하지만 진짜 별것 아니라면 방이 이런 꼴이 됐을 리가 없다. 저렇게 밤을 꼬박 새운 초췌한 몰골로 있지도 않을 테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어제 살짝 엿들었던 ‘일의 전말’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이번 일, DK의 다른 계열사 쪽에서 사주한 거죠?”

“……그런 것 같아.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삼촌하고 이모들이 함께 공모한 걸 수도 있고.”

대답하면서 슬쩍 블라인드가 쳐진 한쪽 유리 벽을 바라보는 아가씨, 그 밖의 가로수는 비트 넥스를 비방하는 내용이 줄줄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방송이 나갔다고 해도……. 바로 다음 날 새벽같이 준비를 끝내고 시위하는 인간이 나타날 리 없잖아. 아마, 방송 터지기 전부터 준비했던 거겠지. 전문 시위꾼일 거야.”

“근데, DK회장님은 병풍이래요?”

“……뭐?”

“아니,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내 짧은 식견으로도 ‘회사의 이미지’가 사업에 굉장히 중요하단 것 정돈 안다.

아가씨가 이렇게 ‘재벌가 자제’로 구설수에 오르면 그룹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것 아닌가? 그룹 회장이라는 할아버지란 작자가 이런 걸 사전에 알았음에도 막지도 않고, 심지어 손녀에게도 말을 안 해줬다는 게 황당하다.

“이거, 어찌 보면 회사 이미지를 자기네들 스스로 깎아내리는 거잖아요?! 당연히,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 일이죠! 근데, 어제 아가씨 전화를 옆에서 엿들었을 때 회장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걸 며칠 전에 보고서로 받았다고 했고요!”

“…….”

“아니, 그걸 알았으면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게 방치해요!?”

내가 토하는 열변에 대꾸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아가씨, 하지만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그 무거운 입술을 뗐다.

“DK그룹은 대중적인 이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네??”

“최근 진출한 금융과 it쪽 빼면 사업이 전부 B2B(Business to Business)거든. 우리 회사 규모에 비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그런 이유고. 대중적인 이미지가 떨어져도 매출엔 그리 큰 타격은 없어. 그래도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는 견제가 들어올 줄은 몰랐지만.”

“……그럼 왜 아가씨가 이런 공격을 당하게 냅뒀대요? 사전에 알았으면서?”

이어진 내 질문에 아가씨는 쓰게 웃는다.

“이 정도 견제에도 대응 못 하면 사업할 자격이 없는 거라고 하더라.”

“…….”

“내가 좀 안일하긴 했어. 설마, 이런 방식으로 태클을 걸어버릴 줄은 몰랐거든. 할아버지는 큰 사업 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테니 ‘좋은 경험이다.’하고 경험해보래.”

대놓고 여론에 멍석말이 당하는 게 좋은 경험?! 상상을 초월하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는데, 문밖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을 두들긴다. 아가씨가 들어오라고 하자 좀 나이 먹은 아저씨가 곧바로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완전히 난장판이 된 사장실의 모습에 아저씨는 순간 흠칫했지만-.

“사장님!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가지고 왔다는 사람들이 지금 회사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내 다급한 표정으로 폭탄을 떨어트렸다.

<눈>의 시야를 이동해보니……. 진짜 건물 앞에 커다란 검은색 차량이 서 있고, 가슴팍에 검찰 공무원증 매달고 있는 아저씨들이 빈 박스를 들고 앞에서 대기 중이다?! 내가 기겁한 반면에 아가씨는 올 것이 왔다는 태도로 한숨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당직 직원들에게 지시한 것들 숙지시켰죠?”

“예, 거래소 운영에 필요한 컴퓨터는 압수하지 못하게 할 것. 검사할 거면 그 자리에서 하나씩 검사하게 하고.”

“됐어요, 들여보내 주세요.”

아가씨의 지시를 듣곤 고갤 꾸벅 숙이곤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가는 아저씨. 아니, 검찰의 압수수색이라니……. 이런 건, 드라마에선 보통 끔찍한 재앙으로 표현되던데 아가씬 의외로 평온한 표정이다.

“아니, 당장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압수수색이라니!?”

“이미 준비해놨으니 걱정 마.”

“네?!”

“어제, 할아버지를 만나서 귀띔받았어. ‘금융 범죄 관련해서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나올 거다.’라고. 내가 찾아오니까, 아직 세력이나 인맥이 미약한 걸 배려해주셨지.”

이거 뭐,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그 어처구니없는 조치에 내가 말을 못 하는 동안, 아가씨는 떡 진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으며 어깰 으쓱인다.

“그나마 미리 알아서 다행이지. 진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당했으면 정신없었을 거야. 직접 경험해보니까, 왜 할아버지가 그렇게 검찰 인맥을 열심히 관리하는지 알겠더라. 이렇게 사전에 압수수색이 올 거란 거 알기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네.”

“아니, 그렇긴 한데……. 도대체 왜 검찰에서 아가씨를 조사하겠다는 거예요?”

“거래소에 비축하고 있던 엘븐 코인을 다른 거래소에 팔았으니까. 거래소 내부에서 사고판 코인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꾸민 일종의 장부 거래’처럼 보일 수 있지. 사실, 그 코인들 많이 처분도 못 했어. 다들, 물량을 떠안길 꺼려서.”

“…….”

“걱정 마. 진짜 불리한 증거 자료는 이렇게 화풀이한 것처럼 싹 다 내 마법으로 튀겨버렸으니까!”

아가씨가 장난스럽게 웃는 가운데, 우르르 몰려오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푸른 박스를 든 공무원들이 나타난다. 완전히 박살 난 사장실 내부를 보곤 흠칫하는 아저씨들, 아가씨가 소파에서 일어서자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서 서류를 내민다.

“서울중앙검찰청 형사 6부 기업·금융범죄팀 소속 ‘김맹호 검사’입니다. 비트 넥스의 범죄 혐의로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되어 조사하러 왔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기꺼이 협조하죠.”

영장을 받아 들고 한번 쓰윽 읽은 아가씨는 검사를 보며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간다.

“다만, 서버 운영과 관련된 컴퓨터는 여기에서 하나씩 조사해주셨으면 해요. 모두 압수하시면 사실상 거래소가 정지하는 건데, 그럼 이쪽도 협력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압수해 가는 물건 목록의 사본도 요청합니다. 수사 종결 후, 물건을 전부 돌려받기를 원하고요.”

차분하게 당황하지 않고 말하는 아가씨, 그에 검사도 살짝 고민하다가 고갤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환조사도 할 예정입니다. 건네 드린 서류에 출석 요구서가 끼여 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거, 출석 날짜가 너무 촉박한데 시간을 조정 가능할까요? 그리고, 출석에 변호사를 대동해도 되겠죠?”

검사와 아가씨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수사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살 난 컴퓨터나 흩어진 파일들은 물론이고 안쪽의 생활공간까지 깔끔하게 터는 수사관들, 이어서 회사 곳곳의 서류와 컴퓨터까지 압수한다. 검사와 대화를 끝낸 아가씨가 돌아다니며 그 과정을 참관하고 난…….

“물 좀 드릴까요?”

깍두기처럼 아가씨 옆에서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압수수색이 끝나고 공무원들이 사라진 뒤, 아가씨는 살짝 지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고생했어, 새벽아.”

“……옆에서 멀뚱하게 서 있기만 했는데요. 뭘.”

무작정 오긴 했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이렇게 보니 진짜 나 쓸모가 없네. 그렇게 어깨를 축 늘어트리자 아가씨는 오히려 위로하듯 ‘곁에만 있어도 힘이 나니까.’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시곤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켠다.

“좋아, 이제 회사 압수수색도 끝났으니……. 난, 이만 변호사를 만나러 가볼게. 본격적으로 조사받기 전에 한번 변호사랑 상의해야 봐야지. 대응 전략도 짜야 하고.”

“……진짜 국정원에 도움 요청 안 해도 되겠어요?”

“흐, 걱정 마. 내가 누구야. 혼자서 다 잘할 수 있어.”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아가씨, 그 미소에 나도 빙긋 웃었다.

“그렇죠. 우리 아가씨, 그 누구보다 뛰어나니까.”

“그럼 나 먼저 간다.”

스마트폰으로 어딘가로 전화하며 아가씨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고, 난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쭉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이지만 진짜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아가씨를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해.

“하아.”

그렇게 아가씨가 사라진 후, 내 자신의 무력함에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밖으로 나온 순간-.

-비트 넥스 비리 엄정 수사…….

-코인 피해자 보상해라!

-재벌이 서민을 갈취하는데, 도대체 현 정부는…….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고갤 돌리자 근처에서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회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전경들 덕분에 사옥 내부로 난입하진 않았지만, 팻말을 목에 걸고 확성기로 소리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시위대. 슬슬 점심시간 대라서 그런지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도 꽤 된다.

……저걸 보니 드디어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머릿속을 스친다.

“되갚아 줘야죠.”

그래, 내 능력으로 벌어진 일을 ‘수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한 것에 ‘보복’은 할 수는 있다. 물론, 김완호 때처럼 진짜 사람을 죽이겠다고 날뛰는 건 안 되겠지.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보복은 가능할 거야. 이젠 나도 꽤나 영향력을 지닌 ‘권력자’니까.

그러고 보니, 아가씨가 시위대가 너무 대응이 빠른 게 수상하다고 했었지?

“후우.”

가볍게 심호흡한 후, 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인간의 <과거>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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