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28화 (328/350)

제328화

70화. 금이 간 우정

1.

아가씨를 공격한 놈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과거>를 확인하니 예상대로 사옥 앞에서 격렬하게 시위를 하던 놈들은 프락치였는데……. 아니, 세상에 ‘집회·시위 전문 컨설팅 업체’가 있더라고? 그것도 정식으로 인가받은 업체가. 그냥 일당 받고 구호만 외치는 놈들이어서 그 뒷배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다.

시위 인력 회사의 사장, 비트 넥스를 저격한 시사 프로그램의 PD, 비판적인 기사를 낸 신문사 기자…….

인터넷으로 회사 등의 위치를 파악한 후, 직접 찾아가 <과거시>를 사용하면서 자료를 모았다.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돌아다녀야 했지. 일요일 막판엔 쌓인 피로에 환청·환각이 펼쳐지고 머릿속은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질 않아서 고생했다.

어쨌든 그렇게 자료를 수집한 후, 우그 타람에 복귀해서 쓰러졌고…….

“끄으으음……!”

다시 눈을 떴다.

가볍게 쭉 기지개를 켠 후, 곧바로 옆에 둔 스마트폰부터 켰다. 날짜는……. 수요일 오후. 이틀하고도 반나절 잤네. 가볍게 입맛을 다신 후, 이어서 ‘비트 넥스’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잠들기 전과 별로 달라진 건 그리 없다. 월요일에 아가씨가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았다는 것 정도?

“후우.”

휴일 간에 큰일은 터지지 않은 걸 확인한 후, 난 스마트폰을 끄고 머릿속 <메모장>에 난잡하게 복사·붙여넣기 해놨던 자료들을 훑었다.

……아직, 누가 아가씨를 모함했는지는 모른다.

너무 피곤해서 분석을 하지 못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과거>로 본 장면들을 왕창 저장해둔 거고. 난잡한 장면과 정보의 집합이지만 ‘개운한 정신’으로 분석해보면 분명 그 배후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머릿속에 포도당 연료 좀 공급하고 바로 시작해야지.

그렇게 기숙사에서 나가 식당으로 향했는데…….

“오, 우리 도비 일어났네? 야, 마침 잘 왔다. 너 찾는 손님 오셨다.”

“네?”

우리 싸장님이 식당에서 누군가와 밥을 먹고 있었다.

초코볼 같은 매끈한 검은 대머리, 흑적(黑赤)색의 헐렁한 로브 위로 보이는 건 전사 뺨치는 장대한 체구, 식탁 옆에 둔 사람 머리통만 한 검은 수정구가 달린 철퇴……가 아니라 금박 입힌 마법봉, 서예린의 아버지인 서강 아저씨 되시겠다.

……아니, 근데 내 손님이라고?

고갤 돌려 날 바라보는 서강 아저씨, 날 보고 웃지만……. 솔직히,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근심 걱정이 가득한데 애써 웃는 것 같아. 어쨌든 난 꾸벅 고갤 숙였다.

“안녕하세요. 서강 교수님.”

“오랜만이네, 새벽 군.”

“근데 절 찾아오셨어요?”

“음, 사실 좀 부탁할 게 있어서…….”

살짝 망설이며 말끝을 흐리는 서강 아저씨. 부탁? 서강 아저씨, 내가 알기론 누군가에게 꿀리는 아저씨는 아닌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자 아저씨는 결국 작게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우리 예린이 좀 만나줄 수 있는가?”

2.

평소에 재테크라곤 1도 관심이 없었던 서예린.

하지만, 우연찮게 ‘엘븐 코인’을 얻었고 그걸 몇 달 전에 10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그때까진 좋았지만……. 그 팔아치운 게 수백억으로 떡상하는 모습을 보곤 그만 눈이 뒤집혀 버렸다. 1차 대폭락에도 탈출하지 않고 ‘야수의 심장’으로 더 과감하게 코인 추매를 한 서예린은…….

“심각하네요.”

“후우.”

폐인이 됐다.

서강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저저번 주 토요일에 ‘엘 마르의 조롱 영상’이 퍼지고 2차 대폭락 때 절규를 내지르며 자기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때려 부수곤 두문불출 중이라고 한다.

“벌써 열흘째 방 안에서 안 나오고 있네. 식사를 가져다줘도 한 입도 안 먹고…….”

“……밥을 안 먹어요!? 걔가?”

“그래, 처음엔 하루·이틀 안 먹다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열흘이 넘었어.”

하도 경악스러워서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한 끼에 3~4인분이 기본, 한 끼만 걸러도 ‘너무 배고픔!’ 하면서 평소 식사량의 몇 배를 처먹는 식탐 괴물이 밥을 열흘 동안이나 안 먹어?? 그런 내 반응에 서강 아저씨는 한숨을 푹푹 내뱉는다.

“며칠간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기에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아서 스마트폰을 부수고 방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는데…….”

슬쩍 로브의 소매를 걷는 서강 아저씨, 그와 함께 팔뚝에 날카로운 자상에 베인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 각성자의 회복력이 뛰어난 것을 생각하면……. <눈>으로 자세히 보니 치명적인 ‘방사능 맹독’이 상처에 깃든 채 회복을 실시간으로 억제하고 있었다.

“내게 칼을 휘두르더군.”

“…….”

“그 아이도 저지르곤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 깨닫고 곧 기겁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가라고 울고불고 난리 쳐서 방 밖으로 나갔지.”

“딸내미가 사춘기가 세게 왔네.”

턱을 괸 채, 서강 아저씨 옆에서 레모네이드를 쪼옥 빨면서 말하는 싸장님. 그에 아저씨는 고갤 떨군다.

“솔직히,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진아라는 애가 왔을 땐, 그래도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진아? 남궁진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어제 왔었지.”

고갤 끄덕이는 아저씨, 일어나자마자 확인한 뉴스에서 아가씨가 월요일에 검찰 출석했다고 하니까 그다음 날에 바로 서예린을 방문한 건데…….

“근데, 얼마 안 가 서로 다투는 소리가 나더군.”

“…….”

“문을 닫아서 잘 안 들렸지만 예린이가 ‘돈 벌어서 좋냐?’고 소리치는 게 들렸어. 그 진아라는 아이도 언성을 높이고. 주먹다짐까진 가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이네. 그 아이도 좀 지치고 힘들어 보였는데……. 미안하더군.”

눈앞이 깜깜하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대형 사건이 하나씩 터지는 걸 보면 뭔가 마(魔)가 들린 것 같네. 저번 주 압수수색이 들어왔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도 멘탈이 터진 게 좀 보여서 걱정됐는데 서예린까지 엿을 먹이는구만. 어질어질한 느낌에 이마를 짚자 아저씨는 고갤 숙였다.

“어떻게 우리 예린이가 정신을 차리도록 좀 도와줄 수 있나?”

“……과연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직접 보진 않았지만 말만 들어도 서예린은 정상이 아니다. 항상 붙어 다니던 단짝인 아가씨와도 싸울 정도로 멘탈이 나간 상태. 과연, 내가 간다고 서예린이 정신을 차릴까? 그런 내 대꾸에 아저씨는 고갤 들고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정 안 되면 예린이를 제압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거네.”

“…….”

“이미 상담가와 이야기했어. 나 혼자는 도저히 상처 없이 제압하기 힘드니 자네가 도와줬으면 해. 그나마 예린이의 얼마 없는 친구인 자네가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보수는 내가 가진 <연금술> 재료와 서적을 주겠네. 아니, 다른 원하는 것 있으면 요구해도 되네.”

씁쓸하게 말하는 아저씨, 서강 아저씨 옆에 앉은 싸장님은 팔짱을 낀 채 상관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지만 눈빛만 봐도 ‘불쌍한데 도와줘라, 도비야.’ 하는 게 읽힌다. 안 저러셔도 아저씨의 도움 요청은 받아들일 거였다. 비록 뻔뻔하고 민폐도 많이 끼치는 년이지만…….

“어휴.”

서예린도 내 얼마 없는 소중한 친구니까.

“안 그래도 좀 걱정돼서 방문하려고 했으니 보수는 안 받을게요.”

“하지만…….”

“괜히, 그것 때문에 예린이를 핍박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요. 그리고 2~3시간 있다가 방문해도 되죠? 말을 들어 보니까 좀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내 대답에 감지덕지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는 서강 아저씨. 곧바로 식사 대용으로 시킨 고열량 초코 셰이크를 원샷한 후, 스마트폰을 꺼내서 번호를 눌렀다. 착신음이 울려 퍼지고 얼마 가지 않아 통화가 연결된다.

-예, 카페&디저트 전문점 ‘양의 안식처’입니다! 뭘 도와드릴까요?

“저예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대장!

내 말에 전화를 받은 여자애-젤랴가 반색하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국정원이 제시한 ‘싸장님네에서 공밀레공밀레하면 주겠다고 한 혜택들’ 중 하나인 북쪽 아이들의 남쪽 정착. 저번 겨울방학 때, 그 혜택을 사용했다. 싸장님 소유의 뉴 송파구 건물에 세를 들어 카페를 차린 후, 직원으로 채용했지.

디저트 카페, ‘양의 안식처’.

북쪽 목장에서 가져온 양젖유와 양젖 아이스크림을 시그니처로 파는 디저트 카페다. 30~40대 회사원 아저씨들이 있는 곳에 차렸는데, 예쁜 10대 여자애들이 메이드 복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 좋다고 호평 중이다. 물론, 그 커피와 디저트 맛도 나름 훌륭하고.

어쨌든, 난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 카페에 양젖 아이스크림 얼마나 남았죠?”

-어, 잠시만요!

허겁지겁 달려가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답이 왔다.

-10L들이 3통 남았어요! 호두, 피스타치오, 그리고 플레인 하나.

“호두 맛으로 하나 가져갈 테니 빼놓을 준비 해주세요. 급하게 필요해서.”

-네!

졜라의 대답을 듣고 전화를 종료한 후, 난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강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함께 가시죠.”

3.

양의 안식처에서 아이스크림을 픽업한 후, 곧바로 서예린의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마다 항상 마중을 나오던 코끼리만 한 하얀 강아지 ‘흑드’. 내가 방문할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던 녀석은 잔뜩 풀이 죽은 채 집 앞의 정원에서 추욱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활기를 잃은 흑드를 지나쳐서 집 안에 들어선 후, 곧바로 서예린이 있는 방 앞에 섰다.

-똑똑!

“저 예린…… 씨? 저 왔어요! 한새벽! 들어가도 돼요?”

노크하면서 물어봐도 대답 없는 방, 안에 없나 해서 <눈>으로 안쪽을 살피니……. 아주 엉망이다.

침대 시트는 칼에 난도질당한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고, 가구들도 죄다 박살 나있다. 내 목에 걸어주겠다고 직접 글을 판 현판은 2조각이 나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네. 그렇게 엉망이 된 방구석의 어둠 속에서 스포츠 속옷 차림으로 웅크리고 있는 실루엣이 보인다.

“……들어갈게요.”

-끼이이익…….

옆에 서 있는 서강 아저씨에게 혼자 해보겠다는 신호를 보낸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 목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던 서예린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틈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천천히 무릎 사이에 파묻었던 고갤 든다.

눈물 자국이 있는 무표정한 얼굴

작년 여름 방학 때, 모델 일 한다고 그 체격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젠 더 줄어들었다. 현대의 미적 기준으론 더 예뻐졌어. 하지만, 그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머, 머리가…….”

머리카락이 나처럼 새하얗게 세었다.

검은 머리가 하얗게 되다니?? 아니, 본판이 워낙 좋아서 저것도 오히려 스타일리시하게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난 당황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곤 최대한 활짝 웃으며 들고 있던 10L들이 아이스크림 통을 들어 올렸다.

“워낙 등교를 안 와서 걱정돼서 찾아왔어요! 이건, 선물로 가져온 양젖 아이스크림이랍니다! 양의 안식처에서 대량으로 가져왔어요!”

“…….”

“그……. 힘내요! 코인 그까짓 게 뭐라고! 돈 조금 빌린 건, 갚으면 되죠! 예린 씨 능력이라면 금방 갚을 거예요!”

코인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순간, 텅 비어있던 서예린의 충혈된 황금빛 눈동자에 생기가 서린다. 하지만, 그게 결코 좋은 뜻은 아니었다. 고통, 그리고 분노가 얼굴에 깃들면서 그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는 모습은…….

마치, 석고상이 생명을 얻어 분노하는 것처럼 기괴하게 보였다.

“그, 예린…….”

“너 때문임.”

“……넹?”

“너 때문에 이렇게 됐음.”

뭔가 X 됨을 느끼고 수습해보려 했는데, 다짜고짜 원망과 함께 서예린의 몸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진짜 사람을 죽일 만한 섬뜩한 살기, 그 몸 주위에 체화(體化)된 룬문자가 떠오르고 <염동력>이 일어나 방구석에서 나뒹굴고 있던 칼-부정한 삼위일체를 붙잡는다.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서예린은 내가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몰아붙인다.

“네가 내 돈 다 가져가서 그런 거임! 돈만 안 가져갔어도!! 엘븐 코인을 팔지도 않았을 거임!! 돈을 빌리지도 않았을 거임!!!”

“아, 아니! 그게 말이…….”

내가 항변하는 와중에 서예린의 손에 잡히는 3개의 칼날, 왼손·오른손에 각각 하나씩 나머지 하나는 허공에 <염동력>으로 둥둥 떠 있다.

“죽어!”

그렇게 3자루의 칼을 쥔 서예린이 분노한 얼굴로 내가 달려들었다.

-스걱! 콰드드득!

“으, 으아아아!”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통을 내던진 채, 난 바닥을 구르며 날아드는 서예린의 칼날을 피했다. 시간 차로 쏟아지는 3개의 칼날, 그중 하나는 둥둥 띄운 채로 저글링하며 스왑하듯이 칼 두 자루를 연거푸 휘두른다.

평소와는 다른 난폭한 움직임

진짜 죽일 듯이 날아오는 칼질이었지만, 서예린의 강점인 치밀하고 정교한 수 싸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울분에 차서 발악할 뿐, 게다가 며칠간 굶어서 그런지 속도 자체도 떨어졌기에 어떻게 장비의 보조 없이도 데굴데굴 구르면서 피할 수 있었다.

“서예린!!”

안쪽에서 들려오는 내 비명과 박살 나는 소음에 문을 벌컥 연 서강 아저씨, 날 향해 칼을 휘두르는 서예린을 보곤 분노한 얼굴로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는 찰나-.

“맞아요!! 지금 휘두르는 그 칼을 안 샀으면 이런 꼴 안 났어요!!”

“……!!”

난 서예린을 보며 소리쳤다.

따지고 보면 서예린의 수중에 있던 엘븐 코인을 팔게 된 이유가 지금 저 손에 들린 아티팩트 무기 ‘부정한 삼위일체’를 질러서다. 저거 산다고 남아있던 돈 3,000만 원을 몽땅 내게 헌납하고 돈 없어서 빌빌거리다가 엘븐 코인을 떠올리곤 팔아치웠지.

그런 내 말에 서예린이 멈칫하더니 이내 멍하니 손에 쥔 칼을 바라보는 가운데, 난 그 여세를 몰아 서예린이 쥔 칼을 향해 삿대질했다.

“전부, 그 칼이 문제예요! 그 칼을 안 샀으면 엘븐 코인도 안 팔았고……. 아무튼 이렇게 고통받지 않아도 됐어요!”

“…….”

-땡그랑. 텅. 텅그렁.

그런 내 말에 멘탈이 나간 서예린이 양손에 쥔 칼을 떨어트린다. <염동력>으로 띄우고 있던 칼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잠깐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흐흑, 흐으으윽……. 흐아아아아앙!”

주저앉듯이 쓰러지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했다. 서럽게 우는 딸내미의 모습에 씁쓸한 얼굴로 지팡이를 내리는 서강 아저씨, 그사이에 난 내던진 아이스크림 벌크를 회수하고 서예린에게 다가가 내밀었다.

“……!?”

펑펑 울다가 살에 닿는 차가움에 흠칫하며 날 바라보는 서예린, 그에 난 호주머니에 챙겨둔 밥숟가락을 꺼내며 서예린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저번에 같이 북쪽에 갔을 때, 제게 양젖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머리 좀 식히라고 했었죠?”

멍하니 숟가락을 보는 그녀를 향해 난 벌크의 뚜껑을 열며 빙긋 웃었다.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달콤함을 음미하면서 먹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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