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33화 (333/350)

제333화

3.

기겁하며 비명을 지르는 스프리건.

그 날카로운 비명에 접근하던 오크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던 이들까지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평범한 노동자들은 등에 매달고 있던 소총을 파지하고, 스프리건을 어깨에 얹고 있던 조장으로 보이는 마력 각성자는 왼손에 쥐고 있던 방패를 들어 올리며 허리춤의 손도끼를 뽑는다.

-타닥!

“……!!”

그 순간, 난 내달렸다.

과격하게 움직이면서 기척이 났지만 이미 들킨 이상 어쩔 수 없다. 다행히, <투명화> 덕분에 오크들은 내 기척을 느꼈음에도 함부로 사격하진 못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이미 공항의 대략적인 구조는 파악했다. 이대로 쭈욱 동쪽 해변으로 탈출-.

“삐이이-잇!(도망 못 쳐!)”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비명을 질렀던 스프리건이 오크의 어깨 위에서 튀어 오르며 날 쫓아온다.

<게임 시스템>에 나온 설명답게 어린애 체구라곤 믿기 힘든 매우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스프리건, 하지만 그래 봤자 나보다는 느리다. 점점 거리가 벌어지는 가운데, 돌연 놈의 몸 주위에서 마력이 꿈틀거리며 룬문자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반짝반짝 파티용 조명! (Dazzling Party lights!)

레벨 1 주술

시전 소음 : 1

주문 소음 : 0

최대 SP : 90

사거리 : 최대 전방 40m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1P

타게팅 : Beam

효과 : 특정 대상을 빛나는 휘황찬란한 후광으로 감싸 더 잘 보이게끔 만드는 주문, 이 주문으로 만들어진 마법적인 빛은 밝으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으며 통상적인 광채보다 훨씬 눈에 잘 띈다.

또한 파티 분위기를 띄우는 데 매우 좋다!

날 향해 뻗은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황찬란한 광채, 룬문자를 보면서 이미 그 효과의 발사 타이밍을 파악했기에 그에 맞춰서 방향을 틀었다. 헛되게 바닥에 작렬하는 마법, 방향을 꺾느라 살짝 느려졌지만 그래도 따돌릴 수 있는데…….

“삐-삐삐삣!(저기다!)”

“삐약!(포상금!)”

“퓌! 퓌-이이잇!(조심! 심상치 않아!)”

다른 비행기 쪽에 있던 스프리건들이 난입했다.

허리띠에 달린 탱탱볼 같은 걸 쥐고 마력을 주입해 던지거나 마법을 난사하는 스프리건들, 마법의 종류는 <감속>, <혼란>, <파티용 조명> 등 비살상 마법들이었다. 사방에 배치한 <눈>으로 그 마력의 유동을 파악해서 마법은 대부분 피할 수 있었는데-.

-파-아아앙!

-팡!

“이 개…….”

탱탱볼 같은 물체-‘반짝이 폭탄’은 답이 없었다.

폭약이 터지면서 충격파와 함께 생명체의 마력에 반응하는 미궁 식물 ‘오르놀’이 섞인 반짝이가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내 몸을 때린다. 그 폭압(爆壓) 자체는 어떻게 힘으로 저항 가능했지만 반짝이 가루는 피하고 자시고도 불가능했다. 던진 스프리건들도 반짝이가 잔뜩 묻었지만-.

“……저기다!”

“빠져라! 빠져!”

오크들도 이젠 내 위치를 파악한다.

곧바로 소총을 겨누는 오크들, 다행히 근처에 스프리건들과 비행기가 사선(射線)에 걸려서 함부로 사격하진 않는다. 소총 사격뿐이라면 그냥 연막 역할을 하는 독무를 깔고 쭈욱 뒤로 빠졌겠지만 ‘소총을 능가하는 무기’도 있었다.

-부우우우우웅!

내 위치를 확인한 지프 차량 한 대가 맹렬하게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래 봤자 나보다는 느리다만 문제는 그 위에 ‘벌컨포’가 달렸다는 것, 보안경을 쓴 오크 사수는 내 위치를 확인하곤 몸을 틀어 벌컨포를 겨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한국의 군부대보다 흉악하냐?! 어쨌든 그걸 본 순간, 난 도망치는 대신에 방향을 바꿔서 스프리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삐, 삐앗!(오, 온다!)”

“삐삐!(돔황챠!)”

내가 방향을 바꿔서 접근하자 혼비백산하며 흩어지는 스프리건들. 큰일 만들기 싫어서 피해 왔다만,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가뿐하게 조질 수 있었어. 내가 스프리건들과 가까이 근접하자 기관포를 겨눈 오크 사수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그리고…….

-빠각!

“삐약!(악!)”

날 방해한 놈들은 용서치 않아요!

도망치는 스프리건 하나에게 따라붙어서 창을 휘둘렀다. 내 사심이 잔뜩 담긴 창대가 목덜미를 강타하자 스프리건이 비명을 지르며 엎어지고, 연이어 휘어진 창날로 한 놈의 유니폼 벨트를 걸어서 들어 올리는 것과 함께-.

-쓰가가가아악!

동시에 기관포를 향해 빈 왼손을 뻗었다.

주위의 공기가 한순간에 압축, 내 왼 손바닥 위에 빨려 들어가며 불쾌한 광채가 번뜩이는 새카만 말뚝으로 굳어지고-.

-부우우우웅!

이어서 벌 떼가 날아오는 소음을 수백 배 확대시킨 듯한 굉음과 함께 <맹독의 말뚝>이 쏘아진다. 지프차 포대 위에 있는 전사 오크도 내가 녀석을 향해 마법을 쏘려는 낌새를 파악하고 인질을 잡고 있음에도 그냥 방아쇠를 당긴다.

그 순간, 장갑에서 올라오는 유혈의 기운을 받아들여 <광폭화> 상태에 돌입했다.

-웨에에에에엥-!

옆으로 움직이는 척하면서 폭발적으로 위로 도약했다.

전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내가 있던 자리에 쏟아지는 빛줄기, 그 붉은 궤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탄환 크기만 봐도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내 손보다 더 크고, 거기에 담긴 힘은……. 맞는 순간 ‘폭발사산’이다.

내가 위로 튀어 오른 것을 보곤 사수는 곧바로 궤적을 조정하려 했지만-.

-콰득! 펑!

“큭!”

날아온 <맹독의 말뚝>이 벌컨포에 작렬한다.

벌컨의 총열이 박살 나고 안에 있던 총탄이 제대로 쏘아지지 못해 터진다. 벌컨이 박살 나면서 오크 사수도 그 파편을 전신에 맞고 피범벅이 되어서 조종간을 놓는다. 불과 1~2초 남짓한 시간 안에 벌어진 일, 조금만 더 늦었어도 나와 스프리건은 다진 고깃덩이가 됐겠지.

“흐으.”

지면에 착지한 후, 난 곧바로 움직이는 대신에 잠시 서서 입술을 질겅였다.

<눈>을 띄워 주위를 확인한바, 저게 끝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벌컨포를 얹은 지프차 3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 게다가 전투용 드론으로 보이는 것들도 관제탑에서 나오는 게 보인다. 비행기가 맞을 수 있어서 쏘지 않는 것 같다만……. 비행기라는 엄폐물이 사라진 순간 인질이건 뭐건 그냥 쏴 갈길 가능성이 꽤 농후하다.

……어떡하지?

공간이동 스크롤을 한 번 더 쓸까? 하지만, 반경 500m 안에 나타나는 거라서 공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반짝이가 묻어서 금방 위치도 드러날 거고. <연금술>로 반짝이를 떼어낼 수는 있다만 이미 <광폭화>를 써서 마법을 쓰기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방금 전처럼 재수 없는 곳에 떨어지면…….

그냥 투항할까?

“개 같은 소리……!”

잠시 머릴 스쳐 지나간 생각에 이를 ‘빠득!’ 악물었다. 투항했다간 내가 가진 거 몽땅 빼앗길 거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굴러가면서 얻은 것들인데!! 이걸 빼앗길 바엔……. 차라리 몇 놈들을 죽이면서 뚫고 가는 게 낫지! 로브의 <아가리 주머니>에서 해골 투구를 꺼내 머리에 착용한 뒤, 난 창을 휘둘러 걸어둔 스프리건을 옆으로 내던지고-.

그대로 방향을 바꿔 공항을 향해 돌격했다.

4.

공항은 ‘국가중요시설’로 구분된다.

특히나, LAX 같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공항’ 같은 경우엔 더더욱 중요하다. 미국의 공항들 중 태평양을 건너자마자 바로 나오는 공항, 게다가 공항이 있는 LA-로스앤젤레스는 동부가 몰락한 이후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이러한 지리적·경제적 이점 덕분에 국내·외로 엄청난 인파가 LAX에 몰린다.

당연히, LAX의 경비·보안 수준은 다른 미 공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삼엄했다.

잡무를 담당하는 마력 각성자들만으로 타국 공항의 경계·경비를 가뿐히 능가하는 수준, 전투 업무를 담당하는 미 경찰국 소속 ‘특수 경비단(Special Guard Unit, SGU)’의 실력은 웬만한 국가의 최정예 특수부대를 능가했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나가기에 공항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근처에 산타모니카, 베버리힐즈 등에 사건이 터질 경우에도 출동하곤 했다.

“야, 좀 작작 지랄해라! 응?”

공항 내 항공사 휴식 공간, 흑갈색 피부의 딥 엘프 여성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오크에게 빈정거렸다. 그에 고갤 숙이고 있던 창백한 피부의 오크가 천천히 고갤 든다.

“……뿌득.”

“어쭈? 이를 가네? 한 대 치겠다?”

그런 여자 딥 엘프를 향해 이를 악무는 거구의 오크, 최근에 엘프를 대상으로 혐오 범죄가 많이 벌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 모습에 근처에 있던 흑인 남성이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워, 워. 진정해. 진정. 엘리나, 너도 좀 그만하고.”

“아니, 하도 답답해서 그렇지. 며칠이면 몰라도 벌써 2주째 저러고 있는데? 테인, 너도 쟤가 궁상떠는 거 좀 지겹지 않냐?”

팔짱을 낀 채로 말하는 엘리나라는 딥 엘프, 그녀는 보란 듯이 으르렁거리는 오크를 향해 빈정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엘 마르, 그 새끼 믿지 말라고. 허여~멀건한 ‘우드 엘프’ 새끼들은 믿을 게 못 돼요! 거기에 골디안 신도? 오우! 골디안 코인을 위해서라면 애미·애비도 팔아넘기는 새끼들? 그럼 사실상 140% 사기지. 그냥 손해 보더라도 빠졌어야지. 멍청하게 또 들어가서…….”

“야, 엘리나!”

“알았어, 알았어.”

중재하는 흑인 남성이 언성을 높이자 입을 다무는 딥 엘프 여성, 그런 이들을 모습을 보며 근처 탁자 위에 앉아 초콜릿 셰이크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SGU 소속 제복을 입고 있던 스프리건이 입을 열었다.

“삐-이잇~ 삣.(개~판이네. 개판)”

알아듣기 힘든 스프리건 고유언어, 하지만 한솥밥 먹은 지 꽤 됐기에 그 뉘앙스 정도는 파악했다. 그렇게 또다시 엘븐 코인의 여파에 다들 고갤 젓고 있을 때-.

-웨에에에에엥!

“……?!”

“나만 들은 거 아니지?”

희미하지만 귓가에 들리는 폭음에 다들 시선을 교환했다.

평범한 총성(銃聲)이 아니었다. 훨씬 더 둔중한 음색의 폭발음, 거기에 섞인 특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 비행장에 있는 기관포의 소음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가운데, 가슴팍에 달린 무전기가 동시에 울렸다.

-아, 관제탑에서 공항 내 전 SGU 팀에 알린다. 현재 비행기를 타고 나타난 밀입국 거수자가 공항으로 접근 중, 마법 사용자로 파악된다. C번 게이트 쪽으로 오고 있으니 전 인원들은 대응 바란다.

“거, 뭔진 몰라도 마법사라니 좀 낌새가 안 좋은걸.”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흑인 남성, 마력 각성자가 널린 미국에서도 마법사는 고급 직종이다. 어디에 가도 대우받을 수 있는 인간이 몰래 들어오다니……. 게다가 기관포까지 갈겼음에도 뒤지지 않았다? 심상찮은 실력자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SGU 대원들이 얼굴을 찌푸릴 때-.

“가자.”

죽상이던 오크가 옆에 세워둔 커다란 도끼를 쥐고 일어서며 말한다. 흉흉한 모습에 딥 엘프 여자가 빙긋 웃었다.

“좀 정신을 차렸네?”

“……한 번만 더 지랄하면 도끼 휘두를 거다.”

“알았어. 알았어.”

으르렁거리는 오크의 모습에 입을 다무는 딥 엘프 여성, 이어서 공항 방송으로 울려 퍼지는 테러 경보를 들으며 그들은 곧바로 C번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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