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34화 (334/350)

제334화

5.

도망치지 않고 공항을 정면으로 뚫기로 결정한 후, 난 대놓고 ‘기세’를 방출했다.

굳이 싸우지 않고 내 ‘강함’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 무기에 피를 묻히기로 결의했다만 그래도 괜히 피해를 키우고 원한을 사는 것은 사양이기에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대놓고 마력을 끌어올려 기세를 방출하자 스프리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벌컨포를 장착한 지프 차량을 타고 오던 오크들은 달랐다.

-웨에에에에엥-!

-두두두두두두!

굳어버리거나 압도되지 않고 기관포를 갈기는 놈들, 전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너무 연사 속도가 빨라서 빛줄기처럼 보이는 붉은 궤적이 쏟아진다. 근처에 스프리건이나 비행기가 있음에도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쏘는 걸 보면 내 기세의 효과가 없는 건 아닌 듯하지만…….

“X발!”

이러면 오히려 역효과지!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몸이 날렵해봤자 음속보다 빠를 순 없다. 하물며 소리보다 2~3배는 더 빠른 총탄을 피하는 건 불가능. 그나마 퇴로를 차단하면서 쏘는 게 아니라 발작적으로 갈기는 덕분에 으깨지지 않았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생사의 갈림길 속, 핑핑 돌아가는 내 머리가 내린 해결책은-.

“저……. 저거!!”

“쏴! 그냥 쏴!!”

곧바로 목걸이에 걸린 반지의 발동 기술-<어둠의 장막>이었다.

꿈틀거리는 검은 기운이 목걸이에서 터지듯이 뿜어져 나와 반경 10m 주위를 시커멓게 물들인다. 당황하면서도 사격을 멈추지 않는 벌컨포 사수들, 그 상태에서 난 근처에 있는 비행기 동체에 달린 날개 위로 뛰어올라서 몸을 숙였다.

놈들이 있는 위치에선 안 보이는 방향, 엄폐는 되지 않아서 재수 없으면 그대로 으깨질 상황이었지만-.

-티팅! 팅! 팅! 팅!

“휘유우…….”

다행히, 내가 있는 쪽에 날아오는 건 별로 없었다.

대신에 궤적에 휩쓸린 비행기의 한쪽 날개 엔진이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수백 발의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렸을 뿐. 다행히 비행기 내부엔 사람이 없어서 구멍이 뚫렸어도 인명 피해는 없……지만 국제선 비행기 한 대가 얼마더라? 되게 커 보이는데? 대충, 내 기억으론 수천억…….

……몰라 레후.

잡히면 진짜 X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기며 이쪽을 향해 기관포를 갈기는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사격을 가한 지 십몇 초, 어느새 놈들의 사격은 멈춰 있었다.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라 탄이 바닥난 거다. 1초에 100발 넘게 쏟아지는 총이었으니 말 다 했지.

“흐읍!”

발작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이 다 떨어져서 당황하고 있는 놈들을 무시한 채, 난 전력으로 게이트 방향을 향해 질주했다.

총성이 울려 퍼지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떴지만, 오히려 이쪽으로 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눈>의 필터를 다르게 조정해서 보니 활주로에서 보던 놈들보다 더 정예한 마력 각성자들이다.

SGU?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인쇄된 마법 보호구를 입고 있었고,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강도는 최소 상위 전사-기사급. 마법사와 코드 108을 섬기는 놈도 있다. 진짜, 저런 병력을 보니까 이곳이 ‘미국’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어떻게 신안에서 봤던 국정원 아저씨들보다 공항 지키는 애들이 훨씬 더 정예해 보이냐?

-휘릭! 휙!

생각과는 별개로 곧바로 <아가리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졌다.

마력 각성자용으로 만들어진 폭발물, 죽이려고 던진 건 아니고 보고 피하라는 뜻에서 던진 견제용이다. 워낙 강력해서 이걸로도 죽을 수 있긴 하지만…….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피해!!”

접근하는 내 기세를 느끼곤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연이어서 날아오는 심상찮은 수류탄의 모습에 기겁하며 엄폐하는 무리들.

-콰앙! 쾅!

수류탄이 심상찮은 위력으로 폭발하는 사이에 난 건물 안으로 진입해서 엄폐해있던 이들과 마주했다. 선두에 있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경고했던 허여멀건한 엘프, 그 손엔 화염 브랜드가 있는 ‘불타오르는 장검’을 손에 쥐고 있다. 마법까지 사용하는 마검사 스타일인 것 같은데-.

-스걱!

“……큭!!”

걸치고 있는 택티컬한 갑주의 틈, 손목 쪽을 내 창으로 베어냈다.

나름 기교를 부리려고 한 것 같다만 내 <눈> 앞에서 기교를 부리는 순간 박살 나지. 적당히 힘줄을 베어준 뒤에 연속해서 송곳처럼 날카롭게 세운 창의 뒤쪽으로-.

-푹!

“삣!”

등 뒤에서 몰래 접근한 스프리건을 향해 찔러줬다.

팔뚝이 꿰뚫리자 비명을 지르는 스프리건, 뉴 송파구에서 봤었던 거대 쥐쟁이처럼 ‘테네브라’의 신도인 듯 내 그림자의 뒤에서 솟아나 전격 단검을 찌르려 했으나 내 <눈> 앞에서 숨을 순 없지. 연거푸 창을 휘둘러 두 명을 죽여 버릴 수 있었지만-.

-타닥!

죽이는 대신에 <아가리 주머니>에서 직접 제조한 ‘악취 구름 연막탄’을 꺼내 터트리고 질주했다. 독가스에 가까운 연막, 마력 각성자라서 죽진 않겠지만 엄청 괴롭겠지. 지하라면 거리낌 없이 죽였겠지만 지상에선 그럴 순 없다. 경험치가 아깝긴 하다만 이미지를 신경 써야지.

……아니, 들킨 시점에서 조진 건가?

어쨌든 게이트를 따라서 질주하자 아직 도망치지 못한 민간인들이 보인다. 그 후미에 SGU라는 특공대 복장의 인원들과 그냥 경비원들이 있는 것도. 도망치지 않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 특히 경비병들이 소총을 겨누고 코너에서 대기하고 있다.

“흠.”

앞쪽 바닥엔 뉴 송파구에 내려갔을 당시, 거대 쥐쟁이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투명한 마름쇠가 깔려있다. <눈>의 감정 범위에 닿지는 않았지만 음에너지가 넘실거리는 마력 패턴을 보니……. 밟으면 고통을 가하는 종류구만. 모르고 밟으면 기겁할 듯.

어쨌든 그냥 들어가면 집중 사격에 벌집이 될 테니까 <아가리 주머니>에서 추가로 ‘악취 구름 연막탄’을 꺼내 던졌다.

-퉁! 퍼엉!

-드르르르르륵!

-타탕! 탕! 타타탕! 탕!

던지기 무섭게 폭발하는 연막탄, 그 새카맣게 뭉클거리는 연막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한다. SGU라는 특공대 복장의 오크는 그런 경비병들의 대응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다.

“그만! 생각 없이 다 쏟아내면……!?”

연막만 던지고 내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만 연막을 뚫고 지면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돌진하는 내 모습을 보곤 기겁한다. 한 타이밍 빠르게,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움직여야 우위를 점하는 법이지. 마름쇠? 모르고 밟았으면 기겁했겠다만 알고 밟으면 버틸 만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무조건 이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뿜어내는 기세가 경비병들에게 전달되고, 몇몇 단발로 쏴서 총탄이 남아있는 이들이 내 쪽으로 총구를 돌린다. 빈약한 내 무장으론 총탄 하나도 까다롭지만……. 이것도 충분히 각오한 바다. 그 순간-.

“까드드득!”

난 이를 악물고 팔방에 배치해뒀던 내 <눈>의 시야를 ‘수백 개로’ 쪼갰다.

반경 30m 안쪽을 뒤덮으며 여러 각도에서 본 경비들의 위치와 내 위치를 뇌에 전달하는 시야. 그 막대한 정보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머리는 한순간에 받아들여 ‘정확한 조감도’를 그려내고, 전투 감각에 따라서 움직였다.

-타타타탕! 타타탕! 타탕!

-팅! 팅팅팅! 팅!

총구 궤적이 향하는 곳을 피하고 반동에 의해 수정되는 궤적을 실시간으로 계산해서 움직인다. 창날로 탄환을 튕겨내고, 그 반동을 이용해 더 빠르게 가속해 이어지는 탄환을 튕겨낸다. 동시에 몸을 움직여 피하기 힘들 정도로 탄환의 궤적이 겹치는 구역을 벗어난다.

“미친……!”

불과 2~3초, <광폭화>의 강화된 육체와 마법 신발이 합쳐져서 일어난 기적. 어느새 순식간에 코앞에 도착한 날 보며 경비병들은 기겁하며 주저앉거나 저항을 포기했지만 SGU라는 특공대원들은 창백한 표정으로 날 응시한다. 이들도 얼굴은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지만-.

-투훙! 퉁!

그 몸들은 알아서 움직였다.

어깨에 유탄발사기 같은 것을 매고 있는 인간 남성이 날 향해 조준하고, 근처의 엘프 마법사가 꽤나 치명적으로 보이는 전격 투사체를 발사한다. 엘프가 쏘아내는 마법은 룬 문자의 형상과 타이밍을 보고 파했지만-.

-퍼-엉!

남성이 겨누고 있는 유탄발사기에서 폭압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그물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30m 안쪽에 접근해서 감정을 이미 끝냈기에 뭐가 들었는지는 파악했지만. 몸을 최대한 웅크리면서 전신의 힘을 끌어올려 넓게 베어냈다.

-촤학!

다행히, 내가 못 베어낼 정도는 아니었다만-.

-바지지지직!

피해냈던 전격 투사체가 그 철 그물을 타고 번개가 튀긴다. 찢어낸 틈 사이로 단숨에 빠져나왔음에도 순간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갈 정도로 쩌릿쩌릿하구만. 하지만, 움직이던 관성에 따라서 내 몸은 그대로 그물 포탄을 쏘아낸 인간에게 날아간다.

-푸욱!

“크흑!”

세워둔 내 창날에 그대로 꿰뚫리는 그물을 쏘아낸 대원,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본 듯 대처를 못 한다. 몸이 부딪치는 순간, 쩌릿쩌릿한 게 좀 풀리는 것을 느끼며 난 단숨에 요원의 복부를 후려 차서 창을 뽑아내곤-.

-퍼-엉!

<아가리 주머니>에서 세 번째 ‘악취구름 연막탄’을 꺼내 터트렸다.

“크하아아악!”

“켈록! 켈록! 빠……. 커흑!”

특공대원들은 어떻게 눈을 뜨려고 했으나 내 특제 마력으로 유해성이 대폭 강화된 터라 어떻게 대응하지 못하고 와해된다. 그렇게 단체로 혼란에 빠진 사이, 난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향해 내달리며 뿜어내고 있던 기세를 억눌렀다.

“꺄아아아아악!”

“제……. 제발!”

기겁하는 민간인들 틈에 파고든 뒤, 좀 한숨을 돌리며 현재 몸 상태를 체크했다.

전격 그물에 살짝 데이고, 주술적 고통을 주는 마름쇠를 밟았다만 그리 나쁘진 않다. 문제는 <광폭화>, 살육을 이어 나가지 않아서 지속시간이 짧아졌다. 대충 2~3분 뒤엔 끝날 것 같은데 그 후유증 ‘탈진’을 어떻게 버티냐다. 인간의 시체라도 있으면 투구로 섭취해서 후유증을 최대한 줄여볼 만한데…….

“……음?”

그렇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공항 안에 몇 명의 인간이 포착된다.

정확히 따지면 ‘인간’은 아닌데……. 저거라면 대놓고 죽여도 괜찮지 않을까? 나중에 문제 삼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투구의 기준은 잘 모르겠네. 어쨌든 움직이는 방향 앞에 있으니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저기! 저기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인파를 뚫고 나타나는 특공대원들, 민간인들 틈이라서 기세를 자제하고 있으니 아주 용감하게 냉병기를 쥐고 뛰어든다. 그나마, 민간인 오사를 걱정해서 소총을 안 갈기는 게 다행이구만.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난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다시 창을 휘둘렀다.

6.

-알려드립니다. 현재 C게이트에서 거수자가 난동 중이니 이용객들께서는 뒤로…….

들려오는 총성과 방송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민간인들. 경비원들은 그러한 패닉에 빠진 민간인들이 원활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가운데-.

“관제탑,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바란다.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가?”

팀 단위로 공항 곳곳에 있었던 SGU 대원들은 거수자를 상대하기 위해 밀려오는 그 인파의 물결을 역으로 헤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앞선 팀이 붙었음에도 제압됐다는 소식이 안 들려오니 그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굳어 있었다.

그러한 질문이 한두 개가 아닌 듯, 관제탑에서 얼마 안 가 전체 무전이 들려왔다.

-접촉한 팀의 보고에 따르면 마법사가 아니다. 전사, 정면에서 20명의 경비원들이 쏟아내는 소총 사격을 피하고 총탄을 튕겨냈다는 보고가 들어온 걸 보면 최하 S-급으로 추정된다.

“삐익(X발).”

“아니, 도대체 왜 이런 괴물이…….”

그 무전기에서 나온 대답에 팀원들은 딱딱한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다.

미국의 마력 능력자 분류 기준은 S, A, B, C, D 등급으로 이뤄진다. 마법사는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지만, 전사의 경우 상급 전사-기사급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A+, A, A-등급을 차지한다. S급은 이종족 포용 정책으로 마력 각성자가 많은 미국에서도 별로 없는 규격 외 등급.

솔직히, SGU 대원들로선 만날 일이 없는 등급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이들은 사실상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한다. 딱히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대단히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이들, SGU 대원들이 자주 상대하는 ‘범죄자’ 혹은 ‘테러리스트들’ 중에선 거의 없다. 얼마 없는 이들도 전부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고.

-다행히,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거수자에게 죽은 사람은 없다. 딱히, 살상에 목적을 둔 것 같지 않으니 접근해서 싸우기보단 ‘요룬가린’ 요원이 올 때까지 원거리에서 시간을 끄는…….

-콰장창!!

그렇게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통신은 C번 게이트 건물 3층의 유리창이 박살 나며 묻혔다. 요란스럽게 유리창이 박살 내며 1층 로비에 착지하는 형체, 번쩍이는 로브를 두른 해골 대가리는 불길한 검붉은 안광을 번들거리며-.

“꺄아아아악!”

가까운 곳에 있는 5~6세 남짓한 어린이를 황금빛 창으로 꿰뚫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