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5화
그 순간, 대부분의 공항 이용객(인간)들은 얼어붙었다. 아동 살해, 미국 사회에선……. 아니, 대부분의 지상 국가에선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범죄 중의 범죄였다. 그것도 모자라 괴인은 곧바로 보란 듯이 아이를 꿰뚫은 창을 번개처럼 위로 들어 올리더니-.
-촤하아아악!
상체와 하체를 양단해버린다.
그 모습엔 미궁 출신들도 얼굴을 찌푸렸다. 경쟁 종족의 아이를 죽이는 건, 미궁에선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만큼은 고통 없이 ‘단칼’에 보내주는 게 예의다. 저렇게 잔혹하게 산 채로 토막 내며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저건, 악마나 할 법한 짓이었다.
“아, 아아아……!!”
“죽여! 죽여버려!”
피와 내장이 흩뿌려지는 광경에 아이 근처에 있던 부모와 몇몇 심약한 이용객들이 기절하고 광분한 SGU 소속의 ‘인간 대원’들은 달려드는 가운데, 아이를 양단한 괴인은 연거푸 아이의 하반신을 휘어진 창날로 낚아채면서 도망치는 민간인들 쪽으로 바짝 따라붙더니-.
-우적! 우저적! 콰드드득!
하반신을 공중에 던져서 입으로 받아먹었다.
그 아가리가 X맨마냥 쩍 벌어지면서 단숨에 안으로 씹어 넣는다.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되새김질하며 밖에 나온 길쭉한 내장과 다리를 기어코 아가리 안에 다 처넣는 괴물.
“삐-삣삣삐. 삐약!(인간 죽으면 안 돼. 감속 지대부터!)”
“삐-이이약!(천-천히!)”
SGU의 분대팀마다 하나씩 있는 스프리건들이 공항 이용객들의 어깨와 머리를 디딤돌 삼아서 통통 뛰며 그 괴인에게 따라붙었다. 공항 이용객과 괴인이 바짝 달라붙어 있는 상태, 그에 스프리건들은 살상 마법 대신에 발목을 잡을 만한 광범위한 포획 마법을 퍼부었다.
“으윽!”
“아아아아악!”
연금술 촉매를 이용한 <거미줄 그물>, 공기의 매질을 바꿔서 만들어지는 <감속 지대>……. 그에 괴인 근처에 있던 공항 이용객들이 휘말렸다. 이미 괴인이 자신들을 쫓아온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던 민간인들은 더더욱 패닉에 빠졌지만-.
-타닥!
하지만, 그러건 말건 괴인은 비명을 지르는 민간인들을 무시하며 지나친다.
쇠 그물을 능가하는 인장강도를 지닌 끈적한 <거미줄 그물>은 황금빛 창날 앞에 천 조각처럼 찢어지고, 공기가 점액질처럼 변해 민간인들은 허우적거리는 <감속 지대>도 그대로 뚫고 나갔다. 그러나 속도 자체가 느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죽어!”
“우아아아아!”
쏟아지는 인파의 물결을 헤치며 도달한 SGU 대원들이 단숨에 괴인을 덮친다.
총 6명, 분노했음에도 그들은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동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위하듯 진영을 짜서 달려들었다. 아직, 이종족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인간’이라지만 그래도 SGU 대원으로 뽑힌 만큼 전부 상급 전사의 턱걸이는 되었다.
그렇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냉병기의 세례를-.
-챙! 챙! 채채챙! 챙!
괴인은 가뿐하게 피하거나 받아내면서 반격했다.
그 광경을 보며 달려들지 않은 SGU 대원들은 딱딱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압도적인 힘으로 날려 보내거나, 가공할 빠르기로 쳐낸 건 아니었다. 대원과 비슷한 속도, 그 무기 자체에 실린 힘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휘두르는 대원들의 무기는 닿지 않는다.
괴인을 향해 연거푸 무기를 휘두르다가 다른 대원들의 무기와 서로가 얽히고, 괴인이 한 박자 먼저 창을 내밀면 거기에 달려들 듯이 꿰뚫리거나 베인다. 마치, ‘짜고 치는 연극’ 같은 모습. 저건, 고수가 까마득한 하수를 상대할 때나 보여줄 수 있는 광경이었다.
“너도 전위(前衛)인데, 합류 안 할 거야?”
불과 두세 호흡 만에 어처구니없이 유린당해 너부러지는 인간 대원들, 그에 다른 전위들은 달려가는 척하면서 발걸음을 멈췄다. 따라붙은 여성 딥 엘프 대원이 말하자, 커다란 도끼를 쥔 오크는 얼굴을 찡그리며 다른 인간 이용객들에겐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난다. 가봤자 헛수고야.”
“의외네. 총을 쏘는 미친놈들에게도 그냥 달려들던 놈이.”
의외라는 듯이 말하는 딥 엘프의 모습에 오크는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인간 대원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우릴 죽이진 않는다만……. 마음이 바뀌는 순간, 단숨에 날 죽일 수 있는 존재에게 달려들고 싶진 않다. 그래도 잡을 승산이 있다면 도전해 보겠지만 이곳의 전력만으론 승산이 없어. 죽으면 개죽음이야.”
“하긴.”
오크의 대꾸에 팔짱을 끼며 동의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는 여성 딥 엘프, 미궁에서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생존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럼 저쪽으로 가자. 그냥 빠지기엔 눈치 보여.”
“음.”
아이를 찢어버린 현장을 가리키는 여성 딥 엘프, 그에 오크도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사실상 괴인을 체포하는 걸 포기한 그들은 아이의 살해 현장으로 향했다.
“비키세요! 비켜!”
흥건하게 흩뿌려진 피와 내장, 그 충격적인 광경에 공항 이용객들은 어떻게 못 하고 있었다. 아이가 반토막 나는 걸 보곤 기절한 엄마를 딥 엘프가 부축하는 동안, 창백한 피부의 오크는 아직도 꿈틀거리는 아이 쪽으로 향했다.
“……후.”
아직 숨이 붙어있다만 살리는 건 불가능한 상태. 지상의 감성에 물든 듯, 타 종족의 아이지만 의외로 딱한 마음이 들었다. 미궁이었다면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머리 쪽으로 도끼를 휘둘렀겠지만, 그 대신에 공산품 포션을 꺼낸 후 피를 토하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며 그 입에 흘려줬다.
“엄마, 엄마, 엄마…….”
포션을 몇 모금 마시곤 칭얼거리는 아이, 그 순간 그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횡격막이 뜯어졌고 폐가 부풀지 못하기 때문에 숨도 못 쉬는 상태다. 부모 품에서 죽을 수 있게 포션을 억지로 먹였다만……. 천천히 질식해서 죽는 게 미래다. 그런데 이 아이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크의 표정이 급변하는 순간-.
-파악!
상반신만 남은 아이가 팔로 바닥을 내리치며 근처에 있는 민간인들을 향해 튀어 오른다. 급작스런 돌발 상황, 하지만 오크 대원은 베테랑답게 곧바로 몸을 날렸다.
-퍼억!
“꺄아아아아악!”
민간인들에게 날아가던 도중, 내리꽂히는 오크 대원의 주먹을 등짝에 맞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아이. 스마트 폰으로 그 광경을 촬영하고 있던 이들이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빛을 본 바퀴벌레 떼처럼 흩어지는 가운데-.
“꿝! 꿜꽊꽊꿝!”
「■■■■■-!」
내동댕이쳐진 아이는 기괴한 소음을 내뱉더니 팔뚝만 한 회색의 촉수를 아가리에서 뿜어내며 인간의 성대론 낼 수 없는 ‘불쾌한 트럼펫 소음’을 내지른다. 어떻게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그것을 오크는 우악스럽게 몸으로 짓눌렀다.
“엘리나!”
그 외침에 여성 딥 엘프가 움직인다.
방금 전까지 부축하며 포션을 먹이고 있었던 아이의 엄마를 내동댕이치면서 뒤로 빠지는 딥 엘프, 그러면서 그녀는 허리춤에서 송곳 같은 다트를 꺼내 방금 전까지 간호하던 여자에게 던졌다.
-파지지지직!
“꺼, 끄으으으…….”
‘파직!’거리는 전격을 뿜어내는 길쭉한 대못이 그대로 여성의 손목과 발목을 꿰뚫는 가운데, 오크의 양손 도끼가 놓인 곳까지 빠진 딥 엘프는 그대로 바닥에 놓은 도끼를 집어 들어 오크를 향해 던졌다. 그에 한 손을 뻗어 날아온 도끼를 잡은 오크는-.
“퀘꽑꽊궑!”
-콰직!
“꿔…….”
-콰직!
꿈틀거리면서 어떻게 손아귀에서 벗어나 민간인들을 덮치려고 하는 타락체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마력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불타오르는 도끼날, 그렇게 타락체가 완전히 침묵할 때까지 7~8번 도끼를 휘두른 그는 발로 시체를 짓밟으며 딥 엘프를 바라보았다. 그가 타락체를 찢어발기는 사이에 그녀는 무기를 꺼내 들고 감전당해 경련하고 있는 아이의 엄마를 경계하고 있었다.
“후우, 그쪽은 어떠냐?”
“……몰라. 하지만, 지금까진 낌새는 없어. 니가 보고해.”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하는 딥 엘프, 아이가 심연 타락체인 게 확인된 만큼 그 부모도 심연 타락체일 수 있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동료의 대꾸에 오크는 가슴팍에 붙어 있는 무전기의 전원을 켜곤 입을 열었다.
“관제탑, 여기는 제타 팀의 모그라즈. 제2 여객 터미널에서 거수자가 습격한 아이가 타락체로 확인되어 제압했다. 확인 바람.”
관제탑에 보고를 마친 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기가 죽인 타락체를 바라보았다.
별의별 상황이 벌어지는 공항이지만 의외로 타락체를 상대하는 경우는 손에 꼽았다. 모든 국가의 제1 순위 경계 대상이 ‘심연 교단’이다. 기본적으로 출국 심사 때, 2주 내에 받았던 ‘타락체 검사’를 요구…….
“……아니, 잠깐만?”
문득 든 생각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7.
<눈>으로 확인되는 공항을 따라서 난 계속 내달렸다.
<광폭화>의 지속시간은 끝난 상황, 하지만 다행히 그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줄여줄 희생양은 간간이 보였다. 이 거지 같은 투구는 입맛도 까다로워서 ‘심연 타락체’는 일종의 ‘식품 위장’으로 판단하고 식사를 거부했지만…….
한번 <눈>을 응용하니 어떻게 아가리에 쑤셔 넣을 수 있었다.
“꿝꽑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다가 내가 접근하자 기괴한 기성을 내뱉기 시작하는 어린아이, 하지만 도망치기 바쁜 부모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이의 몸 내부, 심장에 있는 심연의 살점은 더 이상 인간으로 의태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식하고 있었다.
“흐으음……!”
그 꼬라지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그냥 끝까지 사람인 척하더니, 사냥이 3번째가 넘어가니까 ‘당하기 전에 다른 이들을 감염시키겠다!’는 일념하에 내가 다가가면 그냥 본색을 드러내려 한다. 거, 먹을 수 있는 부분이 더 상하기 전에 빨리 ‘손질’해야겠구만.
“아, 아아아아……!”
내가 다가가자 아이를 품 안에 안고 웅크리는 아버지, 아이를 보호하려는 건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어.
“MA-RUN-TA.”
<액체 질소 대포> 주문을 외워서 대기 중의 질소를 압축, 곧바로 엎드려 있는 남자를 향해 쏘아냈다. 골프공만 한 압축 질소는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가서-.
-뻐-ㅇ!
폭발해서 아이와 남자를 강제로 떼어놓는다. 공중에 붕 떴다가 날아가는 아이의 아버지, 변이 중인 타락체는 그대로 바닥에 내던져져서 그 폭발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피를 토한다. 그렇게 쓰러져있는 고깃덩이를 향해 재빨리 창을 휘둘렀다.
-스걱!
“아, 아아……!”
튕겨져 나뒹굴다가 다리가 잘린 아이의 모습에 절망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아버지, 그사이에 난 창대 끝으로 잘라낸 다리를 꼬치 꿰듯이 집어내곤 곧바로 밖을 향해 내달렸다.
“내 아이! 내 아이요!”
“그만,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
달려오는 아이의 아버지를 제지하는 경비원들, 이미 저들은 내가 타락체만 골라서 죽이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았다. 이전까진 눈이 돌아가서 쫓던 인원들이 갑자기 조금 경계를 두고 쫓아오고, 쏟아지던 마법 또한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변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간호하려는 것이 아닌 경계하고 있다.
“퓌이이앗!(타락체!)”
다리가 잘린 아이가 돌연 팔로 바닥을 박차려고 하는 순간, 스프리건의 약화 마법이 쏟아진다. 이어서 아이 아버지를 막던 SGU 대원이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꿈틀거리는 타락체를 후드려 팬다.
-우드득! 콰드드득!
그사이에 난 재빨리 잘라낸 양다리를 투구의 아가리에 쑤셔 넣으며 공항 밖을 향해 내달렸다.
인육을 열심히 투구에 쑤셔 넣은 덕분에 몸 상태도 다 회복되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연막 역할을 하는 마법을 난사한 뒤에 투명화 기름을 쓰고 몰래 민간인들 틈에 섞여나가면 완벽…….
“……!?”
하다고 생각했는데, 밖의 상황이 심상찮았다.
공항 밖에 깔린 아스팔트 도로, 겉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그 속에 마법이 서려 있었다. <눈>의 <감정>의 범위엔 들어서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눈>으로 파악되는 마법의 위계만 해도 5단계. 수준이 높다.
그 마법과 연결된 술자를 <눈>으로 찾아보니…….
“쯧.”
공사장 작업복 같은 외형의 마법 장비를 두르고 있는 드워프다.
영체에 박힌 룬 문자의 형상과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잔향이 심상찮다. 정확한 수준은 <감정> 범위 밖이라서 모르겠다만……. 뉴 송파구에서 만났던 그 늙은 트롤 대지술사보다 더 강해 보여. 잘못하면 꽤나 고생할 것 같구만. 그냥 다른 탈출 루트를 찾는 게 나을 것 같다.
그에 몸을 돌려 공항 안으로 다시 움직이는데-.
-콰드드득! 두두두두두!
“꺄아아아악!”
지진이 난 것처럼 맹렬하게 진동하는 지반, 마력에 잠식된 땅이 이쪽으로 밀려오면서 공항 건물이 흔들린다. 그에 아직 남아 있던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염병.”
공항 밖에 있던 드워프가 넓적한 바위를 타고 서핑하듯 이쪽을 향해 돌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