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40화 (340/350)

제340화

3.

밖으로 나온 후, 난 곧바로 서예린이 알아낸 엘 마르의 별장을 향해 움직였다.

HOLLY WOOD라는 하얀 간판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힐스’의 호화주택이었는데, 지역 전체가 부자 동네인지라 출입을 막는 사설 경비원이 있었다. 그에 차량에서 내린 뒤, 투명화 오일을 바르고 몰래 잠입해야 했다.

그렇게 별장 쪽으로 다가가니 왜 경찰이 전화했는지 알 수 있었다.

노란색 차단선이 둘둘 쳐져 있는 주택, 그 입구엔 경광등이 번쩍이는 경찰차는 물론이고 하얀색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까지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의 시점을 상공 30m로 올려서 그 안쪽을 내려다보니……. 수영장은 핏물로 찰랑이고 찢겨진 시신의 파편들이 너부러져 있다.

“흐으음…….”

<투명화> 상태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경찰이 별로 없는 방향으로 삥 돌아서 엘 마르의 별장 주위에 있는 주택 안에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의 시점을 피범벅이 된 현장으로 옮기며 서예린이 찾아올 당시까지 되돌렸다.

* * *

서예린이 찾아왔을 시점의 별장은 멀쩡했다.

별다른 약탈의 손길도 없는 상태, 사람 또한 없었다. 그에 서예린은 메고 온 가방에서 ‘물건’을 꺼낸 뒤에 주위의 단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 별장을 방문했던 ‘선객’이 있었다.

그녀가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의 주택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리들이 나와 별장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특수한 돌격소총과 저격총으로 무장한 ‘마력 각성자들’, 짐승적인 감각을 지닌 서예린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얼굴을 찡그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서예린이 꺼낸 ‘물건’은 불쾌하게 파직거리며 웃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TV 오디오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아아, 현재 집 안에 무단으로 침입한 거수자에게 알린다.

-현재, 너희들이 들어간 주택은 포위되었다.

-‘엘 마르’와 상관이 없다면 즉각 무장을 해제하고 나올 것 권유한다.

-이에 불응할 시, 불필요한 신체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다시 한번…….

생각지 못한 일에 서예린이 미간을 찡그리는 가운데-.

「Grrrrrr! AHaaHaaa!」

별장의 거실에서 둥둥 떠 있던 ‘도구’는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을 발하며 불쾌한 웃음소리를 내지른다.

마력이 뒤섞인 웃음소리, 인간의 비명과 절규가 포함된 불쾌한 파동은 음파가 아닌 머릿속에 그대로 꽂히듯이 주위에 전달된다. 그에 서예린이 식겁한 얼굴로 들고 있는 새카만 책에 마력을 불어넣으면서 불쾌한 음율로 이루어진 주문을 암송한다.

“&*#*^@@!)_$&!#!!”

그에 도구를 둘러싼 쇠사슬 위에 불길한 진전이 번쩍이고, 도구는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릿하게 작은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지만-.

-타-앙!

그보다도 먼저 주위를 둘러싼 무리들 중 하나가 거실에 보이는 그 ‘도구’를 쏴버렸다.

「GrKAKAKAK!」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복부를 관통한 총알, 그에 ‘도구’ 앙상한 몸체 곳곳에 새겨진 룬 문자의 단면이 타오르듯이 번쩍인다. 서예린은 곧바로 주문을 바꿔서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해보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도구가 불쾌한 유황 내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100m가량 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총을 쏜 용병의 뒤편에 공간을 찢고 나타나-.

-퍼-억!

용병들이 눈치채기도 전에 몸을 속박하고 있는 검은 쇠사슬을 휘둘러 그 머릴 터트려버렸다.

근처에 있는 다른 분대원들은 건드리지 않고 자신을 공격한 용병만 공격한 상황, 하지만 동료가 급작스럽게 죽은 입장에선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불쾌한 유황 냄새와 함께 느껴지는 끔찍한 존재감에 용병들은 반사적으로 대응했다.

-드르르르륵!

「HAHaHaHa!」

신속한 제압사격, 앙상한 도구의 몸통을 벌집으로 만들고 연이어 머리통을 날려 버린다. 하지만, ‘도구’는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기꺼이 기뻐하며 으스러졌다. 공중 부양을 하고 있던 그 몸뚱이가 지면에 떨어지고, 그 몸의 표면에서 타오르던 진언 또한 벗겨진다.

그렇게 죽은 듯이 보이던 ‘도구’였으나-.

-촤르르륵……!

“What the……!”

도구의 위에 걸쳐진 굵은 쇠사슬과 쇠말뚝이 돌연 사라지고, 근처의 용병-도구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자의 주위에 나타난다. 용병이 기겁하면서 자신의 몸 위에 나타난 쇠사슬을 피해 보려 했지만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쇠말뚝이 박히고 쇠사슬은 그대로 그의 몸을 휘감는다.

“제이슨!!”

“제기랄! 마법사! 본대에서 마법사 지원 부탁한다! 저주에 당한 것 같아.”

양 무릎을 꿇으면서 엎어지는 희생양, 경련하는 그의 몸 곳곳에 불길한 문자가 덕지덕지 새겨지고 일제히 주황빛으로 타오르며 발광한다. 집 안쪽에선 서예린이 식겁한 얼굴로 정신없이 검은 책의 다른 페이지를 펼치고 마력을 불어넣으며 주문을 암송하려 하지만-.

-타다다다당! 타당! 탕!

반격하는 이들에 의해 끊겼다. 야수 같은 감각으로 은·엄폐하면서 총탄은 피했지만 그사이에 ‘도구’는 서예린이 건 주문의 속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자유…….」

불쾌한 유황 내를 ‘확-!’ 풍기면서 쇠사슬을 휘둘러 주위의 용병들을 가뿐하게 으스러트리는 ‘새로운 도구’. 육편이 된 인간의 몸뚱이가 별장의 곳곳에 떨어지는 가운데, 뜨거운 붉은 피를 뒤집어쓴 도구는 30cm가량 허공에 떠오른다.

불타오르는 불길한 진언이 박제된 희생양.

그 두 눈은 내부에서 날뛰는 힘의 격류에 녹아내려 안와에서 흘러내리고, 불길한 문자가 새겨진 육신은 몇몇 부분이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며 뿔과 종양이 자라난다. 둥둥 떠오른 그 몸의 주위에선 공기가 떨리거나 불길이 이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그런 동료의 변화에 용병들은 미국식 퇴마로 대응했다.

-드르르르륵!

-타다다다당!

대마력 각성자용 철갑탄이 쏟아진다. 하지만, ‘도구’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기꺼이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더, 더……! 조금!」

총탄에 내장과 뇌를 흩뿌리면서도 둥둥 떠서 날아가 근처의 용병을 죽이는 ‘도구’, 얼마 지나지 않아 둥둥 떠다니던 도구는 완전히 망가져서 또 한 번 풀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또다시 그 몸을 속박한 쇠사슬과 말뚝이 사라졌고-.

“뭐야, 으으으윽-! 이거 좀 풀어ㅈ…….”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반복한다.

“죽이지 마! 제압! 제압해야 해!”

그 광경에 서예린은 결국 검은 책을 바닥에 내던지고 허리춤에 매단 칼들을 뽑으며 정원 쪽으로 뛰쳐나왔다. 그녀의 외침에 새롭게 몸을 갈아탄 ‘도구’는 주위의 용병들을 단숨에 으스러트리곤 고갤 180도로 꺾어서 서예린을 바라보았다.

「작은…… 주인님……!」

이어서 몸을 돌리지 않은, 목이 돌아간 상태로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대단히 빠르게 날아온 ‘도구’가 공격을 쏟아냈다. 인간의 관절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각도로 꺾어지며 움직이는 팔과 다리, 그와 함께 쇠사슬과 거기에 달린 말뚝이 날아든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비명을…… 질러…… 주십시……오.」

「영원히…… 박제해 드릴게……요!」

-우두두득!

줄에 달린 꼭두각시 인형을 힘껏 휘두르는 것 같은, 방어 따윈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공격. 게다가 이전의 용병들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시시각각 주위의 공간이 흔들리며 새롭게 말뚝이 튀어나온다. 그래 봤자 그녀가 마음먹으면 단칼에 목을 썰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허점이 많았지만-.

-챙! 챙챙!

서예린은 함부로 반격하질 못했다.

피하거나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내면서 물러설 뿐. 오히려 ‘도구’가 죽으려는 듯이 무모하게 몸을 던져 달라붙는다. 그렇게 서예린이 곡예를 하듯이 3자루의 칼날을 휘두르며 신중하게 방어하자 도구의 뒤틀린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지고.

「날 봐……!」

“……!!”

노성과 함께 기습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생명체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마법, ‘충동적인 분노’를 솟구치게 하는 외침에 서예린의 움직임이 순간 흔들렸다. 무기를 내뻗으려고 하다가 억지로 멈추는 모습,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서예린은 칼을 휘두르는 대신에 뒤로 쭈욱 빠졌다.

-콰득!

약간 무리해서 빠진 덕분에 쇠사슬에 맞아 왼쪽 팔뚝이 골프공만 하게 뜯겨 나갔지만, 충분히 각오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도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참아낸 서예린과 달리 산개해서 뒤로 빠지던 용병들은 무방비로 그 마법에 노출됐다.

-드르르르르륵!

-타탕! 타다다다다!

격분한 표정으로 일제히 몸을 돌려 소총을 난사하는 용병들, 그 사선(射線)에 동료가 걸쳐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구와 가까이 있던 서예린 또한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에 휘말렸다. 칼 3자루로 얼굴에 맞는 것은 피했지만, 도구를 뚫고 나오거나 빗나간 철갑탄이 복부와 다리에 박힌다.

사격에 집중돼서 내장과 뇌수를 흩뿌리는 ‘도구’는 그사이에 서예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날봐날봐날봐날봐날봐-아!!!」

한 번 더 마법을 사용한다.

이를 악물고 참고 있던 서예린도 머릿속을 열어 뇌를 흔드는 것 같은 충동에 순간 눈이 훼까닥하며 칼을 휘두른다.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목을 스치는 칼날. 그렇게 도구의 머리가 날아간 순간, 서예린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스쳤지만-.

-철그럭.

도구의 몸뚱이에 걸린 말뚝과 쇠사슬은 서예린이 아닌 한 용병에게 나타났다.

서예린이 목을 날리기 직전, 저격총으로 도구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날려 버린 용병. 아직도 도구가 일으킨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는 듯, 용병들은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새롭게 도구가 되어가는 동료를 향해 군용 단검으로 난자하기 시작한다.

“흐으, 흐으으……!”

그사이에 서예린은 피가 질질 흘러나오는 복부를 붙잡은 채로 허겁지겁 집 안으로 들어가서 들고 있던 검을 내던지곤 책을 낚아챘다. 그러곤, 책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불쾌한 주문을 웅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구’는 서예린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작은…… 주인……님?」

「어디. 계신. 건가요?」

「숨어도, 소용없, 답니,다.」

근처에 있는, 서적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주문을 외우고 있는 서예린을 인지하지 못하는 도구. 소름 끼치는 염파를 속삭이며 주위를 배회하던 그것은 이내 집 안에서 자신을 가뒀던 목제 상자를 발견하곤-.

「GrrrrraaaaaaAaa!」

-쾅!

원색적인 분노를 터트리며 상자를 쇠사슬로 후려친다.

무장한 인간을 가뿐하게 육편으로 만든 일격, 그러나 상자는 내동댕이쳐지고 약간 파편이 흩날릴지언정 부서지지 않고 견딘다. 그에 더더욱 눈이 돌아간 도구가 광분하며 상자를 후드려 치는 가운데, 서예린은 허겁지겁 인근의 주택가로 숨어든다. 그렇게 남겨진 도구는 한참 동안 상자를 완전히 부순 뒤에-.

「Grrr…….」

불길한 기성을 토해내며 공간을 찢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 * *

뭔 일이 있었던 것인지 대략적인 확인이 끝난 뒤, 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가져온 물품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부터 불길하더라니 결국 사고가 터졌구만. 심한 부상을 입고 도망친 걸 확인했으니 어서 빨리 서예린을 찾아봐야겠다만…….

“하아아.”

별장에서 흔적을 조사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 그냥 한숨만 나온다.

급박한 상황에서 서예린은 가방과 ‘부정한 삼위일체 : 맹독’은 그대로 내던지고 도망쳤다. <과거시>로 훑어본 결과, 조사단은 그렇게 너부러진 칼을 증거 물품으로 수집해서 차량에 보관해뒀고. 저대로 내버려두면 저거 어딘가로 사라질 텐데…….

역시, 저대로 넘기기엔 너무 아깝다.

서예린의 전력을 보존하는 의미에서도 저 칼은 꼭 필요해. 탈취가 힘들다면 모르겠다만,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 가져오는 게 맞지. X발, 미국까지 와서도 서예린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구만.

내 신세에 한탄하며 걸치고 있던 천 로브를 벗은 뒤, <아가리 주머니>에서 투구를 비롯한 장비들을 착용했다. 그리고-.

“푸후우우우우-욱!”

커다란 <독숨결>을 뱉어내면서 엘 마르의 별장 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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