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화
3.
LAX에서 벌어진 일에 국정원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평소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테러가 벌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자.’ 정도로 끝났을 사안이었지만……. 그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의 정체가 자국민이었다. 그것도 ‘한번 거하게 사고를 쳤던 걸’ 국정원이 직접 나서서 뒤를 봐줬던 인물이었고.
당연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와대 아침 상황 보고에 참석한 국정원장은 ‘너희들이 이놈 살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사고를 쳤네?!’ 하며 대통령에게 까였고, 국정원장은 돌아와서 ‘나세영 차장이 통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사고를 쳤네요?’ 하며 다른 차장들 앞에서 그녀를 내리 갈궜다.
나세영은 뭐라 변명할 수도 없었다.
이미 한번 사고를 쳤던 놈을 ‘통제할 수 있는 녀석이니 포용해야 합니다.’라며 적극적으로 변호했던 게 그녀였으니까.
“하아아.”
늦은 밤, 국정원으로 복귀한 나세영은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모습, 그저 갈굼만 당한 게 아니라 새벽부터 자정까지 그녀가 직접 ‘한새벽에 대한 조사’를 하고 그에 관해서 ‘청와대에 보고’까지 해야 했다.
그런 상관의 모습에 같이 복귀한 전찬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 좀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아. 그래, 급한 일은 대충 끝냈으니까 좀 쉬어도 되겠지.”
여전히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로 그녀는 고개만 삐딱하게 돌려 옆에 있는 전찬휘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고생했다. 나도 곧 퇴근할 테니, 너도 이만 퇴근……. 아, 가기 전에 문서 보관실에 가서 오늘 싱크 탱크 쪽에서 작성한 보고서 좀 가져와 줘라. 1급 기밀이라서 수기 서류로 작성됐을 거야. 난 그것만 읽고 가야겠다.”
“예.”
고갤 끄덕이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전찬휘, 10여 분 뒤 그는 얇은 파일철을 가져와서 나세영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세영이 가보란 듯이 손짓하자 전찬휘는 고갤 꾸벅 숙이곤 다시 밖으로 나가고-.
“후우.”
그녀는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킨 후, 사탕을 하나 꺼내 물곤 파일을 읽기 시작했다.
첫 장에 있는 건, ‘테러리스트’가 한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숨기기 힘들다는 내용. 그 근거로 작년 10월경에 군·경 고위층 인사에게 퍼진 ‘지하 송파구 동영상’과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고 나서 일이 터진 것’이 언급됐다. 여기까진 예상한 일,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인데…….
“흐, 역시나.”
전체적인 내용을 가볍게 쓱 훑은 후, 그녀는 실소를 흘리며 보고서를 책상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어떻게 한새벽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대가는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들. 자국의 마력 각성자가 타국에서 사고를 치면 대부분 ‘꼬리 자르기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대부분인 걸 생각하면 굉장히 이질적인 대응 보고서였다. 상부에서 이런 요청을 했기에 싱크 탱크도 이런 요상한 보고서를 올렸겠지.
하지만, 오늘 돌아다니면서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한새벽은 ‘마력 각성제’를 만들 수 있으니까.
오늘 새벽 강수영의 작업장에 쳐들어갔다가 알게 된 사실, 그리고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대통령과 내각 주요 인사들에게까지 보고된 내용이었다. 수영이의 말에 따르면 미르 유혈 사태 당시에 오크들이 얻었던 마력 각성제를 한새벽은 일부분 복제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증거도 있었다.
청와대 긴급회의 때, 참고인으로 함께 동석했던 강수영이 한새벽이 마력 각성제를 만드는 과정이 담긴 비디오와 그 결과물을 공개했으니까. 덕분에 ‘쳐내기엔 그 재능이 너무 아깝다.’ 주장했던 나세영도 체면을 세울 수 있었지. 덕분에 한새벽의 가치 또한 다시 평가받았다.
향후, 국가의 위상과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한 인재로.
그 각성제의 재료가 ‘인간 혹은 아인의 생명’이라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평범한 인간 하나로 마력 각성제를 하나 만들 수 있다면 수백 배 남는 장사니까.
“에휴.”
그 사실에 좀 씁쓸함을 느끼면서 나세영은 퇴근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보고서를…….
-똑똑똑!
“들어와.”
다시 집어 들던 도중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온 이는 5차장실 내에서 근무하는 일반인 직원, 왜 왔냐는 듯이 바라보자 그는 꾸벅 고갤 숙이곤 옆구리에 끼고 있는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외교부에서 온 요청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대사관’ 쪽에서요. 차장님께서도 급히 알아야 하실 사안인 것 같기에 가져왔습니다.”
“미국 대사관이라.”
아마 ‘공항의 테러리스트’가 한국에서 온 낌새를 파악하고 협조를 요청하려는 것일 테지. 살짝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충 훑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예상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서예린, 그녀가 난데없이 미국에 있었다.
그리고, 대형 사고를 쳤다.
서강이 한새벽이 가져간 것 같다고 증언한 ‘악마숙주’가 통제에서 벗어나 풀려났다. 동영상도 첨부돼서 반박할 건덕지도 없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 일인데…….
“이 새끼들!? 서로 연락하고 있던 건가?!”
“예?”
“아, 아니. 아니야. 가 봐.”
소식을 가져온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나세영은 황급히 고갤 저으며 가보란 듯이 손짓했다. 그렇게 직원이 나간 뒤, 나세영은 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이마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서예린이 그 사고를 친 뒤, 이어서 현장에 한새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서예린이 흘리고 갔던 물건을 탈취해 사라졌다. 그에 FBI는 LAX에서 나왔던 테러리스트가 서예린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 서예린의 대인관계에 대한 조사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 X발…….”
서예린의 주변을 조사하면 LAX 테러리스트의 정체가 한새벽이라는 것은 금방 유추해낼 거다. 촬영된 신체조건만 봐도 완벽하게 일치하니까. 어떻게 숨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만…….
될 리가 있나.
서예린과 한새벽, 남궁진아. 이 세 사람이 단짝처럼 함께 움직였다는 건, 같은 반이었던 애들에게 물어만 봐도 나온다. 아니, 그냥 미뷰트에 찍힌 혼혈 애들끼리 제주도 해변 간 영상만 봐도 눈치채겠지. 결국, 테러리스트=한새벽이란 건 들킬 수밖에 없다.
“끄응.”
침음을 흘리며 나세영은 고갤 들고 전찬휘가 가져다줬던 파일을 다시 펼쳤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영리한 이들이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맞춰서 어떻게 한새벽을 데려올 것인가에 대해 고민·계획한 것들, 대충 훑고 넘어가서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중에선 ‘한새벽의 정체가 드러났을 경우’에 대응할 방안도 있었다.
그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후, 후흐흐. 참나.”
‘직접 가서 포획-나세영 필요.’란 글귀를 보곤 씨익 웃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한번 기강을 잡아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 작정하고 두들겨 패주진 못했을 거다. 마력 각성제를 만들 수 있는 ‘귀하신 몸’인 만큼, 높으신 분들이 아주 조신하게 모시려 할 거니까. 하지만, 미국에서라면 좀 거리낌 없이 패도 되겠지.
하지만, 그 전에…….
“X발, 앰흑 근돼 새끼. 지 딸내미가 물건을 가져갔으면 곱게 가져갔다고 말해야지. 어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던 서강의 면상을 먼저 후려갈기기 위해 나세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4.
미궁이 부상하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비현실의 존재들.
지상의 인간들은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 전문적인 학술지에 나오는 학명은 다르지만, 대중들은 그들 외형과 특징을 보곤 친숙한 설화·환상 문학 속의 종족명-엘프, 드워프, 오크, 용, 정령 등으로 불렀고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붙은 명칭들 중에선 ‘악마’란 이름도 있었다.
“흐으, 흐으으……!”
어둠에 잠긴 시각, LA 교외 지역인 콤프턴(Compton). 하루에 몇 번씩 총성이 울리는 갱단 간의 접경 지역의 골목에서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잘 먹지 못해 삐쩍 마른 몸, 초점을 잃은 눈빛, 어둡고 푸석해진 피부, 한 손에 쥐어져 있는 권총, 그 앞에 쓰러진 사람…….
쇠락한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약 중독자 강도였다.
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헐벗은 상체 위에 말뚝이 곳곳에 박혀 있고 치렁치렁한 쇠사슬이 그 위에 걸쳐있다는 것 정도. 그렇게 잠시 헐떡이던 그는 이내 비틀거리며 다시 자리에 일어섰다. 그러곤, 해골 같은 자신의 몸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참으로 쓰레기 같은 육신.
몸은 약물에 찌들어서 뻣뻣하고 그 안에 갇혀서 비명을 지르는 영혼은 제대로 타오르지도 않아서 힘이 나오질 않았다. 워낙 저열해서 몸이 떠오르거나 육신이 변형되지도 않았고, 몸을 차지하는 순간부터 불쾌함만 솟구쳤다.
하지만, 지금은 이 육신을 써야만 했다.
아무리 몸을 갈아탄다고 해도 벗겨낼 수 없는 제약들, 그중 하나가 ‘힘과 존재감을 내뿜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몸을 차지하는 순간, 허공에 둥둥 떠올라서 반강제적으로 현실을 일그러트리는 초자연적인 아우라를 뿜어내야 했다. 미궁 안에서라면 그다지 제약이 아니겠다만 지상에선 달랐다.
인간들의 이목을 끌면 죽는다.
미궁과 현실이 연결된 지 17년, 그동안 인간들이 미궁의 존재들에 대해 배웠듯이 미궁의 존재들도 지상에 대해 배웠다. 아무리 개체가 강하다고 한들, 국가란 거대 집단이 움직이면 99.9%는 토벌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전까지 신나게 날뛸 수 있겠지만…….
자유를 얻진 못한다.
“주이니이……임.”
마약의 부작용으로 다 빠진 이빨 대신에 잇몸끼리 부딪치며 그는 자신을 속박한 인간들을 떠올렸다.
이 저주받을 사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주인들을 죽이고 그 책을 빼앗아야 한다. 며칠 전에 그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지만……. 막 풀려났을 당시엔 분노에 잠식되어 냉정하지 못했고 그 틈을 노려 작은 주인은 자신을 피해 도망쳤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사역당했다는 굴욕’, ‘본능적인 살의’, 그리고 ‘사슬의 제약이 가하는 고통’.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지면서 지금이라도 멀쩡한 몸으로 갈아입고 달려가서 찢어발기고 싶다는 충동이 또 솟구친다. 조금 전에 느껴졌던 ‘소집의 제약’이 느껴진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당장이라도 새로운 몸을 빼앗아서…….
“히흐, 히으으으…….”
하지만, 그는 인내했다.
큰 부상을 입고 간신히 도망친 작은 주인, 그런 년이 갑자기 ‘소집의 제약’을 내렸다. 죽고 싶어서? 아니다. 분명, ‘자신을 사로잡을 준비가 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하다. 지금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 때였다.
“흐으으…….”
희미한 주황빛 안광을 번들거리며 그는 육신의 기억을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