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46화 (346/350)

제346화

3.

엉겁결에 악마를 추적하게 된 다음 날, 윌슨과 틀라펙스는 아침부터 차량을 타고 LAPD의 수사 현장들을 돌아다녀야 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의외의 사태가 발생하는 순간에만 출동할 소방수’ 역할만 하면 됐을 테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LAX 테러’, 그리고 ‘엘븐 코인 사태’.

엘 마르가 잠적한 지도 3주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 여파는 아직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곳곳에서 엘프를 향한 사태가 벌어지는 중,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경찰력이 소요 중인데 LAX 테러까지 겹쳤다. 극심한 인력 부족 상황인지라 그들도 직접 뛰어야 했다.

“흐음.”

컬버시티에서 접수된 사건 현장, 현지 경찰의 안내를 받아 ‘퓨어 블러드’라는 인간 갱단의 아지트에 들어서며 윌슨은 얼굴을 찡그렸다. 형체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풍선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진 피와 살점……. 할리우드 힐스에서 봤었던 시체들의 상태와 동일했다.

하나의 시신만 제외하고.

“여기, 이 시신입니다. 유일한 오크, 게다가 총탄에 의한 사망이고요.”

한 시신 앞에서 멈춰 서며 말하는 경찰, 풍선처럼 터져나가거나 으깨진 다른 시신과는 달리 이 시신은 그나마 사지는 붙어 있었다. 하지만, 총탄에 의해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넝마처럼 찢겨졌다. 피곤죽이 된 그 시신 앞에 쪼그려 앉아 살피며 윌슨은 입을 열었다.

“지문 채취는 어떻습니까?”

“손가락 부분이 다 날아가서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있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이런 오크들 대부분이 개인정보가 등록되지 않아서.”

“그렇군요.”

아직 남아 있는 전투화의 밑창과 의복, 그리고 피부 조각들. 총알구멍이 숭숭 뚫려있었지만 그래도 몇몇 특징들이 보였다. 역시, 이전에 방문했었던 오크 갱단-‘그린 브라더즈’의 일원. 그렇게 시신의 샘플들을 추가적으로 채취·촬영한 후, 윌슨은 현지 경찰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보들을 더 수집하곤 태블릿 PC를 켰다.

“도대체 뭘까…….”

LA 지도에 현장의 위치를 체크한 후, 윌슨은 할리우드 힐스에서부터 이어진 악마숙주의 행적과 시간대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까지 확인된 악마숙주의 행동은 대단히 기묘했다.

연방 수사관인 만큼, 윌슨도 나름 악마숙주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육신에 가둬버리고 부려먹었던 존재-‘주인’에게 맹렬한 분노를 품고 어떻게든 죽이려도 드는 것이 일반적, 헌데 놈은 그러긴커녕 어제부터 급격하게 방향을 꺾어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갱단과 보안업체를 습격했다.

이번에 확인된 것만 3번째, CCTV가 없는 우범 지역을 따라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부딪치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움직임이 꽤나 적극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육신을 2번이나 갈아타면서 약해졌고.

“쯧.”

잠시 악마숙주의 목적이 뭘까 생각하던 윌슨은 이내 고갤 저었다. 결국, 쓸데없는 고민. 정보를 모아서 넘겨주면 LAPD 쪽의 전문가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곧바로 스마트 폰을 꺼낸 뒤, 윌슨은 수사팀에 연락해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을 보고했다.

-……또 새로운 육신으로 탈피,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일단, 확인된 사안은 그렇습니다. 마력 각성자는 아니라고 하니까요.”

-흐음, 대단히 특이하군요. 그, 수사 기록 중에서 틀라펙스 씨가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고. 혹시 그 능력을 사용해서 악마의 기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수사팀 대원, 그에 윌슨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한번 해봤습니다. 근데, 기억 같은 건 없고 희생양의 감정만 느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오직 고통뿐인 대단히 씁쓸한 감정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럼 틀라펙스 씨는 먹기만 해도 악마가 빙의됐던 시신을 구분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긴 한데, 계속 하기엔 무리가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은 안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윌슨의 말에 수사팀 대원은 아쉽다는 듯이 작은 소리를 냈지만, 이내 납득한 듯 말이 이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의심되는 사건 명단을 다시 갱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고생하십쇼.”

전화를 끊은 후, 윌슨은 스마트 폰을 끄고 시선을 돌려 틀라펙스 쪽을 확인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틀라펙스, 주황색 로브 밑단이 피에 젖건 말건 그는 커다란 유리 병에 현장에 흩어진 눈알과 살점, 내장들을 신중하게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현지 경찰들은 떨떠름하게 보고 있고. 그에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윌슨은 옆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틀라펙스 님, 슬슬 다음 장소로 가시죠.”

“잠시, 조금만 더. 재료가 부족하다.”

“재료요?”

“하얀 머리, 싸우면 위험. 같은 종족, 같은 재료, 더 강한 위력.”

짧게 말하면서 신중하게 흩어진 살점들을 고르는 틀라펙스, 그에 윌슨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어제 임무가 바뀌었습니다. 틀라펙스 님 아니라 다른 이들이 걔네들을 제압하기 위해 나설 겁니다.”

“그래도 모른다.”

담담히 말하며 내장 조각을 유리병에 넣는 그 모습에 윌슨은 설득을 포기하곤 현장 경찰에게 다가가서 ‘샘플’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틀라펙스를 말리기엔 그가 가진 능력은 꼭 필요했다. 그리고 실제로 필요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잠시 동안 수집이 이어진 뒤, 틀라펙스가 일어서자 윌슨은 서둘러 밖을 향해 움직였다.

4.

지상과 연결된 뒤, ‘마법의 입문’은 미궁에 있었을 적보다 굉장히 쉬워졌다.

어느 정도 여력이 되는 국가라면 마력 각성자를 마법사로 키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력’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바꾸는 힘이 등장한 지금, 마력 관련 산업은 국가를 먹여 살릴 먹거리가 되었고 그러한 마력 관련 산업에서 마법의 비중은 8~90%를 넘어간다.

당연히,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마력 각성자들에겐 룬 문자의 형상을 감각적으로 깨우쳐줄 수 있게 도와주는 ‘마력흔’이 남아있는 물품들을 대여해주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마법을 발현시키는 ‘룬 문자의 수학적 표현’은 아예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그 입문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대적인 국가의 지원이 제외되는 마법 분야도 있다.

<악마술>, 악마라고 이름 붙여진 ‘미궁의 특정 정신 생명체’와 연관된 이능. 물론, <악마술> 마법도 암암리에 연구가 이뤄지지만, 그래도 그 위험성과 반사회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그 분야만큼은 입문을 하기 힘들도록 만들어 놨다. 오히려 자료들을 소각하는 등 탄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히고자 하는 이들은 있었다.

그리고,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

딥웹에선 <악마술> 관련 룬 문자 형상의 수학적 도해가 올라오기도 하고, 국가가 무너진 아프리카 쪽에서 흘러들어온 몇몇 <악마술> 관련 마력흔이 남은 골동품들도 암시장에 돌아다녔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도 <악마술> 마법 사용자들은 도시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LA 도심, 도로에 한 구닥다리 차량이 멈춰서고 한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후으으…….”

벌거벗은 상반신 위에 굵직한 말뚝과 쇠사슬을 걸친 남자, 그 퀭~해 보이는 얼굴과 삐쩍 마른 몸, 입가에서 흐르는 침과 어딘지 제정신이 아닌 듯한 눈매. 주위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본 것마냥 살짝 경계하면서 거리를 벌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착한 목적지를 바라보았다.

도심에 있는 작은 개인병원(Doctor’s office).

“스으으읍, 하아아…….”

그 앞에서 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비루한 육신의 거죽에 갇혀 감각 대부분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그를 속일 수는 없었다. 강렬한 감정의 파동, 이곳만큼 ‘무방비’해 보이고 ‘달콤한 내음’이 나는 곳이 없었다. 아마 이쪽에 자신이 찾는 몸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두 눈을 빛내며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Sir, 멈추십쇼. 어떤 이유에서 방문하시려는 겁니까?”

건물 경비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중년의 인간 남성, 마력 각성자는 아니었지만 대놓고 소총을 손에 쥔 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빠르게 그 감정을 훑었다. 경계, 그리고 적대. 이대로 들어가면 분명히 총을 쏠 것이다. 안 그래도 허약한 이 몸은 죽을 확률이 높고 강제로 저 육신에 깃들게 되겠지.

그래선……. 좀 곤란하다.

혹여 일에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 그에 그는 느릿하게 몸을 돌려서 자기가 내린 차량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가 순순히 돌아갈 때까지 경비원은 방심하지 않고 경계했다. 그리고, 그가 타고 온 차량이 시내 도로를 꺾어서 사라지자 경비원은 그제서야 손에 쥔 소총을 내려놓았지만-.

-부웅! 부우우우웅!

“……!!”

“꺄아아악!”

그는 포기한 게 아니었다.

신호를 따라서 구획을 한 바퀴 삥 돌아서 다시 나타난 차량이 그대로 건물 앞의 경비실을 향해 돌진했다. 그에 도로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경비실의 경비원도 기겁하며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콰-앙-!

그보다도 먼저 구닥다리 차량이 그대로 경비실 쪽에 처박혔다. 부딪치기 직전, 운전석에서 몸을 던져 빠져나온 청바지 뒷주머니의 권총을 꺼내 경비실 안에 있는 경비원을 향해 겨눴다.

-타앙! 타앙! 타앙!

연이은 사격,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가운데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비명을 지르면서 숨는 임산부와 환자들을 뒤로한 채, 그는 ‘동류의 냄새’가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다가가 그 문을 열어젖혔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진료실 안에 있던 건, 젊은 여의사와 상담을 받고 있던 것 같은 임산부. 여의사는 임산부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면서 보호하고 있었다. 이 육신의 기억과 상식으로 판단하건대, 선량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여의사다.

“흐.”

하지만, 그는 그녀의 주위에서 떠도는 힘과 감정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육신이 가진 기억과 상식들, 그리고 느껴지는 현상……. 그 두 가지 사실을 토대로 그는 진실에 도달했다.

“훌륭해.”

“…….”

“태어나지 않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생명 또한 제물이 될 수 있다니……. 아주 영리하군.”

그 말에 흠칫하는 여의사, 하지만 그 등 뒤에 있는 임산부는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감정을 보며 그는 거리낌 없이 권총을 들어 올렸다. 반사적인 움직임, 사슬이 가하는 수많은 제약 중 하나인 ‘살의(殺意)에 대한 반격’이었다.

하지만, 여의사가 한발 더 빨랐다.

-타-닥!

재빠르게 달라붙는 여의사, 일반인을 초월한 빠르기로 그녀는 손을 뻗어 마약 중독자의 굼뜨고 느릿한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그 손에 있는 권총을 재빠르게 빼앗곤-.

-타-앙!

그대로 그의 눈동자를 향해 갈겨버렸다. 그대로 머리통을 꿰뚫고 들어가는 총탄에 그는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느꼈다. 그 광경에 뒤의 임산부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려 했지만-.

-타-앙!

여의사는 곧바로 자신이 보호하던 임산부의 머리를 향해 쐈다.

안도하는 얼굴 정중앙에 작은 구멍이 뚫린 채 그대로 엎어지는 임산부, 그 모습을 보며 여의사는 일그러진 얼굴로 권총을 내렸다. 워낙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 도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비밀을 엿들은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

“제길……!”

살짝 이를 갈며 그녀는 고갤 돌려 너부러진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죽은 상황. 물론, 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건 대놓고 벌어졌다. 혹시 조사가 들어오면 어떡하지? 병원 지하에 있는 시설까지 조사가 오면…….

“……?”

그 순간, 침입자의 몸뚱이 위에 걸치고 있던 쇠사슬이 돌연 그녀의 주위에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대항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말뚝이 박히고 사슬이 그녀의 육신을 속박한다. 그와 함께 그녀는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서 있었다. 거대한……. 폭풍, 아니, 고통을 지르는 감정의 폭풍우. 그 거대한 악의에 접촉하는 순간-.

“……!!”

그녀의 영혼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그 육신은 저절로 공중에 떠오르며 소름 끼치는 기괴한 아우라를 방출한다. 이어서 새롭게 육신을 차지한 그가 눈을 떴다. 그리고-.

「HaHaha!」

만족스럽게 웃었다.

활력이 넘치는 육신, 그리고 무엇보다 룬 문자의 형상-그것도 <악마술>의 형상이 새겨진 영체가 느껴진다. 그 육신의 기억을 뒤져 보니 역시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제물’ 또한 충분했다.

그는 곧바로 병원의 지하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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