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화
74화. 돌아온 업보
1.
(서술형) 악마숙주가 사람들을 조종해 이쪽으로 밀려들고 있다. 사람들은 평범한 민간인이며 대놓고 죽이면 인생이 망한다. 현 상황을 해결하시오. (4점)
머릿속에 떠오른 서술형 문제에 절로 쌍욕이 나왔다. 뉴 송파구에서처럼 대량 학살을 벌였다간 100% 지상 생활 불가,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고 해결해야 한다는 건데 보자마자 이미 X망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질서라곤 없이 달려드는 군중들.
선두를 날아가는 악마를 바라보며 달리고 있는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빡친 얼굴이다. 악마에게 현혹됐다기보다는 원수를 죽이려는 듯한 모습? 근데, 달리면서 지쳐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이들은 그대로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의 물결에 짓밟혔다.
음, 이미 최소 수십 명은 밟혀 죽었겠네.
“저놈 제거할 방법이 정확히 뭐임? 그 르피너스의 선물이라는 거.”
굳은 표정으로 악마숙주 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질문하는 서예린, 그에 난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제가 죽이기만 하면 돼요.”
“내 설명 못 들음? 그러면 악마가 네게 빙의함!”
“르피너스의 ‘선물’이 제 안에 있어요. 고작 악마가 버텨낼 만한 게 아니니 믿어도 돼요.”
내 대꾸에 살짝 못 미더운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고갤 끄덕인 서예린은 양손에 무기를 쥐었다.
“그럼 저놈 죽이러 고고.”
“아니, 저 사람들 안 보여요??”
“사람들? 신경 써야 함?”
“무시하면 안 돼요! 저 민간인들, 이제 곧 마법에 걸려서 인간 폭탄이 될 거예요! 게다가 미국 시민이라서 지상에서 생활하려면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이미 좀 조진 것 같지만 어떻게든 구해야 해!”
아직 인간 폭탄으로 변하지 않았다만 분명 꿈과 같은 전개로 펼쳐질 거다. 이렇게까지 흡사한데, 안 믿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뭔 개소리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예린에게 ‘큰일 벌어질 때 꿈속에서 일종의 계시를 받는다.’고 첨언하자 잠깐 고민하던 서예린은-.
“알 바임?”
무책임한 말과 함께 어깰 으쓱인다.
아니, 이 X년이 양심이 출타했나?? 자칫하면 수천 명이, 그것도 인권 없는 이종족(쥐쟁이+@)들이 아니라 무서운 미국의 시민들이 죽을 사태인데 무시해? 자기가 놓친 악마숙주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그런 내 빡친 기색을 느꼈는지, 진정하라는 듯이 손짓한 서예린은 창밖의 악마숙주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단순하게 생각하셈. 단순하게.”
“아니,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니까 이렇게…….”
“저놈을 죽이면 해결됨. 빨리 죽이면 빨리 죽일수록 피해는 적어짐.”
“…….”
“죽인 상대방에게 빙의되는 성질 때문에 제거하는 것이 난감했는데, 그것도 이젠 해결됨. 아님?”
단순한 서예린의 말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고 반박하기엔……. 맞는 말이었다. 그래, 절망적인 상황에 반쯤 패닉에 빠져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다. 속전속결, 놈을 빨리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아니, 최소한 그게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길이란 건 확실해. 이 빡대가리 년, 무식하고 멍청한 것 같아도 은근히 이런 핵심을 잘 짚는단 말이지.
납득하긴 싫지만 내가 천천히 고갤 끄덕이자 서예린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폭탄으로 변한다니까 좀 조심해야겠음. 투명화 기름도 있으니 암살해 보는 게 어떰?”
“암살이요? 흐음, 예린 씨가 할래요?”
“아니, 니가 하는 게 나을 듯. 내가 가까이 가면 눈치챌 거임. 대신, 어그로 끌어 봄.”
그렇게 말한 뒤, 서예린은 손을 까닥였다.
“그, 책 돌려주셈. 저놈을 종속시키는 의식을 거행해 보겠음. 저런 상태인 이상 안 통하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쏠릴 거임.”
“다른 필요한 것 없어요?”
“포션, 투명화 기름, 공간 이동 스크롤…….”
각종 소모품을 말하는 서예린, 어쨌든 <아가리 주머니>에서 서에린이 요구했던 책과 기타 소모품들을 왕창 꺼내서 건네준 후-.
“그럼 전 저놈 죽이러 가 볼게요.”
난 투명화 기름을 바르고 호텔 현관문을 박차면서 내달렸다.
2.
「후후후, 아하하하하!.」
거대한 군중을 이끌고 움직이며 카르 알굴은 즐거움에 광소를 터트렸다.
악마의 존재 이유는 ‘지성체의 고통과 파멸’, 하지만 노예로서 부림당한 긴 시간 동안 그는 그러한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행할 수 없었다. 간혹 주인들의 명령에 따라 적을 몇 번 죽이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전부 그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만찮은 이전의 주인들.
자신을 부리면서도 항상 악마를 경계했고, 그에 명령을 내리더라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빽빽하게 조건을 달고 정확한 지시만 내렸기 때문에 욕망을 채울 만한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다. 이번에 약간의 자유를 얻고 행한 살육이 노예로 부림당한 시간 동안에 행한 살인보다 더 많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그는 수천의 지성체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풍요로운 지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 주위를 날아다니는 인간의 병기들이 공격을 쏟아내지 못하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지상의 인간들은 같은 인간들이 죽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반드시 해야 할 일임에도!
「흐, 히히히! 그래, 날……. 으윽!?」
다시 한번 <현혹의 외침>을 토하려던 도중에 느껴지는 감각.
사슬 위에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지배의 낙인’이 떠오르며 그에게 돌연 고통을 가했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에 휘둘리기엔 그 육신을 갈아타면서 떨쳐낸 제약이 수십 개다. 그냥 참을 만한 수준, 그 고통의 신호가 나오는 곳을 또렷이 보며 카르 알굴은 활짝 웃었다.
「후후후, 작은 주인님……!」
어리석고 허술한 작은 주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사로잡아서 자신의 고향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부리고 싶다. 그래, 자신이 겪었던 굴욕과 절망을 모두 느끼게 해줘야지. 끓어오르는 증오에 그가 차지한 육신의 눈이 주황빛으로 달아오르는 가운데-.
「!?」
돌연, 뒤쪽에서 심상찮은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곧바로 고개를 180도 돌리는 순간-.
-부우우우웅!
-부우우웅!
벌 떼가 날아오는 소음을 수백 배 확대시킨 듯한 굉음과 함께 흉악하게 날아오는 검은 말뚝 2개가 보인다. 그의 육신을 둘러싼 쇠사슬들이 출렁이며 날아오는 투사체들을 반사적으로 요격하지만 그 쪼개진 파편이 로브를 비롯해서 전신에 틀어박혔다.
「크으으-윽!.」
정수와 생명력으로 강화된 육신이건만 지독하게 느껴지는 독기.
그저 육신의 느낌만이 아니었다. 영체를 부식시키는 것 같은 역겨움, 육신의 기억 속에서 이런 느낌을 언제 느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상했다. 그래, 이건 공항을 습격했던 자가 사용했던 독이다. 작은 주인의 조력자! 놈이 자신을 습격하고 있다!
-투콰-ㅇ!
연이어서 군중의 무리에서부터 검은 형체가 튀어나와 그를 향해 도약한다.
검은 안개 덩어리가 뭉친 듯한 형상, 육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은 아니다만 그래도 대략적인 윤곽은 맞았다. 정수를 보는 감각으로 느껴지는 놈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꼭 <강령술>로 되살려낸 영체 같은 느낌.
거기에 전신이 영혼을 이루는 물질로 이뤄진 독 덩어리다. 어쨌든 자줏빛 안광을 번들거리며 창을 내뻗는 모습에 카르 알굴은 곧바로 사슬에 내장된 기능을 사용했다.
-지잉!
<제어 순간 이동>, 짙은 유황 냄새와 함께 공간을 찢고 육신이 사라지고 창을 내지르는 습격자는 그가 있었던 빈자리를 뚫고 지나간다. 다시 나타난 위치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카르 알굴은 그런 놈을 향해 비웃으며 쇠사슬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푸후우우악!
「……?!」
한발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것마냥, 놈의 아가리가 쩍 벌어지면서 시커먼 연무의 포탄이 그를 향해 작렬한다. 영체로 이뤄진 존재에게도 지독한 맹독, 반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지상 쪽에서 날아온 마법의 파동에 의해 독무가 격렬하게 주황빛으로 달아오르며-.
-콰-아아아앙!
폭발했다.
흉악한 위력, 강화된 육신으로도 버티기 힘든 타격이 몸에 내리꽂혔다. 그 폭발의 충격파에 떠 있던 카르 알굴은 그대로 아스팔트 지면에 처박혔다. 그를 쫓아 지상을 질주하던 인간들은 직접적으로 폭발에 휘말리진 않았지만 그 폭압의 충격파에 밀려났다.
“죽여! 죽여어어어!”
“우와아아아아!”
그러나 현혹된 인간들은 멈추지 않는다.
시체를 파먹기 위해 몰려드는 벌레처럼 튕겨 나간 이들을 짓밟으며 쇄도하는 인간들, 그 모습을 보며 카르 알굴은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 습격자가 토해낸 <독 숨결>을 폭발시킨 마법은 지상 쪽 벌레 무리에서 날아왔다.
그래, 저 고깃덩이들 틈에 또 다른 습격자가 있다!
-촤르르르-륵!
-우직! 콰드드득!
그에 카르 알굴의 육신을 둘러싼 사슬이 저절로 움직인다.
고기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날리는 내장과 피, 그리고 살점들. 사슬에 새겨진 <생기 흡수> 마법이 으깨진 고깃덩이의 정수들을 게걸스럽게 탐하고 순식간에 그가 차지한 육신에 생명의 정수를 전달하는 와중-.
-파앙-!
으깨져서 비산하는 살점과 내장의 빗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향해 빠르게 쇄도한다.
사슬에 내장된 <순간 이동> 마법을 다시 쓰기 위해선 아직 몇 초가량의 시간이 더 필요한 상태, 그에 카르 알굴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슬들을 회전하듯 폭풍처럼 휘두르는 것과 함께 빈 두 손으로는 품 안에서 ‘희생양’과 단검을 꺼냈다. 그러면서 습격자를 응시했다.
서투른 <투명화>를 쓴 것처럼 풍경이 살짝 일그러진 형상.
놈에게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카르 알굴은 순수하게 경악했다. 추악하고 시기심이 넘치는 살의, 그 기세도 강력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심상이 참으로 소름 끼친다. 언젠가 봤었던 군주의 위계를 얻은 악마보다도 더하다.
그 기세를 보건대, 놈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촤르르르륵!
-차르르륵!
그 위협에 몸뚱이를 감싼 사슬이 반응한다.
물질처럼 보이나 실상은 고위 악마의 정수로 만들어진 것, 순식간에 수십 개로 증식하며 폭격하듯이 놈을 향해 사슬이 쏟아진다. 거의 벽처럼 빽빽하게 보이는 사슬, 그에 날아드는 놈의 주변에서 <광폭화>의 기운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이는 것에 이어서-.
「!!」
놈의 영체가 폭발하듯이 부풀어 오른다!
육안으로 보는 놈은 인간 형상이지만 ‘정수를 보는 감각’이 느끼는 것은 비정상적인 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거대한 흉물체 같은 형태! 어설프지만 <투명화>를 쓴 게 무색할 정도로 시커먼 아우라가 줄기줄기 놈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스각-!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참격(斬擊)에 두터운 사슬들이 몽땅 잘려 나간다.
그에 카르 알굴의 로브 자락 아래에서 두 줄기의 보랏빛 광채가 솟구쳤다. <주술>로 소환해둔 마력 독사들, 꽤 강력한 소환수였으나 창날의 궤적에 스치는 순간 허무하게 머리가 잘려 나간다. 이어서 증식하며 몸을 보호하던 사슬 더미도 그대로 잘려 나가고-
-파아아앗!
아슬아슬하게 희생양을 소모해 완성된 주술이 카르 알굴의 몸을 뒤덮었다.
-콰득!!
이어서 괴인의 참격이 내리꽂혔다.
왼쪽 쇄골을 파고드는 일격, 그대로 비스듬하게 몸을 갈라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였으나 그에 괴인이 다급하게 창대를 놓아버린 덕분에 카르 알굴은 쪼개지지 않을 수 있었다.
-푸화아아악!
그 어깨의 상처에서 푸른 불길이 솟구치는 가운데-.
-촤학!
습격자의 어깨에서도 카르 알굴의 육신과 똑같은 곳-왼쪽 어깻죽지에서 살점이 터져나가며 피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육신이 가진 마법 중 하나인 <피해 결속의 고리>, 멀리서 날아오는 공격엔 무력하고 오직 ‘접촉한 상대’에게 당한 물리적인 피해만 반사할 수 있는 마법. 육신의 방어 마법으론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카르 알굴의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이 개……!”
「흐헉-! 으어어억!」
입은 피해에 괴인이 쌍욕을 하는 가운데, 카르 알굴은 기겁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거리를 벌리며 사슬을 움직였다.
괴인이 창을 멈추지 않았다면 ‘동반 자살’이 될 뻔한 상황. 죽인 대상이 없는 순간, 사슬은 주위의 무작위 지성체에게 강제 <빙의>된다. 아마 주변에 넘쳐나는 ‘아무런 능력 없는 고깃덩이’ 중 하나가 됐겠지. 카르 알굴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육신을 연거푸 갈아타면서 대부분 풀어냈지만 본질적인 제약들은 풀어내지 못했다. ‘자살 불가’라는 것도 그중 하나, 일부러 죽어주지 못하고 영혼 일부가 알아서 몸을 움직여 반격해버린다. 이 제약 때문에 약한 몸으로 갈아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타닥!
-우직! 콰드드득!
괴인을 껴안듯이 포위하려 했지만 놈은 뒤로 빠지면서 그의 몸에 박힌 창 자루의 밑동을 붙잡고 회수한다. 물론, 막으려 했으나-.
-부우우웅!
-부우우우우웅!
머리 위에서 맹공이 쏟아졌다.
도약했던 ‘검은 형상’이 낙하하면서 연거푸 시커먼 말뚝 같은 마법 투사체들을 날린다. 촘촘히 감싼 사슬의 방어막을 꿰뚫지는 못 하지만 덕분에 무기를 붙잡는 건 실패했다. 게다가 사슬로 막아도 박살 나면서 튀는 파편들이 바늘처럼 몸에 파고들면서 신경을 계속 갉아댔다.
-스륵.
하지만 가장 위험한 놈은 앞에 있었다.
흘러나온 피에 <투명화>는 풀린 상태, 어깻죽지에서부터 심장 가까이 절단이 됐을 텐데도 저 괴인은 계속 멀쩡히 움직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마자 아직 멀쩡한 오른손으로 투창 자세를 잡으며-.
-퍼어-ㅇ!
「케흑-!」
3m에 달하는 창을 그대로 던졌다.
포탄처럼 날아가 사슬의 방호를 뚫고 그대로 카르 알굴의 몸을 꿰뚫는 창, 심장을 노린 듯했으나 창의 자루가 길어서 사슬의 방해를 받아 궤적이 뒤틀렸다. 대신에 왼쪽 어깻죽지를 꿰뚫으며 지면에 꽂혔다. 안 그래도 덜렁덜렁하게 달린 그의 왼팔이 충격파에 통째로 떨어져 나간 가운데-.
-지잉!
다시 <제어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순간, 카르 알굴은 그가 도망칠 수 있는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그래 봤자 그 거리가 300m가 안 되지만 잠깐 숨을 돌릴 정도는 됐다. 끌고 온 인파 속에 파묻혀서 숨을 헐떡이며 그는 입은 상처를 확인했다. 싸운 지 불과 몇 호흡 정도 만에 빈사 상태, 그냥 그대로 계속 싸우면서 저 괴물에게 죽어 버릴까 생각했지만……. 낌새가 안 좋았다.
저 ‘작은 주인의 조력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작은 주인이 ‘사슬의 빙의’에 대해 숨기지는 않았을 터, 그런데도 자신을 제압하기보단 죽이려고 한다. <빙의> 과정에서 악마와 영원한 정신력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머저리일 수도 있겠다만 그것보단 ‘빙의를 차단할 수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비키세요! 비켜!”
-끼! 끼기긱!
거칠게 인파를 뚫으며 달려오는 괴인과 검은 형체, 참으로 놀랍게도 악마 같은 살기를 뿜어낸 놈은 인간은 죽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그 광경에 비릿하게 웃으며 카르 알굴은 놈을 피해 도망치는 것과 함께-.
-촤르르르륵!
-콰득! 콰드드득!
자신을 두드리는 벌레들을 향해서 사슬을 휘둘렀다.
주위에 널려있는 고깃덩이를 으스러트려 그 정수를 흡수하면서 재빨리 남아 있는 오른손으로 희생양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동기화>하며 몸에 있는 상처들을 희생양에 옮겨버렸다. 워낙 심각해서 몸에 파고든 독만 옮겼는데도 희생양이 완전 녹아내렸지만-.
「흐, 흐히히히. 아하하하하!」
카르 알굴은 웃으며 녹아내린 희생양을 던지고 새로운 희생양을 꺼냈다.
적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승리의 비결임을 카르 알굴은 잘 알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적이 싫어하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그걸 실천할 때. 그리고 실천할 능력 또한 충분하다.
「날 봐라-!」
다시 한번 매혹의 외침을 내지르면서 카르 알굴은 몸을 감싼 쇠사슬 중 하나를 움직였다. <피해 결속의 고리>를 걸었을 때, 놈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묻은 사슬, 이런 피만으로는 완전한 <동기화>를 쓸 순 없지만 그래도 지금 하려는 짓 정도는 할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적의 피를 거침없이 희생양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