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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장에 오자 민경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간 오디션을 봤지만, 그때는 겨우 잘해 봐야 조연이었다. 하지만, 이건 주연 오디션이다.
“이전에 봤던 오디션과 긴장감이 다를 거야.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그 대본을 보면서 했던 시간들은 널 배신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떨어지면······.”
민경은 막상 주연 오디션을 보려 하자 부담감이 생기고 말았다.
“민경아, 넌 항상 열심히 해 왔고 노력했다. 난 널 믿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다. 이 세상에 널 믿는 사람이 부모님 말고 딱 한 명 추가시킨다면 그게 바로 나일 거다.”
재석은 민경을 믿었다. 아니 그녀가 미래에 했던 일들은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오빠······ 너무 멘트가 닭살 돋는다고 생각지 않아요?”
“이 정도 응원을 해야 네가 힘이 나지.”
“이거 봐요. 너무 닭살 돋아서 이 추운 날씨에 더 추워요.”
민경은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 줬다. 우둘투둘하게 솟아오른 털을 봤지만, 재석은 개의치 않았다.
“오빠, 그래도 고마워요. 닭살이 돋긴 했지만, 덕분에 긴장했는데 풀렸어요.”
“그럼 됐다.”
민경이 안으로 들어가자 재석은 오디션장 한쪽에 있는 빈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이번에는 붙어라.”
전과 다르게 확실하게 붙어야 했었다. 그때, 눈앞에 한 사람이 스윽 하고 지나갔다.
“저 사람은······.”
눈에 들어온 두 사람이 있었다. 옷차림은 연예인답지 않게 수수했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권진우와 지운, 그들도 이 드라마에 출연했지!’
저 두 사람은 둘 다 옆에서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아쉽네, 저 둘 다 미래의 슈퍼스타인데 말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래가 확실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래, 아쉽다고 나중에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재석은 탐나는 인재를 보고 정말 아쉬웠다. 그러다가 한 남자가 걸어 들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간지, 간지, 소간지!’
그의 연예계 데뷔는 이전이지만, 연기자로서는 이번이 가장 큰 도전일 거다. 하나, 저 기럭지와 얼굴은 쉽게 남과 비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연예인 오브 연예인.’
누가 봐도 후광이 느껴지는 순간이지만, 그의 옆에 딱 달라붙은 매니저를 보니 여기도 소속사가 있었다.
‘가만히 보면 다들 신인이라는 거 빼고는 미래에 분명 성공할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드라마란 말이야.’
여기서 재석이 치고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딱 한 명만 내가 손에 쥐었으면 좋겠는데······.’
민경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그는 또 다른 사람을 손에 쥐려고 하고 있었다. 참으로 욕심도 많은 인간이다.
오디션장 안에서는 차례가 된 민경이 앞으로 나서자 박 피디와 작가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마스크는 순수해 보이고 아주 좋은데.’
민경의 첫 인상이 괜찮았다는 평을 받았다.
“어떤 역을 준비해 오셨습니까?”
박상수 피디의 질문에 임민경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장희진 역을 준비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장희진이 선보는 자리에서 상대를 앞에 두고 전화 받는 신을 한번 해 보세요.”
“네.”
임민경은 핸드폰을 꺼내 귀에다 대고 연기를 시작했다.
“어, 그날 잘 들어갔니?”
임민경의 표정에 살짝 미소가 머물며 전화기 너머에 사람이 받는 것도 아닌데, 진짜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필름이 끊겨서, 새벽 세 시 이후에 기억이 하나도 안 나. 서화가 맥주병을 깨서 그 남자 이마를 깐 것 까지······.”
말을 하다 멈추고 잠시 아무도 없는 곳에 시선을 한 번 뒀다. 마치 앞에 누군가 때문에 통화가 멈췄다는 그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왔다.
그러면서 아무도 없는 가상의 남자를 상상하며 목소리 톤을 최대한 귀엽게 대사를 뱉었다.
“아, 저기, 나 지금 선보고 있거든 나중에······.”
박 피디와 작가는 그녀의 연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계속 지켜보았다.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잘 봤습니다.”
박상수 피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민경을 내보냈다.
재석은 민경이 밖으로 나오자 그녀를 맞이해 줬다.
“끝났어?”
“네, 근데 합격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준비한 걸 모두 다 보여 줘서 속이 후련해요.”
연기가 형편없었다면, 다 보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다 봤다는 거 자체가 재석에게는 다르게 들려왔다.
‘됐어, 합격이야. 이제 다음 대본이 회사에 들어오겠어.’
지금 회사에 있는 대본은 1화 대본이다. 이미 편성이 끝난 드라마라서 절반 가깝게 대본이 완성됐을 거고 얼마 있지 않아서 그 2화의 대본이 날아올 거다.
‘이제 한동안 바쁘겠는데.’
“자, 그럼 이제 돌아가자.”
“네, 오빠.”
재석은 그렇게 회사로 돌아가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 둘이 정말 아쉽단 말이야.’
오디션 현장에서 봤던 권진우와 지운이 눈에 밝힌 거였다.
‘한 사람은 몇 년 뒤에 바로 스타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살짝 느리지만, 결국엔 스타가 되는 사람인데 말이야.’
회사로 돌아온 재석은 혼자 많이 아쉬워했다. 그사이에 주명진이 오디션에 관한 걸 물었다.
“재석아, 맛있는 첫사랑 오디션 결과는 어떻게 예상해?”
“일단, 민경이 꽤나 잘했습니다. 저의 예상이지만, 합격할 걸로 보입니다.”
주명진은 재석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1년간 땜빵로드 하면서 본 게 있을 테니, 어느 정도 분위기를 유추했다.
“뭐, 오디션장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아주 희망이 없는 정도는 아니겠어.”
“뭐, 그렇죠.”
“하아, 그럼 네쪽은 결과 기다리면 되겠고, 문제는 다른 쪽인데.”
“다른 신인들이요?”
“그래, 오디션을 보고 있는데 불합격 내용만 받아서 말이야.”
분명 임민경을 제외한 다른 두 신인의 연기가 좋진 않았다.
‘내가 과거로 오기 전이었다면 심각한 수준이지.’
겨우 회사 오디션에서 약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사람을 뽑는다.
문제는 민경을 제외한 신인 연기자 실력은 거기까지가 한계다.
그 이상은 없다. 둘 다 제대로 된 작품을 하지 못하고 쓸쓸히 연예계를 떠났다.
“재석아, 이제 담당한테 가 봐야지. 연기 연습 집중적으로 시켜야 하니까.”
“조금 있다가 가 보겠습니다. 정리할 게 있어서요.”
“지금 가. 정리는 돌아와서 하고, 오디션에 합격 가능성이 생겼다면 거기에 집중해야지.”
주명진은 재석을 내쫓듯이 보내 버렸다.
“그럼, 담당에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담당한테 가 봐라.”
재석이 빠르게 모습을 감추자 다른 직원이 새로운 대본과 시나리오를 가지고 2팀에 놓고 갔다.
“음? 새로운 게 왔네.”
주명진은 새로운 대본이 뭐가 왔는지 보고 있다가 맛있는 첫사랑의 대본을 봤다.
“아니, 이게 왜 온 거야. 분명 이건 받았는데.”
하지만 겉표지에 2화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음?”
그걸 본 주명진이 급하게 핸드폰을 들었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주명진은 전화를 끝내고, 곧바로 재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꺄아아!”
민경은 한껏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재석은 회사를 나오기 무섭게 팀장에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뒤에 민경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하자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민경을 보게 되었다.
‘저렇게 좋을까?’
재석은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흐뭇했다.
“오빠는 안 좋아요?”
“좋지.”
재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활짝 그려져 있었지만, 몸으로 뭔가를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아저씨가 된 느낌인데.’
아직 회귀의 영향이 남아 있었다. 몸을 젊어졌지만 아직 마음까지 젊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민경아, 오늘 기분 좋은 건 이해하는데. 일단, 심호흡.”
“후우,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폴짝폴짝 뛰던 그녀를 진정시키고 재석은 그녀에게 대본을 다시 내밀었다.
“합격했다면 얼마 있지 않아 첫 촬영이 시작될 거다. 하루에 몇 신을 찍을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바쁠 거야.”
“네에.”
활짝 웃으며 그녀가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이 기분을 만끽했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바로 연습을 위해 감정을 추스르며 대본을 보는 것이다.
***
첫 촬영 들어가는 장면에 재석과 민경은 옆에서 선배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녀석이 아버지 비법 다 전수받고 저 건너편에 식당 차린 거 아세요?”
“이 녀석아, 뭘 그리 호들갑이야.”
“아버지! 화나지도 않으세요?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서 100미터도 안 돼요!”
“괜찮아, 어차피 여기 올 손님은 다 오게 돼 있어.”
“아버지, 전 못 참아요. 말리지 마세요.”
민경은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편의 영화 보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카메라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식에 불과했다.
“컷! 아주 좋아,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드라마 촬영은 같은 장소에서 찍을 거 찍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주연 배우 정진 말고는 다들 신인이라 할 수 있어서, 드라마 촬영 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정진은 자신의 신이 끝나면 모두에게 인사하고 난 뒤에 빠르게 빠져나갔다.
“컷, 다음 장소로 갑시다.”
감독이 다음 장소로 가자는 말에 사람들은 순간 분주해졌다. 빠르게 물건이 치워지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와, 정말 순식간이네요.”
촬영은 시간 싸움이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고, 치우고 차에 실어야 해서 누구보다 스태프들의 움직임은 무서울 정도였다.
다음 장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민경은 요리사들이 입는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에서 카메라 설치가 다 끝날 때까지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민경은 떨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바들바들 떨어 댔다.
“저런.”
재석은 민경을 주시하고 있다가 몸을 떨어 대자 급하게 다가갔다.
“떨려?”
“네, 조금.”
재석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민경아, 걱정 마. 널 응원하는 사람이 여기 있어. 카메라가 돌아가도 몇 걸음 뒤에 내가 있어. 문제가 생기면 달려올 거고, 네가 아프면 내가 널 병원에 데리고 갈 거야. 너의 매니저가 여기 있어. 그러니 걱정 마. 긴장 할 것도 없어.”
재석의 말에 민경은 손 떨림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오빠, 고마워요.”
“그럼, 됐어. 난 카메라 밖에 있지만, 10미터도 안 떨어져 있어. 금방이야.”
재석은 민경을 진정시키고 다시 카메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박 피디는 모든 준비가 끝나자 외쳤다.
“액션!”
촬영이 시작되자 민경은 연기했고,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표현을 해냈다.
박 피디는 화면을 보는 내내 긴장감을 표출했다. 신인의 연기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잘 나오지 않으면 얼마나 NG를 만들어 내야 할지 감 잡기가 어렵다.
‘이건 안 되는데.’
재석은 뒤에서 민경의 연기를 보는데 약간은 아쉬웠다.
“컷!”
여지없이 연출자가 컷을 외쳤다.
“조금만 더, 면을 먹을 때 그 탱탱함을 느끼면서 해 봐.”
“네.”
비록 NG가 나긴 했지만, 민경은 곧바로 행동을 수정해 나갔다.
“그럼, 다시 갑니다. 액션!”
다시 시작하자, 민경은 곧바로 몰입하며 연기를 펼쳤다.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진짜 음식 맛을 보면서 면의 상태를 진짜 느끼는 것 같은 연기를 펼쳤다.
“컷! 이번에는 좋은데, 한 번 더 갑시다.”
민경의 연기는 컷을 하고 다시 할 때 마다 좋아졌다. 재석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점점 좋아지고 있어. 박 피디가 NG를 외치겠지만, 입가에 미소가 점점 생기고 있어.’
나빠서가 아니라 할 때마다 더 좋은 장면이 연출되니 계속하는 거였다.
그리고 더 이상 좋게 나올 수 없게 되자 ‘좋았어.’를 외치는 박 피디였다.
촬영은 계속되었다. 민경의 연기력은 신인이지만, 박 피디의 마음에 들 수준은 되었다.
‘정확히는 이쪽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거겠지.’
그만큼 재석이 민경의 상대역을 많이 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OK! 다음으로 갑시다.”
연기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촬영장에서는 사람들이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