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4화 (4/152)

4

민경은 촬영을 하는데도 남들 하는 그 흔한 NG하나 없이 촬영을 쫙쫙 진행했다.

오히려 NG내는 쪽은 상대들이었다. 같이 촬영하는 사람들은 민경의 철저한 준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신인들에게는 긴장감을 일으켰고, 선배 연기자들에게는 더 철저한 준비를 하게 했다.

특히 원로 배우들은 한 사람의 신인 덕분에 분위기가 더 열심히 하자는 걸로 돌아가자 연기가 더 좋아졌다.

재석은 매니저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어떠십니까?”

누군가에 재석이 고개를 돌렸다.

“저 말입니까?”

“네.”

“좋지요. 저기서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누가 안 좋겠습니까.”

“부럽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재석은 민경이 잘나가서 정말 좋았다. 그녀만 확실히 잡는다면 보장된 흥행 수표를 손에 쥐고 있는 꼴이니까.

재석은 그렇게 웃는 사이, 한 매니저의 표정이 시큰둥했다.

‘분명 저 사람은 권진우의 매니저인데.’

미래의 슈퍼스타 옆에 따라붙은 저 매니저는 미래가 꽃필 거다. 재석처럼 말이다.

“근데, 얼굴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어느 분 매니저입니까.”

재석은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며 물었다.

“권진우 형님을 돕고 있는 사람입니다. 매니저는 아니에요.”

“음!”

그 말에 재석은 놀랐다. 전에 오디션 볼 때도 왔던 사람이 매니저가 아니라서 말이다.

“지금 제가 할 일이 없어서 진우 형 돕는 겁니다. 그것도 이 드라마 끝날 때까지요.”

재석은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팽팽 돌기 시작했다.

‘미래의 스타가 소속사가 없다? 이거 기회인데.’

“그럼, 많이 힘드시겠네요. 아직 단역이죠?”

재석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매니저 일이 단순히 차만 태워 주고 왔다 갔다 하는 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뭐, 괜찮습니다. 진우 형이 잘 신경 써 주거든요.”

그럴 거다. 도와주는 거 고마워서라도 신경 써 줄 거다.

‘이거 잘하면······ 낚시질 한번 해 봐야겠는데.’

민경이만큼은 아니지만, 낚시질로 확실하게 낚을 수 있는 물고기가 저기 있는 거다.

‘우선, 밑밥부터······.’

“그럼, 현장 돌아가는 거 거의 모르겠네요.”

“예, 뭐 아는 게 없으니······.”

재석은 우선 이 사람을 도와주면서 권진우와 연결점을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럼, 상대역은 좀 하셨나요?”

“아뇨. 그런 건 전혀······.”

정말 차만 태워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매니저는 아니지만 지금 드라마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역 해 주고 안 해 주고는 차이가 큽니다. 연기자의 연기 실력을 높이면 감독이 눈여겨봐 주고, 그게 작가의 귀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대사가 늘고 출연 신이 많아지면 그에 따라 돈도 더 받게 되죠.”

이야기가 길었지만, 상대역을 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초보자에게 알려 주자 그의 표정은 놀랐다.

“전혀 그런 줄은 몰랐네요.”

“이 바닥에서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단역이라도 연기 잘하면 대사가 빠르게 늘어납니다. 그럼 역할 비중도 커지고요. 드라마가 영화랑 다른 점이 이거죠.”

“정말인가요?”

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 말을 했다.

“권진우 씨를 도와주고 있다면 하루빨리 회사에 입사시키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당신이 원하는 일도 찾아갈 수 있고요.”

“흐음.”

재석의 말에 상대는 고민하게 되었지만, 다른 매니저들은 시큰둥했다. 아직 권진우의 진가를 전혀 예측 못 했고, 그걸 판가름할 정도로 권진우가 뭔가를 보여 주지도 못한 시점이다.

‘민경과 반대로, 권진우는 데뷔도 민경보다 먼저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건 지금도 단역을 맡고 있으니 아직도 빛을 못 본 거지.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남았어.’

“오늘부터라도 상대역 한번 해 주세요. 그럼 아주 좋아할 겁니다.”

“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뭘요. 각자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데, 이렇게 순수하게 도와주러 왔으니 이 정도는 알려 드려야죠.”

재석은 순수한 의도로 접근한 척하며 검은 속내를 꼭꼭 감추고 있었다.

“민철아.”

권진우가 부르는 소리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재석이 급하게 그에게 명함을 손에 쥐어 줬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 줘요. 도와줄게요.”

재석은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어 줬다.

‘밑밥은 깔았다.’

아직 고기가 물기를 기다려야 할 거다. 지금은 이대로 보내는 걸로 끝내야 했다.

“오빠.”

연이어 민경도 촬영이 끝났는지 바로 재석에게 달려왔다.

“그래, 고생했다. 어서 돌아가자.”

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로 향했다. 다른 매니저들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도 나누고 말이다.

***

재석은 회사 휴게실에서 남들 다 퇴근하는 시간에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아, 이제 시작하네.”

“오빠, 너무 떨려요.”

민경도 재석과 같이 회사 휴게실에서 드라마 모니터링할 계획이었다.

“으으으.”

“왜 가만히 못 있어.”

“그야, 제가 연기하는 걸 처음으로 보는 거잖아요. 연기를 못했을까 봐 창피해서 못 참겠어요.”

“연기를 못했으면 모니터링을 더 해야지. 잘했나 혹은 이때 이렇게 했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 그리고 다시 연습해서 다음에는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겠다. 뭐 이런 거.”

“그거야, 알고 있지만······ 그래도 떨려요.”

민경이 혼자서 호들갑 떨고 있을 때 조심스럽게 휴게실 문이 열렸다.

“다들 퇴근 안하고 뭐 해?”

“모니터링하려고요.”

“아니, 그걸 여기서 해?”

“팀장님, 집에 있는 TV 상태가 별로라서 그래요.”

“그럼, 민경 씨는 왜?”

“전, 집에 아무것도 없어요.”

민경은 아직 정산 전이라 통장에 돈이 별로 없었다.

“이런, 매니저나 연기자나 둘 다 똑같이 개털이구먼.”

“아, 팀장님, 꼭 아픈 데를 그렇게 찔러야겠어요?”

재석의 말에 주명진은 미안한지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진짜, 돈 벌면 TV부터 사야지.”

“전 이사부터 좀 하려고요.”

“지금 사는 집이 왜?”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야죠. 집이 좀 낡고 안 좋아서요.”

“하긴, 집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금방 민경의 통장에 많은 돈이 들어올 거다. 드라마 말고 드라마 외적인 부분에서 무섭게 말이다.

“오빠, 시작해요.”

드라마가 시작했다. 첫 장면은 정진이 신나게 달려오는 장면이었다.

“아버지!”

혼자 씩씩거리며 등장하는 장면부터 경험이 묻어나 왔다.

‘역시, 아역 때부터 열심히 연기를 갈고 닦은 저 경험.’

그만큼 젊은 나이에도 연기가 안정되어 있었다.

TV를 보고 있던 민경은 선배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로 집중했다.

그 뒤로 다른 배우들이 차례차례 나오면서 연기를 펼치는데, 드디어 민경의 첫 신이 나왔다.

후루룩.

첫 장면이 면을 맛보는 장면인데, 민경을 그걸 보면서 전신이 오글거리는지 부들부들 몸을 떨어 댔지만, 화면에 시선을 떼진 않았다.

“으으으, 제 연기가 저랬어요?”

“저랬지, 신인치고는 연기가 좋지. 하지만, 신인이란 단서가 붙어, 넌 아직 많이 부족해.”

“으으, 정말 그 말을 옆에서 들으니 기분이 나쁘면서도 오히려 침착해지네요.”

“그래야지, 더 높은 곳에 올라야 하니까.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하아, 정말 오빠, 어쩔 줄 모르는데 기분 다운시키는 말을 자꾸 하면, 막 의욕이 불타오르잖아요.”

연예인은 인기가 사라지면 그대로 끝인 직업이라 정말 높은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야 했다.

“아, 그래?”

재석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민경은 더 이상 몸이 오글거리지도 떨리지도 않게 되었고 눈빛도 정말 사나워졌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는데.’

슬며시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첫 방송이 나가고 그 다음날 방송도 나가면서 시청률 집계가 나왔다.

주간 평균 시청률 22.2퍼센트

2001년에 이 정도 수준이면 아주 성공한 드라마다. 출발도 순조롭고 말이다.

“아, 정말 10년 뒤에 이런 시청률이라면 초대박이라고 할 텐데 살짝 아쉽네. 그래도 대박은 맞지. 근데 내가 기억하는 시청률이 아니네.”

재석이 기억하는 시청률은 20.2퍼센트였다. 그런데 22.2퍼센트가 나왔다. 2의 행진이었다.

‘게이머 홍 씨가 생각나네.’

아직 그에게는 2의 행진이 한참 진행 중이다.

“어찌 되었든 이제 됐어.”

시청률은 하락세 없이 꾸준히 올라간다. 마지막 회가 방영될 때는 30퍼센트를 찍으며 2001년 올해 초반 최고의 드라마로 찍힌다.

다행히 추가 촬영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 촬영은 순조로웠다.

물론 촬영할 때 상당한 시간이 소비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반대로 재석은 촬영장에 들어서서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돌아와서 매니저들과 인사를 나누는 건데 매니저가 아닌 사람과 인연이 되었다.

“오늘도 보네요.”

바로 최민철이었다. 현재 권진우를 도와주고 있는 사람이다.

“전에 해 주신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아, 뭘요.”

“진우 형이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그리고 대사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꼭 보답하겠다고 합니다.”

“보답을 바라고 한 건 아닌데······.”

재석의 속은 제발 나에게 오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도 단순히 차만 태워 주고 끝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일단, 최민철은 재석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꼭 시간 내서 만나고 싶습니다. 진우 형도 마찬가지고요.”

재석의 말 한마디로 두 사람에게 뭔가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 모양이다.

“그럼, 이번 토요일 오후에 잠깐 시간이 나긴 합니다. 요즘 드라마 촬영장 쫓아다니는 것도 꽤나 고된 일이니까요.”

“그럼, 토요일에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드라마 일정에 대해서도 뭔가 좀 알아본 것처럼 행동하는 최민철이었다.

‘거참, 신기하네.’

재석은 기분이 묘했지만, 그래도 권진우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반쯤 된 건가?’

재석은 권진우의 신 숫자가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봐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연기력이 늘었다면 대사의 양이 바뀌기 때문이다.

재석은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권진우와 최민철을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뭘요. 그런데 왜 이렇게 절 찾는 겁니까?”

재석의 말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그저,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 동안 제가 이곳저곳 촬영장을 돌아다니면서 느꼈지만, 단역에게 작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민철이에게 이야기 듣고 처음으로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연기자가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끝일까? 그들도 사람이니 인기를 얻고 싶어 했다. 대중들의 관심을 말이다.

‘관심 한번 줬다고 이렇게 덥석 물어 올 줄이야.’

그는 지금 소속사 없이 홀로 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체감한 상태다. 처음이었다면 이런 반응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간 힘드셨나 봅니다.”

“예, 뭐, 이 일 하겠다고 2년 정도 됐는데 정말 어려웠거든요.”

그에게 지난 시간은 돈이 없어 어려웠을 거고,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일거리 찾아다니기 바빴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재석이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 보라고 명함을 줬으니 덥석 문 거다.

‘던지면 물리는 쉬운 고기였네. 아니 지금 시기가 어려울 때 던져서 확 걸린 건가?’

뭐가 되었든 재석에게는 기회였다.

“감사의 인사는 됐고 이렇게 얼굴 보게 됐으니 만족합니다만 그건 저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은데. 저에게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가능하면, 그쪽 회사와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계약이라는 말에 재석은 놀랐다. 아직 그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에게 계약 권한은 없습니다. 일단, 보고는 할 수 있죠.”

“드라마 여주인공 역을 맡고 있는 연기자를 데리고 다니셔서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 줄 알았는데.”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약을 원하신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재석은 정말 적극적일 자신이 있었다. 지금 혼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하루빨리 계약하고 싶어 할 거다.

“그렇다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저로서는 소속사에 들어가서 좀 더 연기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홀로 모든 걸 다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지 2년간 체험을 했으니 이리 매달리는 거다.

“좋습니다. 이야기를 꼭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을 드리면, 지금 연기를 더 열심히 해 주세요. 단역이라도 말이죠.”

“물론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대사를 한 줄이라도 더 늘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가 보고할 때 할 이야기가 늘어나겠네요.”

재석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직접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내가 이들을 직접 캐스팅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이를 손에 쥘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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