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3화 (13/152)

13

“하하하.”

“호호호.”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다.

재석과 민경은 배역을 따내서, 윤정호는 그가 찾는 배우를 찾아서 그런 것이다.

‘원래 나와야 할 배우는 없어졌다. 하지만, 안심하기 이르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런 변수들이 생기기 전에 제거해야 했다.

재석은 그리 생각을 하고 가장 우선이 민경의 건강과 드라마 촬영 일정이다.

‘이제부터 일정 조정! 광고나 기타 행사 일정 조정이 우선이다.’

쉬는 날을 적절히 배분해 과도하게 일이 몰리는 걸 막는 게 우선이었다.

세 사람은 결과적으로 편안한 식사 자리를 하고 난 뒤에 파장했다.

“오빠, 근데 도대체 무슨 드라마에 절 출연시킬 거예요?”

아직까지 제목도 모르는 민경이었다.

“눈꽃연가라는 드라마야. 대본은 원할 때 보여 줄게.”

“드라마 촬영 끝나면 볼게요. 몰입을 깨는 건 곤란하니까요.”

“뭐, 너라면 그렇겠지.”

“근데 기분 나쁜 건 하나 있어요.”

민경이 기분 나쁘다는 말에 재석의 귀가 쫑긋했다.

“뭔데.”

“다음에는 대본 읽지 않아도, 뭔지 좀 알려 주세요. 이번에는 오빠가 절 생각해서 일을 진행했다고 믿고 있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다음에는 절대 안 되요.”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다음에는 절대 이럴 일 없을 거야.”

“약속해요.”

민경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재석도 그 손에 손가락을 걸었다.

“따라 하는 거야?”

“원래 약속은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요.”

“알았다.”

손가락을 걸자 민경이 입에서 중얼거렸다.

“새끼손가락 마주 걸고 꼭, 꼭 약속해♫”

“풋!”

재석은 민경이 노래까지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오빠가 처음 손 내밀었을 때 얼마나 웃겼는지 생각 안 했죠?”

“커흠, 그래도 노래는 안 했다.”

“이거나 그거나.”

결국 둘은 그렇게 약속했다. 둘만의 약속이지만, 남들이 봤다면 유치하다고 욕했을 거다.

“근데, 민경아, 그거 아냐. 너랑 같이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하다.”

“무, 무슨 소리야.”

민경은 당황했지만, 재석은 차분했다. 마치 이런 날을 오랜 시간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민경이 너처럼 밝게 빛나는 사람을 만나서 좋아.”

재석의 차분한 말에 민경은 그의 행복감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이렇게 된 건 오빠 덕분이에요. 그거 알잖아요. 저 혼자는 이렇게 될 수 없어요.”

“정말?”

“네.”

민경의 확신 담긴 말에 재석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더 열심히 해야겠네.”

***

재석은 한동안 정말 바빴다. 촬영장 따라다니다가, 회사에서 최민철을 통해 권진우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님, 영화 촬영장에서 진우 형 분량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진우 형이 쉬는 것보다 일을 하고 싶어서 찾아 달라고 하는데요.”

“그러겠지. 지금도 너랑 같이 살고 있고 나름 힘들고 불편할 테니.”

“전 괜찮은데······ 형이 좀 껄끄러워 해요. 마음대로 연기를 펼칠 곳도 없어서.”

“회사에서 집을 지원할 수도 있어.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저도 그 이야기 해 봤는데, 진우 형이 그건 별로 원하지 않았어요.”

“하긴, 그러겠지. 나중에 정산할 때 다 빼니까.”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고 넙죽넙죽 받는 것도 안 좋다. 이것도 미리 당겨 받는 거라 다 돈에서 빠진다.

“어차피 그건 선택이니까. 여기 대본 있어. 한번 보고 결정해. 이번에는 나도 같이 봤는데 쓸 만한 게 없어. 다른 대본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볼 것도 없고.”

“결국 아무거나 잡아야 하는 거네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 스타가 아니면 선택의 폭이 좁으니까.”

재석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좋은 작품이 없지 않다. 허나, 이번에는 권진우가 치고 들어가기에 타이밍이 안 좋았다.

‘아직 그의 연기 재능은 민경이에 비해 한참 못 미치니······.’

정말 민경이가 특출한 거다. 예쁜 얼굴에 뛰어난 연기 재능은 쉽게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그럼, 대본 들고 가 보겠습니다.”

“그래, 선택하면 이야기해 줘. 그쪽에 연락해 줘야 하니까.”

재석이 보기에도 권진우의 주머니 사정이 조금은 괜찮아진 듯했지만, 둘이 떨어져 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영화 쪽 돈은 아직 입금 전이니 주머니 사정 좋을 것도 없네.”

그쪽 이야기를 접고 재석은 권진우가 했던 드라마를 떠올렸지만, 이때 그가 했던 드라마는 아직 빛을 볼 때가 아니었다.

“분명, 선택은 원래대로 하겠지.”

권진우의 인생은 재석이 관여했지만, 원래 살아갔던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일단, 이대로 간다.”

지금 당장 권진우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연기에 대해 선생님을 붙여 주는 거 말고는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내 돈 나가는 시기가 아니니까.’

“재석아.”

“네, 팀장님.”

“감독 만난 건 어떻게 됐냐?”

“확답 받았습니다. 여주 준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촬영은 12월에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꾸준히 여러 사람 접촉하고 있으니 사람이 구해질 겁니다.”

“그거 잘됐어. 혹시 우리 쪽 사람 밀어 넣을 수 있을까?”

흔히 연예계에 만연해 있는 끼워 넣기 수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잘하면 좋지만, 부작용이 있어서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글쎄요, 그 깐깐한 윤정호 감독이 쉽게 해 줄까요?”

“하긴,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차게 쳐 내는 인간인데 쉽게 내밀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이번에는 윤정호 감독이 직접 모든 걸 하다 보니 작은 틈이 생겼고, 재석은 기회를 봐서 그 틈을 찌른 거나 다름없다.

‘여주인공이 됐으니, 남주인공까지 되면 분명 깐깐한 윤정호로 돌아올 거야. 히트작을 다수 만들어 낸 감독의 모습이 보이겠지.’

민경이도 처음 만났을 때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보여 주지 못했으면 끝장났을 거다.

‘이것도 운이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민경의 재능이 더 빨리 개화된 건가······.’

구분이 모호하지만, 마냥 좋게만 볼 수도 없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너무 운에 기대는 것도 좋지 않아.’

재석은 회귀 전 사업을 하면서도 막연히 운에 기댔던 것도 있었다. ‘언젠가 될 거다.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안일했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데 말이야.’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촬영장에 가려고?”

“네.”

재석은 빨리 물건을 챙기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한 여자가 옆에 붙었다.

“오빠.”

“어, 민경아.”

회사로 찾아온 거다.

“아니, 내가 가려고 했는데. 직접 왔네.”

“뭐, 할 일이 있어야죠. 그리고 코디 언니가 연락을 줬는데, 와서 옷 좀 보고 가라고 해서요.”

“음, 그러고 보니 옷이 바뀌긴 했구나.”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 하지만 어딘가 수수해 보였다. 드라마 콘셉트에 맞춘 옷이었다.

“그럼, 이대로 가면 되겠네.”

재석은 그렇게 민경을 데리고 촬영장으로 달려가자, 그곳에서 많은 이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세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 찾아와서, 민경은 사람들에게 인사했고, 재석도 그 뒤를 따라 인사를 나눴다.

“이거 하나 드시면서 하세요.”

재석은 에너지 드링크 음료를 하나씩 주면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야, 이렇게 매일 가져다주면 월급 남아나겠어요?”

“하하하, 그러지 않아도 주머니 개털입니다.”

재석이 일부러 크게 웃으며 대답하자 사람들도 웃었다.

촬영이 시작 전에 미리 모여 있던 연기자들끼리 간단한 리허설을 하며 합을 맞췄다. 여기에 감독도 끼어들며 그들을 관리했다.

“저쪽에서 민경 씨가 오면서, 준현 씨가 맞이하는 거예요.”

“예, 감독님.”

요즘 들어 준현이란 사람의 눈빛이 좋았다. 아니 정확히는 민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저 시선 좀 부담스러운데.”

연기가 혼동될 정도로 민경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그렇게 뭐라 할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재석의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이 드라마 안에서의 감정을 사적으로도 개입시키는 거였다.

‘아니, 민경이 예쁘니 연기 시작 전에 개입될 수도 있지.’

아름다움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는 여성이다. 남자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하아, 얼마 전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말이야.”

민경 상대역의 눈빛이 점점 심상치가 않았다. 덕분에 연기는 자연스러웠고 감독 역시도 좋아했다.

걱정되는 건 재석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스캔들로 간다.’

민경이는 아직 저 사람의 눈빛을 연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연기와 진짜를 구분할 만큼 삶을 살아오지 않았지만, 재석은 달랐다. 오랜 기간 살아와서 진짜와 연기를 구분할 수 있다.

‘큰일이군.’

어느 순간 민경에게 들이댈지 알 수가 없었다. 기회와 틈을 주지 않는 게 우선이지만, 촬영하는 동안 재석이 모든 시간 동안 민경에게 간섭할 수가 없다.

“일단, 촬영 끝나고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재석은 민경의 몰입을 깨지 않기 위해 멀리서 지켜보며, 그 준현이란 민경의 상대역을 바라보았다.

‘근데, 언제 저렇게 빠진 거야?’

매일같이 촬영장에 와서 상대역을 봤지만 처음에는 저런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점점 반하게 된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미리 사전에 차단하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결국 재석은 혼자 불안해하면서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오빠, 이제 가자.”

민경이 차에 타자 재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네 상대역 말이야.”

“아, 준현씨?”

“그래 그 사람이 오늘 너에게 뭐라고 말하디?”

“일 이야기?”

“아니, 다른 거. 혹시 고백 같은 거.”

고백이라는 말에 민경의 눈이 커졌다.

“고백?”

“그래, 오늘따라 그 사람 눈빛이 나한테는 달갑지 않았거든. 마치 누군가를 노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말이 좋아 노리는 거지 사랑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에이, 설마. 준현 씨가 그러려고.”

민경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재석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민경아, 만약에 그 사람이 너에게 고백한다면 어쩔래?”

“거절할 거야. 오빠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민경은 의외로 단호한 모습을 보였지만, 처녀의 마음은 따스한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정말? 그래도 걱정된다.”

“오빠, 나 못 믿어요?”

“남녀 관계는 오늘과 내일이 달라서 말이야.”

“어이구, 걱정을 사서 해요. 사서 해.”

그러면서 민경은 재석을 보며 씨익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게, 내 속도 모르고 웃고 있네.’

재석의 걱정하고 표정이 안 좋아질수록 민경은 뭐가 좋은지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 놀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은데.’

민경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재석의 마음을 애태우게 하는 건 성공했다.

다음 촬영이 진행되었다. 민경은 재석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상대역인 준현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적인 이야기 말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름 재석의 걱정을 덜어 주고 있는 거였다.

‘민경이는 잘하고 있는데, 저놈 눈빛은 여전하네.’

상대역이다 보니 자주 얼굴을 맞대는 일이 있다. 재석의 입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눈빛이 달갑지가 않았다.

‘분명, 저거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말이야.’

민경이 재석의 바람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그 기회가 쉽게 나오지 않고 있었다.

드라마 후반 촬영에 돌입하면서 민경의 연기는 확실히 무르익었고 시청률도 괜찮았다.

이제 겨우 드라마 두 편 찍는 민경이지만, 극을 이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녀는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확실히 민경이의 연기력이 드라마를 하면 할수록 더 늘었어.’

스태프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고 특히 감독은 민경이 대사를 할 때면 뭔가 편안한 표정이었다.

“컷! 아주 좋아.”

감독은 웃으면서 컷을 외치더니 손짓하며 배우들을 불렀다.

“확인해야지.”

감독은 웃으면서 연기자들을 모아 놓고 방금 찍은 신을 보여 주며 이야기했다.

“여기 신은 아주 좋아. 민경씨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찍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난 이게 좋아.”

“흐음.”

민경은 혼자 고심하면서도 뒤에 있는 재석을 살짝 바라보았다.

재석은 손가락을 동그라미를 만들며 OK 사인을 보냈다.

“감독님, 좋아요.”

“그래, 그럼 장소 옮기자고.”

다들 장소를 옮기면서도 민경이 쪼르르 달려왔다.

“좋았어요?”

“아주 좋았어. 감독 뒤에서 몰래 보는 게 귀찮았지만, 카메라 잘 나왔어.”

“히히.”

민경이 재석의 옆에서 웃고 있을 때 뒤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남자의 시선이 재석의 등 뒤에 꽂혔다.

“음?”

순간 고개를 돌렸지만, 그 시선을 줬던 인간은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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