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18화 (1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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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은 신지경의 어머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정말 데뷔를 빨리 시키고 싶으신 겁니까?”

“예, 물론이죠.”

“그럼, 여기서 연기력 검증을 좀 하고 싶네요.”

“여기서요? 하지만, 누가······ 설마?”

재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민경에게로 향했다. 민경은 둘의 이야기를 듣자 깜짝 놀랐다.

“응?”

“이럴 때 현역 연기자가 좀 봐줘야지.”

재석은 민경을 앞세워 일을 진행했다. 그 미래의 스타가 아무리 잘나더라도 지금은 겨우 연기에 발만 살짝 걸치려는 상황에서 연기를 잘할 리가 없었다.

“그럼, 누군가가 교통사고로 큰 병원 응급실에 입원해서 정신 못 차리고 누워 있다고 하고, 그 사람을 찾아간 연기를 한번 해 봐.”

상황 설정까지 자세한 지시는 아니었지만, 대충 놀라는 연기 정도만 파악하는 걸로 민경은 만족하려고 했다.

“히이, 할아버지.”

순간 연기를 펼치는데, 재석은 무덤덤했지만, 어머니는 입을 막으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딸의 연기를 보니 너무 웃긴 거였다.

다행히 그 소리가 신지경의 귀에 들어가진 않았다.

“그만.”

연기를 멈춘 건 재석이었다. 결국 신지경은 상황에 떠밀려 연기를 펼쳤지만,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아, 저, 어머니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한데, 연기 학원을 좀 다녀야 할 것 같은데요.”

“아 네······.”

잘나가는 배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어머니는 별말 할 수 없었다.

실력이 대단치 않은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신지경이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펼칠 정도의 담력을 가졌다는 걸 확인했다.

“학원은 따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회사로 찾아오셔서 연기 선생님을 찾으시겠습니까?”

“회사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녀가 따라 나오려고 했다.

“나오지 마세요, 불편하시게. 바깥바람이 찹니다.”

재석은 둘을 못 나오게 하고 난 뒤에 차에 올라탔다.

“푸하하하.”

민경은 차에 올라타자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왜 웃어.”

“신지경이요. 아직 어린애가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요. 실력은 분명 대단치 않은데 의지는 확실히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 의지는 확실하지. 아마, 내일부터 아역들 보겠네.”

둘 다 학업이 바빠서, 늦은 시간에 잠깐 한두 시간 정도만 볼 거다. 물론 회사에서 일거리 따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야겠지만, 아역을 원하는 곳은 많다.

“근데, 어린 연기자들은 대부분 뭐 해요?”

“가장 많은 건 의류인데. 학생복 광고가 많지. 어떤 곳은 각 지역별로 하는 곳도 있어서 일거리 찾으면 좀 멀긴 하지만, 그쪽으로 가서 촬영도 해. 아역이 필요한 역할 같은 건 좀 경쟁이 있지만, 해 볼 만하지.”

“근데, 문자영은 연기력을 안 봤잖아요.”

“문자영은 아역으로 몇 개 출연을 했어. 민경이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지도를 좀 쌓았지 연기력도 아역치고는 좋은 편이고. 다만, 불미스러운 사고가 터져서 이쪽으로 왔지만.”

재석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민경은 나름 심심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오늘 신인 연기자를 봐서 기분이 좋네요.”

“하아, 나도 좋긴 한데, 저것들 언제 다 관리를 하냐.”

“민철 씨 있잖아요.”

“아니, 그 녀석도 한 명 또 맡을 거야. 지금 회사에서 사람들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오디션 합격 시켰거든.”

“에휴, 이래저래 고생이 많네요.”

“그래, 하루빨리 이 회사를 떠나서 내 회사를 차리고 싶을 정도다.”

“나가면 꼭 저 데려가실 거죠?”

“물론.”

“근데, 계약 기간은요? 저 아직도 5년 남았어요.”

“걱정 마라. 그건 그때 가서 다 해결되니까.”

“음? 무슨 방법이 있나 보네요.”

재석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해 봐야 좋을 것 없고 혼자 알고 있어야 예정된 미래가 다가올 거다.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어라. 나 따라다닌다고 고생했다.”

***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니 주명진이 한숨을 쉬며 아침 회의를 진행했다.

“이런 말하기 뭐한데. 회사에서 새로운 지침이 정해졌다.”

“무슨 지침 입니까?”

민철이 묻자, 주명진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회사에 갑자기 늘어난 인원에 따른 비용 문제다. 회사에서 연예인들 점심 밥값 상한선을 제시했다.”

“아니, 상한선이 있는데 새로운 상한선이 생긴 겁니까?”

“그렇다, 지금까지 상한선이 8천원이었는데 이제는 6천원으로 제한한다. 이건 데뷔한 사람들에게 적용하고 아직 데뷔 안 한 이들은 식비 4천원 지급이다.”

“네?”

데뷔를 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제한은 충격적이었다. 다들 데뷔한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아니, 왜 지금에 돼서야. 그런 겁니까?”

“인원 확충으로 인한 식비 절감이다.”

주명진은 다른 매니저들에게 이야기하면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팀장 정도는 회사에서 월급을 좀 주기 때문에 따로 식비에 대한 지급이 없지만, 재석을 포함한 일반 매니저와 그 아래에 있는 로드들은 그 식비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거, ‘회사가 돈 없으니 좀 참아라.’ 아닙니까.”

“그거 나한테 따져서 어쩌라고, 나라고 이게 좋은 줄 아냐. 그리고 일단은 한시적이야, 석 달 정도만 참으라고 해.”

주명진도 지금 지시 사항에 불만이 가득했다.

재석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래, 이맘때쯤이랬지······. 그때는 그냥 불만만 터트렸는데 지금 보니 회사의 자금이 말라 가고 있다는 증거네.’

생각보다 빨리 회사가 망해가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회귀 전이었다면 그냥 하루 종일 기분만 나빴을 거다.

‘슬슬 돈 굴릴 때가 찾아오긴 했네.’

아직 시작하지 않은 때였지만, 재석은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흐음.”

“재석아, 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닙니다. 그냥 연기자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답변을 생각 중이었습니다. 연기자들도 불만을 가질 만한 사안이라서요.”

“아, 추가로 한마디 한다면, 민경이처럼 드라마 주인공 한 번이라도 맡은 사람은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

“네?”

“회사에서 생각하는 중요 수입원이라서 내린 거야.”

결국, 민경이처럼 주연을 했던 이들은 예전처럼 간다는 건 중요 수입원이라 관리한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민경은 초기 계약 상태라 민경이 버는 돈에 비해서 적게 받는 편이다.

“그럼, 각자 나가서 이야기들 전해.”

회의는 끝났다. 재석은 별 표정의 변화가 없지만, 최민철의 표정은 정말 안 좋았다.

가장 직격탄을 맞는 이들은 이런 로드매니저들이다.

“민철아, 조금만 참아라. 이것도 한시적이라고 하니까.”

“예, 뭐 참아야죠. 그래도 밥값이 개인 사비로 안 나가는 게 어딘가요. 그래도 선배는 돈 안 깎이네요.”

“운이 좋을 뿐이지. 그리고 이 회사의 미래가 점점 안 보인다.”

재석의 말에 민철은 눈이 커졌다. 미래가 안 보인다면 이제 막 들어온 민철에게는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선배 진짠가요?”

“아직은 괜찮은데. 좀 더 두고 봐야지. 이대로 무너지는지 아니면 다시 일어서는지.”

함부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떠벌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해 봐야 미친놈 소리만 들을 게 뻔하니 말이다.

“······.”

민철은 뭔가 고심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진우 형이 한 말이 있는데, 선배가 나중에 퇴사해 따로 회사를 차릴지 모른다고 했어요.”

역시 민철과 권진우는 친한 사이라서 서로 감추는 비밀이 없었다.

“쉿, 아직은 계획만 세우고 있어.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하고 남들에게는 비밀이야. 말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재석의 뜻을 아는 이들이 좀 늘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은 진짜로 재석이 회사를 차릴 수 있는지 없는지 그때 가 봐야 아는 거로 생각할 거다.

“그럼, 나중에 보자.”

재석은 바로 몸을 돌렸다.

‘이때부터 징조가 있었는데 왜 전에는 몰랐을까?’

잠시 바보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정말 몰랐다. 회사가 망해가는 게 현실적으로 체감했을 때는 지금이 아니라 한 해를 거의 다 넘겼을 때였다.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빨리 몸을 뺄 수 있겠어.’

재석은 민경을 차를 태워 가면서 잠깐 입이 심심해져, 차에서 구비해 놓은 껌을 꺼냈다.

“이야, 이 회사 껌이 이때도 있었네. 아니, 이때가 출시 한 지 겨우 1년 됐나?”

그 유명한 자일리톨 껌이었다. 충치 예방이 된다면서 신나게 광고를 붙였지만, 그거 과장 광고였다. 겨우 한두 개 가지고 절대로 충치 예방 따윈 할 수 없다는 게 미래에 알려진 정보였다.

“이거 그러고 보니······.”

재석은 이때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던 제과 회사를 봤다. 국내 1위 업계지만, 이때 오른 주식은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맞아, 이거야!”

회사 자금 만들기 딱 좋은 상황의 물건들이 생긴 거였다.

“정말 때마침······.”

재석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젠장, 스케줄 가야 하는데.”

하지만, 재석은 급하게 차를 몰아 민경이 있는 곳으로 갔고 그녀를 스케줄 장소에 내려놓고 말했다.

“민경아, 한 시간 있다가, 나 다시 올게.”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급하게 계좌 하나 만들어야 해서.”

“그럼 다녀오세요. 어차피 여기서 메이크업하고 준비하는 데 두 시간은 걸릴 테니.”

“고마워.”

재석은 급하게 증권사를 찾아가 계좌를 하나 만들고, 바로 주거래 은행의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후우, 내가 안 먹고 아끼고 모은 돈이 여기 있구나.”

통장에 있는 돈은 이천만 원이었다. 군을 나오고 정말 열심히 일하며 모으고 모으며 착실히 돈을 모아 뒀던 그 돈을 말이다.

‘원래 이 돈은 이사를 위해서 준비한 돈인데.’

홀로 살면서 좋은 집을 찾아가려고 모은 돈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시 돌아와서 인생 다시 사는데, 알고 있는 거 모조리 써먹어야지.’

최고의 히트 상품을 만든 회사의 XX제과의 주식을 봤다.

‘오지게 비싸네.’

한 주에 10만 원이었다. 재석이 아무리 이 제과 주식이 7배가 폭등하는 걸 알아도 몇 개 살 수가 없다.

‘지금 구매하면, 절정은 딱 반년 뒤에 한 주당 70만원······.’

전액 구매한다면 200주가량 된다. 사는 숫자도 얼마 안 된다. 수백만 주에서 겨우 200주지만, 돌아오는 수익은 7배가 되어 돌아온다.

‘사자.’

딱 반년 뒤다. 그때 빼면 된다. 그 돈이면 작은 사무실 열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차피 그 뒤에 민경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금방 건물을 올릴 수 있게 된다.

결정을 하자 주식 구매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다시 민경에게 돌아오자, 이제 막 촬영에 돌입하기 전이었다.

“오빠, 제때 왔네.”

“어, 미안 좀 늦었다.”

“괜찮아.”

민경은 쿨하게 잠시 자리 비운 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광고 촬영이었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네.”

촬영이 시작되자 민경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 주며 촬영에 임했다. 사진작가가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부웅!

재석은 핸드폰이 울리자 촬영장에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재석아, 일거리다.)

“예, 팀장님 어떤 겁니까?”

(신지경의 일이다.)

“벌써요?”

(그렇게 됐다. 회사에서 하루빨리 수익을 내라는 통에 아동복 광고 하나 물어 왔다. 날 잡아서 그쪽과 미팅해라.)

“알겠습니다.”

회사 측에서 자금 부족으로 없는 일거리를 만들어서 돈을 벌어 오게 만들 심산이었다.

“아동복이라니, 큰돈 안 되는데 말이야······.”

아무리 방송사지만, 돈 나오는 액수는 차등적이다. 그만큼 재석의 말은 회사의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회귀 전이었다면 몰랐을 일이지.”

그때는 이름 없는 연기자 둘 데리고 이곳저곳 어떻게 해서든 데뷔시키려고 했었을 뿐이다.

“상황이 달라지니 보는 것도 달라지네. 정말 주식을 산 건 다행이야.”

재석은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이면 민경이한테 줘야 할 돈을 못 주는 지급 불이행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는데.”

당장은 상관없지만, 드라마에 들어가고 끝날 때쯤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된다.

“지급 불이행이라······.”

어쩌면 이 문제 때문에 회사의 파산이 가속화될 수 있었다.

“그 지급 불이행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미리미리 확인해야겠어.”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돈이 들어갔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면 회사의 재정이 낭떠러지라는 소리다.

재석은 이제부터 돈이 들어갔는지 안 갔는지 회계 내용부터 착실히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확인하면서 때를 기다려야겠어.’

***

드디어 눈꽃연가의 대본 리딩을 하는 날이 찾아왔다. 감독과 작가 포함 네 명이 자리를 했고, 다른 자리에는 여러 배우가 자리했다.

“후우.”

재석은 배우들이 앞에서 대본을 읽으며 연기하는 와중에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이다.’

이 드라마에 출연한 주연은 향후 10년의 길이 바뀐다. 그 안에 민경이 포함되었다.

대본 리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다들 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이들이 참여해서 그런지 별 문제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좋아요. 첫 촬영이 시작할 때 다들 보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윤정호 감독이 마음에 들었는지 종료 선언을 하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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