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20화 (20/152)

20

“수고하셨습니다.”

눈꽃연가의 첫 촬영이 끝나고 들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곧 이 촬영은 진행하는 내내 바빴지만, 동시에 여유로웠다.

출연자들 대부분은 연기에 어느 정도 관록이 있었고 민경처럼 신인은 겨우 일부 그나마 민경은 벌써 드라마 촬영만 세 번째다.

나름 익숙해져서 신인 티는 벗어던진 상황이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민경이 인사하면 재석이 옆에 붙어서 인사했고 누구보다 먼저 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으으! 기대된다.”

차에 올라타자 민경이 한 말이었다. 물론 드라마가 아니라, 시상식 때문이다.

“오빠, 그날 나 시상식에 데려다주면 오빠도 구경 같이해요?”

“그 자리는 아니지만, 대기실에서 보게 될 걸.”

매니저가 시상식장에 얼굴 보일 일이 없으니 대기실에서 대기다.

“시상식장에는 없고요?”

“매니저가 거기 갈 일이 없다.”

“난, 저 멀리서라도 시상식장에 있을 줄 알았는데.”

***

스륵!

수많은 차량이 시상식장에 왔고 주차하는 것도 엄청난 일이 될 정도로 바빴다. 거기에 차에서 내리는 연예인들 모두 다 한결 같이 멋지고 화려한 복장으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영화제였다면 레드 카펫을 밟았겠는데.’

아쉽게도 방송사 시상식에는 레드 카펫은 없지만, 포토라인은 있었다.

찰칵! 찰칵!

수많은 기자들이 시상식장에 찾아온 연예인들의 사진을 찍었다.

“지인표와 김인주다.”

“찍어.”

아직 포토 라인에 올라서지도 않았는데 카메라의 셔터가 터져 나왔다.

역시 몇 편의 드라마를 찍으면서 나름 잘나가는 스타가 된 지인표와 김인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찍으려고 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하하하, 수고들 많으십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가 카메라맨들을 향해 웃음을 날렸고, 그와 같이 등장한 김인주 역시 입가에 미소를 살며시 보였다. 두 사람이 같이 포토라인에 섰다.

두 사람이 포토라인에 서자 무섭게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배우들의 시야를 완벽하게 빼앗은 걸 넘어 시력을 상실하게 만들 정도로 수도 없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두 사람이 포토라인을 빠져나가 시상식장으로 들어갔다.

“후우.”

민경은 깊게 심호흡을 했고 그녀의 옆으로 맛있는 첫사랑에 출연했던 정진이 있었다.

재석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경아, 광고 찍는다고 생각해. 그럼 돼.”

“네.”

민경은 그 말에 마음이 안정되는지 손을 흔들었고 정진이 말을 걸었다.

“매니저와 무척 친하네.”

“당연하죠. 저를 얼마나 챙겨 주는데요.”

“어차피 매니저와 연예인은 비즈니스 관계인데······.”

“무슨 소리, 아무리 비즈니스라도 재석이 오빠가 너무 잘해 줘요.”

“매니저 잘 만났네. 내 매니저는······.”

정진이 뒤를 살짝 보자 그의 매니저는 하품하면서 피곤함을 보이고 있었다.

“어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스태프 한 명이 손을 흔들면서 두 사람을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 뒤에 있는 커플도 같이 들어가면서 네 명이 한꺼번에 포토라인에 서게 되었다.

팟! 팟!

무수히 많은 플래시가 터지면서 그 네 사람의 포토 타임이 끝나 버렸다.

재석은 다른 길을 통해 민경의 뒤를 쫓아갔다.

대기실에 들어가게 되자, 민경은 여기 처음 온 사람처럼 둘러보기 바빴다.

“아.”

드라마를 찍고 광고를 찍었지만, 방송사 안에 들어와 대기실이란 걸 경험할 일이 없었는데, 거의 한 해가 다 지나가는 이날에 이걸 보게 되었다.

“이야.”

문제는 민경만 이렇게 보는 거였고, 다른 이들은 전에 대기실에 온 적이 있는 모양인지 민경보다는 반응이 덜했다.

특히 정진은 아주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여기서 이제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면 돼. 특별히 할 거 없으니까.”

“근데, 매니저들은 어디서 기다리죠?”

민경의 물음에 정진이 대답했다.

“곧 올 거야. 매니저들도 딱히 기다릴 곳이 여기 말고는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정진의 말대로 각자의 매니저들이 들어와서 자리하게 되었다.

다들 한 번씩 얼굴을 봤던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자신이 관리하는 연예인이 무슨 사고 터트리면 매니저가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누구보다 먼저 그 사람의 정보를 알아야 하며, 심지어 누구와 연애하는지도 알 수밖에 없는 게 매니저다.

‘그나마 민경은 참으로 깨끗하지.’

정말 깨끗했다. 누구 하나 만나서 스캔들 터질 만한 사람과의 인연이 없었다.

거기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생각보다 스캔들이 난 사람이 없었다.

‘참, 이것도 인연이야.’

재석은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서 기지개를 한껏 폈다.

“하암, 졸리네.”

연기자들은 시상식 때 어느 정도 긴장감과 고양감을 느끼지만 매니저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편안한 순간이다. 모든 게 결과를 지켜보는 과정이라서 편했다.

‘어차피 오늘이 끝나면 또 촬영이네.’

잠시 내일 할 일을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지금 시상식장으로 들어가세요.”

연기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상식장으로 이동했다.

반대로 매니저들은 이제 대기실에 남아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아우, 졸리네.”

한편 재석은 갑자기 몰려든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단순히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이 되자, 그간 감춰져 있었던 피로가 밖으로 올라오면서 잠에 빠져들은 것이다.

그 뒤로 재석이 잠시 눈을 떴을 때는 민경의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 도와주셨던 모든 분들, 감독님, 여러 스태프분, 소속사 사장님, 부모님, 매니저 오빠, 코디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재석은 그걸 슬쩍 보고 피식 웃었다. 그녀의 신인상 수상은 이미 알고 있는 거였다.

그 순간을 잠시 본 뒤 재석은 다시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잠에 빠져든 것이다.

“······.”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것을 느낀 재석은 슬며시 눈을 떴다.

“오빠, 이제 정신이 들어요?”

“어? 민경아. 시상식은······.”

“다 끝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갔어요. 오빠만 지금 여기 남아 있는 거예요.”

“아······.”

재석이 고개를 돌려 보니 이미 다른 이들은 떠나고 없었다.

“정말, 얼마나 잠이 왔으면 사람 가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어요.”

“아, 미안.”

“제 수상 소감도 못 들었겠네요.”

“아니, 들었어. 중간에 잠깐 잠이 깼어.”

“에이, 거짓말, 제 수상 소감이 뭐였는데요.”

민경이 자신 있게 묻는 말에 재석은 기억이 날 듯 말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뭐더라······. 절 도와주셨던 모든 분들 감독님. 아··· 여러 스태프분, 소속사 사장님, 부모님, 매니저 오빠, 코디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민경은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놀라고 말았다.

“다 기억하네요.”

“하암, 중간에 잠깐 깼다니까······.”

“그러고 다시 잔 거고요?”

“응.”

재석은 그 말을 하면서 앞장서서 걸었다.

“아우, 늦어서 빨리 가야 해. 내일 촬영 일정 있잖아.”

한참 드라마를 찍는 중이라서 촬영 일정이 아주 꽉꽉 채워져서 잡혀 있었다.

“아이, 드레스 입고 어떻게 빨리 가요.”

민경은 옷자락을 붙잡고 재석을 쫓아가기 바빴다.

시상식장에서 가장 늦게 나오게 된 두 사람이었지만 빠져나가는 속도는 누구보다 빨랐다.

“민경아, 너 오늘 무척 예쁘다.”

“정말요?”

“그럼.”

민경은 배시시 웃으며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동시에 신인상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오빠, 나 연기 대상 같은 거 받을 수 있을까요?”

“받을 수 있어. 네가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고.”

“오빠는 정말 긍정적이네요. 전 거기까지는 못 할 것 같은데.”

“그걸 못 할 이유는 없어.”

재석은 민경의 연기력에 의문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녀의 재능과 노력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집중하게 될 거다.

“오빠, 그럼 연기 대상 같은 상 타려면 뭐부터 해야 해요?”

“지금하고 있는 드라마부터 잘해야지. 신인상 받았으니 우수상을 노려서 대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거야.”

재석이 가까운 목표를 제시하자 민경은 ‘반드시 해내겠어.’라는 의지를 다졌다.

“내일 촬영부터 열심히 하자고.”

“네.”

다음 날부터 눈꽃연가의 촬영 일정은 정말이지 바쁘게 돌아갔다. 모든 시상식 기간이 끝나자 무서울 정도의 촬영 진행 속도가 나왔다.

몇 컷 찍어서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재촬영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갔다.

보고 있는 재석도 편안하게 느낄 정도다.

‘이야, 이거 시원시원하게 가네.’

민경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면서 슬슬 다른 이들의 스케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할 때쯤 민철에게 전화가 왔다.

“어, 그래 민철아.”

(선배님, 진우 형 드라마가 끝났는데, 이번에도 쉬는 기간 없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쪽은 완전히 기회가 왔을 때 쉬지도 않는 심각한 일중독에 빠졌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면 워커홀릭이네.”

(네? 선배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잠깐만 촬영 일정 좀 보고 이야기하자. 잠깐만 기다려.”

재석은 기록해 놓은 촬영 일정이나 스케줄을 한번 보더니 내일 오후 촬영 일정이었다.

“내일 아침에 만나서 이야기하자. 권진우 씨가 온다면 직접 이야기하고, 아니면 너랑 이야기해서 대본하고 시나리오 건네줄게.”

(네, 알겠습니다.)

재석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 몸을 돌렸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민경의 상태가 제일 중요했다.

“다시 서울로 갑니다. 장소로 이동하세요!”

오늘 이곳에서 찍을 신을 다 소화했는지 조연출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민경은 재빨리 재석에게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오빠, 오늘 내 연기 어땠어요?”

“흐음, 괜찮았어.”

“으, 대답이 시원치 않은데요.”

민경은 좋았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는지 무척 아쉬워했지만, 재석의 눈높이가 있다는 걸 알고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다음 촬영장에서는 꼭 오빠 마음에 드는 연기를 할게요.”

“나보다 감독 마음에 들어야 할 건데.”

“감독님은 좋대요.”

“그럼, 됐어. 어차피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든다는데 내가 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잖아.”

“감독님이 잘못 진행하면요?”

“내가 말은 하겠지만, 그게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거야.”

히트작을 다수 만든 윤정호라면 고집스럽게 일을 진행할 거다. 이번 눈꽃연가를 거치면 더더욱 고집스러워 질 거다. 나름 거장이라는 자부심이 생겨 버리니 말이다.

“하긴, 매니저가 이야기한다고 달라지기는 쉽지 않겠죠. 그래도 오빠는 꽤나 감각 있는데······.”

민경이야 그걸 잘 알지만, 윤정호와는 그런 걸 자세히 이야기 나눈 적이 없었다.

“오빠, 그래도 가까이 와서 알려 줘요. 오빠가 말하는 거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흐음, 내가 진짜로 개입했으면 좋겠어?”

“네, 오빠가 그리스에서 보여 줬고, 드라마 촬영 전에도 제 연기의 미숙한 부분을 항상 잘 집어 주셨잖아요.”

“그거야, 감독이 원하는 게 뭔지 좀 생각해 보고 그런 것뿐이야.”

“근데, 그게 너무 잘 맞아떨어졌어요.”

민경이 촬영할 때면 신(Scene)을 얼마 소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들이 좋아했고, 촬영 중에도 재석은 연기가 좋으면 항상 감독보다 먼저 OK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너도 연기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어.”

“에이, 연기 연습했다고 감독님들이 좋다고 하진 않죠.”

민경도 이제는 아는 거다. 감독이 원하는 장면과 매칭이 잘 안 되면 다시 찍는 걸 반복한다는 걸.

“알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단, 무리한 간섭은 감독의 권위를 손상시킨다. 그건 알고 있지?”

“물론이죠. 저도 눈치라는 게 있다고요.”

“그거면 됐다.”

재석은 어차피 지금의 윤정호에게 특별히 간섭할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민경이 그런 요청을 할 거라는 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재석이 먼저 참견할 거라고는 이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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