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21화 (2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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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재석이 출근하기 무섭게 주명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이다.

‘팀장이 괜히 한숨을 내쉴 사람이 아닌데?’

이건 뭔가 있다는 거다. 무척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팀장님, 무슨 안 좋은 일 있습니까?”

“안 좋은 일은 무슨, 조금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래.”

일하기 힘든 거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에이, 회사일 힘든 거 하루 이틀입니까. 설마 가정사 문제는 아니시죠?”

“가정사 아니다.”

재석은 확신했다. 주명진이 회사의 지금 사정을 더 확실히 알고 있는 거다.

‘나야 회사의 미래를 알지만 현재의 세세한 상황은 모른다. 추측으로 대략 이럴 것이라는 정도지만, 나보다 직급이 높은 주명진 팀장이라면 더 확실히 알 거야.’

“팀장님, 저희 솔직해집시다. 가정사 문제 아니면 회사 일이라는 건데 이건 저도 알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재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주명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해.”

“여기가 곤란하면 장소를 옮기죠.”

아직 출근 안 한 사람들이 많아서 드문드문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그럼, 옥상으로 가자.”

주명진이 옥상이라는 말을 하자 재석도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옥상에 올라가자 주명진이 다시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회사 상태가 많이 안 좋다. 재무 관리도 엉망으로 되고 있고 무분별하게 사람 뽑은 거나. 가수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거나. 말이 아니다.”

“그럼, 사장님은 뭐 하시는 겁니까?”

“사장님 자리 비운지 몇 달 됐다. 아들에게 물려줬어. 현재 사장님은 이름만 있고 공석 상태야. 거의 모든 일처리는 아들이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장님이 공석?”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모른 척했다.

“그래, 사장님은 아들에게 회사 넘기고 아주 손 털었어. 회사가 망해도 별로 신경 쓸 분위기가 아니야.”

“하지만, 회사에 딸린 식구가 몇인데 그런 무책임한······.”

“사장님, 이미 건물하나 올렸어. 임대료만 받아서 노년을 보내고 싶은 거야. 나한테도 이미 넌지시 그 말도 했어. 그게 이 시기라고 생각은 못 했다.”

“그럼, 회사 명의가······.”

“이미 회사 명의도 바뀌었을 거야. 어차피 회사를 아들에게 넘겼으면 나도 솔직히 다른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생각이라는 말에 재석이 눈이 빛났다.

‘인맥 빵빵한 주명진이야. 이건 기회다.’

“팀장님, 그럼 다른 회사 생각하지 마시고 나중에 저랑 동업하시겠습니까?”

“뭐?”

주명진은 동업이라는 말에 눈이 커졌다. 재석이 꺼낸 말이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거였다.

“아니, 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뭐긴요. 회사가 그렇게 무너질 상황이 보이면 각자 살길 찾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사업을 하다니, 너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 거야.”

“작은 사무실 차린 자금은 있고, 일해 줄 연예인 문제라면 현재 두 사람 확보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라는 말에 주명진의 반응이 빨랐다.

“너, 임민경, 권진우 작업 끝낸 거냐?”

“거의.”

거의라는 말에 주명진이 더 깜짝 놀랐다. 거의의 뜻은 재석이 움직인다고 마음만 먹으면 그들도 함께 간다는 거다.

“계약은?”

“회사가 망하는데 계약이 문제일까요?”

“확실히 망하면 계약 문제는 의미가 없지.”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도 회사가 망하는 데 시간이 걸려. 지금 재무 상태가 엉망이라도 이대로 가도 1년은 버틴다.”

재석이 아는 미래와 같은 시점에 망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사이에 회사가 월급을 잘 안 주는 사태도 벌어질 겁니다. 팀장님 정도면 한 달 월급 밀려도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주명진은 처자식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상황에 월급 밀리는 건 치명적이다.

“흐음.”

월급 밀린다는 말에 주명진은 무척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넌 방법이 있는 거야?”

“저희가 살려면 하나입니다. 소속 연예인들에게 회사 사정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연예인들이 들고 일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회사가 더 확실히 망할 텐데.”

“회사를 말도 안 되게 운영하는 건 현재 경영자입니다. 저희가 아니죠. 저희는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아, 지금 있는 매니저들이야, 확실히 열심히 일하지.”

주명진도 잘 아는 거라서 재석의 말에 공감을 했다.

“그럼,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 재무 상태 공개보다 더 확실한 거 없지만, 그거는 내부자 소행 문제가 있으니 연예인들에 들어가는 돈 문제를 건드려야 할 거다.”

“연예인 돈 문제라면 지급 불이행?”

“이런 재무 상태라면 이미 몇몇 연예인은 정산이 미뤄지고 있을 거다. 핑계는 좋지, 정산이라는 걸로 지급을 미루고 있을 테니까.”

“그 진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겠군요.”

“하지만, 회사가 아직 망하는지 아닌지 감도 못 잡는 매니저들도 많아. 조금 어려운 정도라고만 생각하지.”

“팀장급이라면 다 알 텐데요.”

“그쪽은 회사가 망하기만 기다리고 있어. 각자 자기 연예인들 챙겨서 회사 차릴 생각만 하지. 바로 너처럼.”

“그럼, 팀장님은 왜 회사 안 차립니까?”

“난, 내 주제를 잘 알아. 남 밑에서 일하는 체질이지. 내 능력이 거기까지야. 넘버 투 정도가 내 한계야.”

다들 각자 살길 찾으려고 준비하는 거라면 로드 정도나 내용을 모르지 회사 한순간에 찢어질 거다.

“다들 딴 생각들 가득하겠네요.”

“이미 가득해. 뭔가 불씨만 당기면 돼. 내 생각에 그 불씨는 준비했던 가수들이 데뷔하는 것이 될 거다.”

“하지만, 그쪽 데뷔는 아직 멀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얼마 안 남았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야. 몇 달 뒤에는 끝날 거야.”

‘내가 알던 시기와 똑같아.’

주명진은 그 뒤에 폭탄 발언이 더 있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영화에 투자를 하나 했다. 가수 쪽 데뷔 시기와 맞물려서 같이 나갈 거야.”

‘그때다.’

재석이 알고 있는 폭탄은 이미 설치됐다. 돈이 이미 투자됐다면 회사의 재정이 엉망인 것도 이해가 된다.

‘사장 아들은 분명 영화가 성공할 거라고 여기고 있겠지.’

꽤나 무모한 투자였다. 모든 게 공격적이고 회사의 모든 재원을 쏟아붓고 있었다.

‘지금 회사는 빈껍데기다.’

자금이 말라 버린 회사는 회사가 아니라 유령 회사다.

“재석아, 회사가 빈껍데기가 됐어. 팀장들은 이 결정을 독단으로 내린 사장 아들에 대해 이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래서 회사를 살리기 보단 딴 생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한마디로 사장 아들이 아니꼽다는 거였다. 동시에 때를 기다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럼, 일하러 갈까?”

“네, 팀장님.”

“아, 그리고 네 제안 진지하게 생각해 보마.”

재석과 주명진은 옥상에 내려와서 서로 아무 말도 없이 평소 하던 일을 했다.

“그럼, 현장 다녀오겠습니다.”

재석은 밖으로 나가면서 미소를 지었다.

‘팀장들 전부다 딴 주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라면 주명진이 나한테 올 확률은 높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연예인들에게 확답 받는 일이 우선이다.’

사실 전달 주체로 일을 진행하는 게 가장 좋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낼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민경이었다.

***

가는 차 안에서 회사 이야기를 들은 민경은 깜짝 놀라면서 재석에게 반문했다.

“그거 진짜에요?”

“그래, 회사 안에 있는 가수 팀을 제외한 다른 팀장들이 딴 생각을 품고 있다더라. 나 역시 회사를 나와서 따로 사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사 상황이 그걸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구나.”

“그럼, 한순간에 다 찢어지는 건가요?”

“그렇지. 다들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야. 연예인들 계약 문제 때문에 다들 조용히 있지만, 회사가 제대로 연예인에게 해야 할 계약이 이행 안 되기를 기다리고 있어.”

“계약 이행이 무슨 문제 있나요?”

“소속사와 연예인의 기본 계약 구조가 뭔지 알아?”

“그냥 이런저런 내용이 있다는 걸 말고 기본 구조는 잘······.”

“소속사는 기본적으로 서비스 업체야. 연예인에게 일거리를 물어다 주고, 그 수익을 배분받는 게 기본이지. 그 기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 연예인 쪽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는다면 계약 위반으로 가는 게 기본 골자야. 근데 회사가 그 서비스 운영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그 서비스를 강제로 멈추게 만든다면?”

“설마 팀장들이 일부러?”

“맞아, 다들 딴 생각 품고 있다면 회사가 어려워지는 한순간 팀장들이 모든 걸 올 스톱할 거야. 그 책임으로 팀장들은 퇴사하고, 연예인들은 회사에 계약 불이행 사태 책임을 물을 거야. 자연스레 계약 해지 상황으로 치닫는 거지.”

“근데 이 이야기는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팀장님이 알려 주더라.”

“세상에, 팀장님도 회사 차릴 생각인가요?”

“아니, 팀장님은 딴 회사 알아보려고 하는데, 내가 회사 차릴 생각이니 같이 일하자고 영입 제안했다.”

그 순간 민경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너한테도 영입 제안하려고 했어. 꼭 안 해 줘서 서운하다는 표정이네.”

“진짜죠?”

“물론, 그래서 이 이야기 꺼낸 거고.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했어. 내가 회사 차리면 올 거야?”

“네.”

민경은 확실히 대답했다. 한번 의리를 맺으면 끝까지 가는 민경의 성격 때문에 대답도 시원했다.

“좋아, 그럼 한 명 성공이네.”

“다른 사람 또 있어요?”

“아직은 없어. 그리고 회사 움직이는 데 너랑 나랑 둘 가지고는 부족해. 코디도 한 명 구해야 하고, 팀장님처럼 인맥 좀 있는 분도 필요하고. 민경이 너 한 명으로 수익 나와도 월급 다 못 줘. 다른 연예인도 있어야 해.”

“시작부터 규모가 있네요.”

“회사가 곧 무너지니 사람 빼와야지. 그리고 소속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너무 뚜렷해서 말이야. 최소 인력이 필요하거든.”

재석은 한 번 해 봤던 사업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금의 드라마에서 민경이 네가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야.”

“어깨가 무겁네요.”

“무겁다는 건 맞지만, 전부 짊어질 필요는 없어. 어차피 다른 연예인도 들어올 거고 나도 네가 짊어질 거 일부를 나눠 질 거니까.”

재석의 말은 사실이다. 민경이 책임질 부분이 있지만, 결국 지금과 다르지 않게 된다. 본인의 일을 잘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 곧바로 회사를 나오거나 하지 않아. 너무 긴장하지 마. 너 지금 드라마 끝날 때까지는 별 문제없이 지나갈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아냐고? 팀장들이 서로 눈치 보는 게 몇 달 갈 거야.”

재석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특별한 변수는 존재하지 않기에 때가 되면 터진다.

‘내가 할 일 두 번째는 사람들의 확답이다.’

돈은 이미 불어나고 있었다. 재석이 전에 사 둔 주식이 조금씩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돈은 시간이 되면 끝날 문제다. 남은 건 사람이 문제였다.

재석이 촬영장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려 인사하는 동안 윤정호 감독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본을 보고 있었다.

“감독님, 걱정이 많으신 모양이죠?”

재석은 윤정호 앞에 에너지 드링크를 놓으면서 말을 붙이자, 감독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흐음, 아무리 대본을 봐도 상황이 배경과 안 맞아.”

“어느 신입니까?”

“15번.”

“오늘 촬영분이군요.”

재석은 이미 어떤 씬신인지 바로 떠올렸다. 그만큼 유명했던 드라마라 뇌리에 각인된 작품이다.

“작가들 때문이군요.”

“그래, 신인 작가라서 아직 미숙한 점이 있는 거야. 그래서 스토리텔링 작가를 붙였는데 아무래도 그 작가도 눈치채지 못 한 부분인 것 같아.”

“어떤 부분인가요?”

“회사 신인데 회사 경험이 없는지 아니면 경험이 짧은지 상황이 좀 안 맞아.”

“너무 로맨틱하기만 한가요?”

“맞아. 여류 작가의 감성은 좋은데, 회사 일이 시작부터 달달해.”

“흐음, 저라면 주인공 대사만 조금 바꾸면서 분위기를 잡겠습니다.”

“대사 바꿀 능력은 되고 나서 말하지.”

“흐음, 큼큼.”

재석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조금 건조하게 말을 했다.

“나, 왔어. 오늘 나간 일은 어떻게 됐어?”

대본의 대사에 약간 변화를 준 거였지만, 절반은 톤의 변화에 있었다.

“이야, 이거 놀랐는데. 매니저가 이런 실력의 연기력을 가졌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는데.”

“어깨 너머로 본 겁니다. 이 정도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요?”

“좋아,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극의 분위기도 바꾸지 않고 말이야. 그럼, 이다음 대사도 한번 해 보게.”

윤정호는 재석에게 연기를 한번 시키면서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야, 그런 사람이 혼자 나와서 회사 차리지 왜 회사에 소속되어 있대?’ 정도.”

“어깨 너머로 배운 것치고 꽤나 깔끔한 실력인데.”

감독은 그러면서도 대본에 빠르게 뭔가를 적고 있었다.

“회사 부분은 전 매니저 도움 좀 받아야겠는 걸.”

“뭐,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단숨에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이건 재능이 아니라 세월을 통한 경험이었다.

“좋아, 좋아. 그럼 부탁하지.”

윤정호는 웃으며 말했지만, 재석은 순간 오한이 느껴졌다.

‘사냥꾼의 눈이야, 먹이를 발견한 사냥꾼.’

“감독님,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어서 촬영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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