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22화 (2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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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촬영하는 동안 재석을 가까이 두면서 한 신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시켜 보기 시작했다.

“이건, 내 생각에는 이 부분 좀 더 씁쓸했으면 하는데 말이야. 좋은 아이디어 없나?”

“감독님은요?”

“내 생각은 말이야······.”

윤정호는 정말 재석의 능력이 필요한지 모든 걸 다 이야기하면서 조언을 구했다.

‘이거 안 말할 수가 없네.’

윤정호 감독은 정말 모든 걸 오픈한 상태에서 도움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쩌면 드라마가 성공한 건, 지금 감독의 이런 마음가짐 덕분이겠지.’

“뭐, 운이든 능력이든 할 수 있는 건 말해 드리죠. 그 도움이 얼마나 되는지 미지수지만.”

재석은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윤정호에게 답해 줬다. 그러자 윤정호의 표정이 아주 밝아졌다.

“이야, 아주 감각 좋은데,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뭘, 이런 도움을 주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다 해 주고 싶어.”

“제발, 그 마음 미래에서도 변치 않길 바랍니다.”

재석은 정말 그 마음이 안 변하길 원했다. 하나 사람 마음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게 바뀌기도 한다.

“물론이지, 난 이 드라마를 반드시 성공시켜서 내 회사를 크게 키울 거야. 그걸 위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정말 그러셔야죠.”

재석은 그리될 것을 알고 있기에 어긋나지 않기를 원했다.

“자네도 드라마 성공하면 원하는 걸 더 빨리 얻지 않겠나?”

“물론 그렇죠.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말하는데, 필요한 게 뭔가?”

“회당 출연료 지급 정산을 제가 원할 때 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급을 당겨 달라는 건가 지연해 달라는 건가?”

“굳이 따진다면 지연입니다.”

“회사에서 그걸 바라지 않을 텐데.”

“아직 자세한 사정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촬영이 다 끝나면 다른 배우들 다 정산하고 마지막에 민경이를 챙겨 주십시오.”

윤정호는 그 이야기를 듣자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혹시 다른 꿍꿍이는 아니지? 연예인 돈을 가로챈다거나.”

“절대 아닙니다. 민경이에게 손해가 안 가게 하려면 그 방법이 필요합니다.”

“전 매니저 말대로 하지.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산을 마지막에 해 달라는 것 정도야.”

이걸로 지급 지연시킨다면 민경의 돈을 보호할 수 있다. 현재의 회사는 민경의 돈이 들어가면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돈을 받을 때쯤 돈이 이미 증발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

이미 많은 돈이 사라진 상황이니 재석으로서는 미래에도 함께할 민경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감독님 원하는 답을 얻으셨다면 촬영 시작하시죠.”

“아, 그래야지. 조연출! 촬영 시작하자고.”

“네.”

윤정호의 말에 조연출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준비하라는 말에 연기자들이 감정 몰입을 시작했다.

촬영할 준비가 다 끝난 상태가 되자 윤정호는 곧바로 외쳤다.

“액션!”

힘찬 구호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장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촬영은 재석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빨리 도출시킨 결과였다.

연기자 같은 경우 개인적인 연기 욕심에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하긴 했지만, 그것도 이미 미래에 최종적으로 확정된 걸 이미 재석이 감독을 통해 제시했다. 배우들은 그 정해진 높이를 따라오는 게 살짝 버거울 정도다.

“오빠, 연기 어때요?”

민경이 몰래 속삭이듯이 물으면 재석은 손짓을 통해 답했다.

“부족해요? 어떻게.”

“그거는 말이야.”

재석은 둘이 가까이 붙어서 속삭이듯이 내용을 전달했고, 민경은 그 이야기를 듣자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뭔가 느낌이 온 모양이었다.

“둘이서 뭘 그렇게 쑥덕거려.”

윤정호는 민경과 재석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궁금해서 물었지만, 재석은 재빨리 대답했다.

“아, 잠시 이야기 좀 했습니다. 그럼, 가겠습니다.”

“전 매니저 어딜 가.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윤정호는 재석을 붙잡고 떨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오늘 촬영하는 내내 붙어 있겠어.’

그래도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을 거다. 돌봐야 하는 사람인 민경의 촬영 신이 끝나면 신데렐라처럼 사라지는 재석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경의 촬영 신이 다 끝나자, 윤정호 감독의 눈빛이 정말 재석을 떠나보내기 싫어했다.

“좀 있다 가지?”

“저도 들어가서 따로 일 봐야죠. 연예인만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로드 아닙니다.”

“하, 전 매니저 매몰차네. 딱 한 신만 남아서 좀 봐주지.”

“저 있을 때 잘 봐드릴게요.”

재석은 붙잡는 윤정호를 떼어 내고 차에 올라탔다.

“역시 오빠야.”

민경은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재석을 칭찬했다.

“뭐가.”

“오빠가 능력 좀 보이니까 감독님이 안절부절못하잖아요.”

“윤정호 감독은 드라마에 도움 되는 거라면 매니저라도 상관없는 거야. 방송국에 있었으면 내 말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걸.”

재석의 지적에 민경도 잠시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럴 수 있네요. 이전 드라마에서 매니저들이 감독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나마 감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연기자들이 감독과 의견을 주고받았을 뿐 매니저는 동떨어진 인간들이다.

“상황이 상황이란 말이지. 어차피 이번만 이렇게 될 수 있고 다음은 몰라.”

“전 반대에요. 오빠 감각은 정말 대단해요. 오빠는 반드시 감독들 사이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될 거예요.”

민경은 거의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을 했고 재석은 피식 웃었다.

“그래, 고맙다.”

***

다음 날 촬영이 없는 날 재석은 권진우와 최민철에게 회사 상황을 이야기했다.

“진짭니까?”

“예, 주명진 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할 순 없습니다.”

회사 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던 두 사람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럼, 제가 번 돈은 어떻게 됩니까?”

가장 먼저 권진우의 반응이 나왔다. 그렇게 일을 했는데 회사 재정 사정이 어렵다면 돈을 못 받는 거 아닌지 걱정이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해서든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 할 때는 최대한 지급을 늦게 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곧바로 나가서 회사를 이적할 수 없습니까?”

“계약이 문제입니다. 회사가 계약 해지를 하거나 위반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렵습니다. 법적 공방에 들어가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재석 역시 그런 공방을 거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연예인들을 지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돈 문제는 최대한 빨리 정산을 받을 수 있게 해 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일 진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민철에게 전달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재석 씨만 믿겠습니다.”

권진우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음을 느꼈다.

“그런데, 다음 작품은 선택하셨습니까?”

“선택은 했지만, 지금 상황에 일을 해도 될지 걱정입니다.”

“지급을 늦추는 겁니다. 그 다음에 직접 외주사에서든 방송사에서든 받으면 됩니다. 직접 받는 게 어렵다면 제가 하죠. 그 정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재석은 권진우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다 해 줘야 회사를 차렸을 때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마지막으로 전해야 할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전 회사를 차릴 겁니다. 제가 회사를 차리면 함께하겠습니까?”

재석이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던지자 먼저 입을 연 건 민철이었다.

“선배님, 전 하겠습니다.”

“······.”

민철이 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권진우는 조금 뜸을 들였다. 대부분 이럴 때 거절의 뜻이 반쯤은 들어 있는 것 같은 상황이지만, 재석은 달리 생각했다.

‘권진우는 거절하지 못하지. 그간 내가 보여 준 게 있으니까.’

아직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권진우의 선택은 제한적이다.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지금 계약한 것보다 계약 조건을 좀 더 높여 주셨으면 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현재 권진우 씨 계약은 5대 5, 그걸 높이면 6대 4로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계약 기간은 줄여 드리죠. 4년으로 말이죠.”

“그 계약 기간 진짭니까?”

“물론입니다. 현재 계약 기간이 7년인데 그거 3년 줄여 드리고, 그다음에 떠나시든지 아니면 계속 있으시든지 선택하시면 됩니다.”

재석은 나름 괜찮은 조건을 내건 것 같지만, 미래에 그가 벌어들일 수익을 생각하면 이건 재석이 후려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겠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의 조건은 꽤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회사를 언제 차리는 겁니까?”

“몇 개월 걸립니다. 회사를 시작하려면 일할 사람도, 장소도 그리고 돈도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 이 모든 걸 할 수 없으니 하나씩 준비하는 겁니다. 제가 담당하는 민경이는 하겠다고 했습니다.”

재석은 민경이 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렸다. 잘나가는 그녀가 선택했다는 건 그들의 선택에 좀 더 안심을 주는 요인이 된다.

“선배님, 진짜입니까?”

“물론, 내가 거짓말을 해서 뭐 하게. 어차피 회사 차려지면 다 알 거잖아.”

“그렇긴 하죠.”

“일단, 저와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은 아는 내용입니다. 물론 제의를 건넨 사람들도 알지만, 다들 비밀은 지키고 있습니다. 이게 알려지면 저나 연예인들이나 다들 회사 차원에서 제재가 가해질 겁니다.”

회사 차원에서의 제제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비밀은 꼭 지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철이 월급도 내가 신경 써 줄게. 나랑 같이하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월급 밀리게 만들진 않을 거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정도는 해야지.”

재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죠.”

다음 날, 재석은 회사에서 확실히 따라오겠다는 사람이 생겨서 그런지 마음이 편했다.

“재석아.”

“네, 팀장님.”

“너 통장에 돈 얼마 있냐?”

갑자기 주명진이 통장 잔고를 묻자 뭔가 입질이 왔다는 걸 느꼈다.

‘그래, 주명진 팀장님은 내가 회사를 차린다고 하니까 관심이 안 갈 수가 없겠지.’

“팀장님 개인 통장 잔고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개인 정보라서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 빡빡하게 굴긴. 나중에 점심이나 같이하자. 오늘 스케줄 오후지?”

“스케줄 오후 맞습니다만, 점심은 민경이랑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같이 먹자.”

뭔가 할 말이 확실히 있다는 걸 알아차린 재석은 잠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봤다.

당장 이곳에 자리한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일 정도로 출근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죠.”

재석의 동의가 주명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점심시간 때 민경은 눈앞에 주명진이 있는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같이 식사를 했다.

“아니, 팀장님이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뭐,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지.”

“물어볼 거요?”

민경은 뭔가 물어볼 게 있다는 말에 누구한테 물어볼게 있는지 궁금해 했다.

“재석아, 어차피 옆에 있는 민경 씨에게도 제의를 했겠지.”

제의라는 말에 곧바로 민경은 주명진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예, 제의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겠다는 확답도 받았습니다.”

“그럼, 돈 문젠 넘어가지. 너 투자는 받을 생각이냐?”

“투자를 받았으면 좋겠지만, 신생 기업에 누가 투자를 하겠습니까. 제대로 된 사업 설명회도 없었는데요.”

“오호, 사업 설명회도 알아?”

주명진은 재석이 허투루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남들이 보기에 재석에게는 정말 미천한 경험으로 이 험악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석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미 다 아는 거 한 번 더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사업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시작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뭐, 팀장님이 걱정하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 미천한 경험 그리고 쥐꼬리만 한 자본금.”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것도 겉으로 보이기에는 말이다.

“하나, 투자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바깥에서 큰돈 끌어들인다고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작더라도 제힘으로 일어서야 하죠.”

“의지는 좋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인력이라는 게 있다. 그들에게 월급은 줘야 할 거다.”

“월급 줘야죠. 많이 못 줍니다. 그건 미리 이야기해야죠. 다 챙겨 줄 만큼 돈이 많은 시작은 아니니까요.”

“그러다 사람 안 오면?”

재석은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웃어 줬다.

“갑자기 왜 웃는데, 이유를 말해 줘야지.”

“팀장님, 아마추어같이 왜 그러십니까. 옆에 민경이를 보고 있으면서.”

“크흠, 그래 궁금해서 그런다. 민경 씨가 진짜로 너랑 함께하는지 안 하는지 말이야.”

민경은 그 이야기를 듣자 곧바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해요. 오빠가 이야기하자 바로 OK 했어요.”

민경의 대답에 주명진도 반응이 달라졌다.

“진짜 대단하군. 잘 나가는 연예인 한 명 잡기도 어려운데 대답을 바로 듣다니.”

좋은 작품이 있어서 뭔가 OK 사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재석이라는, 그저 열정과 약간의 재능만 보고 민경이 한다는 게 주명진에게는 놀라웠다.

“팀장님, 그래서 본론을 말씀하시죠. 계속 저희들 이야기 들으려고 이러시는데, 저 점심만 먹고 바로 가야 합니다.”

“하, 정말 매몰찬 놈. 이제는 네 뒷배가 든든하다 이거지.”

“든든하죠. 민경이만 있으면 제가 뭐가 무섭겠습니까.”

확실히 그녀가 재석을 따라오기 시작하면 정말 무서울 게 없다.

동시에 재석의 말에 민경이 배시시 웃었다.

“그래, 확실히 말하마. 나도 너랑 함께하고 싶다. 진짜 고민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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