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23화 (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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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진의 답을 들은 재석은 역시 민경이라는 존재만 있다면 안 올 사람도 고개를 돌려 한번 보게 만드는 위력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팀장님, 그럼 저와 함께하는 거죠?”

“그래, 네가 민경이를 잡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지.”

“민경이만 잡은 건 아닙니다. 팀장님보다 먼저 권진우 쪽에서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뭐야, 그럼 다른 사람도 했어?”

“당연하죠. 아직 설득시켜야 하는 사람이 더 있긴 하지만, 그거야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일을 진행할 겁니다.”

“아직 사람 섭외가 끝난 게 아니네.”

“예, 그리고 부족한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부족한데.”

“코디가 없습니다.”

“그건 내가 할 게, 그 정도는 쉽지.”

“입이 좀 무거워야 합니다.”

“입 가벼운 사람에게 이야기 안 한다.”

주명진은 이미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석아, 언제 개시할 거냐.”

“일단은 그대로 있을 거고 저희와 관련된 연예인의 지급은 최대한 늦춥니다.”

“회사로 들어갈 돈을 잡겠다는 거냐. 우리만 그래 봐야 의미 없는데.”

“저희만 그러겠습니까? 다른 쪽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그리고 미리 손을 써놓은 이들도 있을 거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 외주사나 방송사에서 돈이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정산하게 재촉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따로 돈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면 될 겁니다.”

“우리가 그럴 권한이 없는데.”

“권한은 없지만, 대행의 권리는 있죠. 집에 누가 아프다든지 혹은 누가 결혼한다든지 급전이 필요한 핑계를 만들 겁니다. 빼돌릴 틈을 줘서는 안 됩니다.”

“뭐, 그렇게 한다면 가능한 일이긴 하겠군.”

내부적으로 받아야 할 돈을 질질 끌어도  회사의 재정이 무섭게 위축된다.

“회사 상태가 팀장님이 말한 상태면 한순간에 끝나 버립니다. 돈 잘 주다가 갑자기 일이 터지는 거죠. 그리고 회사 어음 같은 거 얼마나 뿌려져 있습니까?”

“어음이라면 회사 회계 쪽에 물어봐야겠지만, 좀 뿌려져 있을 걸.”

“그게 돌아오는 일자가 있을 겁니다. 그게 몇 번 돌면 외부에서 회사에 대한 신용을 의심할 겁니다. 그게 몇 번 돌았는지가 궁금합니다.”

“흐음, 알았다. 한번 알아보지.”

재석은 사업을 한 번 망해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어음이라는 게 한 번 돌고 두 번 돌면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럼, 저는 민경이랑 같이 현장에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 가 보고, 회계 쪽은 내가 알아서 문자 보내 줄게. 나중에 확인해라.”

“예.”

재석은 민경을 데리고 현장으로 갔다.

촬영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한창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석부터 찾았다.

“전 매니저 왔어?”

그의 눈에 연기자인 민경은 안 보이고 재석만 보였다.

“감독님, 저 안 보이세요?”

“아이고, 우리 여주인공. 내가 어찌 민경 씨를 소홀히 할까. 다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미리 챙기지 못해서 미안해.”

민경은 감독이 먼저 알아봐 주지 않아서 살짝 맘 상하려다가 재석을 찾는 이유를 알고 이해했다.

그래도 약간의 서운함은 있었다.

“자, 우리 할 일 많아.”

감독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은 재석은 대본을 펼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21번 신 봤지?”

“봤죠.”

“어때 느낌.”

“이 신은 약간 어중간한데 좀 침울한 분위기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대사도 시작이······.”

재석은 막힘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미리 대본을 완벽히 숙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감독님, 촬영 준비 끝났습니다.”

두 사람이 한참 대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조연출이 대화를 끊었다.

“아, 나머지는 이 신 끝나고 하자고.”

“예.”

재석은 잠시 뒤로 물러나서 민경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며 손을 들었다.

민경 역시 같이 호응해 주면서 열심히 하자는, 으싸으싸하자는 분위기를 냈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신 열여덟, 테이크 원.”

“액션.”

감독의 외침에 연기자들이 연기를 시작했고 재석은 뒤로 가서 이제 두 아역 연기자에게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역들보다 그 부모님들이 문제야.”

지금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봐야 곧바로 회사에 쫓아가 따질 거다. 회사 자금 사정이 어쩌고저쩌고 계약 해지를 외치며 법적 공방에 돌입할 거다.

“내가 데리고 가려면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하지만, 그걸 쌓을 만한 상황이 아니란 말이지.”

이전에도 재석은 민경을 앞세워 이런 사람이라는 걸 보여 준 정도에 그쳤다. 단순히 그거 하나 가지고 사람을 믿어 주기는 부족했다.

“일단 부딪쳐 보는 거 말고는 없네.”

재석은 촬영 일정이 없는 쉬는 날에 한번 약속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은 문자영과 그 할머니지.”

문자영의 할머니는 나이가 있어서, 재석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지 않고 다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디, 언제 쉬는 날이냐.”

재석은 현장에 나가지 않는 날 날짜를 맞춰서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 매니저!”

감독은 잠시 촬영을 쉬는 시간이 되자 무섭게 재석을 찾았고, 그 쉬는 시간 동안 재석은 감독 옆에 붙잡혀 있었다.

하지만, 대본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민경 옆에 있었다.

“오빠, 정말 인기 좋네요. 감독님이 옆에 끼고 살아서요.”

“에이, 여자가 날 좋아해야지.”

“좋아하는 여자 있잖아요.”

좋아하는 여자라는 말에 재석이 눈을 크게 뜨며 민경을 바라보았다.

“어디 누구? 내가 좋아하는 여자도 없고, 날 좋아하는 여자는 아직 못 봤는데.”

“여기요.”

재석이 멍한 얼굴이 되자 민경은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웃었다.

“야, 농담이 너무 지나치다.”

“호호호, 오빠 속여 먹는 거 재밌네요.”

드라마 중간에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즐겁게 대화를 하며 지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민경은 촬영이 얼마 안 가 다시 시작되기에 대본에 집중해야 했다.

촬영 스케줄은 생각보다 편하게 진행됐지만 동시에 지루하기도 했다.

어떤 장면은 같은 장소에서 낮에 찍어야 했고 기다렸다가 밤에 찍어야 하는 장면도 꽤 많았다.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길었고 다들 피곤했지만, 그래도 다들 참았다.

재석은 중간에 차를 운전해야 하니 잠시 차에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 시간을 가지려고 자리를 옮기려는데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재석아, 회사의 회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회계 팀에 알아보니 얼마 안 가서 자금 바닥이라고 하더구나. 어음도 이달 말에 돌아오는데 한 번은 다시 돌려 막기를 할 모양이더라.

어음은 뿌릴 때는 좋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어음만큼 지독한 것도 없었다.

“그럼, 다음 어음이 돌아올 때까지 현금이 없다면 회사가 주저앉을 확률이 높겠지만, 분명 어음은 가수 팀에서 준비한 아이돌 데뷔를 핑계로 막을 거야.”

이 가수 분명히 성공한다는 이야기로 어음을 막을 거다.

“이제 데뷔도 얼마 안 남았고.”

곧 일정이 잡힐 거다. 하지만, 재석은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아직, 주식 투자해 놓고 돈을 빼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주식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라면 주식 넣은 돈으로 별다른 이익도 못 건진다.

“하아, 타이밍 너무 안 좋다.”

일의 진행이 딱딱 맞춰서 되지 않았다. 회사가 위태위태해서 사람들의 뜻을 맞춰 합심하게 했지만, 주식은 지금 민경이 찍고 있는 드라마가 끝나고 몇 개월 더 지나야 뺄 수 있었다.

“참나, 이거 투자자 찾아야 하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투자자를 찾는 게 가장 첫 번째 방법이 된다.

“하아, 이거 참.”

회사에서 첫 시작부터 투자자 찾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쉽사리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지금 회사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니 시간은 좀 있어.”

어차피 재석이 너무 나서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알아서 적정 수준 대처할 거다.

재석은 좀 더 여유를 두고 움직이자는 마음을 먹었다.

***

돌아오는 주말, 재석은 문자영과 할머니, 신지경과 그녀의 부모님을 함께 만났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매니저 삼촌.”

재석은 공손히 인사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 그래.”

재석은 문자영과 신지경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줬다.

다들 자리에 앉게 되자 재석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재석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게 있다며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해야 한다는 걸 알렸다.

그렇게 두 아역의 가족들이 모이게 된 거였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전에 중대 사안이 있다 말씀드렸을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알려 드릴 겁니다. 일단, 그 전에 식당에 왔으니 일단, 주문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뇨, 먼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입을 연 건 문자영의 할머니였다. 굉장히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손녀를 위해서 매니저 일도 불사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고 계신 분이다.

문자영의 할머니가 꽤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며 재석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할 말은, 회사의 재정 상태가 어렵다는 겁니다. 이대로 가면 회사가 파산할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파산이라는 말을 입에 담자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럼, 회사가 망하는 겁니까?”

신지경의 어머님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아직 망하진 않았지만, 지금 회사는 이 재정 사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단, 전 여러분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회사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선 회사는 당장 망하지 않지만, 망한다 하더라도 제가 한동안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딱히 돈을 바라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혹 다른 회사를 찾으신다면 그쪽에 연결도 해 드리겠습니다.”

“그, 그럼 최근에 모델 일 한 돈은요?”

“그건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를 할 겁니다.”

돈을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말에 다들 안심한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회사가 어려운 지금부터 여러 가지 일을 시킬 겁니다. 회사 자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죠. 동시에 자녀들의 학업에 상당히 방해가 될 요소가 꽤나 많아질 겁니다. 동시에 의미 없는 돈벌이에 동원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업을 핑계로 일을 자제하셔야 합니다. 계약서 4조 9항에 미성년자의 경우 신체적, 정신적 건강 및 학습권, 수면권 등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어머, 그럼 그걸 핑계로 일 안 해야 하나요?”

“하지만, 너무 티가 나면 회사 차원에서 계약 위반 아니냐면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한 번은 해야 합니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아주 장기적인 일을 해서 방송사나 외주사에 돈을 최대한 늦게 받는 거나. 아니면 간단한 모델 일만을 몇 번 하면서 시간을 버는 겁니다.”

“최대한 피해의 최소화군요.”

“그렇습니다. 계약서를 쓴 이상 그걸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어설프게 했다가 손해만 보게 됩니다. 계약 위반으로 인해 위약금 아니면 소송에 걸릴 수 있습니다.”

재석은 이들에게 계약서 내용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야기하자 다들 침착한 눈이 되었다.

다만 문자영과 신지경은 무슨 말인지 아직 잘 이해를 못 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미성년자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매니저 삼촌,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전혀 모르겠어요.”

“뭐, 쉽게 설명하면 너와 네 친구 사이에 약속을 했는데 한쪽이 약속을 깰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란다. 물론 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우면 나중에 삼촌이 따로 설명해 줄게.”

“네.”

신지경에게는 다소 어려운 말이지만, 지금은 이 소녀의 부모를 설득시켜야 하는 부분이었다.

“크흠.”

처음으로 신지경의 아버지가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첫 대면을 하게 돼서, 좋은 자리가 되야 하는데 어려운 이야기 하는 자리가 되어서 조금 안타깝지만, 정말 이대로 하면 되는 겁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회사가 이대로 가면 반년 안에 저희 월급도 못 줄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월급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진짭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월급이 나오지만, 언제 그게 흔들릴지 알 수 없습니다.”

재석의 말에 다들 침울해졌다.

“지금 다른 팀장들은 짐을 싸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갈 마음을 먹고 움직이거나 회사를 차리거나 하는 방향으로요.”

보호자들은 정말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계약 해지를 요구해야겠군요.”

“사유는요? 돈 못 받았나요? 아니면 현재 망했나요? 겨우 예측입니다. 그걸로 계약 해지를 하려면 법적 소송도 불사해야 할 겁니다. 기다리면 되는 일을 수백만 원이나 써 가면서 하실 겁니까?”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회사는 망하지만, 여러분이 각자의 길 가는 걸 돕겠다고요.”

“그럼, 매니저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요? 회사 차릴 겁니다. 제가 관리하는 임민경 씨가 저와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따로 사무실도 알아보고 있죠.”

이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임민경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시작부터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고 연기도 열심히 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연예인이었으니까.

“참고로 제가 차린 회사와 계약을 원하시면 지금의 조건보다는 좋게 해드리겠습니다. 지금 5대 5니까 6대 4로 해 드리죠.”

다들 충격에 빠졌다. 그녀들의 보호자들은 나름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돈 문제에 관해서 찾아봤을 거다.

하지만, 아역에 관해서는 아무리 잘나도 돈 비율이 거의 고정이다. 그런 상황에 재석이 내건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그럼, 충격을 줬으니 확답받게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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