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25화 (2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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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드라마 촬영은 무엇 하나 바쁘게 돌아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재석은 그사이에서도 작가들을 만나야 했다.

“후우, 여기 두 번째 오는데 정말 오기 힘드네요.”

“촬영 일정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시기도 어려우시죠?”

“예, 일을 두 가지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재석은 내일 촬영 일정이 없어도 바빴다. 바로 두 아역을 신경 써야 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역들의 부모님이 일의 선택을 최대한 보류해 주고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곤란하지만, 충분한 휴식과 학업이라는 부모님들의 핑계가 너무 좋았다. 그래도 아주 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들어오는 광고는 촬영 일정이 아주 짧기 때문에 쉽게 응했다.

돈 정산은 재석이 재빨리 간섭해서 처리해 주고 있어서 그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하진 않았다.

“그럼, 시작할까요?”

재석은 대본을 한번 보더니 거침없이 작가들과의 토론을 벌였다.

물론 대본 내용의 변화는 긍정적으로 일어났다.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바로 눈앞에 있는 작가들이었다.

“그럼 이 부분을 고쳐서 감독님에게 대본을 전달해 드릴게요.”

“잘 됐네요. 그러지 않아도 촬영장에서 항상 저를 들들 볶으면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내놓으라고 반협박을 당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내용은 분명 여기서도 충분히 바꾸고 있는데 그쪽에서도 바꾸는 모양이네요.”

“현장 상황이나 배우의 연기력 상태 때문에 부득이하게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잘 따라와서 바꾸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재석의 말에 작가들은 한결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전에 다른 분을 만나셨을 때······ 친구분이였습니까?”

“아, 전에 저희들 태워 주셨을 때요?”

“네.”

“친구는 아니고 아는 동생이에요. 저희가 이렇게 입봉하기 전에 알던 작가 동생인데 보조 작가로 현재 일하고 있거든요.”

“그럼,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건가요?”

“네, 공모전 당선되고 지금 2년째 거기서 일하고 있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보조 작가라면 고생이 정말 많겠네요. 한번 만나서 위로해 주고 싶을 정도네요. 보조 작가 시절에는 엄청 힘들다고 들었거든요.”

“말도 마세요.”

세 작가들은 보조 작가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무섭게 달려들며 그때의 힘들었던 내용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이야, 다들 고생하셨네요. 거기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고요. 나중에 한번 작가님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필요할 것 같네요.”

재석이 위로를 해 준다면서 자리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눈이 반짝였다.

“그럼······.”

셋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이현지 작가가 손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손짓을 하자 재석이 외쳤다.

“물론이죠!”

“꺄아아! 그때 민경 씨도 같이 오나요?”

“함께하길 원하시면 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작가님들 말고 그때 봤던 분도 시간 만들어서 데려오세요. 제가 보조 작가님 안쓰러워서 술 한잔 사 드려야죠.”

재석의 말에 다들 좋아하면서도 민경을 또 한 번 만난다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만큼 민경은 점점 범접할 수 없는 스타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말 진짜죠?”

“물론입니다. 제가 거짓말해서 작가님들 마음 상하게 해 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재석은 그날 지출이 좀 생기겠지만,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다.

‘친해지면 손해는 안 본다.’

일단 알아 놓고, 두고두고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는 게 우선이다.

‘민경이도 나중을 위해서라면 이들을 알아 두는 게 도움 되니 자리에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재석의 계획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돌아갔다. 당장은 드라마 촬영 때문에 어렵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위치에 도달하면 한결 여유가 생길 거다.

눈꽃연가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방이 시작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재석과 민경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 회사 휴게실에 자리했다.

“둘이 또 있냐?”

주명진은 퇴근하기 전에 재석과 민경이 있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팀장님, 모니터링하려고 하는 겁니다.”

“재석이야 그렇다 치고, 민경 씨는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돈도 받았는데.”

“뭐, 집에서 혼자 보면 심심하기도 하고 여기서 봐야 일하는 느낌도 나고 그래요.”

확실히 집에서 보는 것보다는 나와서 보고, 서로 이거 어떤지 들어 보는 게 더 좋긴 했다.

“둘 다 똑같네. 먼저 간다.”

“예, 들어가세요. 팀장님.”

재석과 민경은 퇴근하며 돌아가는 주명진에게 인사했다.

주명진이 가자 TV 화면에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한류 드라마의 첫 스타트를 끊은 드라마의 첫 화가 방영을 시작하였다.

첫 장면은 버스에 올라타는 장면이었고 여기서는 차이가 없었지만, 여주인공 얼굴이 민경이었다.

“후우, 여기까지 왔네.”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감회가 새로워서.”

“오빠, 드라마 벌써 세 번째인데, 그래도 새로워요?”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조금 비슷해.”

“오빤 참 신기해요.”

“나한테 말 걸지 말고 저거 봐.”

재석은 TV나 보라면서 민경의 얼굴을 돌리게 했다. 한편으로 재석은 이 시기에 지독한 시청률 싸움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후우, 방송사 3사가 우연치 않게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가 같은 시간 때에 방영하는 불상사가 생겼지.’

원래 각기 다른 시간 때였다면 시청률 40퍼센트를 우습게 넘겼을 드라마들이 같은 요일에 같은 시간대로 겹친 거다.

‘천하의 여인, 송상, 눈꽃연가 이 세 편의 드라마지. 앞선 두 드라마에서 인기는 천하의 여인의 우세로 진행되었지만, 송상의 스토리 전개 역시 만만치 않았지.’

결론만 말하면 셋 다 재미있었고 시청자들에게는 뭘 골라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시킬 정도였다.

각각의 드라마 시청률은 평균 20퍼센트. 하나 그 세 드라마의 합산 시청률이 60퍼센트를 넘기는 상황. 거리에 사람이 일시적으로 없어지는 효과를 발휘하기 충분했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민경과 재석은 빠져들었다. 분명 민경이 출연하고 연기했어도, 회귀 전에 분명히 본 드라마였어도 그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역시 눈꽃연가는 최고의 드라마다.’

윤정호 감독의 전작과 비교해서 시청률의 차이가 있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재미는 두 드라마보다 눈꽃연가가 더 좋았다.

‘어차피 난 할 일 다 했고 민경이가 잘나가면 그만이야.’

지금은 미래를 위해 연기가 부족한 부분, 어떤 감정이었는지 확인하는 작업만 거치면 되었다.

물론 지금의 민경은 스스로 어디가 부족한지 확인하고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이 뭐였는지 더욱더 확실하게 연구할 거다.

짝짝짝.

드라마를 다 보고 재석은 민경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잘했다. 이제 더 이상, 시청자로서 너의 연기 실력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드라마가 끝나고 감상이 시청자라는 단서가 붙었다.

“시청자? 그럼 매니저로서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젊어서 탈이야.”

“젊어서?”

“그래, 지금은 학생 시절의 모습이라 괜찮지만, 이후에 학창시절 신이 끝나면 젊지만 앳된 얼굴은 사라져야 하거든.”

“아, 그럼 화장을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하나······.”

“그건 걱정 마. 화장이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좀 나이 들어 보이는 화장을 해 달라고 해야겠지.”

민경이 맡은 유진 역은 회차를 넘어가면서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그에 따른 화장이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아, 어려워요.”

“모습이 어려우면 감성이라도 끌어 올려야지. 가장 좋은 방법이 그 시절 음악 들으면서 감성을 만드는 거야.”

재석의 말에 민경이 손뼉을 쳤다.

“역시, 오빠야. 내일 플레이어를 사야겠네요.”

“내일 나 시간 없어서 못 따라간다.”

“괜찮아요. 혼자 나갔다 오면 되니까요.”

민경은 이 정도 일에 재석을 부를 생각이 없었다. 일 이외에 중요한 일 아니면 재석을 부르지도 않았다.

“처음이야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알아볼 텐데.”

“아뇨. 모르던데요. 간혹 시선을 느끼긴 하지만, 거기까지고······.”

재석은 민경의 말을 듣고 지금 민경의 인지도를 확인했다.

‘사람들이 긴가민가하는 수준. 정확히는 이런 스타가 이런 곳에 오겠어? 하는 불신.’

인간의 기묘한 심리에서 만들어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란 이렇게 만들어진다.

‘확실히 스타가 됐어.’

이 눈꽃연가를 통해 그녀는 진정 톱스타라는 자리에 오를 거다.

“그럼, 그렇게 해. 그리고 작가들이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더라. 같이 한잔 했으면 싶기도 하고 말이야. 나도 미래의 잘나갈 작가들 포섭하면 좋고.”

“저야 좋죠. 근데 드라마 촬영 때문에 시간이 날지······.”

“걱정 마. 지금 당장은 아니고 두 달 뒤 쯤?”

두 달 뒤라면 촬영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다. 지금 보다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그때 작가님들은 일 끝나나요?”

“끝나지. 대본이 가장 먼저 일이 끝나야 하니까. 나머지는 우리 나중이고.”

“그렇게 하면 너무 약속이 한참 뒤인데요.”

“드라마 스케줄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중간에 시간이 나겠지만, 아니면 쉬는 날을 선택해서 나와야 하는데, 그럼 쉬는 날이 없어지잖아.”

일이 힘드니 쉴 때 잘 쉬어야 했다. 그게 컨디션 조절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뇨, 저 술 마시고 싶어요.”

민경은 술 마시고 싶다면서 이야기하자 재석이 놀랐다.

“진짜?”

“술 안 마신지 좀 됐잖아요. 생각나요.”

술 별로 못 마시는 민경이 이리 말할 정도면 이전에 쫑파티 할 때 말고는 전혀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 거다.

“알았다. 최대한 그쪽이랑 이야기해 볼게.”

드라마 방영이 시작되면 꽤나 일정이 빡빡해지는데 술을 마시고 싶다는 민경을 말릴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은 거 할 때 스트레스가 확 풀리긴 하지.’

재석은 곧바로 작가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민경이 스케줄 비는 시간을 알려 줬다. 워낙 바쁜 일정이라 그 비어 있는 날을 알려 줘야 그날에 맞춰 작가들이 통보를 해 줄 거다.

재석이 전화를 끊고 10분쯤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는데 작가들이 되는 시간을 알려 줬다.

“예, 2주 뒤 토요일 좋습니다.”

날짜가 잡히자 재석과 민경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중요한 날이기에 날짜 선택이 신중해야 했다.

그렇게 날짜를 확실히 정하고 남은 건 기다리는 거였다.

***

며칠 뒤 재석은 회사에서 첫 방송 이후의 주간 시청률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18.05퍼센트

출발이 아주 좋은 경우의 드라마 주간 시청률이다. 눈꽃연가가 경쟁하고 있는 두 사극 드라마에 비해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드라마라는 걸 보여 준 셈이다.

“좋아, 흐흐.”

성공이라는 수순에서 민경이 그 안에 탑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충분히 그만한 실력을 선보였기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다음은 시청률 전쟁이겠어.”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이야기지만,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재미있으면 끝나는 거였다.

재석은 시청률 정보보다, 방 자매의 언니 만나는 날을 더 기대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날짜상으로 일주일 뒤에 보지만, 미래의 흥행 보증 수표 같은 작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재미였다.

‘그래, 방 자매······. 회귀 전에는 그녀들이 만든 대본을 내가 관리했던 연기자들에게 준 적이 없었지.’

회귀 전에는 워낙 인기 작가라서 대본이 나오면 연기자들이 치열한 배역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 유명 작가인 방 자매에게 확실하게 어필하는 게 최고지.’

인기 없을 때 인연을 만드는 것과 인기 있을 때 인연을 만드는 건 느낌부터가 달랐다.

“후후후, 기대되네.”

일주일 뒤.

재석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 자매의 언니인 방은미와 말 많은 세 작가, 재석과 한껏 주목을 받는 임민경이 자리를 함께했다.

“와아.”

방은미는 민경을 보자 첫마디가 감탄사였다. 그만큼 민경이 드라마 쪽에서는 혜성처럼 나타나서 찬란한 빛을 내뿜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한마디 하자 방은미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악수 좀.”

“네. 물론이죠.”

곧바로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고, 다른 작가들은 한 번 봤다고 감탄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민경과 더 많은 친분을 쌓고 싶어 했다.

“그럼, 다들 주문할까요?”

재석은 민경이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도록 따로 룸이 되어 있는 술집을 찾아 자리를 마련했다.

“네!”

거기에 이 식당의 장점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달달한 술들이 있다는 거다. 재석은 테이블에 붙어 있는 벨을 눌러 직원을 호출했다.

“네, 부르셨습······.”

직원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눈이 민경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멈춰 있지 마시고 주문 받으세요.”

“아, 아, 예······.”

재석의 한마디에 직원은 바로 움직였다.

“여기 과일 소주 가져다주시고요. 여기 메뉴에 있는 이거하고, 이거 가져다주세요.”

“아, 네······.”

“그리고 연예인 있다고 밖에 알리지 마시고 사인받고 싶거나 하시면 사인해 드립니다.”

매니저인 재석이 상황을 정리하면서 직원을 빨리 내보냈다.

“이야, 역시 매니저. 놀란 사람도 잘 진정시키시네요.”

“이쪽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뭐, 인기 연예인이 아니면 이럴 일은 별로 없지만 말이죠.”

재석은 한껏 웃으며 민경의 매니저라는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작가들에게 새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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