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26화 (26/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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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과의 술자리는 즐거웠다. 물론 재석이 끼어들 틈은 많지 않았다.

그녀들의 시선 집중은 민경이었다.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재석도 간간히 그녀들에게 말을 걸며 친분을 다졌다.

“근데 진짜 전 매니저님 덕분에 이렇게 술도 마시고 정말 고마워요.”

“뭘요. 작가님들이 쓰신 글이 잘돼야, 드라마가 잘되죠. 그리고 이번에 새로 본 방은미 작가님.”

“어머, 자, 작가라뇨. 아직 보조예요.”

“뭐, 미래에는 되겠죠. 지금은 보조라도.”

재석은 방은미를 칭찬하면서 그녀에게 수작을 걸었다. 물론 애인 삼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대본에 소속 배우를 집어넣기 위함이다.

“······.”

민경은 재석이 뭐 하는지보다 작가들과 수다 떠는 일에 그렇게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럼 은미 씨는 지금 방송사에서 계속 일을 하실 겁니까?”

“아니요. 저도 드라마를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됐어요. 그런데 방송사에 들어오니 이것저것 다 하고 있어요.”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가득한 상황으로 보였다.

“그럼, 언젠가는 방송사를 나와 직접 글을 쓰시겠군요.”

“그럴 거예요. 반드시.”

하지만, 방 자매는 수년간 보조 작가로만 활동하다가 입봉작을 내놓게 된다.

‘일단은 응원. 나중에 한번 더 보면 좋을 텐데 말이야.’

기회가 된다면 정말 그러고 싶다. 하지만, 방 자매가 입봉하려면 방은미의 동생이 작가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나?’

그게 궁금하지만, 자매가 만든 첫 작품의 시기를 생각하면 슬슬 공모전에 당선돼서 일하고 있어야 했다.

“후우.”

갑자기 방은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답답함이 있는 모양이었다.

“방 작가님, 무슨 걱정 있으십니까?”

“네? 아니요. 딱히 걱정은 아닌데 동생이 이번에 방송사에 들어왔거든요.”

“혹시 똑같은 작가로”

“네, 힘든 보조 작가 일을 시작했어요. 자기 딴에는 작가가 좋다면서 시작했어요. 솔직히 하지 말라고, 힘들다고 이야기했는데 말이죠.”

“작가 일이 힘들죠. 생각 안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써야 하니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끝까지 하겠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라고 했는데, 떡하니 공모전에 당선되고 방송사에 들어오니 이제는 걱정되기도 하면서 응원도 해 주고 싶네요.”

같은 방송사에 일을 시작했으면 오다가다 얼굴 한 번씩 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그럼, 나중에 자매끼리 같이 일하는 거 아닙니까?”

“설마 그러겠어요.”

아직 방은미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 쪽은 혹시라도 함께할 생각이 전혀 없어. 그럼 동생 쪽이라는 건데.’

방은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간접적으로나마 동생 쪽이 열정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의 생각이 궁금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

재석은 그 이상 묻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방은미 작가와의 인연의 끈을 만든 걸로 만족했다.

술자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끝났다. 작가들이나 민경이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다들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꺄아아, 언니들 다음에 또 만나요.”

“그래, 민경아. 다음에 또 보자!”

민경은 작가들과 포옹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언니들 잘 가요.”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하는 민경과 함께 재석도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하아, 오늘 재미있었다.”

정말 속 시원할 정도로 수다를 떨어서 그런지 민경은 아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오늘 모인 목적이 뭐였어요?”

“작가들이랑 잘 지내는 거. 미래에 누가 잘될지 알 수가 없잖아. 그러니 작가들에게 이렇게 인연 만들어 놔야 좋지.”

“흐음, 목적이 분명하네요.”

“당연하지. 작가들은 누가 잘될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함부로 대할 수가 없지. 작가들은 항상 감독들 옆에 있는 측근들. 누굴 성공시키게 하는 건 어려워도 누굴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건 손쉽지.”

재석은 작가들이 가진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도 감독 옆에 붙어 있는 작가를 함부로 깔 수는 없다.

“오늘처럼 이렇게 잘 대접해 주면 작가들이 어디 가서 나쁜 소리는 안 할 테니, 위험 요소를 없애 버리는 작업이지.”

이게 재석이 작가들을 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자. 내일 다시 촬영하려면 말이야.”

“네.”

재석과 민경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을 위해서 편히 쉬었다.

***

재석이 이날 촬영이 일찍 끝나서 회사로 복귀했는데 주명진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재석아.”

“네.”

“아무래도 회사 상황이 이달 안에 정리가 될 것 같다.”

재석은 그 말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이미 다른 직원들조차 회사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달에 정리된다는 이유는 뭡니까?”

“영화에 투자한 돈이 회수가 어려워졌다.”

“네?”

“전에 내가 말했었지, 투자한 곳이 있다고. 그곳에서 영화를 내긴 냈는데. 관객이 전혀 없어.”

관객이 없다는 말은 투자 회수금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아도 자금이 없는데 큰일이 난 거다.

“그거 가지고 부족한데요.”

재석은 가수팀이 마지막 일격을 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짐짓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그럴 수 있지만 내 예상은 저쪽에 있는 곳에서 일이 터질 것 같아.”

주명진은 턱짓으로 가수팀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내가 가수팀에서 준비한 그룹을 봤는데, 전부 다 수준 이하야.”

주명진도 방송국 들락거린 시간만큼 눈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수준 이하라고 할 때는 심각한 거다.

“데뷔는 언제랍니까?”

“영화 쪽에 투자금 회수가 안 됐으니 돈을 뽑으려고 무리를 할 거야. 지금 당장은 우리 팀 쪽에서도 돈이 안 나오니까.”

“사장님이 외주사에 재촉할 가능성은요?”

“결론만 말하자면 없어. 민경 씨 외주사는 내가 연락했더니. 네가 다 일 처리를 해서 손댈 게 없더라.”

주명진이 말한 일 처리는 돈 문제였다. 바로 지급을 나중으로 미뤄 달라는 부탁. 혹시 사장이 직접 찾아가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 달라 했었다.

“뭐, 미리 말해 두긴 했죠.”

“가장 큰돈 나오는 곳에서 지급이 밀렸으니 회사는 가수팀을 재촉할 거다. 데뷔를 빨리 시키자고.”

“큰돈은 못 벌 텐데요.”

“계속 돈 쏟아붓는 것보다 행사라도 돌리려고 하겠지.”

주명진의 말에 재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망했는데 행사를 어떻게 돌리나. 거의 불가능할 거다.

***

며칠 뒤, 가수팀에서 준비한 그룹이 데뷔 날짜가 정해졌고, 그 소식은 회사 내에 쫙 퍼졌다.

‘근데, 생각보다 빨리 망하네.’

재석의 근심은 그거였다. 아직 주식에 투자한 돈은 정점에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아직 돈 뺄 때가 아닌데······.”

사무실은 대충 처리할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차량이다. 연예인들을 현장에 데려다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지. 정점에 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빼면······ 세금과 수수료 떼면 1억 되나?”

재석은 그렇게 주식을 뺐다. 각종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니 정말 1억만 남았다.

“참나, 정말 깔끔하네.”

정점에 달했으면 천만 원 정도 더 붙었을 거다. 살짝 아쉬워하고 있을 때 민경이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웬 전화냐?”

-오빠, 회사 차리는 데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필요한 거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그녀의 말이 꽤나 반가웠지만, 동시에 고민도 해야 했다.

“저녁에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자.”

-응.

퇴근 후, 재석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민경을 기다렸다.

“오빠.”

“어, 왔어.”

약속 장소를 그녀의 집 근처로 잡아서 그런지 그녀의 옷차림은 패딩에 단순한 추리닝 차림이었다.

“꽤나 단출하네.”

“요즘은 이게 편해서······.”

“뭐, 상관없어. 어차피 본론이 중요하니까. 네가 도와줄 거 없냐고 물었지?”

“네.”

“일단, 결론만 말하면 회사가 예상보다 빨리 무너지려고 하고 있어. 준비된 돈으로 사무실하고 차량부터 빨리 구하려고.”

“준비된 게 없어요?”

“그래, 내가 돈을 불리기 위해 금융 쪽에 약간의 돈을 맡겼는데, 그 돈만 찾았어.”

재석은 이런 일을 감추지 않고 다 털어놨다. 함께 일을 하려면 상대방도 정보를 알아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제 드라마 촬영은요?”

“진짜 급하면 렌트를 해야지. 준비가 덜 돼서 큰일이다.”

“오빠, 그럼 돈 더 필요하세요?”

“특별하게 필요하진 않지만 투자라면 좋지. 혹시 주변에 투자해 줄 사람 있어?”

“그런 사람은 없고, 제가 투자 좀 하려고요.”

“응?”

솔직히 재석은 민경이 직접 투자하겠다고 하니 좀 의외였다.

“너 투자할 돈이 있었어?”

“물론이죠. 저 연말에 신인상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고요.”

“그래서 얼마나 투자하려고.”

“1억이요.”

“엥?”

그 이야기를 듣자 재석이 깜짝 놀랐다. 그 돈이면 민경의 여윳돈 전부를 투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흐음, 난 솔직히 너한테 투자받을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아무리 잘나가는 배우라도 데뷔 1년 차에 이런 큰돈을 준비해서 재석에게 내밀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차 사는 데 큰돈 들어가잖아요. 지금 오빠가 가진 돈이라고 해 봐야 겨우 낡은 중고차 정도만 사실 걸요.”

“뭐,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오빠, 비즈니스적으로 투자할 게요. 제가 뭐 아는 게 없지만, 이익이 나면 투자 지분만큼 돈 받잖아요.”

재석은 민경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웃었다. 말이 좋아 이익이지, 투자한 돈에 비해 받는 돈은 은행 이자보다 못할 수 있다.

“근데 이유를 듣고 싶다.”

“투자한 이유요?”

“그래.”

“뭐, 미래를 위한 거죠. 오빠 능력이면 회사 안 망하게 잘할 거고, 특히 오빠는 대본 보고 선택하는 감각도 정말 좋고.”

하나, 그녀가 지금까지 했던 드라마는 전부 시청률이 잘나가는 것들이었다.

“아니, 전부 그러지 못할 거야. 뭐, 돈 많이 버는 드라마보다는 어쩔 땐, 연기적 능력만을 봐야 할 때도 있을 거야.”

“저도 그걸 원해요. 오빠가 저를 관리하면서 단순히 흥행을 위한 드라마가 아니라, 진정 연기적 능력을 시험하는 드라마도 하게 할 것 같다고 생각해 왔어요.”

“뭐, 그때가 되면 말해. 내가 해 줄 테니까. 그것보다 투자를 할 거면 투자 계획서를 써야겠네.”

“투자 계획서?”

“그래, 투자를 했고 그에 따른 지분을 가졌다는 거지. 이 지분은 회사 자금에 따라 변동이 생겨. 주식처럼 말이야.”

“아, 그럼 제 지분이 작아질 수도 있겠네요.”

“걱정 마라. 그렇게 되려면 몇 년이 걸린다. 1억이란 숫자가 가진 지분의 크기가 작지 않으니까.”

“그럼, 나중에 지분을 늘려야겠네요.”

“뭐야, 날 바지 사장으로 만들려고?”

“에이, 설마요. 전 동등한 지분을 가진 사람이 돼서, 나중에 제가 인기가 없어져도 오빠가 절 못 버리게 하려고요.”

민경의 말이 재석은 너무 웃겼다.

“아니, 내가 왜 널 버려?”

“전 오래 안 갈 수도 있지만, 오빤 계속 사람들을 데려올 거잖아요. 그럼 전 그 위치가 낮아지겠죠.”

“그럴 일 없다. 내가 그렇게 안 만들 거니까.”

재석은 민경의 눈을 마주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민경아, 정말 고맙다. 나와 함께 일하겠다는 생각도 그렇고······ 이렇게 투자하겠다고 해 줘서.”

“뭘요.”

***

보름 정도 지나자 회사에 있는 가수팀에서 긴장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D-Day.”

재석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바로 오늘이 가수팀에서 준비한 그룹이 데뷔를 하는 날인 걸 알았다.

“재석아, 눈치챘냐.”

주명진이 조용히 재석을 불렀다.

“오늘 저쪽 결과 나오는 날이죠?”

“그래, 아마 저거 오늘 결과 나올 거야.”

“결과가 안 좋겠는데······.”

“저쪽 긴장한 표정을 보면 그냥 운에 맡기는 모양이야. 저쪽도 알 거야. 준비가 부족했다는 걸.”

“결과 나오면 저쪽은 어떻게 될 까요?”

“대책 회의 하겠지만, 전부 해고야.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게 명분이겠지. 그리고 내가 먼저 사표 던져야 할 때고 말이지.”

“먼저 나가시게요?”

“내가 나가야 회사가 빨리 무너져. 다른 팀장들도 그렇게 될 거야. 며칠 차이로 다들 나가겠지. 아래 있는 매니저들만 고생하겠지만, 며칠 걸리지 않을 거야.”

주명진은 마음을 확실하게 다잡았는지 기회만 보고 있었다.

이날 저녁, 가수팀에서 출격한 그룹은 데뷔는 했지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이삼 일이 지나도 가수팀을 불러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사장은 직접 가수팀을 불러들여 분노를 터트렸지만, 결과는 뻔했다.

다시 일주일도 안 돼서 주명진 팀장은 조용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나섰다.

사유는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주명진이 사직서를 낸 그날, 재석이 처음으로 사장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전재석 씨.”

“네, 사장님.”

“오늘부터 당신이 2팀을 맡아 주세요.”

자리 비워지니 승진하긴 했지만, 재석은 이 상황이 좀 웃겼다.

‘나도 나갈 건데. 승진시켜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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