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32화 (3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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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식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준비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윤정호는 재석의 옆에 계속 붙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해외 판권 말이야. 자네 말대로 일본 회사에서 비디오 판매 판권을 사겠다고 나섰네.”

“번역 아니면 더빙?”

“아니, 오리지널로.”

“한인 기업이군요. 한인 사회에서만 팔겠다는······.”

재석은 눈꽃연가의 첫 비디오 판매가 한인 사회의 판매였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푼돈이라도 돈벌이가 되니까. 그리고 돈은 아직 안 들어왔는데, 돈 들어오면 바로 전 사장한테 보내 주지.”

“이제는 매니저가 아니라 사장이라고 불러 주시네요.”

“당연하지. 회사 차리고 개업식까지 했는데 언제까지 매니저라고 부르겠나.”

“윤 감독님, 그럼 이제 저도 윤 사장님이라고 부릅니까?”

“아니, 난 감독이야. 사장이 아니야. 내가 회사 차렸지만, 감독으로 불리는 게 더 좋아.”

“그러죠. 감독님.”

윤정호의 마음에는 아직 사장이 없는 모양이다.

“감독님, 이번에도 다시 해외로 드라마 팔아야죠.”

“그거야, 방송사가 알아서 할 일이지.”

“어찌 그러겠습니까. 비디오 팔았으면 정식 판매도 해야죠.”

“크흠,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아니죠. 제가 알기로 올해 말에 문화 교류 사업이 여의도에서 열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열리면 뭐 하나 거기서는 말이 문화 교류지, 해외 드라마 재미난 거 판권 사는 장소 아닌가.”

문화 교류 사업은 간단히 설명하면 외국의 드라마를 한국에서 판권을 사서 방영하는 거다. 포OO, X-OO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외국 드라마, 외국 영화 계약이 여기서 진행된다.

“뭐, 그렇겠지만. 지금 만든 감독님 드라마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게 치면 한국에서 만든 수많은 좋은 드라마들 있잖나. 어림없는 이야기지.”

당시, 윤정호 감독의 말은 맞는 말이다. 이때까지는 그랬으니까.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재석은 끝까지 그의 등을 떠밀었다.

‘난 이때의 결과만 알지 내막을 모른다. 그러니 관계자 등을 떠밀고 내가 직접 움직이면서 상황을 만들어야 하지.’

눈꽃연가가 좋은 드라마지만, 그것도 홍보해야 알아주는 거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게 눈꽃연가야. 작은 기회만 만들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재석은 이번 민경의 영화가 끝나면 움직일 생각이다. 즉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면 재석이 끼어들 이유가 없지만, 다른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면 그걸 바꿔야 했다.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감독님, 다른 누구도 아닌 윤정호 감독님 아닙니까.”

“허허허,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마워.”

윤정호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지만, 윤정호 감독은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띠리리리!

윤정호 핸드폰이 거칠게 울렸다.

“전화 왔는데 안 받으십니까?”

“어, 받아야지.”

그렇게 전화를 받는데, 들리는 목소리에 윤정호 감독이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아, 곧 집에 갈 겁니다. 예. 예.”

“#$%%.”

“물론입죠. 갑니다. 가요.”

드라마 쪽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사람이 아내의 전화 한 번에 그딴 카리스마 개나 줘 버리는 사태가 터졌다.

‘공처가였어?’

지금까지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그걸 아는 사람도 없었다.

‘철저히 비밀을 지켜 왔던 것. 아니면, 이 비밀을 아는 자가 극소수.’

그가 감추고자 하는 비밀일 수 있었다.

‘심심할 때 놀려 먹으면 좋겠어.’

재석은 살짝 미소를 흘렸지만, 윤정호는 그걸 보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먼저 갈게.”

윤정호가 얼굴도 돌리지 못하고 바람처럼 사라져서 못 본 거다.

“이런, 이런.”

“오빠, 감독님이 왜?”

“마나님의 전화가 와서 사라지셨다.”

“어머, 애처가?”

“······.”

여자들에게는 애처가로 보일 수 있다.

“설마, 공처가겠지.”

남자들에게는 사랑도 좋지만, 그렇다고 아내에게 휘둘리는 걸 바라진 않는다.

“오빠는 나중에 결혼하면 애처가가 될까요?”

“공처가를 잘못 말하는 거겠지.”

“으, 결혼할 여자 힘들겠다.”

“설마······.”

재석은 결혼할 여자를 힘들게 할 생각은 없다.

‘그러고 보니, 나 결혼을 한 적이 없구나.’

회귀 전후를 다 합쳐도 결혼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축의금만 열심히 내고 다녔구나.’

인연이 되는 사람이 없어서 결혼을 못 했고,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만날 기회조차 없어졌다.

“사장님, 어서 이리로 오세요. 한잔하셔야죠.”

결국 개업식은 술 한잔 기울이는 잔치가 되었다. 물론 다들 많이 마실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일을 가야 하니 말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모든 게 끝나고,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빠는 집에 안 가요?”

마지막까지 남은 건 민경과 재석이었다.

“아니, 난 그냥 조금 쉬었다 가려고.”

“설마, 사무실에서 자는 건 아니죠? 입 돌아가요.”

민경은 생각보다 세심한 여자다. 재석을 항상 걱정해 주니 말이다.

“알았다. 사무실에서 자는 건 피할게.”

*****

따각, 따각.

마우스를 움직이는 소리에 다들 재석이 뭔가 바쁘게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작업한 문서를 뽑고 가장 먼저 찾아 간 사람은 다름 아닌 민경이었다.

“오빠, 집에는 웬일이에요.”

“투자자에게 허락받을 일이 생겨서.”

허락이라는 말에 민경의 표정이 밝아졌다. 뭔지 모르지만 회사 경영에 한 발 걸치고 있다는 느낌이 뭔가 기분을 새롭게 하고 있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민경은 활짝 웃으면서 재석에게 마실 걸 가져다주고 한껏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자리했다.

“뭐가 그렇게 기분 좋은지 모르겠지만, 막상 이야기 들으면 좀 심각한 것들 많아.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거라서.”

재석이 민경의 들뜬 마음을 확 가라앉게 해 주자 그녀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진짜요?”

“그럼, 심각한 이야기야.”

재석은 준비한 자료를 보여 주며 입을 열었다.

“먼저 지금까지 네가 바빠서 듣지 못했던 회사 내역에 관한 걸 들려줄게.”

“후우, 긴장되네요.”

실제 투자한 돈이 움직인 결과를 보는 일이였기에 정말 한껏 긴장된 민경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민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잠시만요.”

“알았다.”

재석은 민경이 뭘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갔다. 지금 상황에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연기자라면 당연히 얼굴 표정에 궁금증을 가져야지.’

사람의 표정은 상황에 따른 얼굴 표정이 미세하게나마 달랐다. 거기에 타인의 성격에 따른 얼굴도 기억하며 그걸 따라 하는 건 표정 연기에 도움이 된다.

“오빠, 미안해요. 얼굴 좀 보느라고요.”

“차라리, 거울을 가져와.”

“아, 그럴까요?”

민경은 냉큼 달려가 거울을 가져왔다.

“그럼, 시작하지.”

재석은 곧바로 그간 재무 기록을 보여 주며 하나씩 설명했다. 기본적인 정보가 전무했기에 민경에게 하나씩 설명하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래도 투자자에게 대한 의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두 시간쯤 지나고 나서 민경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알아야 할 전문 용어가 많았고 돈의 흐름이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잠깐 쉬었다 할까?”

“네.”

재석이 쉬었다 하자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줄 몰랐던 그녀였다.

“오빠는 어떻게 이걸 다 알아요?”

“예전에 배웠어. 물론 나도 완전히 전문적이진 않아.”

“대단하네요. 회사를 하나 이끌어 간다는 게.”

“지금은 사람 숫자가 적어서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지만, 나중에 사람이 많아지면 회계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고용해야 해.”

재석은 계속 이야기하다가 민경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가 나왔다.

“여기, 직원 문화 복지 계획인데 이번에 특별하게 월드컵이 열려서 거기에 관한 내용을 넣었어.”

“월드컵이면······ 이번에 하는 거잖아요.”

“그래, 한일 월드컵의 티켓 관련 구매를 하려고. 혼자 보는 것보다 다 같이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서.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만······.”

“흐음, 이것도 같은 지분을 가진 사람이라서 말하는 거죠?”

“물론이지. 지금 현재 회사의 경영자와 동등한 지분을 가진 사람이니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

민경은 그 이야기를 듣자 뭐가 좋은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직원들만 해당되나요?”

“소속 연예인까지 해야지. 직원의 경우, 직계 가족은 포함시켜야겠지.”

“하지만 경기가 이곳저곳에서 열리는데, 다 보는 건 아니죠?”

“설마, 한국 대표팀 첫 경기만 볼 거야.”

“근데 액수가 크네요. 몇백만 원이에요.”

“좌석이 가까우면 많이 비싸져. 거기에 회사 사람들 숫자가 있잖아.”

“어차피 이건 방송으로도 하잖아요.”

“현장에서 보는 것과 차이가 심할 거야. 그리고 월드컵이야. 다시 한국에서 열리려면 내가 살아 있기 전에는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과소비 같아요. 회사가 생긴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걸 해요.”

“내가 괜히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이걸 하진 않아.”

“그럼 따로 하는 거 있어요?”

“있지만, 지금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뭐예요, 사람 궁금하게 하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이곳에서 얼굴을 알렸고, 이름 없는 이들이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제가 축구는 몰라도 한국 축구 수준은 대충 아는데, 월드컵 본선 진출은 몇 번 했지만 아직 16강 진출도 못 해 봤어요.”

“그래서 안 볼 거야?”

“맨날 지는 경기만 볼 텐데요.”

축구를 모르는 그녀도 한국 축구 수준을 이 정도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거야, 과거의 대표팀이지. 지금의 대표팀과는 다를 거라고 보는데.”

“오빠, 한일 월드컵이라고 해서, 대표팀의 기대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

“뭐, 어때. 희망을 품는 건 좋은 거니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죠.”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이런 거 아니면 언제 또 다시 이런 일을 즐길 수 있을까?”

재석이 살아 있는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즐기는 월드컵은 이게 하나다. 다음 기회는 없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서, 이번만 할 거야. 다음은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재석은 이번 기회에 정말 큰맘 먹고 이런 일을 추진하는 게 중요했다.

“정 마음에 안 들면 일단 회삿돈으로 하고 내 개인적인 돈으로 처리할게. 액수가 크긴 하지만, 차분히 내 월급에서 갚아 나가는 걸로 하지.”

민경은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재석을 향해 한마디 했다.

“아이, 진짜 오빠는 이 돈 안 아까워요?”

“안 아까워. 그리고 돈은 많이 벌 수 있어.”

재석은 정말 자신만만했다. 그 눈빛부터 행동까지 모든 게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정말, 오빠가 능력 있는 건 알지만, 저 자신감은 뭐야?’

민경이 그동안 재석과 지내며 알게 된 점은 그가 쓸데없이 일을 저지르진 않는다는 거였다. 그녀가 혼자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그 상념을 깬 건 재석이었다.

“민경아,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걱정되죠. 제 돈이 들어간 회사인데.”

“그렇게 걱정되면 나랑 재미난 내기 하나 하자.”

“내기요?”

“그래, 절대 불리하지 않을 내기.”

“뭔데요.”

민경은 갑자기 재석이 내기를 건다는 게 이상했다.

“한국 대표팀의 실력이 안 좋아서 네가 경기를 보는 게 아깝다는 거잖아. 만일 그게 아니라면 어쩔래?”

“하지만, 전 축구를 몰라요. 본다고 해서 이해도 안 되고요.”

재석도 알고 있다. 축구에 대해 골만 들어가면 점수가 난다는 거 말고 아는 게 없는 민경이가 축구 수준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렇게 하지. 이번 대표팀이 4강, 아니······ 이해하기 어려우니 준결승이라고 하자 거기에 가면 네가 지금까지 경기장에 들어간 돈의 절반을 내는 거고, 만약 못 들어가면 그 절반 내가 내는 거고.”

민경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재석이 미워졌다. 내용인즉 반드시 경기를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었다.

“정말 꼭 경기를 봐야겠어요?”

“어, 반드시 봐야겠어.”

“좋아요. 어차피 대표팀이 준결승까지 못 갈 거예요. 세계적인 축구 대회인데 쉽지 않죠.”

“그럼, 내기에 동참하는 거냐?”

“싫어요.”

재석 역시 쉽사리 내기에 응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민경아, 이유를 물어도 되겠어?”

“경기에 이기든 지든 오빠가 경기장에 가서 봐야 하니까요. 이번 한 번만 딱 눈 감고 넘어가 드릴게요.”

민경은 오히려 재석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허락해 버렸다.

“후회하지 않을 거다.”

절대 안 할 거다. 대표팀의 경기는 그런 걸 남기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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