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33화 (3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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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인승 승합차 한 대가 부산 경기장에 도착하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다들 붉은 티셔츠를 입고 곧바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인파가 경기를 보기 위해 움직였다. 그 안에 민경이 있었지만 사람들 무리 속에서 그녀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와아, 전 여기 올 때 진짜 긴장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네요.”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빨간 티셔츠들. 그 안에서 특정인 한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덕분에 직원들 소속 연예인들은 무사히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서는 바로 뒤에 있는 이들은 앞에 민경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 긴장된다.”

민경의 옆에 있던 문자영도 이런 경기장에 온 게 처음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아무도 없는 그라운드를 보고 있었다.

옆에 빈자리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채워졌다. 사람들로 가득 차자 재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뭘 두리번거려요?”

“뭘 좀 찾고 있어서.”

“찾는 게 뭔데요?”

“아주 중요한 일거리.”

이때 당시 예능으로 주목을 받은 특별 기획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이명규가 간다.

재석이 찾는 건 그거였다.

‘촬영이 여기 어디선가 할 텐데.’

분명 어디선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곧 재석의 눈에 촬영 현장이 보였다.

‘찾았다.’

“잠시 저쪽에 갔다 올게.”

그러자 민경이 재석의 옆구리를 툭 쳤다.

“오빠, 그 속 음흉해서 미치겠다. 저쪽에 가서 나 팔아먹게?”

“어허, 팔아먹다니. 이건 순수한 영업이야. 그리고 너 하나 가지고는 안 된다. 저기 옆에 있는 인간도 같이 끼워 넣어야지.”

재석은 아직 뜨지 못한 권진우도 얼굴을 비치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곧 맡을 배역에서 대사 한 줄 더 늘어날 터다. 물론 유명해지는 배우지만, 그 시기를 더 앞당기고 싶은 게 재석의 마음이었다.

“내가 오빠 회사에 투자 안 했으면 가지 말라고 했겠는데 투자한 돈이 생각 나서 보내 준다.”

“그래, 다녀오마.”

재석은 ‘이명규가 간다.’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 조용히 다가갔다.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재석을 막아섰다.

“가까이 오시면 안 됩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재석이 내민 건 명함이었다.

“그리고 저쪽에 보이시죠. 제가 관리하는 연예인입니다.”

재석이 가리킨 곳에는 이곳을 마주보고 있는 인기 스타, 민경이 있었다.

거기에 재석이 손을 흔들자, 따라서 흔들고 엄지를 치켜드는 그녀의 모습에 스태프는 급하게 촬영하고 있는 피디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전달했다.

피디는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 재석을 찾아왔다.

“아이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정말 임민경 씨 매니저입니까?”

“그렇습니다.”

재석이 저 아래에 있는 민경을 향해 손짓하자 민경이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았지만, 민경의 움직임이 단독으로 노출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임민경이다!”

아무리 축구 좋아하는 사람도 임민경이 움직이니 웅성거림과 동시에 자연히 그녀에게 다가오는 이도 있었다.

“사인 한 장만······.”

“죄송해요. 지금 촬영 때문에 와서요.”

“아, 아닙니다.”

그녀는 능숙하게 거절하고 재석의 옆에 도착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본 피디는 대박을 예감할 수 있다.

“저,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을 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대스타 앞에서 피디는 을도 아니고 병에 속할 정도로 나약해진다.

“그러려고 왔어요. 오빠한테 이미 설득당해서요. 근데 저쪽에 자리 너무 좁지 않아요?”

오디오 잡는 사람도 없어서 MC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있었고 작가, 카메라맨, 피디, MC, 패널 딱 한 명씩이었다.

‘정말 딱 한 명씩. 곤란할 정도네.’

그래도 필요한 인원 구성은 맞춰서 촬영을 진행할 수는 있었다.

‘자리 변경이 필요해.’

반대로 재석이 자리한 곳은 넓었다. 소속사의 연예인, 직원, 보호자 한 명 대동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출연하는 것도 좋지만, 저리 좁아서야······.”

“아, 그건······.”

피디는 민경이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정해진 좌석이 더 넓었다.

“차라리 자리를 옮기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건 다 해 드리겠습니다.”

“계획한 의도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회사 소속 연예인들이 있습니다. 자리를 옮기게 되면 그들도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렵지 않은 부탁입니다.”

“그리고 이거 일회성으로 끊고 싶지 않습니다.”

일회성으로 끊고 싶지 않다는 말에 피디는 재석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출연료 깎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물론이죠. 누구를 모시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상당히 저예산으로 계획된 일이지만 민경이 나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럼, 저희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이쪽으로 올 사람을 선발하죠.”

자리를 바꾸는 데 올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매니저들과 코디들이다. 그 안에 재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슬픈 사실이다.

“오빠, 저쪽으로 가면 난 어쩌라고.”

“어쩌겠어. 소속사 다른 연예인들 나오게 하려면 매니저가 빠져야지.”

“그럼, 뭔가 힌트라도 줘 봐.”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놔. 아쉬우면 한탄하고, 기쁘면 환호하고 그러면 돼.”

이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보여 줄 건 ‘감정적 솔직함’만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와 다르게 예능 프로그램은 오디오가 안 끊어질 거야. 조금 시끄러울 수 있지만, 그게 예능의 생태계라는 걸 명심해.”

“알았어요.”

“그리고 힘내라.”

재석이 할 말은 여기까지였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특별히 예능에 대해 훈련을 시킨 것도 아니고 다른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문제였다. 막상 눈에 보여서 한 것도 있지만, 이건 민경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노리고 한 일이었다.

“아, 저쪽에 신났네.”

민철이 이명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철아, 그렇게 신났다고 보지 마라. 저쪽은 일이고 이쪽은 진짜 쉬는 거지.”

그러면서 재석은 경기보다 이명규가 있는 곳을 봤다. 그와 인연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이라고 해 봐도 없다.

예능과 드라마는 서로 가까운 사이이면서 절대 섞이지 않는 곳이다.

‘예능 인재 섭외보다는 예능 바닥에 사람 하나 알고 있는 게 좋겠지. 그것도 확실한 인물로 말이야.’

재석은 미래의 많은 예능 스타를 생각했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들을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명규는 내가 손대서 될 사람이 아니야. 저런 거물 잘못 손대면 거덜 나지.’

재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는 사람이 필요하고 친분 있는 이가 필요하지, 데리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흐음, 그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

아직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만, 찬스가 온다면 만날 생각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선배, 혼자 무슨 생각하세요?”

“아, 그냥 축구 봐.”

“축구 보는 사람 얼굴이 뭐 그리 심각해요?”

재석은 잠시 시계를 한 번 쓰윽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환호할 시간입니다.”

재석의 말뜻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축구를 봤는데 갑자기 대표팀에서 첫 번째 골이 터졌다.

“와아아!”

사람들이 소리치며 환호하고 방송을 하는 쪽에서도 소리쳤다.

게스트들 역시 뭐라 외쳤고 민경은 혼자서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주변 사람들 귀를 아프게 할 정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

재석은 골이 터지면서 동시에 방송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방향을 보면 대충 누구를 비추는지 알 수 있다.

‘민경이 중심이야.’

스타가 있으니 거길 중심으로 잡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서 권진우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연예인은 항상 카메라와 함께 사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소외되면 그걸 참기 힘들어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결국 카메라가 잡히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재석은 민경의 입을 바라보았다. 멀리 있었지만, 그녀가 소리 높여 응원하는지 안 하는지 중요했다.

다행히 민경은 너무 목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응원하고 있었다.

‘다행히 몸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잘 즐기고 있어.’

가장 좋았다. 재석은 그렇게 웃으며 경기를 봤다.

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 밖을 빠져 나왔고 재석은 피디와 일 내용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이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

민경은 딱 이틀 더 영화 촬영하고 촬영 일정이 끝났다.

민경은 일정이 끝내고나서 한동안 쉴 계획이었지만, 예능 프로그램 일정으로 ‘이명규가 간다.’에 나가게 되었다.

그 안에 권진우도 섞여 있었고 나름 열심히 응원하며 적당히 말도 했지만, 확실히 주목받지 못한 연기자에게는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그래도 방송에 나온 덕분에 관심을 좀 받았고, 여러 대본들이 오기도 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데.”

프로그램 안에서는 별로 말한 게 없어도 대본이 알아서 들어오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생겼다.

“어디 보자.”

재석은 그런 대본들을 보다가 권진우 앞으로 온 대본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야?”

대본을 들고 있는 재석은 갑자기 입가가 씰룩거렸다.

‘이게 벌써 나와 있는 거였어?’

아주 좋았다. 정말 좋은 거였다.

권진우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이걸 기다렸지.”

대본이 대놓고 날아온 덕분에 재석은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권진우의 이전 영화 이력 때문에 날아온 대본이 분명했다.

“민철아.”

“네, 선배님.”

“이거 한번 권진우에게 건네줘.”

재석이 아무런 말도 없이 건네라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

“선배님, 이거 큰 거군요.”

“대본에 나온 주인공으로 지명됐어. 그래도 만나서 잘해야 할 거야. 그쪽에서 다시 연기에 대한 걸 확인하려고 할 수 있다.”

“예, 진우 형에게 확실히 말해서 준비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그래. 잘해야 할 거야.”

이번에는 전과 달라야 했다. 그래야 권진우가 전보다 더 크게 성장할 거다.

‘때마침 동갑내기 대본이 들어올 줄이야.’

아주 운이 좋았다. 그러다가 재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이때 그 배우가 혼자서 열심히 활동 중이었지.”

권진우가 나왔던 영화에 출연까지 했던 사람이지만, 지금 소속된 회사가 그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모델 전문이고 그에게 연기에 대해 제대로 케어가 힘든 상황이었다.

‘꽤나 긴 시간 인지도가 별로 없었지.’

나중에 뜨긴 하지만, 정말 길고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 소속사가 있을까?”

재석은 고민이 되었다. 소속사가 없다면 지금 잡으면 되지만, 소속사가 있다면 그를 놔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긴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미리 터트리면 안 돼.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흐름이 크게 바뀌면 안 돼.’

가장 중요한 정보의 흐름이 재석이 사용할 수 있는 허용 범위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일단, 현장에 한번 가서 확인하는 것 정도라면 상관없겠지.”

재석은 나중을 위해 확인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거라면 충분히 기다릴 만한 이유가 됐다.

“그래, 동갑내기로 인정받고 다음을 기다리는 거지.”

재석은 지금 그에게 새로운 날개를 펼치는 기회가 왔음을 인지했다.

“확인할 건 확인하고 챙길 건 챙겨야지.”

재석은 이런 좋은 기회를 아주 조심스럽게 준비할 거다. 그리고 먹을 생각이었다.

“그래, 그래. 월드컵보다 난 이런 게 더 불타오른단 말이야.”

뭔가 챙길 게 있고 손아귀에 넣을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다.

‘끝까지 가서 크게 터트릴 놈들만 잡는 거야. 잔챙이는 필요 없고 말이지.’

재석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민경이 스케줄은 한동안 시간 남을 테니 내가 일정에 맞춰서 권진우 한번 따라가야겠어.’

진우에게 있어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는데 한번 가야 했다.

“팀장님.”

“왜?”

“전에 사장님 소리도 하시더니, 이제는 안 합니까?”

“그거 참 쉽지 않다. 네가 내 밑에서 일하다가 사장 돼서 말이야. 억울하면 쫓아내라.”

“싫습니다. 겨우 사장님 소리 때문에 능력 있는 직원 해고 하는 불상사를 일으키고 싶진 않거든요. 두고두고 부려 먹어서 아주 뽕을 뽑아야죠.”

“아이고, 회사 그만 두려다가 망했네.”

“한동안 민경이 스케줄 저랑 같이해 주십시오.”

“아니, 왜?”

“다른 중요한 일정이 생겨서요.”

“권진우 영화?”

“네, 직접 보면서 상황 파악 좀 하려고요.”

“민경 씨가 싫어할 텐데.”

“영화 계약하기 전까지만입니다.”

“그럼, 미리 말을 해 줘. 내가 일하기 편하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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