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35화 (3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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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우의 계약이 끝나고 며칠 뒤에 감독과의 만남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김경영입니다.”

“전재석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는······.”

“알고 있습니다. 권진우. 이전 영화에서 봤기에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셨습니까?”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무림고는 독특한 소재를 써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영화였다.

“물론입니다. 권진우 씨의 연기가 그때는 대단하지 않았더군요.”

“아······.”

권진우는 그 자리에서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정말 제가 어리숙하구나 했습니다.”

권진우는 스스로의 연기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도 신인 때인데 그 정도면 좋지 않습니까?”

재석은 권진우를 감싸며 연기가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걸 강조했지만, 속으로는 아니었다.

‘그때는 그게 한계였는데.’

그래도 계속 연기에 몰두해서 그런지 지금은 그때보다는 연기가 자연스러워졌다.

“하하하, 소속사 사장님이라더니 배우 감싸기입니까?”

“제 식구니까요. 제 품에 있을 때는 감싸야죠.”

“역시, 그 임민경을 데리고 있는 소속사 사장님답게 배우들을 살뜰히 챙기시군요.”

“뭐,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런데 영화 찍기 전에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셨다고요?”

“예, 무림고 때문이죠. 교복을 입고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여간해서 찾기 어렵죠.”

하긴, 영화에서는 무림고를 시작으로 찍은 영화에서 교복을 항상 입고 있었다.

“인정합니다.”

대답은 재석이 아닌 권진우였다. 그도 감독에게 어필하면서 이미지를 확고히 다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교복 말고도 다른 것도 자신 있습니다.”

권진우의 말은 다른 옷. 즉 다른 역을 줘도 잘할 자신이 있다는 거였다.

연기자로서 욕심을 드러내는 부분이지만, 감독에게는 그런 부분은 미래의 일이다. 지금 당장 영화 찍어야 할 부분을 잘하면 그만이다.

“하하하, 권진우 씨가 보여줬던 연기를 생각하면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지금 촬영할 영화입니다.”

감독은 좋은 말을 하면서 핵심을 찔렀다. 권진우는 어설프게 나섰다가 감독에게 질책당한 꼴이었다.

“감독님, 그러지 마시고 가볍게 한잔하실까요?”

재석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술을 하자는 말에 감독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 그럴까요?”

웃는 표정으로 바뀌자, 재석은 이 감독이 술 좋아하는걸 알아차렸다.

‘문제는 권진우인데.’

권진우는 술을 한 잔도 못 한다. 보리밭에만 가도 술에 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권진우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권진우 씨는 술 좀 마십니까?”

“아, 예······ 그게······.”

우물쭈물하면서 확실한 대답을 못 했다.

“음?”

감독은 뭔가 이상하다 걸 눈치 챘는지 재차 물었다.

“술 못합니까?”

“그게, 술을 마시면 그냥 쓰러집니다.”

“으잉?”

권진우가 바른 생활 사나이로 알려진 데에는 술을 못 하는 것과도 일부 관련이 있었다.

“허허, 이런 아쉬워요.”

감독은 같이 술잔을 기울일 사람이 필요했지만, 그게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감독님, 왜 배우 한 명만 보십니까?”

“다 함께 마시면 좋아서 그렇죠.”

“하하하, 상당한 애주가시군요.”

재석의 말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술과 함께 자리를 즐기는 이들은 꼭 있기 마련이다.

“제가 애주가는 아니지만, 적당히 보조를 맞출 수는 있습니다.”

“하하하, 그거라면 다행입니다.”

김경영 감독은 같이 술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게 좋은지 미소를 띠었다.

“현장에 자주 나오세요. 그러면 꼭 술 한잔?”

감독은 손목 꺾는 시늉을 하면서 다음에도 술 마시는 약속을 잡으려 했다.

“혹시 사모님 사정에 의해서 약속이 변경될 수 있지 않습니까.”

“어허, 김빠지게 그러시면 안 되죠. 사장님, 중요한 약속에 안사람을 끌어들이면 이거 불편합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절대 비밀이죠.”

집에서는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럼, 감독님이 원하는 장소에서 한잔하죠.”

“정말이죠?”

“거짓말해서 남는 거 없습니다.”

“그럼, 자주 가는 단골이 하나 있습니다.”

“앞장서시죠.”

그렇게 세 사람은 단골집을 찾아갔다. 감독의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술집이었다.

“이곳입니까?”

“여기서 술 마시고 집에 바로 갈 수 있어서 단골이 됐죠.”

재석은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술 마시는 것도 참 소박하다 여겼다.

셋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권진우는 술 대신 안주만 먹으면서 배를 채웠다.

“그럼, 크랭크 인은 언제입니까?”

“정확한 날짜는 8월 6일로 잡혔죠.”

촬영 일자가 확실히 잡힌 걸 알자 권진우 말고도 다른 배우들의 캐스팅이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권진우 계약이 거의 마지막이었어. 준비가 부족한데 말이야.’

더 빨리 연락을 받았다면 준비가 더 철저하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빡빡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한 건가?’

권진우는 돈만 잘 벌게 해 주면 특별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옆에 있을 거다.

‘민경과 다르지만, 이쪽은 나름대로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니까. 걱정은 없어.’

이후에 할 일은 민철에게 위임하면 그만이었다.

*****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예, 제이이브입니다.”

-그곳이 임민경 씨가 소속된 소속사 맞습니까?

“연예인 임민경을 말한다면 맞습니다.”

-아, 제대로 찾았군요. 다름이 아니라 임민경 씨가 저희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패션쇼에 참관하셨으면 합니다.

재석은 그 이야기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어느 브랜드입니까?”

-샤르꼬 코리아, 마케팅 부서의 김운식 팀장입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재석은 직접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면서 말하자 김운식 팀장이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샤르꼬 코리아 지부 사무실 아래에 있는 식당이었다.

“반갑습니다. 전화상으로 말씀드린 김운식입니다.”

“제이이브의 전재석입니다.”

재석이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진짜냐 가짜냐에 대한 확인과 진짜라면 이곳과 지속적인 계약이 그 목표다.

“샤르꼬 브랜드에서 주관하는 패션쇼라니. F/W 패션쇼 입니까?”

“이번 서울 패션 위크에서 진행하는 쇼에 참여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초청장이 날아오는 건 비공개 패션쇼다.

‘지금 한참 그런 거 할 때이긴 하지.’

날도 더운 이때, 패션쇼 현장은 가을과 겨울을 선보이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이건 초청장입니다.”

그가 내민 건 초청장 하나. 이런 자리에 초청받는 사람 중에도 등급이 있었다.

‘연예인은 장식을 위한 거지.’

흔히 스타라고 할 만한 이들은 패션쇼 구경도 그냥 하지 않는다. 뭔가를 받고 그 자리에 참석하는 거다. 연예인이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홍보 수단이 된다.

‘이거 몇 군데 참석 가능할까?’

패션 위크 기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찬스라서 그렇다.

민경은 지금 스케줄이 별로 없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라서 더더욱 그렇고 광고 촬영이 있지만, 그건 일정이 짧아서 남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럼, 시간 맞춰서 패션 위크에 참석하게 하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팀장은 목적 달성했는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면서 돌아갔다.

재석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무섭게 전화가 울렸다.

“네, 팀장님.”

-바깥에 있으면 데이드 브랜드 홍보팀장 좀 만나 봐.

“거기에서도 전화 왔어요?”

-방금 왔어.

“네, 그럼 가겠습니다.”

재석은 패션 위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패션 업계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초청하려는 걸 알았다.

“정말 스케줄 잘 짜야겠네.”

재석은 곧바로 연락 온 사람을 만나려고 갔고 그곳에서 다시 초청장을 받았다.

그 뒤로 3일 동안 몇 개의 초청장을 받았다. 더 받을 수도 있었지만, 너무 많은 패션쇼에 참관하는 건 불가능했다. 동 시간이면 브랜드 인지도 등을 따져 참여하는 걸로 정했다.

“오빠, 이게 뭐예요?”

“뭐긴, 패션쇼 초청장. 인기 스타가 됐으니 패션 업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지.”

“어머머, 여기 브랜드 가방만 천만 원 넘는 브랜드예요.”

“그런 곳도 있지.”

워낙 중요한 쇼들이 열리는 시즌이라 고르고 고른 점이 있었다.

재석은 부자들의 브랜드만 골라서 민경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날 참석은 옷과 메이크업을 준비해야 해. 코디가 알아서 잘 해 주겠지만, 이거 끝나고 아마 너한테 상품권을 줄 거야.”

“상품권?”

“연예인이 그 자리에 온다는 건 굉장한 홍보 가치가 있지. 유명 연예인이 사용하는 유명 브랜드 이런 거.”

“와, 그럼 행사비가 상품권이겠네요.”

“그런 셈이지.”

“그럼, 문화상품권?”

“응?”

재석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냐?”

“문화상품권 안 주나요?”

“아이고, 두야.”

재석은 민경에게 이쪽에서 주는 상품권이 어떤 건지 자세히 알려 줘야 했다.

“특정 브랜드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이야. 그건 그 해당 전문 부티크에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백화점 매장에 찾아가야 해.”

“그럼, 결국 그 브랜드 물건을 사라는 말이네요.”

“넌, 다른 데 쓸려고 했어?”

“뭐, 그렇죠.”

재석은 그녀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연예계 생활 별로 안 해 봤으니.’

몇 년 더 지나면 이런저런 것도 경험하면서 아는 게 많아지겠지만, 지금은 모르는 게 더 많은 때다.

“상품권 받아서 네 것들 다 사고 나면 상품권 돈이 남을 거야. 딱 한 장 주거든 그 안에 적혀 있는 액수가 있어서.”

“에이, 좀 여러 장 주지 추접하게 하나만 주네.”

“상품권을 안 받고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만, 행사비라고 생각하면 편해.”

“알았어요. 근데 언제 가요?”

“다음 주부터 매일 두 개씩 참석할 거야. 나도 함께 갈 거야. 초대받은 사람은 한 명이지만, 매니저는 동반 참석 가능하니까.”

“근데 왜 초청장이 온 거예요?”

“그쪽에서 볼 때 넌 홍보 대상이거든. 명품 브랜드에서 유명 연예인 제외하면 다들 고객이야. 민경이 너처럼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지.”

재석은 민경이 받을 상품권의 액수가 궁금했다. 회귀 전에는 이런 초청장을 받은 기억이 있었나. 할 정도로 기억이 흐리흐리했었다.

‘민경이 성격상 직원들에게 선물을 뿌릴 거야.’

액수가 크니까 선심 쓰듯이 쓸 거다.

다음 주, 민경은 아주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준비도 아주 좋았다.

“흐음, 좋은데.”

“예뻐요?”

“넌 항상 예뻐.”

“으으, 기분 좋아라.”

민경은 항상 이렇게 치장할 때마다 재석에게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리고 예쁘다는 말에 얼굴 표정이 아주 환해졌다.

“그럼, 이제 가요.”

민경은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걸었다. 재석은 그 뒤를 따라갔다.

패션쇼장에 도착했다. 초청장을 보여 주고 그 안에 재석은 함께 들어갔지만, 매니저들은 쇼를 직접 관람하지 못하고 뒤편에 따로 준비된 자리에 앉아야 했다.

“후우, 아직 내 자리는 여긴가.”

회사가 커지고 더 많은 연예인을 데리고 있게 되면 저 앞으로 가게 될 거다. 민경은 그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내년에는 권진우도 움직일 수 있겠어.’

비록 민경과 다른 장소에서 불릴 수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초청받는다.

조명이 꺼지면서 런웨이만 환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음악이 나오면서 모델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쇼를 보는 동안 멋진 모델들의 워킹에 시선을 사로잡혔지만, 이런 쇼에는 모델만 있는 게 아니라 초청 가수도 있다.

“성주경이야.”

“성주경이 왔어.”

신곡 발표 이후 한참 주가를 크게 띄우고 있는 그 성주경이 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성주경 몸값이 장난 아닌데 불렀네.’

지금 그의 첫 전성기를 장식하는 ‘우린 잘 어울려요.’를 부르고 있었다.

여름에 발라드가 성공 확률이 낮지만, 경쾌하고 가벼운 리듬에 발라드 색을 입힌 노래로 올해 후반기를 휩쓴 노래다.

‘이 브랜드, 돈 많이 썼네.’

그리고 노래 한 번 부르고 성주경은 바로 사라졌다.

‘한창 바쁘겠지. 부르는 데도 많을 거고.’

쇼 중간에 가수가 퇴장하고, 그다음에 다시 모델들이 워킹하며 등장했다.

‘지루하네.’

재석은 그렇게 쇼가 끝날 때까지 별 재미를 못 느꼈다.

쇼가 끝나고 다들 돌아갈 때 각자 선물을 받았는데, 민경의 선물엔 따로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와, 이게 뭘까?”

재석은 그 선물의 내용물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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