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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은 주유의 내용을 듣고 나서 무척이나 신중하게 생각했다.
‘이건 무조건 불공정 거래 혹은 계약 위반이다.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광고계 루키가 매달 백만 원도 못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연예계에서 지켜지는 기본 상도덕이 있다.
“저희 회사 신인 계약 조건은 5 대 5입니다. 이건 업계 기준이고 그 어떤 신인이라도 이걸로 시작합니다. 물론 계약서에 회사에서 일정 이상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차후 정산에서 그 서비스 비용이 삭감됩니다. 이걸 흔히 ‘정산 받았다.’라고 합니다.”
재석은 주유의 계약 조건을 묻지도 않고, 모든 회사의 기본적인 계약을 이야기했다.
“주유 씨와 소속사 간의 자세한 계약 내용은 모르지만, 의심이 되어 말하는 겁니다. 혹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저에게 나중에 연락을 주십시오. 명함은 여기 있습니다.”
재석은 명함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주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뭔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
재석은 첫날 권진우의 촬영장에 간 뒤로 한동안 그 촬영장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문자 하나가 들어오고 난 뒤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주유입니다. 오늘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재석은 그 문자를 보고 올 것이 왔다는 걸 알았다.
“딱 일주일 걸렸네.”
연락을 안 할 수 없다. 지금 그가 속한 소속사에서 장난질을 치고 있는데, 그걸 계속 당하고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속에서 천불이 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재석은 문자로 일이 끝난 이후 주유가 현재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재석과 주유는 그 만남의 장소에서 저녁 9시에 보게 되었다.
“근데, 공원에서 보자고 하다니 이 동네에 적당한 곳이 없나 봅니다.”
“이곳이 제일 조용하니까요. 그리고 이 시간에 아무도 없거든요.”
주유는 나름 매니저가 혹시라도 찾아올까 봐 이곳으로 장소를 정한 거였다.
“진짜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일들을 뒤돌아보며 생각했는데, 몇 가지 수상한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상한 게 있다면 그 궁금증을 풀어야죠.”
“제 모든 게 담긴 겁니다.”
주유가 내민 건 다름 아닌 서류 봉투였다.
“뭐가 들은 겁니까?”
“보시면 압니다.”
재석은 그 봉투 안에 든 걸 확인하자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이거 진짜로 저에게 보여 주는 겁니까?”
“예, 계약서와 함께 제가 지금까지 어디서 일을 했는지 상세히 적은 기록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혹시 몰라 돈 받은 내역도 있습니다.”
재석도 주유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한 정도를 넘어선 모양이네요. 이제 겨우 두 번 본 저에게 이걸 보여 주다니.”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걸 보여 줄 일이 없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재석은 어두운 공원이지만, 공원 가로수 등불 아래에서 그 서류를 보았다.
계약서의 첫 장을 보기 무섭게 재석의 미간이 찡그려졌고, 내용을 다 확인한 재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예상대로 기본적인 이익 비율부터 다르네요. 6 대 4,소속사가 4가 아니라 6이군요.”
“예,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다고 해서요.”
“이 계약서만 들고 가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주기만 해도 계약 해지를 해도 될 정도네요.”
재석은 이렇게 대놓고 수작질을 부리는 소속사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게 놀라웠다.
“받은 돈에 대한 계산보다······ 혹시 소속사에서 지급 받는 거 있습니까?”
“딱히 없습니다. 밥값은 애초에 공짜로 지원해 주는 걸로 되어 있어서 오천 원 이상만 넘어가지 않으면 묻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까? 집에 있는 월세를 내준다든지, 일정 금액을 용돈처럼 받는다든지.”
“없습니다.”
“흐음, 이걸 가지고 돈 계산을 한다고 해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건 아시죠?”
“예.”
“하지만, 약간의 오차 정도 수준으로 한번 해 보죠.”
재석은 그 자리에서 이리저리 계산하며 돈을 얼마나 빼돌렸는지 파악했는데, 대충 계산해도 주유가 실제 받는 돈의 비율이 8 대 2에서 2 정도만 먹는 걸로 나왔다.
“오차를 다 합쳐도 절대 3이 안되네요.”
재석은 소속사가 얼마나 돈을 먹어 치웠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거면 내가 주유를 당당하게 빼앗아도 저쪽에서 할 말이 없겠는데.’
물론 저쪽 입을 완전히 봉인하려면 몇 가지 서류가 더 필요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만약 이 회사에서 나오면 어디로 갈 생각 입니까?”
“받아만 주신다면, 제이이브로 가고 싶습니다.”
재석은 입가의 씰룩거림을 참을 수 없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눈꼬리가 휘어지는 것도 막기 위해 일부러 인상을 썼다.
주유는 재석의 모습에 못 할 부탁을 하는 건 아니었는지 괜히 걱정이 되었다.
“혹시 제가 어려운 부탁을 드린 건가요?”
“아,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죠.”
재석은 그 잠깐 사이에 다시 침착해졌는지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겁니다. 제이이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재석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주유는 그 손을 맞잡았다.
“본 계약은 조금 늦겠지만,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일단, 그 회사에 주유 씨의 내역서를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되어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지금까지 일을 했던 회사가 어디인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다음은요?”
“그 회사에 직접 요청을 해서 돈을 얼마 받았는지 비교를 하고 그걸 가지고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 가서 신고하면 됩니다.”
“근데, 국세청은 왜?”
“그런 회사는 탈세를 하려고 온갖 짓을 다 했을 겁니다. 세금 계산도 분명히 안 맞을 거고 국세청에서 탈세에 대한 징계를 내리게 될 겁니다.”
국세청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탈세다. 액수가 좀 크다 싶으면 국세청이 알아서 탈탈 턴다.
‘분명히 주유 한 명만 해 먹은 건 아닐 거야. 그럼 탈세 액수도 상당하겠지?’
재석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생각한 건, 이런 짓을 해 먹는 놈들이 한 명만 했겠냐는 거다.
“우선 이쪽에서 준비해야 할 부분은 이쪽에서 일을 처리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연락은?”
“이쪽이 준비되면 연락을 드리죠.”
다음 날, 주유는 해당 소속사 사장과 직접 만나 내역을 달라고 요구했다.
“아, 갑자기 내역은 왜?”
“제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전체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우리가 돈 떼먹을까 봐?”
“이건 그것과 관계없이 저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주유는 정당한 권리를 내세우며 말했지만, 사장은 정말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알았어. 하루만 시간을 줘.”
“그럼 내일 받으러 오겠습니다. 그때 꼭 자리에 계셨으면 하네요. 자리에 없더라도 매니저 형을 통해서 주셨으면 합니다.”
주유는 이걸 꼭 받아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자 사장의 표정은 안 좋아졌다.
“너, 밖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거냐.”
“······.”
주유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고, 사장은 곧바로 매니저를 호출했다.
호출을 받은 매니저는 날벼락이 떨어졌지만, 주유는 저 멀리 가 버린 뒤였다.
그 뒤에 주유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고 주유는 당당히 전화를 받았다.
(야!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깨져야겠어?)
“매니저 형, 사장님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전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이고 내일 제가 원하는 걸 받을 겁니다. 못 해 주신다면 제가 직접 회사 자료를 뒤져서라도 할 겁니다.”
주유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하자 당황한 건 매니저였다.
(야,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더 이상 들을 거 없습니다. 제 요구 사항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중에 준비되거나 혹은 공적인 전화가 아니라면 전화하지 마세요.”
주유는 꽤나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이며 일을 추진했고 회사 쪽에서는 주유의 이런 모습에 많이 놀라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음 날, 매니저는 가짜로 만들어진 내역을 들고 주유에게 줬다. 물론 어디 회사에 일했는지는 정확히 적었다.
“이제 됐냐?”
“감사합니다.”
주유는 원하는 걸 받은 뒤에도 어제와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주유가 속한 소속사에서는 지금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소속사 사무실에서 사장과 주유의 매니저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주유가 눈치챈 거 아니야?”
“눈치를 챈 것 같은데 혼자서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옆에서 바람을 집어넣었다는 거잖아. 도대체 누가?”
“그게 저도 잘······.”
“아니, 매니저라는 인간이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당장 미행해. 회사 안에서 다른 사고가 터지지 않게 단속할 테니까.”
사장은 어떻게 해서든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그러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돈줄 하나가 멋대로 증발해 버릴 거다.
매니저는 주유를 촬영장에 데려다주면서 동시에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아주 유심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촬영장에서는 같은 배우들끼리 연기에 대한 것 말고는 대화를 잘 하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쓸데없는 접촉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녀석, 왜 아무하고도 접촉을 하지 않는 건데.’
주유는 이미 재석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촬영장에서 쓸데없이 매니저를 자극하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음.”
연기에 오롯이 집중하며 연기에 몰두했다.
이날, 촬영이 끝나고 주유는 집에 돌아가서 집 밖을 나오지 않았고 매니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주유의 집을 감시했다.
“하아, 이 녀석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오히려 가만히 있어서 답이 나오지 않았던 매니저는 답답했지만, 주유는 집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예, 그럼 내일 촬영이 없으니 그때 보겠습니다.”
주유는 집에서 재석의 전화를 받으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했다.
심지어 지금까지 일했던 곳에서 준 돈이 얼마고 소속사에서 얼마를 받아야 그게 정상인지 재석이 계산을 해서 알려 줬다.
그 액수를 들었을 때 주유는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았지만, 참았다. 지금 화를 내 봐야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유는 전화를 끊고 나서 방에 불을 껐다. 일찍 잠이든 것처럼 꾸미더니 조용히 창문 밖으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 숨어서 뭐가 없겠지?”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매니저의 차량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놀라고 말았다.
“역시, 그 이후에 뭔가 할 것 같더라니 감시를 시작하네.”
주유의 감정은 삭막해질 정도로 메말라 갔다. 그래도 같이 일했던 이들이 ‘설마, 이런 짓까지 하겠어.’라며 마음 한쪽 구석에 있던 작은 믿음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래, 갈 데까지 가자는 거네.”
이쯤 되니 주유의 마음은 이미 재석의 회사에 들어가서 정말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만 생겨나고 있었다.
“하아, 그래 어디 끝까지 가 보자.”
다음 날, 주유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나서기 전에 매니저가 근처에 있는지 먼저 확인한 뒤에 밖으로 움직였다.
재석과 만난 곳은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근데,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곳에서 만나는 게 아닙니까?”
“거기도 되지만, 그 인간들이 신고했다고 겁먹을 인간들이 아니죠.”
“하지만, 전 변호사를 쓸 정도로 돈이 없습니다.”
“비용은 걱정 마세요. 제가 냅니다. 그런 쓰레기들에게 이런 돈을 쓰는 게 좀 아깝지만, 법의 준엄한 심판을 위해서라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죠.”
“하지만, 그렇게 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돈은 제가 내고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세요. 그럼 됐죠?”
“알겠습니다.”
재석은 변호사 비용 따위로 주유를 얻는다면 그게 더 싸게 먹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변호사를 통해 일을 처리했고 신고도 했다.
얼마 뒤 회사 주유가 소속되어 있는 사무실에 변호사와 주유가 함께 들이닥쳤다.
“음?”
주유가 변호사와 함께 등장하는 순간 회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너, 너!”
“······.”
주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변호사가 명함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제 의뢰인에게 하실 이야기가 있다면 저에게 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찾아온 이유는 대충 짐작 가실 겁니다. 우리 서로 좋게 일을 해결하고 싶군요.”
말이 좋아 좋게 해결이지. 시작부터 법적 싸움으로 가자는 거였다. 하지만, 불리한 쪽은 주유가 아니다.
“이이익!”
“지금부터 녹음에 들어가겠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하는 말은 법적인 효력이 발생합니다.”
변호사는 녹음기까지 준비하면서 녹음을 시작하자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변호사가 작정하고 이곳에 왔음을 느낀 거였다.
“그럼, 시작하죠.”
변호사는 준비한 서류를 가지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듣게 말이다.
회사에 있던 사람도 변호사가 찾아온 걸 보고 그들이 하는 말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었다.
주유의 매니저는 사람들이 모이자 그들을 쫓아내려고 했다.
“아, 지금 저희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비밀이 아닙니다. 거기에 저들도 관계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불리한 내용이 확인될까 봐 미리 차단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변호사 한 명의 등장으로 인해 회사 상황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주유와 함께 등장한 변호사가 한 말은 충격이었던 탓이다.
수많은 불공정 거래 내역이 변호사의 입을 통해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하고 만 것이었다.
변호사와 주유가 떠난 뒤에 소속되어 있던 이들이 구름처럼 밖으로 따라 나가 변호사를 붙잡고 이야기하자 변호사가 한마디 했다.
“억울하시면 여기로 오십시오. 뭐, 간단한 무료 상담을 해 드리죠.”
변호사가 무료 상담을 해 준다는 말에 변호사 사무실로 따라간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덕분에 회사는 순식간에 휑해졌다.
“야, 방금 뭐가 지나갔냐?”
“뭐긴요. 회사 끝장난 거죠.”
똑똑 누군가 회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국세청에서 찾아온 이들이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