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42화 (4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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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감독인 김경영, 이 바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소속사 사장들을 봤다.

하지만, 재석만큼 신기한 경력을 가진, 소속사 사장은 처음이었다.

“정말 내용을 더 확인하고 싶으시면 아시는 지인분들을 통해 확인하셔도 됩니다. 제가 거짓말해서 얻는 이익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진실을 이야기해서 얻을 이익이 더 대단할 것이다.

“꼭 확인하죠. 꼭!”

김경영 감독은 확인을 한다면서 다짐하듯이 말했지만, 재석은 상관없었다. 오히려 확인해서 재석에게 스토리에 관한 조언을 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석이 영화를 보면서 이 부분 조금 아쉬웠다 하는 것만 충분히 채워 줘도 영화의 완성도는 꽤나 높아진다.

거기에 높아진 완성도만큼 관객들은 그만큼 찾아온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제가 여기에 오래 있어봤자.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네요.”

재석은 술도 마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경영 감독이 생각할 시간과 나름 알아볼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며칠간은 볼 일이 없겠네.’

재석은 다음을 위해서 조금 느긋해질 필요가 있었다. 영화 촬영은 아주 많이 남았고, 끼어들 여지도 많았다.

‘어차피 이 영화에서 필요한 건 다 얻었어. 남은 건 부 수적인 거지.’

재석은 이 영화에서 미래의 스타를 얻었다. 그러니 좀 여유를 가져도 충분한 상황이 된 거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

재석은 일주일 뒤에 다시 감독과 자리했다.

“갑자기 절 불러내시다니, 감독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신 겁니까?”

“확인한 뒤에 만나자고 한 겁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서론을 건너뛰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재석이 본론으로 가자는 말에 감독은 대본을 꺼내 들었다.

“영화라는 특성상 만들어진 대본만 가지고 촬영을 하진 않습니다. 중간에 애드리브나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끼어들어도, 많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재석은 감독이 작정하고 왔다는 걸 알았다.

“제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표정을 봐서는 단호하게 끼어들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셨다면 너무 섭섭한 일이죠.”

“그럼, 이걸 보시죠. 혹시나 해서 가져온 겁니다.”

재석은 이미 자신이 고친 대본을 감독에게 내밀었다.

원본에 여러 장의 메모지를 붙여서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세세하게 표시해 놓았다.

감독은 그걸 받아 들고는 곧바로 펼쳐 들었다. 이미 촬영한 부분은 제외하고 수정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감독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였고 중간중간에 그의 입가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대본을 다 읽은 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감독은 수정한 대본을 들고 말했다.

“내일 당장 제작사에 찾아가 변경된 내용을 통보하고 수정 대본을 다시 배포하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나중에 저한테 수고비 주시는 겁니까?”

“이 정도로 재미있게 바뀌었는데 당연히 드려야죠.”

감독은 이걸 안 줄 순 없다는 대답을 했다. 제작자가 들었다면 또 돈 나가는 소리라고 했을 터다.

“뭐, 수고비 주신다니 아주 감사히 받도록 하죠.”

재석은 얼마를 받는 것보다 여기에 기여를 했다는 게 중요했다. 미래에 그의 조언을 거부할 감독들이 없어지게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거기에 배우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져 일부러 재석을 찾아오게 만들려는 거다.

“좋은 거 받았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혹시 식사하셨습니까?”

“아직 밥시간이 슬슬 될 때죠.”

“그럼, 식사나 같이하시죠.”

원래 소속사가 밥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번처럼 감독이 직접 나서서 대접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럼, 제가 아는 곳이 한 곳 있는데 그곳으로 가시죠.”

“사장님이 아시는 곳이 있습니까?”

재석이 살아오면서 이곳저곳 차 타고 다녀봤기에 맛집을 많이 알고 있다. 그걸 다 말하면 나이를 의심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 조용히 입을 닫아야 했다.

“많이 알진 않고 몇 곳 정도 아는 수준입니다.”

“그곳으로 가죠.”

재석은 그곳으로 가서 감독과 식사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식사를 끝마치고 감독과 헤어진 뒤, 재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일거리다. 패션쇼인데 액수가 맞아서 연락이 왔다.)

“패션쇼? 팀장님 위크는 끝났는데요.”

(좀 이상하긴 해. 하지만, 액수가 맞고······ 자리를 빛내 달라고 하더구나.)

재석은 순간 어떤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이거 일이 조금 수상한데.’

“액수가 얼마에요?”

(딱, 천만인데. 그것도 현찰로 처리한다고.)

“뭐, 현찰이요?”

재석은 현찰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다. 현찰을 들고 나타나는 건 세금도 피하는 일이라는 거다.

거기에 패션위크가 끝난 시점에서 이런 돈을 쓴다는 게 더 수상했다.

“찜찜한 일이네요.”

(찜찜할 게 뭐 있어. 딱 하루 가서 회사에 떨어지는 돈이 수백이야.)

주명진은 떨어질 돈을 생각하며 말했다. 일거리 액수가 워낙 크고, 현찰로 처리해 준다 하니 일을 하자는 거였다.

“아, 찜찜한데.”

(정 아니면, 거기 가서 직접 확인해 봐.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는데 천이야.)

“그래서 찜찜하다는 거죠.”

(날짜는 나흘 뒤야. 그리고 전화 끊어. 할 일 많아.)

재석은 주명진이 먼저 끊어 버린 전화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일단, 확인부터 하고 그 뒤에 결정을 하자.”

재석은 스케줄 수첩에 스케줄을 기록하고 날짜를 확인했다.

“할 일 많네.”

빡빡한 일정에 또 하나의 스케줄이 추가되었다.

“내일 잡지사 촬영이고······.”

재석은 하나씩 스케줄 확인하다가 그녀의 휴가 계획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일이 끝났는데 휴가를 못 보냈네.”

중간 중간에 스케줄이 있어서 온전한 휴가도 못 보냈다.

“한번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좀 해야겠어.”

새로 들어온 일거리도 있고 말이다.

재석은 그렇게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민경을 찾아갔지만, 민경은 재석을 반갑게 맞아 줬다.

“오빠, 연락도 없이 왔네요. 빨리 들어와요.”

소식 없이 찾아왔지만,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신기했다.

‘보통은 갑자기 왜 왔냐 하지만, 그것도 안 물어보네.’

집에 들어가자 민경은 찾아온 재석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입을 열었다.

“오빠, 할 말이 뭐예요?”

그 어떤 말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민경이었다. 그만큼 재석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가능했다.

“아, 나흘 뒤에 있는 스케줄 이야기야. 가만히 앉아만 있는 일인데 천만 받는 일이지.”

“세상에 그런 일이 있어요?”

“패션쇼인데······.”

“에이, 그런 일이라면 전에 했잖아요. 그건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연예인이 그 자리에 있는 걸로 홍보와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라면서요.”

“아니, 달라 패션위크 끝난 시점에 이런 돈을 주면서 하는 일은 좀 뒤가 찜찜한 일이지. 거기에 상품권도 아니고 현찰이라면 더더욱.”

민경은 재석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이상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거부하면 되잖아요.”

“거부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 그래서 미리 이야기하러 온 거야. 내 감이 찜찜할 뿐, 들어온 일 자체가 찜찜한 건 아니니까.”

“흐음, 그럼 정확히 그 일 패션쇼가 맞는지 모른다는 거네요.”

“패션쇼가 맞긴 할 거야. 의도가 불순해 보여서 나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민경은 재석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일이 어떤 일인지 궁금해졌다.

“일 자체는 거기 참석만 하는 거죠?”

“맞아, 특별한 건 없으니까. 일단, 나도 같이 자리할 거야. 만일을 위해 바로 뒤에서 볼 거고.”

“그럼, 가 봐요. 진짜 패션쇼 같은 거라면 상관없고, 이상한 일이면 그냥 빠져나오면 되잖아요. 오빠라면 보디가드도 좀 할 거고.”

“야, 매니저가 무슨 보디가드냐.”

“어머, 이야기 들어 보니까, 여차하면 보디가드하면서 영화처럼 할 때도 있다던데.”

“에휴, 몰려드는 인파 막는 정도 가지고 보디가드라니. 너무 영화 많이 본 거 아니냐.”

“그 정도면 보디가드죠. 겨우 한 명이지만.”

현재 재석의 회사는 그런 보디가드까지 고용할 일이 없었다.

“진짜 사람 고용해야 하나?”

“에이, 그런 보디가드까지 고용할 일이 있겠어요. 그냥 갔다가 아니면 그냥 집에 가면 되죠. 아프다는 핑계로.”

“어디 픽 쓰러지게?”

너무 건강한 그녀가 쓰러진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 일이지만, 연기라면 남들을 다 속일 정도는 충분했다.

“아, 그거 좋겠다.”

민경은 자리를 내뺄 수 있는 작전을 세웠다며 좋아했다.

“어휴.”

“무슨 한숨이에요. 차 마시고 심호흡하시고 더 할 이야기 없으면 농땡이 피다 집에 가세요.”

“에이, 무슨 농땡이냐 가서 할 일이 많다. 넌 오늘 뭐 했어?”

“책 봤어요.”

“어디 안 나가고?”

“나가면 사람들이 자주 알아봐서 불편해서요.”

이제 민경에게도 밖으로 나가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시기가 찾아온 거였다.

“그러지 않아도 너 휴가 말이야. 한 번 안 갈래?”

“휴가요?”

그녀의 얼굴 표정이 환하게 바뀌면서 혼자 콩콩 발을 구르며 뛰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근데 혼자만 휴가예요?”

“친구들도 만나든가, 아니면 해외여행 가.”

“에휴.”

갑자기 민경이 풀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국내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휴가를 못 즐겨요. 해외는 영어가 안 되서 좀······.”

한마디로 어디로도 못 간다는 거였다.

“허허, 이런······.”

결국 가고 싶어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하아, 그럼 휴가 줘도 못 써먹는 거네.”

“예, 뭐······.”

유명인이다 보니 휴가까지 신경 써서 보내 줘야 했다.

“알았다. 워낙 유명인이 되어서 그런 거니 내가 신경 써 줄게.”

“진짜요?”

“그럼, 매니저가 연예인 관리하는 게 일이야. 걱정 마.”

재석은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집을 빠져나왔다.

“휴가 일정.”

스케줄 내용 하나를 추가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휴가나 갔다 올까?”

일이 바쁘지만, 그래도 일정 맞춰서 한 번 갈 만했고 휴가 다녀오면 그것만큼 재충전의 시간이 없다.

“흐음, 나 혼자만 휴가 간다면 다들 싫어할 테니. 다들 휴가 계획도 세워야겠네.”

연예인도 직원도 신경 써야 하는 위치가 소속사 사장이었다.

“에구, 힘들다.”

몸은 젊으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영감님도 이런 영감님 없었다.

결국 회사로 돌아가서 민경의 휴가 일정에 매니저 동행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주명진이었다.

“휴가비 줘?”

“안 가면 돈으로 드릴게요.”

“그럼, 안 갈래. 그 돈 받아서 마누라 손에 쥐어 줘야지.”

“현찰로 드릴게요.”

주명진의 반응은 그렇게 넘어갔고 다른 이들 반응은 조금 아쉬웠다.

“선배님, 전 진우 형 촬영 일정 때문에 어려운데요.”

“민철이는 권진우 쉬는 일정에 맞춰서 휴가 계획해.”

“전 좋습니다!”

민철이 좋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회사의 유일한 코디인 이혜정은 심각했다.

“사장님, 전 휴가 가기 힘들어요. 제 후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명 있는 사람이 이러니 참으로 곤란했지만, 재석이 한마디 했다.

“권진우 쪽은 영화 촬영이지만, 교복만 입지 않아?”

“네, 맞습니다. 선배님, 간혹 다른 옷이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팀장님, 아역들 코디는 어떻습니까?”

“그쪽은 광고 모델 일이 있는데 거기서 주는 옷 입으면 되니까 당장은 널널해.”

“그럼, 당장 일정 맞춰서 하죠. 어쩌면 민경이 휴가보다 먼저 갈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들 합심해서 휴가 계획에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

재석은 며칠 뒤 그 찜찜한 패션쇼를 보기 위해 왔다.

“보디가드가 무슨······.”

입구에서부터 철저한 검사가 있었다. 재석은 보디가드 회사의 로고를 봤다.

‘저 회사 로고는······.’

재석은 오랜 세월 유명 회사들의 로고를 알지만, 그중에 큰 회사들이 알게 모르게 소유하고 있는 보디가드 업체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한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보디가드 업체이자, 대기업의 수족 노릇을 하는 업체······.’

재석은 찜찜함이 더 심해졌지만, 그렇다고 이 순간에 티를 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오빠, 삼엄하네요.”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없겠네. 다만, 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네.”

이렇게 준비를 했다면, 재석은 저 안에 혹시 의사까지 준비했을까 봐 걱정이었다.

“후우.”

보디가드들의 민경의 앞에 서자 재석의 손이 먼저 나왔다.

“초대장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몸수색은······.”

“수색은 안 합니다.”

보디가드는 그래도 스타가 된 민경에게 함부로 손대려고 하지 않았다. 손댔다가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시선은 민경에게서 떨어지진 않았다.

‘짜식, 민경이 매력은 출구가 없지.’

매니저가 앞에서 있는데도 그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보디가드는 초대장을 확인하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재석은 길이 막혔다.

“매니저는 입장 곤란합니다.”

“그렇습니까?”

재석의 한마디에 민경의 반응이 나타났다.

“전 매니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같이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민경의 공손한 부탁에 보디가드의 손이 순간 움찍거리며 내려가려고 했지만, 그래도 일이었기에 매니저를 막았다.

“곤란합니다.”

“그럼, 전 여기에 못 들어가겠네요.”

민경이 그대로 몸을 돌려 버리자 보디가드는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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