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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매니저-45화 (45/152)

46화

당신의 매니저

재석과 민경은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가방을 부치고 빠르게 출입국 수속을 밟았다.

하지만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았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존재감이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혹시, 임민경 씨?”

“네?”

“임민경 씨 맞으시죠?”

“예, 혹시 사인?”

“네.”

“저 바로 비행기 타야 해서 빨리 해 드릴게요.”

민경은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일을 해치웠다.

“가자, 민경아.”

“네, 매니저 오빠.”

민경이 움직이자 뒤늦게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고 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 가 버렸네.”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만 사인을 받았고, 그 뒤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행기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민경은 생각보다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재석의 손목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오빠, 매니저가 시계가 없어요?”

“시계는 이걸로 충분해.”

재석의 손에는 핸드폰이 있었다. 충분히 시계 역할을 해서 따로 시계를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있으면 편하잖아요.”

“글쎄, 점점 시계가 장식처럼 느껴져서 말이야.”

“돈 벌면 비싼 시계도 안 사겠네요?”

“내 돈으로는 죽어도 안 산다. 누가 선물해 주면 하고.”

“아이고, 시계 안 찬다는 말은 안 하네.”

“그럼,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그러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대요.”

“커흠! 대머리는 싫다. 그러지 않아도 너한테 영감님 소리 듣는데 진짜 영감님 될라.”

세상에 어떤 남자가 대머리가 되고 싶을까. 그걸 원하는 남자는 없다.

“하여튼 욕심은 또 많아요. 다 왔네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고 좌석에 앉았다.

비행기 안에서 민경은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기대감과 설렘만 가득해 있었다.

민경은 일본에 도착해서는 거칠게 없었다. 일본에서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한국인 말고는 없다. 알아보는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다들 여행하기 바빠서 민경이 있다는 걸 몰랐다.

“아, 좋다!”

민경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가자 일본에서 첫 끼를 먹으러.”

재석이 앞장서서 한 식당으로 바로 찾아갔다. 길 따위 헷갈리지도 않았다.

“오빠, 여기가 어디에요?”

“맛집.”

간단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 이 집이 맛집이라는 말에 신빙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진짜요?”

“믿음이 안 가면 일단 맛보고 맛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갈게.”

“아니요. 한번 먹어 볼게요.”

막상 식당 안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맛본 민경은 굉장히 놀랐다.

“맛있어요.”

“맛집이니까.”

본래 재석이 이 집을 알게 되는 건 수년 뒤다. 일본에서 불어온 한류 열풍에 여러 작품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 안에서 성공한 몇몇 작품 때문에 일본에서 수행원처럼 따라 들어갔을 때 알게 된 집이다.

“근데 오빠, 일본 여행 처음인데 어떻게 알았어요?”

“아는 사람 통해서 알게 됐어. 지금은 살짝 한적한 시간이라 손님이 없는데, 식사 시간 때 이 집은 자리가 없어서 바깥에 두 시간 가까이 서 있는 경우도 많아.”

“어머, 그래요?”

“내가 거짓말해서 뭐하겠어.”

재석은 머릿속에 맛집에 대한 정보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하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젊어진 몸과 두뇌 덕분에 옛 기억들이 고스란히 난다는 거다.

재석은 아주 편하게 관광을 즐긴 뒤, 밤이 되었을 때 호텔 로비에서 민경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고미카와 상.”

“아닙니다. 이렇게 일본으로 여행을 오셔서 저와 만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에게는 이것도 반은 일입니다. 배우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이죠. 덤으로 저도 여행하는 것도 있습니다.”

“부럽네요.”

“그것보다, 제가 일본에 오기 전에 메일로 확인해 달라는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재석은 일본에서 에이전트를 만나 서로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준비된 자료는 여기 있습니다.”

에이전트인 고미카와 나오미는 굉장히 귀여운 여성이었지만, 지금은 재석과 일적으로 만나고 있었기에 그녀의 어투는 굉장히 딱딱했다.

“흐음.”

재석은 그녀가 건넨 자료를 보았다. 영어로 적혀 있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판매량이 높네요.”

“물론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분명 일본 방송사 쪽에서 반응이 먼저 올 겁니다.”

재석이 에이전트에 의뢰한 내용은 간단했다. 현재 한국 드라마 비디오 상황과 눈꽃연가의 판매 반응이 교민들 사이에서 어떤지 확인해 달라는 거였다.

‘일본 교포들은 문화적 성향이 한국과 일본의 성향을 둘 다 가지고 있어서 확인하는 게 좋아.’

어차피 미래를 알고 있으니 굳이 에이전트를 이용해 이걸 확인할 필요는 없지만, 에이전트의 일적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험 삼아 일거리를 주기에 딱 좋은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 활동은 언제 하실 생각이신지요?”

“내년 3월입니다. 그 전까지 다른 의뢰인을 만나서 일을 해도 됩니다. 제가 하는 일에 방해만 안 된다면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 마세요. 확실히 처리 하겠습니다.”

고미카와의 확언을 듣고 나서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야 좋죠.”

내년 3월은 일본에서 눈꽃연가의 방영이 끝난 뒤다. 1월에 시작해서 3월에 끝나는 시점이기에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오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 3월에 맞춰 일을 하실 수 있도록 관련 업체에 명함을 뿌려 두겠습니다.”

“아니요. 그건 1월 말에 해 주세요.”

“1월 말이요?”

“그렇습니다. 방송사뿐만 아니라. 좀 큰 광고 회사에 뿌려 주시면 됩니다.”

“그럼 명함을 뿌리는 시기는 그렇다 하지만, 액수는 얼마나 하실 겁니까?”

“액수는 3월이 돼서 결정을 하죠. 벌써부터 그걸 결정하기에는 시기기 많이 남았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재석은 그렇게 고미카와와 일을 끝마쳤다.

다음날 재석은 민경과 함께 도쿄에서 유명한 몇 곳을 돌아다녔다.

“으아, 정말 좋다.”

민경은 둘째 날 저녁이 되어서는 표정이 더없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그간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확 하고 사라지고 있었다.

“오빠, 내일은 어디 가요?”

“교토로 갈 거야.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바로 갈 거니까 준비해.”

“네.”

민경은 침대에 눕는 순간 다음날도 기대되는 일본 여행이 되기를 기도했다.

재석과 민경은 일본에서 가장 빠르다는 기차인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향하고 있었다.

워낙 빨리 지나가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느껴지는 철컹거리는 느낌도 느끼기 어려웠다.

“아, 빠르긴 빠르네.”

신칸센을 타면서 챙겨 먹어야 하는 건 열차 도시락이었다. 일본 오타쿠 중에서 열차 도시락만을 즐기는 기이한 오타쿠가 생길 정도로 각 역마다 주는 도시락도 다르고 맛도 좋았다.

우물우물.

재석은 밖을 보는 것보다 도시락 먹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진짜 맛있네.’

하나만 먹어도 배가 차는 도시락을 벌써 세 개나 먹어치웠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민경은 재석이 잘 먹는 모습에 웃고만 있었다.

“오빠가 너무 잘 먹어서 나까지 배부른 것 같아요.”

“아, 뭐 그런 거 가지고.”

재석은 도시락을 다 먹고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졌다.

“음, 아주 좋아.”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고, 배가 빵빵해질 정도의 포만감을 가져서 좋았다.

“오빠, 그러다 돼지 되요.”

“아직은 아니다. 그런데 넌 하나만 먹었네.”

“이것도 배불러요.”

민경도 배를 어루만지며 많이 먹었다는 걸 알렸다.

“지금 먹은 거 다 소화된다. 아주 열심히 돌아다닐 거니까.”

재석은 교토에서 하루 종일 움직이고 다녀야 하는 걸 생각하면 지금 먹은 건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끼이익!

열차가 멈추자 사람들이 줄지어 내리기 시작했고 재석과 민경도 같이 내렸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짐을 내려놓기 위해 숙소를 찾아가는 거였다.

숙소에 들어가서 짐만 놔두고 곧바로 나온 두 사람은 교토의 명소들을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다시 숙소에 돌아와서 민경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의자에 앉아서 종아리를 주무르는 거였다.

“민경아, 다리 아팠지. 내가 주물러 줄게.”

“진짜요?”

“그럼.”

“오빠도 피곤할 텐데.”

“괜찮아.”

재석은 민경의 종아리를 꾹꾹 눌러 줬고, 어느 정도 피로가 풀렸는지 민경이 입을 열었다.

“오빠도 바지 올려 봐요.”

“응?”

갑자기 바지 올리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다.

“아, 빨리요.”

재석은 순순히 그 말에 따랐는데, 민경이 손수 재석의 종아리를 주물렀다.

“아이고, 됐다.”

“가만히 있어요. 오빠도 열심히 걸어 다녔는데 저만 마사지 받고 끝낼 순 없어요.”

결국 그녀는 고집대로 재석의 종아리를 주물렀다.

“끄응.”

민경의 마사지는 대단치 않았지만, 그래도 피곤한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게 좋았는지 긴장이 살살 풀리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15분쯤 마사지를 한 민경은 재석의 얼굴을 봤는데 곯아떨어진 재석을 볼 수 있었다.

“얼래, 자요?”

민경은 손을 흔들며 재석이 진짜 자는지 확인을 했는데 정말 깊게 잠에 빠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참 신기해. 입만 열면 늙은이 같은 사람이 이렇게 자고 있으니 나랑 나이 차이 별로 없는 남자라니······.”

세상 신기한 게 따로 없을 정도로 바라보던 민경은 재석의 다리를 그만 주무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잘 거면 방에 가서 자요.”

“어, 어, 깜빡 졸았네.”

재석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방으로 향했고, 민경은 뒤에서 그 어정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귀엽게 걸어가네.’

그녀는 재석의 뒤를 따라 방으로 향했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도 교토에서 어제 못 봤던 명소들을 한 번 둘러보고 오사카로 향하게 되었다.

민경은 오사카의 최고 명소인 오사카 성을 보면서 한 가지 궁금해했다.

“근데 이 성을 누가 만들었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재석의 말에 민경은 살짝 놀랐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만든 성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 일본의 전국시대의 전란을 평정했던 사람이야. 물론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천하에 죽일 놈이지.”

“그런 성이라면 조금 안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걱정 마. 그 사람은 죽었고, 오사카 성은 몇 번이나 전소되어 재건축되기를 반복했지. 지금의 오사카성은 세 번째 재건축일걸.”

“세 번째요?”

재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내용도 다 바뀌었어. 겉모양만 옛날의 오사카 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 내부를 보면 별로 그런 생각이 안 들 거야.”

민경이 재석의 말을 듣고 오사카 성에 가자 아주 넓은 해자가 눈에 보였다.

“와, 여기 호수 크네요.”

“호수가 아니라, 해자야. 성벽에 달라붙지 못하게 파 놓은 연못 같은 거지.”

“무슨 방어 시설이······.”

“굉장히 넓지. 세계 어딜 가도 이렇게 큰 해자를 만든 곳은 찾아보기 힘들지. 원래 이 성은 외성과 내성이 있었는데, 외성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내성만 남아 있지.”

“그럼 옛날에는 성이 더 거대했겠네요.”

“맞아. 저 안에 옛날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어.”

“오빤 열심히 공부했네요.”

“공부가 아니라 어디가 좋은지 좀 찾다보니 알게 된 거야.”

재석은 그리 말하면서 민경을 데리고 오사카 성 안으로 갔다.

내부는 그 옛날의 모습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관광지의 모습만 남아 있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오사카 성 천수각 전망대에 올라 오사카 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와, 아주 잘 보여요.”

“그렇네. 아주 잘 보인다.”

가볍게 오사카 성을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오사카 시를 보았다.

오사카 시를 구경하던 중, 재석이 화장실이 급해 잠시 자리를 비워 민경이 혼자 기다리고 있던 그때였다.

“!#%$#&%”

민경은 갑작스레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자 조금 당황했다.

“저기, 죄송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민경이 한국어로 대꾸를 했지만, 그 남자는 손짓 발짓을 해 가면서 계속 뭐라 이야기를 했고 그녀의 손에 명함을 쥐여 줬다. 그러면서 꼭 연락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민경아, 가자.”

“오빠, 어떤 남자가 이걸 줬어요.”

재석은 민경이 내민 명함을 보고 한마디 했다.

“수작질했네. 네가 예쁘니까 남자가 꼬인 거야.”

“네?”

민경은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 뒤에 좋아했고 다음은 명함을 버렸다.

“명함 버렸어?”

“네, 제 스타일 아니라서요.”

아주 쿨했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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