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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매니저-47화 (47/152)

48화

민경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집에서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재석이 여행 마지막 날 밤 보여 줬던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민경아, 우리 사랑하는 민경이!”

갑자기 사랑하는 민경이라는 말에 민경은 깜짝 놀랐지만 재석은 혼자 웃으면서 좋아했다.

“너 만나고 내가 일본을 왔어. 늙어 죽을 때까지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 이 얼마나 행복하냐!”

재석은 회귀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간 감춰 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혼자 그 행복한 느낌을 여과 없이 쏟아 내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 민경이었다.

“히히히, 민경이는 보물이야.”

“오빠, 이게 몇 개?”

민경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물었을 때 재석이 한 대답은 가관이었다.

“으히히, 예쁜 민경이 손!”

“확실히 취했는데······.”

민경은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상태였다. 재석이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인데도 말이다.

“오빠, 내일 기억할 거 같아요?”

“무슨 기억?”

“술 마신 거.”

“히히히, 기억할까?”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재석이었다. 전에 민경에게 살짝 보여 준 모습도 평상시와는 전혀 달랐는데, 지금은 전보다 더했다.

“필름 끊겨야 귀엽네.”

민경은 재석의 옆에 앉아서 술잔을 조심스레 따라 줬다.

“오빠, 잔 받아요.”

“응!”

재석은 입안에 술을 털어 넣고 민경을 바라보았다.

“히히히.”

혼자 웃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그 순수함을 느낀 민경도 덩달아 웃었다.

어느새 술을 다 마시고 나서 재석은 침대에 눕더니 그대로 쓰러져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자는 모습도 귀엽네.”

민경은 곤히 자고 있는 재석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더니 그렇게 10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쪽!

***

재석은 한국에 돌아오고 며칠간은 미뤄 뒀던 스케줄 처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틈이 나는 대로 영화의 평을 확인하고 다녔다.

특히 얼마나 안 좋은 평이 있는지, 그 안 좋은 평에서 민경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2주일 정도 더 지나자 재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민경이 관해서는 안 좋은 이야기가 없어서.”

하지만 별말이 없다 뿐이지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팀장님, 혹시 영화 쪽에서 반응 없나요?”

“아니, 아직 없는데.”

“흐음.”

“영화 때문에 그러는구나. 나도 보긴 봤는데 영화 좋던데, 민경 씨 연기도 좋고 딱히 욕이 나올 것도 없어. 다만······ 내용 자체가 너무 어두운 면이 있어 좀 더 밝은 연애였다면 좋았을 것 같은 느낌이야.”

“흥행이 걱정이에요. 제작사에서 준 돈값을 해야 다음에도 기회가 있죠.”

“그 말도 맞지만, 이거 결재 서류.”

주명진은 재석에게 은근슬쩍 결재 서류를 내밀었다.

“하아, 많네요. 일본 여행 다녀와서 꽤 많이 일을 처리했는데도.”

“그것보다 우리 회사 연예인들 활동이 꽤 활발해지기 시작했어. 민경 씨를 비롯해서 최근에 들어온 남자 배우 주유까지 말이야.”

“흐음, 그러네요.”

주명진이 내민 건 소속된 연예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였다.

특히 주유는 더 이상 일정을 잡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거기에 한참 영화 촬영 중인 권진우까지 행사 일정이 쭉 잡혔다.

“재석이 네가 선택한 애들이 인기가 꽤 좋아. 유명한 쪽은 민경 씨와 권진우지만, 그 외에도 일 따는 게 괜찮거든.”

“살짝 꿀 빠는 조짐이 보이는데.”

“꿀을 빨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습니다.”

재석은 미래의 은어를 살짝 떠벌렸지만, 주명진이 이 말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 상태로 가면 회사 재정에 여유가 생기겠는데.’

해야 할 것이 많은 때에 재정에 여유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인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영화 상영이 끝날 시점이 되기 전에 영화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제작사가 배급사와 연결을 해서 중간 집계 상황에서 수익이 어느 정도 났다는 걸 알아낸 거다.

“됐어. 손익 분기는 넘었어.”

민경에게 줘야 할 액수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집계 결과에 제작사에서 연락이 온 거였다.

“그럼 더 이익이 나겠군.”

실질적으로 떨어지는 돈은 없다. 하지만 민경의 이름에 먹칠을 안 했다는 게 중요했다.

‘다음은 더 크게 베팅할 수 있어.’

이 정도 이름에 이 정도 성과 정도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뒤가 있으니 말이다.

중간 집계 내용을 전달하자 민경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오빠, 잘됐어요. 그 영화 때문에 얼마나 가슴 졸였는데.”

“그래, 이제 다음 작품을 찾자.”

“네!”

걱정 없이 다음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민경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져 있었고, 평소보다 웃는 얼굴이 자주 보였다.

“민경아, 요즘 기분이 좋은가 보다. 자주 웃는 게.”

“모든 게 잘되고 있으니 정말 좋죠.”

“하하하, 그렇지 돈이 잘 벌리고 일은 잘 풀리고 딱히 걱정거리도 없고.”

“근데, 영화 잘되면 드라마처럼 무슨 포상 휴가 같은 거 있나요?”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놀러 갈 생각을 하냐.”

“뭐, 어때요. 공짜로 보내 주는데.”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게 없지만, 그렇게 되면 휴가 계획을 또 세워야 했다.

“휴가 한 번 생길 때마다 일정을 또다시 조정해야 하니까 그렇지.”

“이번에는 일을 다 처리하고 가요.”

“후우, 그럼 혹시 모를 스케줄 관리를 해야 하나.”

재석은 순간 스케줄표를 한 번 쓰윽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쉬는 날이 없는데.”

일정을 만들어 보려 했으나 틈이 없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 그럼 못 가요?”

“못 갈 것 같은데, 한 달 동안 빡빡해.”

“히잉.”

“다른 배우들이 다들 바빠서 일정이 뒤로 밀리는 걸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네.”

민경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정말 기도를 시작했다.

“제발 일정 밀리게 해 주세요, 제발.”

“그 전에 새로운 작품 들어가겠다.”

“네? 안 돼요.”

민경은 다시 절실하게 놀러 갈 기회가 생기길 기도했다.

‘그래, 그동안 열심히 했지. 특별히 쉬는 날도 없이.’

일본에 다녀온 탓에 처리할 일이 많긴 했지만, 민경이 회사 사정이 나아질 수 있도록 일을 많이 한 것도 있었다. 이만큼 일이 많은 것은 민경의 배려였다.

***

민경의 영화 상영이 끝나고 제작사에서 정산 작업에 돌입했다. 제작사의 추정 관람객은 200만 정도였다.

“됐어!”

재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작사에서 받은 수익을 토대로 계산한 것이니 거의 정확할 터였다.

‘회귀했을 때보다 더 높아.’

분명 영화 스토리는 바뀐 게 없다. 이건 민경의 인기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40만이라 이거지.’

재석이 아는 건 160만이다. 확실한 숫자는 아니고 오차는 있겠지만, 그래도 당시에도 상당한 이익을 냈다.

‘그래 40만 정도라면 뭘 해도 플러스 요인이란 말이야.’

덜컹!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는 바로 새로 입사한 매니저 장명준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반가워요.”

새로 입사한 장명준은 재석과 얼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주유의 스케줄이 생각보다 빡빡해, 스케줄을 정리해서 회사에 보고하는 것도 팀장인 주명진을 통해 올라올 정도로 바빴다.

“근데 그거 뭡니까?”

“예, 충무로 한 바퀴 돌면서 받아 온 겁니다.”

배우를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 회사라면 영화, 드라마 대본을 얻어 오는 게 아주 중요했다.

“잘됐네요. 이리 가져와 주세요.”

재석은 가장 먼저 대본을 확인했다.

요즘 재석이 이렇게 대본을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화가 언제 제작에 들어갈지는 알 수가 없는데, 그중 명작을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왔네.”

대본을 보다가 민경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 대본이 하나 나왔다.

‘엄마의 일기장.’

제목 자체는 그렇게 수수하기 그지없지만, 내용은 아주 달달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근데 좀 늦은 거 아닌가?”

개봉 일정을 생각하면 지금 나온 건 좀 늦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한참 따뜻할 때 찍는 장면들이 많다.

“열심히 찍겠네.”

민경에게는 미안하지만, 영화사에서 제공해 주는 포상 휴가를 다녀오는 게 무척이나 힘들 것 같았다.

“포상 휴가가 나온다는 가정에서야 그렇지.”

애당초 포상 휴가는 성적이 웬만큼 잘 나오지 않으면 어려운 부분이다.

재석은 대본 몇 개를 들고 그대로 민경의 집을 찾아갔다.

“갑자기 뭐예요?”

“대본.”

“아, 벌써 일거리예요?”

“전해 줄 거 전해 줬으니 간다.”

“와서 그냥 가요?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요.”

민경은 재석을 붙잡으며 믹스커피를 타서 줬다. 재석은 결국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가 결정한 건 뭐예요?”

“이제 슬슬 네가 정해. 서로 조율하면서 최선을 선택해야지.”

“어머, 그러면서 눈꽃연가 출연은 왜 시킨 거예요?”

“커험, 그거야 윤 감독님은 상당히 특별하잖아. 아마 다음 드라마 연출도 아무리 못해도 중간은 갈걸.”

“뭐, 워낙 대단하신 분이니까요.”

“그런 감독이 되면 찾아가서 부탁을 해야 하니까.”

“혹시 이 안에도 그런 감독님이 있나요?”

“그건 직접 봐. 난 별말 안 할 테니까. 그리고 영화는 감독도 좋지만, 대본도 중요하거든.”

“뭐, 알았어요. 오늘 중으로 대본 다 볼게요.”

“그럼 간다.”

“네.”

민경은 재석을 배웅하고서는 혼자 대본을 봤다. 그렇게 하나씩 읽어 보다가 엄마의 일기장이라는 대본을 발견했다.

“영화네.”

재목부터 뭔가 따뜻함이 느껴졌다.

“흐음.”

민경은 엄마의 일기장을 보더니 거기에 순식간에 빠져들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더 이상 내용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어!”

한 시간 정도가 휙 하고 지나가 버렸다.

그녀는 곧바로 재석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일기장에 대해 물었다.

“오빠, 이거 오빠가 일부러 넣은 거죠?”

(미안한데 아니야. 그게 재미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

“오빠, 저 이거 할래요. 혹시 배역이 정해진 건 아니죠?”

(대본에 따로 기록 안 했잖아. 그거 아무도 선택 안 됐어.)

“당장 할게요.”

(그쪽 제작사에서 굉장히 좋아하겠네.)

민경의 한마디에 영화 출연이 결정됐고, 다음 날 바로 제작사에 재석이 찾아가 민경의 촬영 의사를 전달하자 그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곧바로 계약서 조율에 들어갔다.

“하하하! 민경 씨가 저희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세상까지 다 얻은 기분이라니, 너무 과장이 심하십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리고 임민경 씨를 섭외하는 건 길고 길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최고 액수를 여기 적어 넣었습니다.”

재석은 곧바로 계약서를 보자 거기에 적힌 액수를 보고 놀랐다.

‘3억?’

웬만한 스타 배우들도 이 금액을 받는 게 정말 어려운데 이걸 받는 거였다.

‘이거 거의 한계까지 액수를 내놓았어.’

워낙 인지도 높은 여배우가 되어 버려서 그녀를 앞에 놓고 돈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일 따위는 없었다. 제작사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적어 넣어서 하루 빨리 촬영에 돌입하자는 거다.

“이 정도 액수를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최고의 배우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는 것뿐입니다.”

“이러다 손익 분기점이 꽤 높아지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임민경 씨라면 손익 분기점 따위는 쉽게 넘길 겁니다.”

제작사의 반응은 아주 확실했다. 민경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거기에 추가로 한마디 덧붙여졌다.

“그런데 이런 말씀드리기 뭐 하지만, 충무로에 한 가지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무슨 소문입니까?”

“눈꽃연가의 윤 감독님이 한 소속사 사장의 덕을 많이 봤다면서 소문이 퍼졌더군요. 거기에 현재 촬영하고 있는 영화 스토리도 수정을 해 줘서 그쪽에서 아주 좋아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제작자의 표정이 조금 음흉해지고 있었다.

“크흠, 그 소속사 사장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재석은 일단 모른 척했다.

“어허,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데 모른 척하실 겁니까?”

“공짜는 안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공짜로 일을 해 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재석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제가 그렇게 탐나시는 모양입니다.”

“탐나죠. 그 옹고집 윤 감독이 덕을 봤다 할 정도면 말이죠.”

충무로 바닥에 소문이 확실히 난 모양이다.

“좋습니다. 해 드리죠. 물론 영화를 찍는 감독님이 허락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럼 직접 만나게 해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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