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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매니저-53화 (53/152)

54화

민경한테 들어갈 돈 액수를 가지고 귀여운 협박을 하는 감독이었지만, 재석은 달랐다.

“감독님, 그렇게는 곤란합니다. 제가 누르면 아이디어가 샘솟는 기계도 아니고, 따로 해야 할 일이 이것 말고도 많습니다.”

재석이 발을 빼려고 하자 감독은 아쉬워했지만, 사정을 이해했다.

“좋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생각나면 돕겠습니다. 항상 돕지 못하는 건 이해해 주십시오.”

“그 정도만으로도 고맙지.”

적당히 타협을 보고 난 뒤에 재석은 안도를 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민경이 잠시 휴식 시간에 나와 재석의 곁에 앉았다.

“오빠, 아까 감독님이랑 무슨 이야기했어요?”

“일 이야기지. 자기랑 같이 보면서 이야기 좀 나누자는 거.”

“그래서요?”

“거절했어. 대본 각색해 준 거 말고 다른 건 기대 말라고 했지.”

“왜요? 오빠라면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곤란해. 해야 할 일이 많거든.”

“자영이 때문에?”

“그쪽 오디션에 신경 써야 하니까. 내 일이 매니저잖아. 배우들 신경 써야지.”

“내가 중국 가는 일만 아니면 오빠가 이럴 필요는 없는데.”

“어쩔 수 없잖아. 주 팀장님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 입장인데 팀장님이 원래 하고 있는 일도 있는 상황이고.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리고 자영이 한 번은 신경 써야지.”

“뭐, 오빠가 신경 쓰면 다 잘되는 것 같으니까.”

재석이 신경 써서 안 되는 배우는 없었다. 그가 관리해 준 배우들은 하나같이 성공해 왔다.

“그래도 내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너 하나야. 그거만 기억해 줘.”

“당연하죠. 오빠는 슈퍼스타 임민경의 매니저잖아요.”

“어허. 스타가 됐지만, 그거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거야. 항상 조심해야 해.”

“하여튼 영감님처럼 잔소리는.”

민경은 실실 웃으며 재석의 옆에서 살짝 수다를 떨다가 대본을 다시 봤다.

이날 촬영이 끝나고 재석은 민경을 데려다주고는 바로 문자영에게 가서 그녀가 연구한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말했지만 캐릭터에 대한 너의 생각을 말해 줬으면 좋겠어.”

“음,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미수는 정말 언니에게 의지하고 계모를 무서워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지금 상황을 순응하고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캐릭터예요. 전 이해받는 캐릭터가 좋아요.”

“오, 아주 간결한데.”

“저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요.”

문자영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자의 길을 걸어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빨리 인지도를 얻고 싶어 했다.

“자영아, 그렇게 급하게 인지도를 얻으려고 하지 마라. 넌 아직 젊어 앞으로 10년 넘게 기회가 있단다.”

“알겠어요. 전 아직 젊으니까 기다릴게요.”

“그리고 연기는 이해 받으려고 하면 안 돼. 연기는 내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나에게 오는 거야.”

“그런데 배우는 연기를 통해 사람들을 이해시키잖아요.”

“아니, 그렇지 않아. 대학로에 하고 있는 수많은 연극들은 순수하게 연기가 좋을 뿐, 관객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 그걸 그대로 표현할 뿐이란다.”

아직 어린 문자영에게는 어려운 말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기억은 해야 한다. 타인에 의지하여 연기를 펼치는 건 연기자에게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요소가 안 된다.

“자영아, 넌 의지가 강한 아이야.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연기하지마라. 연기는 재능보다는 노력. 스스로를 갈고 닦는 어떤 의미로 스님처럼 수양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재석은 연기를 스스로를 위해 하라 말했고 그녀가 타인의 의식으로 무너지는 걸 막아야 했다.

“네에.”

재석은 문자영의 약간 풀 죽은 모습에 그녀를 살짝 토닥여 줬다.

“일단 자영이 네가 생각한 배역에 대한 해석은 아주 좋았어. 이걸로 준비하자. 물론 오디션에서 감독이 뭘 시킬지는 모르지만.”

“정말요?”

“해석은 완벽해. 이제 표현하는 것만 남았어. 거기에 따른 연습은······.”

“평상시에도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그래, 연습 말고는 없지. 다음에 보자.”

“내일 안 오세요?”

“내일은 야간 촬영이 있어서 그때까지는 있어야 해. 그다음 날 보자.”

“네, 그럼 그때까지 연습해 놓을게요.”

“그래.”

***

재석은 사흘 뒤 권진우를 마주하게 되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해야 합니다.”

권진우는 굉장히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재석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저도 하고 싶지 않지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돈이 걸려 있어서 문제죠.”

재석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권진우의 연애가 아니라 열애 기사다. 그게 터지는 순간 무척 곤란해진다.

“거기에 상대가 현재 같이 작업하고 있는 여주인공인 김여름일 줄이야. 전혀 예상도 못했습니다.”

재석은 예상 리스트에 올리지도 않는 인물이 툭 하고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

권진우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뭐,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연애는 관심 없지만, 열애 기사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곤란하게 보는 건 그 기사죠. 기사만 나지 않게 한다면 어떤 짓을 해도 관여 안 합니다.”

재석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회사가 받게 될 피해에 대해 확실히 말해 두는 게 안정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면 절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열애 기사를 막기 위해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고 싶은 겁니다.”

“상호 협력이요?”

“권진우 씨가 아니라 상대방 회사와의 협력이죠. 이미 지금쯤 김여름 소속사에서도 알게 됐겠죠.”

“설마요. 그쪽 회사에 알려지겠어요?”

“권진우 씨 아직 연예계를 너무 모르시는 것 같은데, 이 바닥에서 연애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이지만 이 바닥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아니에요.”

부우웅!

재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네요.”

재석은 권진우를 주시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갑자기 핸드폰을 통해서 권진우가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렸다.

(당신! 소속 연예인 어떻게 관리한 거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전화를 건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참 예의 없네요.”

재석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 모르는 번호 어디일 것 같나요?”

재석의 물음에 권진우는 불길한 느낌이 왔다.

“잠시 전화할 수 있을까요?”

“하세요. 그쪽 전화를 안 받을 확률이 무척 높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권진우는 전화를 걸어도 상대가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

“계속해 보세요.”

재석은 느긋했다. 연예인들의 연애는 생각보다 힘들다. 헤쳐 나갈 난관들이 많다.

“······.”

권진우는 그 뒤에도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안 되었다. 반대로 재석의 핸드폰은 거칠게 울려 댔다.

부우웅!

“여보세요.”

(야, 이 새끼야! 어디서 전화를 끊어!)

김여름이 한참 뜨는 여자 연예인이라서 저쪽은 불이 났지만, 그렇게 욕해 봐야 칼자루는 재석이 쥐고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언론사 찾아갑니다.”

(······.)

갑자기 상대방의 말이 없어졌다. 언론사를 들먹이면 고생하는 건 김여름 소속사였다.

(너, 어디서 협박질이야!)

“협박? 진짜 협박할까요? 저야 손해날 게 없어요. 어차피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데. 기사에 얼굴 좀 나오게 해서 유명세 좀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요.”

(······.)

다시 침묵에 들어간 저쪽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네요. 물론 해당 배우들 빼고 말이죠.”

(어디서 볼까?)

“저랑 얼굴도 안 본 사이인데 그렇게 막말하시면 곤란합니다.”

(크흠, 어디서 볼까요?)

“저희 회사 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오시죠.”

재석은 장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권진우는 불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화가 안 됩니다.”

“당연하죠. 그쪽에서 핸드폰 같은 연락되는 물건을 압수했을 겁니다.”

“제발, 그쪽이랑 연락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권진우는 처음과 다르게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재석을 바라보았다.

“권진우 씨, 처음보다는 표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실성했었나 봅니다.”

곧바로 저자세로 나오는 권진우였다.

“일단 오늘 저쪽과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 연애에 대해 간섭 안 합니다. 다만 열애 기사가 나는 건 곤란합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곤란합니다.”

“내일도 촬영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집에 가서 푹 쉬시고, 내일 일 열심히 하세요. 결과는 차후에 알려 드리죠.”

“예, 감사합니다.”

권진우는 누가 위에 있는지 확인만 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재석은 회사에서 기다리다가 상대방 소속사에서 사람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카페에 갔다.

‘저 사람들이군.’

누가 봐도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어서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권진우 씨 소속사 대표 전재석입니다.”

“크흠, 반갑습니다. 김여름 씨 매니저 강준입니다.”

서로 인사는 했지만,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서로 피곤하게 서론 이야기할 필요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죠.”

강준의 말에 재석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서로 길게 봐서 좋을 것 없는 사람이었다.

“뭐, 좋습니다. 그럼 그쪽에서 먼저 이야기하시죠. 서로 타협점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가장 먼저 그쪽 연기자 단속 좀 해 줬으면 좋겠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네요. 연애를 찬성하는 게 아니군요. 그럼 참 볼만하겠네요. 김여름 씨가 어린애도 아니고 연애를 못하게 단속하시려고 하다니.”

재석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바라본 순간, 상대 매니저가 긴장을 했다.

“그쪽 여배우의 반응은 어떤가요? 무섭게 화를 내며 분노했을 텐데요.”

“무,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한 번 화를 내면 누구도 쉽사리 말릴 수 없다고 하던데.”

“큼!”

김여름은 어여쁜 얼굴과 다르게 화가 한 번 폭발하면 쉽사리 주체를 못했다.

“어떻게 핸드폰 사용을 막았는지 모르지만, 그게 오래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가끔 촬영장에 갈 일이 있어서 몇 번 얼굴을 봤는데, 그 사람이 그냥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고는 생각지 않거든요.”

재석은 처음에 잠깐 얼굴 표정이 굳어진 거 빼고는 여유가 있었다.

“그쪽은 안 막을 생각입니까?”

“막는다면 열애 기사 정도죠. 그 외에는 전혀.”

재석의 반응에 상대가 화를 냈다.

“아니, 매니지먼트 회사 맞습니까? 어떻게 배우 관리를 그렇게 합니까!”

“매니지먼트 회사는 맞지만, 회사의 이익에 침해되지 않는다면 상관 않습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죠. 오히려 전 도울 겁니다.”

“뭐라고요?”

재석의 발언은 상대방에게 폭탄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이쪽에서 막는다 해도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원만한 해결이 절대 불가능하니까.

“정말 이렇게 나올 겁니까?”

강준이 어금니를 꽉 물며 대답하자 재석은 이제 웃기까지 했다.

“왜요. 한번 제대로 해보시게요? 전화상으로도 말했지만, 전 손해날 게 없는데요.”

“이보세요!”

“솔직히 말하죠. 그거 막는다고 정말 그들이 못 만날까요?”

“무슨 말을!”

“몰래 만날 겁니다. 연락처가 없어도 촬영 중이니 그곳에서도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회사와 언론사 양쪽을 피하겠고, 언젠가 열애 기사 터지겠죠. 그걸 보고 싶은 건 아닐 텐데요.”

“그래서 못 만나게 막자는 거 아닙니까.”

“잘나가는 배우를 그렇게 막아서 회사에 이득이 있을까요? 아니요. 반감만 가득해서 연기 이외에 일은 안 하려고 들걸요. 세상일이 그렇게 막는다고 될 거였으면 독재자들이 세상을 지배했겠죠.”

재석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막아도 안 된다는 걸 말이다.

“하루 24시간 감시할 수 있으면 하세요. 볼만하겠네요. 사랑을 참는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네요.”

재석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이 확연히 달랐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오늘은 타협점이 없어 보이네요.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음에 보죠. 시간이 지날수록 그쪽 회사에 유리할 일은 없어 보네요.”

“끙.”

강준은 재석의 저 여유 있는 모습의 근거를 알고 있었다.

“다음에 보죠. 딱 이틀이 지난 후 열애설이 터지고 나서 기사에 제가 할 말이 뭐가 될지 기대하세요.”

“이, 이보세요.”

재석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저쪽에서 할 수 있는 건 솔직히 없다. 돈을 벌어다 주는 배우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결국 한 발 물러서야 하는 게 회사 측이다.

그리고 다음 날, 김여름의 매니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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