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54화 (54/152)

55화

“네, 제이이브입니다.”

(솔직히 말하세요. 김여름 거기 있습니까?)

“모릅니다. 그쪽 연예인을 왜 저한테 찾습니까. 전화 끊습니다.”

전화를 끊어 버리자 다시 연락이 왔지만 재석은 받지 않았다.

“혹시, 회사 전화로 김여름 찾는 전화 오면 아는 대로 말하세요. 그리고 한 번 말했으면 다시 받지 마세요.”

재석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민경을 데리고 회사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김여름의 매니저인 강준은 민경의 촬영장까지 쫓아와 재석을 찾았다.

“이거······.”

“당신 알고 있잖아. 여름이 어디 있어?”

강준은 촬영장이라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재석을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이봐, 그렇게 하면 내가 찾아주고 싶어도 찾을 마음이 싹 사라져. 그리고 난 김여름이 어디로 숨었는지 전혀 몰라. 헛다리 제대로 짚었어.”

재석 역시 지지 않고 대답했다.

두 사람의 험악한 분위기가 촬영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각해지자, 결국 감독이 나서서 재석과 강준을 떨어트려 놓았다.

“이봐! 당신 뭐야! 남에 촬영장에 와서 왜 방해야! 당신 회사 어디야!”

회사 어디냐는 말에 그는 할 말을 잃고 곧바로 도망쳐 버렸다.

“전 대표, 저 사람 누구야?”

“김여름 씨 매니저입니다. 현재 잠적 중이라고 하네요. 근데 저보고 찾아내라고 합니다. 알지도 못하는데.”

“허허, 참.”

강준이 사라지자 촬영은 다시 원활히 이어졌다.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민경이 강준에 대해서 물었다.

“그쪽 매니저가 왜 오빠를 닦달하는 거죠?”

“권진우 때문이야. 둘이 사귀고 있었는데 양쪽에 발각됐고, 난 열애 기사만 안 나오면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저쪽은 연애를 강압적으로 제재했어.”

“어머, 세상에. 그래서 오빠한테 찾아와서 그런 거예요?”

“그래, 근데 좀 짜증나네.”

“저도 짜증나요. 찾아와서 그런 짓이나 하고.”

민경은 재석에게 불편한 손님이 왔는지도 몰랐고, 그렇게 빨리 도망갈 줄도 몰랐다.

“지금은 저렇게 열을 내지만, 곧 사정사정하게 될 거야.”

“그렇게 난장을 피우고 갔는데요?”

“급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거든.”

민경을 집에 데려다주고 재석도 퇴근을 하려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권진우?”

재석이 전화를 받자 권진우는 급하게 이야기했다.

(사장님, 이쪽으로 좀 와 주실 수 있으세요?)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제 연애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죠?)

“하아, 김여름이 거기 있군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쪽 회사 사람들이 찾아왔거든요. 김여름 내놓으라고.”

(그, 그럼 사장님에게는 못 가겠네요.)

“차라리 이쪽 말고 따로 방을 구해 드리죠. 연애를 돕는다고는 말을 했으니까.”

재석은 한 번 뱉은 말을 지키려고 권진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 김여름이 있는 걸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여름 씨 회사에서 아침부터 저한테 찾아오던데요.”

“예상하고 있었어요.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두 분 사이가 이 정도로 깊으셨는지는 몰라서 꽤 놀랐습니다.”

재석은 두 사람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인연이라는 게 영원하기만 할 수는 없는 거겠지.’

결국 미래에는 헤어지게 될 두 사람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 서로 좋아한다면 그에 대해 재석이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권진우 씨, 제가 뭘 해 드리면 될까요?”

“방을 구해 주세요. 내일 영화 촬영도 있어서 그쪽도 가야 하는데······.”

“매니저가 없는 상황이죠.”

“예.”

“김여름 씨 단독 신 촬영 일정은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같이하는 날짜만 어떻게 해 주세요.”

“그건 어렵지 않죠. 하지만 문제는 숙소인데, 서울 인근에서는 어렵겠네요.”

“어떻게 안 될까요?”

“내일 촬영장 일정을 확인해서 근처로 예약을 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재석은 고개를 숙이는 권진우를 보고 이때만큼은 그가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 마음 참 신기하네.’

이렇게 애틋한데도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 기묘한 느낌이었다.

‘민경이도 그랬을까?’

그건 알 길이 없었다. 회귀 전에도 민경의 연애사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으니까.

“그럼 움직이죠. 내일 촬영장 근처로 가는 게 우선이니까.”

그렇게 재석은 권진우를 도와주며 숙소까지 해결을 해 줬다.

집으로 돌아온 재석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네.”

(전 대표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바로 강준 매니저에게 전화가 온 거였다.

“참나, 그쪽이 저한테 했던 말을 기억 못 하나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전화해서는 사과를 한다. 하지만 재석은 사과를 받아 줄 마음이 없다.

“난 모르니까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재석은 핸드폰 배터리를 빼 버리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물론 잠들기 전에 다시 배터리를 끼웠다.

아침이 돼서 회사에 출근하기 무섭게 강준은 재석의 회사로 찾아와 있었다.

“사장님!”

“아, 몰라요!”

재석은 그의 말을 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모른다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뭐, 결국 김여름은 오늘 붙잡히겠지.’

김여름이 촬영장에 간 이상, 그쪽에서 그녀의 소속사에 연락을 넣을 터였다. 일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재석은 김여름의 매니저와 만나게 되었다. 다만 매니저는 강준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갑습니다. 김여름 씨의 새 매니저 박웅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재석입니다.”

“저희 회사에서도 두 사람의 연인 관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렇게 됐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뭘요. 회사에 이익을 해치는 일만 아니라면 전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강준 씨는?”

“안타깝게도 퇴사하셨습니다.”

말이 좋아 퇴사지, 해고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다. 아마 그 사람은 다시 매니저 생활은 못할 거다.

“일단 두 사람의 스케줄부터 공유하죠. 분명 두 사람 모두 스케줄이 없는 날에 만나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때 파파라치들이 꼬일 확률이 높겠죠.”

재석과 박웅찬은 권진우와 김여름의 스케줄을 서로 공유했고, 그것을 통해 두 사람이 언제 만날지 파악했다.

“그런데 저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서로의 일정 공유는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이 나중에 헤어지게 되면······.”

“후우, 서로 만나는 일 없게 해야죠.”

“그렇죠.”

재석은 이미 오랜 세월 경험을 한 상태라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다.

남들이 보면 뭘 저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열애 기사 하나 때문에 인기가 추락하는 것도 그는 여러 차례 봐 왔다.

“그럼, 각자 협의된 거죠?”

“예.”

“차후에 일이 있으면 또 만나서 이야기하죠. 그때는 제가 아니라 권진우의 담당 매니저와 만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재석은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경은 촬영장으로 가는 길에 살짝 심통 난 얼굴을 했다.

“갑자기 표정이 안 좋네.”

“진우 오빠가 부러워서.”

“왜 부러운데. 설마 연애하는 것 때문에?”

“응!”

거칠게 대답하는 민경의 대답에 재석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너도 연애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민경은 깊은 한숨만 내쉬며 아쉬워할 뿐이다.

“에휴, 정말 나도 연애하고 싶다.”

“커흠.”

재석은 권진우가 연애를 시작한 이상 민경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솔직히 민경이가 연애하는 거 막고 싶다.’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권진우보다 민경이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민경은 재석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답답해했다.

“후우.”

재석의 귀에 들릴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쉰 민경은 간혹 재석을 향해 따가울 정도로 무섭게 한 번씩 째려봤다.

“민경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말해. 속에 쌓아 두고 있으면 병 된다.”

‘내 속도 모르고!’

결국 민경은 끝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좀 달래 줘야겠는데.’

재석은 민경을 달래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권진우와 관련된 이슈가 나오지 않도록 관리할 계획을 세웠다.

***

재석과 문자영이 영화 아름다운 자매의 오디션장에 도착을 하니, 오디션을 보러 온 이들이 꽤 있었다.

‘어디 보자, 오늘 다른 주인공이 왔나?’

하지만 재석은 그 사람을 찾다가 말았다.

‘다들 매니저를 끼고 왔네.’

역시나 혼자 온 이들이 없었다. 감독이 오디션 정보를 회사들에게만 뿌렸다. 이는 어느 정도 연기 훈련이 되어 있는 이들 중에서 뽑겠다는 의중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에휴, 됐다.’

이번에도 미래의 유망주 사냥은 틀린 모양이었다.

재석은 문자영과 잠시 기다리면서 스케줄을 확인했다.

‘일주일 뒤에 중국인가?’

한국에서 찍을 수 있는 촬영은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었다. 남은 건 중국, 그것도 윈난성으로 가서 한 달간 촬영이 계획되어 있었다.

“······.”

문자영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재석은 그걸 보면서 그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후우.”

“끝났니?”

“네.”

“그럼 들어가자. 벌써 시작할 시간이다.”

“벌써요?”

“차례가 상당히 빨리 왔어.”

문자영은 재석의 뒤를 따라 오디션장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 심사위원이 자리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문자영이라고 합니다.”

“임민경이 나왔던 영화에 출연했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뭘 준비 했는지 볼까요?”

그 말에 문자영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공포에 떨며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닥을 끌며 뒤로 물러나 외쳤다.

“자,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손을 모아 기도하는 문자영은 스스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누군가 몸을 흔드는 것처럼 행동했다.

“꺄악! 엄마!”

그러다가 눈물이 터지면서 하염없이 흐느끼며 울었다.

짧지만 강렬했고, 현실감이 넘쳤다. 허공을 보고 있었지만 그 앞에 누군가가 있어 보였다.

심사위원을 하고 있던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카메라 설정을 해 줄 테니까 카메라 보면서 다시 해 줄래요?”

“네.”

언제 그랬냐는 듯 문자영은 다시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 세팅이 끝나자 카메라를 직시하면서 똑같은 연기를 다시 펼쳤다.

“그 연기 말고 언니랑 있는데 약간 안심되면서 주변을 경계하듯이 해 볼래요?”

“네.”

문자영은 대답을 한 직후 바로 연기에 몰입했다.

오른손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언니의 팔을 잡고 따라가는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약간 주변을 경계하는 연기를 펼쳤다.

“좋습니다. 카메라 앞으로 조금 다가와 주실래요?”

“네.”

자영이 앞으로 다가가자, 감독은 카메라를 유심히 보더니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 한 가지를 물었다.

“혹시, 턱을 괴고 귀엽게 고개를 시계추처럼 해 볼래요?”

“아······ 네.”

상반된 연기 주문이었지만, 문자영은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러고는 감독은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더 했다.

“거기서 휘파람 불어 볼래요?”

휘휘휘!

자영은 휘파람 실력이 대단하진 않지만 약간의 음을 넣어 부드럽게 휘파람을 불었다.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문자영은 끝났다는 말에 재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재석은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줬다.

“잘했다. 아주 좋았어.”

재석은 문자영을 다독이며 그렇게 말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결과는 며칠 걸리니까 그동안 푹 쉬면서 지내.”

“네, 사장님!”

오디션이 끝나자 문자영은 아주 밝은 웃음을 선사해 줬다.

“이제 오디션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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