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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매니저-56화 (56/152)

57화

부릉!

버스를 타고 몇 시간 가서 중국의 여러 고성 중 하나인 리장 고성이란 곳에서 구경을 했다.

“와아, 정말 예뻐요.”

길거리도 벽도 하나같이 옛날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고성을 보면서 이곳이 진짜 중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민경은 하루 종일 웃고 다녔다. 그 밝음을 사진으로 꼭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찰칵!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왔고, 재석과 민경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손을 흔드는 유럽인이 있었다. 그의 손에는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들려 있었다.

사진기 위로 사진 한 장이 나왔고 그 유럽인은 영어로 말을 건넸다.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불편하시다면 사과드립니다.”

재석이 그 이야기를 민경에게 말해 주자, 민경은 괜찮다고 말했다.

“오빠, 한 장 더 찍어 줄 수 있냐고 물어도 돼요?”

“알았어.”

재석은 유럽인에게 한 장만 더 찍어 줄 수 있냐고 묻자 그는 아주 흔쾌히 들어주었다.

“오빠, 같이 찍어요.”

재석은 별생각 없이 같이 찍었는데 민경이 순간적으로 팔짱을 꼈다.

“웃어요. 고개 돌리지 말고.”

어떻게 미소를 지은 상태에서 정확히 발음하는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원, 투.”

찰칵!

유럽인은 바로 사진을 뽑아 내밀었다.

“둘이 아주 잘 어울리네요. 여행 잘 즐기세요.”

“고마워요.”

“오빠, 뭐래요?”

“아, 그게······.”

재석은 조금 부끄러운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젊은 영감님, 어서 말해 보세요.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음, 뭐, 잘 어울린데.”

민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랑 오빠랑 지낸 시간이 있는데 그 정도쯤이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 민경은 손에 넣은 두 장의 사진을 작은 가방 안에 고이 보관했다.

‘첫 번째 사진이네.’

겨우 리장 고성 하나 돌아보는 하루였지만, 민경은 아주 즐거웠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다시 돌아와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주 좋았다.

잠깐의 여행을 즐기고 나서 촬영이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 재석은 주명진에게 전화로 보고를 받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돌아가서 볼게요. 핵심적인 건 뭔가요?”

(대단한 건 없고, 회사의 자금이 조금 흑자가 되었어.)

“얼마나요?”

(2억 정도.)

아주 담담하게 말하는 주명진이었다. 회사가 그렇게 돈을 벌었는데도 별 느낌 없는 모양이었다.

“꽤 무덤덤하네요.”

(월급만 잘 주면 난 행복해. 그리고 흑자가 났다고 네가 2억을 다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크흠!”

너무 정곡이라 할 말이 없다. 회사 자금에서 이런저런 것 다 빼고 나서 남는 돈이 재석의 돈이다. 그래도 대략 1억 정도는 재석의 손에 들어올 터다.

“비율은요?”

(민경 씨가 60, 권진우가 20, 나머지 다 합쳐서 20 정도.)

“아직은 민경이 비율이 너무 크네요.”

(어쩔 수 없어. 아직 수익 구조가 단순하니까. 몇 명 더 받고 그 사람들이 스타가 되면 각자의 수익 비율은 낮아지고 전체 이익은 늘어나겠지.)

“알겠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 봬요.”

(그럼 고생하시게.)

주명진은 전화를 끊자 재석은 입가에 미소가 씰룩거렸다.

“이제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지.”

회사를 차린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조금은 더 적자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참 정보를 안다는 게 이렇게 무서워.”

재석은 혼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날 하루를 끝냈다.

***

K방송사에서는 다가오는 연말 문화 교류 사업에서 어떤 외화를 수입할지 결정할 때가 찾아왔다.

“이봐, 이번에 어떤 드라마로 할 거야.”

“음, 올해 초에 했던 눈꽃연가가 딱 적당할 것 같은데요.”

“그거, 판권 계약 우리가 전부 먹는 거야?”

“아뇨. 그쪽 외주랑 일부 떼 주기로 했는데요.”

“비디오 아냐?”

“아뇨.”

“계약서 가져와 봐.”

이번 문화 사업 책임자인 김문직 국장은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면서 얼마나 수익이 나올지 계산했다.

“판권 주고 해도 우리한테 떨어지는 이익이 그리 나쁘지 않겠는데.”

“나눠 먹어도 손해는 안 날 겁니다.”

“그럼 추진해. 그쪽이랑 연락하고, 그때 출연했던 배우 한 명 정도 나올 수 있는지 확인 좀 해 줘.”

“근데 올까요? 너무 스타가 돼서 쉽게 움직이기 힘들 것 같은데.”

이제 그들은 쉽사리 움직이는 무명 배우가 아니었다. 인기 배우가 돼서 이제는 정말 손대기 어려워졌다.

“혹시 모르니까 전화는 한번 걸어 봐.”

상사의 지시에 부하 직원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K방송사 OO부서 고두철입니다.”

고두철은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김문직을 바라보았다.

“국장님, 임민경 씨가 현재 중국 촬영 중이라고 합니다. 참석을 하더라도 중국 일정이 먼저 끝나야 한답니다.”

“그래도 날짜 좀 어떻게 맞춰 달라고 해. 눈꽃연가의 해외 진출을 계획하는데 참여해야지.”

고두철은 다시 내용을 전달했고, 중국에 연락해서 일정을 확인한 후에 이야기해 주겠다고 답변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임민경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도착했다.

“부장님, 참여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좋아, 눈꽃연가에 출연했던 다른 연기자들에게도 전화 돌려. 내용은 알지?”

“예, 부장님.”

하지만, 다른 배우들은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

민경이 중국 일정을 정리하고 오자마자 내뱉은 말은 하나였다.

“아, 힘들어.”

“어서 차에 타. 오늘 거기 가야 해.”

“아, 왜 하필 오늘이야. 그 문화 뭐시기 때문에 꼭 가야 해요?”

“가야지. 방송사에서 수억이 오가는 사업을 하는데.”

“하아, 진짜.”

“안 가면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

단적으로는 일거리가 줄어들 수 있었다. 그 탓에 재석은 결국 감독에게 이야기해서 촬영 순서까지 바꿔 일정을 조정했다.

“아, 좀 쉬나 했는데.”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 쉬면 돼. 가서 일본 관계자들 만나야지. 잊었어? 내년에 일본 진출하는 거. 벌써 11월 말이야.”

“아, 그놈에 일본. 확 침몰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그런 영화 나오면 볼래?”

“응! 꼭 볼래!”

“그래, 꼭 봐라.”

재석은 일본이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영화가 미래에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영화, 한국에서는 망했었지. 그것도 처참하게.’

재석은 그 영화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행사장에 도착했고, 재석은 차 안에서 졸고 있던 민경을 깨웠다.

“민경아, 다 왔어. 일어나.”

“응?”

민경은 힘겹게 눈을 떴고, 재석도 하품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행사장에는 이미 국내 방송사뿐만 아니라 외국 방송사 관계자들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안녕하세요.”

민경은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화사하게 웃으며 방송사 관계자들을 대했다.

재석은 민경과 함께 움직이며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제이이브의 전재석입니다. 반갑습니다.”

행사장에 있는 이들은 다들 방송 고위직 인물들이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국장님도 이 자리에 직접 오셨습니다.”

“국장님이요?”

방송사 거물의 등장이다. 드라마국을 책임지는 보스가 왔다는 건 그만큼 이 자리가 중요하다는 거였다.

“이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임민경 매니저이자, 소속사 대표인 전재석입니다.”

“오, 자네가 임민경의 매니저인가? 난 김문직이네. 혹시 임민경 일인 기획사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같이 일하는 배우들이 아역을 포함해 넷 더 있습니다.”

드라마 국장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국장과 만날 수 있다는 건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다.

“오호,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이제 서른 됐나?”

“아직 안 됐습니다.”

그 말에 김문직은 깜짝 놀랐다. 서른도 안 된 이 청년이 지금 임민경을 데리고 있는 거다.

‘혹시······.’

국장은 재석과 민경을 번갈아 보면서 혼자 음란마귀가 씌워졌다.

“허허허, 그래 두 사람 잘해 봐.”

음란마귀가 씌워진 국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오해하면서 한마디를 했다.

“너무 일찍 결혼하지는 말게.”

“네?”

갑자기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재석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이런 홍두깨를 본 적이 없었다.

‘저 국장,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긴 세월을 경험했던 재석도 이번만큼은 그 내막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はじめまして。”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본어에 재석은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일본 관계자와 만나는 건가?’

이 자리에 나왔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증거다.

‘누구냐?’

재석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한 일본인이 드라마 국장 김문직과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나카쿠라 코우이치 씨.”

동시 통역사가 국장 옆에서 바로 통역을 해 주면서 인사말을 전달하자 그쪽도 반갑다고 했다.

“저 역시도 반갑습니다, 김문직 상.”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하면서 굳건하게 손을 잡았다.

“저희 방송사에서 준비한 것을 좀 보시죠.”

“하하하, 그런데 이쪽에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십니까?”

통역사를 통해 내용이 전달되자 민경은 살짝 웃었다.

“이쪽은 저희가 성공리에 드라마를 종영한 눈꽃연가의 배우 임민경 씨입니다.”

“오호, 드라마의 여배우를 직접 데리고 오실 줄이야. 의지가 대단하십니다.”

“뭘요.”

국장도 웃었고 그도 웃었다.

하지만 민경의 뒤에 있는 재석은 웃지 않았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

웃고 있지만, 둘 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웃는 웃음일 뿐이다. 저 뒤에 무서운 탐욕이 도사리고 있는 자리다.

“저희가 준비한 작품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죠.”

국장은 준비된 부스에서 나카쿠라 코우이치에게 상당히 압축된 내용의 눈꽃연가를 보여 줬다.

그는 요약된 눈꽃연가를 한 번 쓰윽 보더니 굉장히 흥미 가득한 눈으로 국장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꽤 좋은 작품입니다. 여주인공이 지금 이 자리에 저랑 같이 있는 게 신기하군요.”

“하하하, 제가 특별히 초대한 손님이죠.”

국장은 민경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좋은지 그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근데 남자 주인공은 어디 갔습니까?”

“아쉽게도 남자 주인공은 도저히 일을 멈추지 못해서 못 오게 되었습니다.”

“저런, 아쉽군요.”

“그래도 솔직히 제가 남자이다 보니 여주인공이 더 좋더군요.”

“허허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뭔가 뜻이 맞았는지 아주 죽이 척척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계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죽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모습은 싹 사라지고 철저한 비즈니스를 위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한국 작품의 가격이 얼마입니까?”

“6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돈 이야기부터 꺼내면서 곧바로 비즈니스를 실현시키고 있었다.

“크흠, 그 가격에는 살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는 인기가 별로 없으니까요.”

물론 통계상으로 저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눈꽃연가가 방영되는 그 시점에서는 과거의 정보나 통계는 전혀 맞지 않게 된다.

“그래도 방송사에서 공들여 찍은 작품이죠. 일본에서도 통할 겁니다.”

“하아, 저희가 아쉽게도 공짜로 돈을 퍼 주는 그런 곳은 아닙니다.”

나카쿠라는 국장의 말보다는 통계에 근거한 정보를 쏟아 내면서 한국 드라마의 가격을 계속 깎으려 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들면 일어섰겠지만, 요약본만 보고 나서도 자리를 딱 붙이고 있는 건 성공 가능성을 읽은 거지.’

재석도 알고 국장도 알고 있는 거지만, 상대는 돈을 깎으려고만 해서 답답했다.

“어렵습니다. 저희가 나름 많은 투자를 해서 얻은 겁니다.”

김문직은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가격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나카쿠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액수는 곤란합니다.”

“아, 갑자기 이러십니까.”

국장이 나카쿠라를 잡았다. 정말 조삼모사도 아니고 난관이 가득해 보였다.

“혹시, 그 근거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갑자기 재석이 어설픈 일본어로 이야기하자 시선이 쏠렸다.

“근거가 있나?”

“있습니다.”

“지금 볼 수 있나?”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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