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59화 (59/152)

60화

지금까지도 몇 차례 각색을 부탁받아 진행하긴 했으나, 이렇게 정식으로 계약으로 건넨 곳은 처음이었기에 재석은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꼈다.

“근데 액수가 회당 기록이네요?”

“맞습니다. 대부분은 작가님이 하시겠지만, 한 번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셨으면 합니다.”

“그분과의 이야기는 끝난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기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며 꽤 좋아하시더군요.”

“다행이네요.”

작가들 중 까다로운 사람은 재석이 손대는 걸 싫어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원하는 사람만 해야 한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하지.’

촬영이 순조롭게 가면 누구 하나 고되게 촬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금 대본을 봤을 땐 딱히 손댈 부분이 없어 보이네요.”

초반은 정말 손댈 게 없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후반이 걱정되긴 합니다. 사전 제작이 아닌 이상, 뒤로 갈수록 작가가 힘들어지겠죠. 감독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장님과 계약을 추진하고자 하는 겁니다. 사장님이 그런 부분들을 해소시켜 주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재석이 막히는 부분 있을 때마다 도움을 준다면 촬영 자체가 한결 수월해지고 다들 편해질 터였다.

“알겠습니다.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은 그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계약하겠습니다.”

재석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는데, 이쪽에서 주는 돈이 회당 삼백이었다.

‘회당 삼백이라······.’

이건 고스란히 재석에게 떨어지는 돈이었다.

‘나쁘지 않아.’

사인을 끝낸 재석은 계약서를 넘겨줬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로 악수를 나누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했다.

***

재석은 문자영의 촬영장에 한 번 찾아가게 되었다.

“사장님, 오늘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야, 그냥 때마침 시간이 비었었거든요.”

문자영은 재석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촬영에 들어갔고, 재석은 시간을 때울 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저 건너편에서도 야외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도 촬영하나?”

재석은 저쪽에선 뭘 촬영하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자영이만 아니었으면 구경하러 갔을 텐데······.”

촬영의 끝을 결정하는 건 감독이다. 감독이 끝을 선언하기 전까진 자영의 곁을 지켜야만 했다.

결국 재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후 구경하러 가길 포기했고, 시간이 흘러 자영의 촬영이 끝이 났다.

“사장님, 끝났어요.”

자영이 밝은 미소를 띠며 말하자 재석이 다가와 물었다.

“자영아 혹시 다른 촬영장에 한 번 안 가 볼래?”

“촬영장이요?”

“저기 보여?”

자영은 재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열심히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보여요.”

“살짝 가서 구경 한번 할래?”

“근데 구경할 수 있을까요?”

“뭐,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재석은 멀리서나마 촬영하는 걸 구경하고 싶었다.

평상시에는 촬영장을 매일 일로써 접하다 보니 편안하게 즐기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구경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저쪽 촬영장에 가서 살며시 얼굴을 내비쳤다.

“응?”

촬영장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 촬영장을 관리하던 조감독이 다가왔다.

“이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 옆에 있는 촬영장 일이 다 끝나서 구경을 좀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옆 촬영장이요?”

“여기 있는 예쁜 소녀가 나오는 영화죠.”

재석의 소개에 자영은 귀엽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인지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조감독은 그녀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자영이 상당히 귀엽다고는 느꼈다.

“근데 어느 회사인가요?”

“제이이브입니다. 명함은 여기 있습니다.”

재석은 재빨리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신생인가요?”

“네, 맞습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임민경입니다.”

“임민경? 호, 혹시 그 임민경인가요?”

“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그 임민경 맞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배우들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곳이죠.”

재석의 소개에 그는 바로 명함을 들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이 한 명 달려왔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감독 봉도진입니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괴수 영화. 영화 투자비용보다 6배나 많은 돈을 번 영화. 그 영화의 감독이 나타난 거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제가 영화 촬영에 민폐를 끼쳤군요. 죄송합니다.”

감독이 이렇게 직접 나와 움직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임민경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를 키워 낸 재석을 무시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아닙니다. 근처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제 회사에 소속된 배우가 근처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곳도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무엇을 찍는지 궁금해서 잠시 찾아왔습니다.”

재석은 감독의 얼굴을 보고 이곳에서 어떤 영화를 찍는지 알아차렸다.

‘장강호······ 그 사람이 저 안에 있겠구나.’

장강호. 어떤 의미로 민경보다 더 무서운 배우다. 연기력이 어마무시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뒤에 티켓파워도 영화계 넘버원이다.

“여기 명함 한 장 받아 주십시오.”

“아이고, 제 명함도 받으시죠.”

재석과 감독은 명함을 주고받으며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다음 영화에 꼭 출연시킬 스타를 잡았다!’

‘미래를 위해 잘 부탁드립니다, 천만 감독님.’

서로의 속내가 귀에 들리진 않았지만, 마치 들리는 것 같았다.

“이번 주말에 시간 나십니까? 다행히 쉬는 날인데.”

‘이 감독 행동 빠르네. 바로 쉬는 날 얼굴 한번 보자고 할 줄이야.’

“물론이죠. 언제가 좋겠습니까?”

재석과 감독은 서로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지 빠르게 약속이 성사되었다.

민경을 데리고 있는 재석과 미래에 찍을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은 감독이었다.

“일요일이 시간이 납니다.”

“그럼 그때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을 준다는 말에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했다.

“기다리겠습니다.”

‘운이 좋았어. 영화 ‘살인범의 기억’ 현장을 보게 될 줄이야.’

나중에 시사회에 초청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봉도준 감독을 만났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이득이었다.

“자영아, 가자.”

“네.

결국 영화 촬영은 구경도 못하고 그렇게 자리를 떠야 했다.

“아쉽다. 현장 구경 좀 하고 싶었는데.”

“그러게요.”

“아마 내가 그 자리에 더 있었으면 감독님이 날 많이 신경 썼을 거야.”

“민경이 언니 때문에요?”

“뭐, 그렇지. 다음에 영화를 찍을 때 어떻게 해야 민경이를 출연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을 거야.”

“하긴, 언니가 지금 굉장하긴 하죠.”

***

돌아오는 일요일, 재석은 봉도준 감독과 다시 얼굴을 맞댔다.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뭘요. 바쁘신 분인데 이렇게 저 때문에 시간을 뺏긴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감독은 재석과 어떻게 해서든 친분을 쌓아 미래를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해 저자세로 나왔다.

“그런데 전에 오셨을 때 무슨 촬영이 있었습니까?”

“아름다운 자매를 촬영 중입니다. 문자영이라는 아역 배우를 현재 출연시키고 있습니다.”

봉도준은 아역이라는 말에 꽤 관심을 보였다.

“그런 아역 배우를 찾기 어려웠을 텐데.”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전에 다니던 회사가 망하면서 관리하던 배우들 중 한 명입니다. 그들과 같이 회사를 차려서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

“임민경 씨 역시 같이 관리하던 배우였습니까?”

“네, 민경이는 제가 처음에 관리한 배우입니다. 첫 데뷔부터 지금까지 직접 관리 중인 배우죠.”

“대단하십니다. 임민경 씨는 지금 최고로 잘나가는 배우가 아닙니까.”

“현재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기라는 게 언제 식을지 알 수 없으니 걱정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잘될 겁니다.”

봉도준은 어떻게 해서든 재석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독님이 이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격스럽습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감독님의 다음 작품에 꼭 저희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배우를 출연시키고 싶습니다.”

“그 약속 잊지 마십시오. 제가 꼭 그때 전화할 겁니다.”

“하하하하, 그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식사나 하실까요?”

“그러죠.”

재석은 봉도준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쯤에 민경의 전화를 받았다.

“어, 민경아. 지금 이번에 알게 된 봉 감독님이랑 같이 있다. 너도 나올래?”

봉도준은 재석과 민경의 통화 내용을 듣고 긴장을 했다.

“어, 그래. 그러면 그때 그 식당 있지. 그쪽에서 보자.”

전화를 끊자 봉도준 감독이 재석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민경이 보고 싶으시죠?”

“커흠,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감독은 자리에서 이미 일어나 있었다.

“하하하, 그럼 가시죠.”

재석은 봉도준 감독과 함께 민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식당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민경은 재석이 들어오자 밝게 웃었고, 봉도준 감독을 보자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아, 예. 반갑습니다, 임민경 씨.”

봉도준 감독은 민경과의 만남이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 감독님. 숫기 없는 모습을 보이시네요. 혹시 결혼하셨어요?”

“했습니다.”

이미 유부남이 된 남자지만 연예인 오브 연예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호호호, 감독님. 자리에 앉으세요.”

그렇게 셋이 자리하게 되자 재석은 일단 주문부터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셋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듣는 쪽은 임민경이었다.

일단 감독이 하는 이야기에 끼어들어 봐야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하다가 술이 나왔고, 서로 주고받고 하다 보니 어느새 감독과 재석은 형 동생을 하게 되었다.

“이야, 동생이 대단해. 이렇게 예쁜 배우를 발견하고 스타로 만들었어.”

“아이, 형님도 이번 영화 대박 날 겁니다. 최소 내년 개봉작 중에서 2위는 할걸요.”

“하하하, 거짓말이라도 기분은 좋네!”

“진짭니다. 영화 스토리 저한테 말씀해 주셨죠. 분명 이 영화 본 사람은 너무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몰입할 겁니다. 그리고 입소문이 퍼질 겁니다.”

재석이 한 말은 아부도 뭐도 아니고 진실이다.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야 다음에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걱정이 없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봉도준 감독의 영화는 이번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연달아 계속 히트를 치게 된다.

“그럼 약속해 줘. 꼭 나와 준다고.”

“후우, 어렵지 않죠.”

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을 호출했다.

“여기 A4용지 두 장하고 펜 하나 갖다 주세요.”

직원이 종이 두 장과 펜을 건네주자 재석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적을까요?”

그제야 봉도준 감독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입가가 씰룩거리는 걸 막기 위해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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