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60화 (60/152)

61화

재석은 봉도준 감독과 서로 종이에 내용을 적었다. 봉도준 감독이 감독하는 장편영화 한 편에 배우를 출연을 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임민경이라고 써 넣으면 안 될까?”

“왜요? 탐나세요?”

“내 마음 알면서 왜 그래.”

봉도준 감독은 옆에 있는 민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 그때 시간을 비워 놓을게요. 하지만 일정 잘 잡으셔야 해요. 저 무척 바쁘거든요.”

“좋아. 재석 동생, 여기에 이름 넣는다?”

“예, 형님 마음대로 넣으세요. 참고로 출연료 깎을 생각은 접으세요.”

“당연하지.”

봉도준 감독은 혼자 실실 웃으면서 종이에 민경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나중에 무르기 없습니다.”

“내가 할 말이지.”

봉도준 감독은 그렇게 미소를 짓고 재석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나중에 각색도 돼?”

“형님, 저 공짜 일 안 합니다.”

“공짜로 돈 주지도 않아. 그래서 각색해 줄 거야?”

“혹시 소문 들으셨어요?”

“그거 모르면 감독이 아니지.”

재석이 몇 작품 손대서 크게 이득 봤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니까 봉도준도 약간 탐이 난 거다. 거친 이야기를 깔끔하게 만들어 줄 사람의 존재를 말이다.

“좋습니다. 해 드리죠. 어차피 민경이가 출연하는 영화는 각색해야죠. 형님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드리죠.”

“하하하!”

봉도준은 재석에게 마음에 드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크게 웃으면서 바로 종이에 서명을 했다.

“이대로 하지!”

“좋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불투명한 미래에 위험한 짓을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재석에게는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성공할 영화에 손을 대는 것이었다.

‘나중에 투자도 할까?’

투자한 액수만큼 상당 부분 이익이 돌아오기도 했다.

‘얼마를 넣을까?’

전 재산을 다 집어넣어도 될 거다.

“형님, 만약에 영화 제작하는 데 투자가 필요하면 저도 투자하겠습니다.”

“돈 많은가 보네.”

“그때 가 봐야겠지만, 적어도 투자액이 적진 않을 겁니다.”

“그러면 나야 좋지.”

투자 액수보다 그 말을 해 준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봉도준은 영화 촬영을 할 때 많은 돈을 투자받진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석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부터 꾸준히 돈을 준비해서 투자금을 모은다면 한 방 역전인가?’

봉도준 감독이 찍을 영화의 투자 금액은 말 그대로 어마무시했다. 그 투자금도 대단하고, 그걸 받아 낸 봉도준도 참으로 대단했다.

‘나야 돈 넣고 돈 먹으면 끝이지.’

아직 투자금이 부족해서 그렇지 재석은 이미 계획을 다 세우고 있었다.

“정말 그때 돈 많이 투자해 줘.”

“물론이죠. 아마 투자금을 줄여 달라고 애원할 정도가 될 겁니다.”

“정말 꿈같은 소리야.”

봉도준과의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빠, 근데 진짜로 나 저 감독님 영화에 나가?”

“불안해서 그래?”

“솔직히 좀······.”

민경은 아직 봉도준 감독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걱정 마. 재능 있는 사람이니까.”

“오빠는 자주 본 사람이에요?”

“아니, 이번이 얼굴 보는 건 두 번째고 이야기 나눈 건 처음이야.”

회귀 전에는 봉도준의 그림자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성급히 결정한 거 아니에요?”

“걱정 마라. 내가 어설픈 영화에 널 출연시키겠어?”

“그건 아니죠.”

재석은 지금까지 민경에게 이상한 걸 준 적이 없고, 권한 적도 없다.

“난 봉 감독이 가져온 시나리오나 대본을 내 소속 배우들이 더 성공할 수 있게 바꿀 거야. 그게 곧 내 재산으로 돌아올 거고.”

재석은 뭔가를 더 끌어올리면 그 이득이 고스란히 돌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영감님이 자신감은 넘쳐요.”

“내가 자신감 빼면 시체지.”

***

권진우는 영화 휴가가 끝나고 민경처럼 똑같이 다음 일거리를 찾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에 새로 하는 기획 드라마 어떻습니까? 해군 관련 드라마라는데.”

재석은 이 드라마를 권진우에게 밀고 있었다. 안정적인 성공을 했고 괜찮은 드라마였다.

다만, 크게 이슈화가 되지 못했다. 바로 ‘전부를 걸어라’가 다 먹어치우는 괴물이 되어 버려서다.

주명진이 재석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궁금증을 표현했다.

“재석아, 이 드라마는 별로 감흥이 없나 보다?”

“아니요. 좋습니다. 다만 민경이에게 온 드라마가 워낙 크게 다가와서 그렇습니다.”

“하긴, 그쪽이 자극이 강하긴 하지. 포커와 카지노를 다루는 드라마니까.”

“민철아, 권진우의 의지는 어때?”

“당장이라도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워낙 의욕적으로 나서기도 하고, 형 나이도 좀 있다 보니 미래를 위해 돈을 좀 많이 모을 생각이더군요.”

재석은 민철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권진우는 그렇게 밀고, 주유는 어떻게 되고 있죠?”

“일단 광고 촬영만 집중하고 있어. 비율이 워낙 좋아서 잡지 모델 쪽에서는 여전히 인기다.”

“팀장님, 연기에 대한 열망이 강해서 일을 잡아 줘야 합니다.”

“연기 선생님에게 전에 연락이 왔는데 주유 개인적으로는 진중한 역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잘하는 건 코믹적인 요소가 들어간 역에 강세를 보여.”

“그럼 시트콤 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진중한 걸 좋아하지만, 당장 실력이 부족하니까 시간 벌이 해야죠.”

“시간 벌이면 나중에 정극 쪽으로 밀고 가자는 거냐?”

“연기에 대한 열망을 생각하면 필수입니다. 촬영 있든 없든 매일 연습할 수 있게 하세요.”

“흐음, 일정 빡빡하겠는데.”

재석은 그렇게 회의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년도 금방이라 저희들 월급 인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월급 인상이라는 말에 표정이 다들 바뀌었다.

“얼마나?”

주명진이 얼굴이 활짝 피면서 묻자 재석도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 좋지. 월급 오르는 걸 싫어할 직장인이 있을까? 더군다나 난 너 따라오면서 월급이 줄었어.”

“하아, 그거야 천천히 회복해 준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킬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팀장님은 월급 회복에 가깝고, 민철이는 월급 인상이야.”

“와!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너스도 내년부터는 지급이 가능할 겁니다.”

“몇 퍼센트?”

“일단 계획은 400퍼센트입니다.”

“와, 회사가 돈 많이 벌긴 벌었구나.”

“첫 지급은 돌아오는 1월부터 할 겁니다. 그리고 팀장님은 비자금 만들지 마시고 집에 다 주세요.”

“야, 재석아. 나 비상금 좀 만들자.”

“안 됩니다. 급여 통장에 제가 직접 나중에 형수님에게 말할 거예요.”

재석은 다른 말 못하게 못을 박았다.

“차라리 날 죽여라. 그러지 않아도 쥐꼬리만 한 용돈밖에 못 받는데.”

“그렇게 말해도 안 됩니다. 그간 월급 문제 때문에 형수님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걸 막아야죠. 저도 욕먹으면서 지내고 싶지 않아요.”

“하, 이런······.”

재석은 주명진의 집 사정을 이미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에휴, 좀 안정이 되면 비상금 챙겨야지.”

“그거 하지 말아요. 연봉 협상은 매년 할 겁니다. 그러니까 돈 많이 벌면서 당당하게 챙기세요.”

“아, 그게 어디 쉬워?”

“걱정 마세요.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그러다 늙어 죽을 거다.”

“걱정 마세요. 팀장님은 늙어 죽기 전에 돈 많이 받습니다.”

재석이 죽는 그 순간까지 그의 몸은 굉장히 건강했다. 아마 늙어서도 또래의 남자들보다는 더 좋을 거다.

“하아, 너 따라온 거 갑자기 후회된다.”

“막상 보너스 받을 때는 기분이 다를 텐데요. 제가 장담하죠. 첫 번째 보너스는 그냥 넘어가도, 두 번째 보너스는 매달 받는 용돈도 달라질걸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재석은 이들의 연봉 협상이 끝나고 코디 이혜정의 월급도 조금 올려 주기로 약속을 했다.

“정말 감사해요!”

혜정은 월급이 올라서 그걸로 삶이 조금은 좋아졌다. 물론 월급 조금 올랐다고 크게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위안은 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진행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회의를 통해 배우들이 뭘 진행할지, 그리고 어떻게 할지 방향을 잡고 갔다.

‘특별한 게 없네.’

지금 당장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정해진 일정만 소화를 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흘러가면서 일정 소화하기 바빴다.

그 일정을 소화하면서 영화가 개봉되자, 권진우의 동갑내기가 무섭게 치고 올라가면서 흥행 기록을 남겼다.

반면 민경의 영화는 조금 부진했지만 무섭게 치고 올라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물론 두 영화 다 손익 분기점은 넘기고 각각의 제작사에 큰돈을 안겨 주었다.

특히 권진우는 재석에게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이런 영화를 러닝개런티도 해 주셔서.”

투자 대비 수익 6배를 기록했다. 다른 배우들은 러닝개런티가 아니라서 약간의 성과금을 받는 정도지만, 권진우는 손에는 3억의 돈이 떨어진 거다.

“어차피 계약상 수익 분배하면 배 아플 텐데요.”

“아닙니다. 사장님 아니었으면 이런 돈 아예 받지도 못했습니다.”

권진우는 정말 재석이 아니었다면 몇 천만 원 받고 끝났을 터였다.

“그럼 더 힘내서 열심히 하죠. 지금 드라마도 파이팅이고요.”

“네!”

권진우는 민경과 다르게 수익 분배 비율이 회사가 더 높아서 재석이 가져오는 돈이 많았다.

“이제 돈 많이 받겠네.”

권진우가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그런 거위가 한 마리였는데 이제는 두 마리가 된 거다.

“거위를 세 마리로 더 늘리고 싶은데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소속 배우들을 전부 그렇게 만들고 싶지만, 다들 때가 있는 문제라 조금 기다려야 했다.

권진우는 회사 직원들에게 거하게 회식을 쏘면서 기분을 냈고, 작지만 선물도 해 줬다.

며칠이 더 지나자 일본에 있는 에이전트에게 연락이 왔다. 눈꽃연가가 방영을 시작했다는 거다.

에이전트도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말했고, 혹시 이 드라마 때문에 내년에 일본 진출을 하는 건지 궁금함을 표했다.

“적당히 설명해야겠어.”

재석은 눈꽃연가 때문에 내년으로 일정을 잡은 건 아니라고 답신을 보냈다.

또한 에이전트에게 명함만 돌리면서 어떤 배우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만 알리라고 했다.

메일로 내용을 지시했지만, 그녀는 아주 철저하게 일을 할 거다. 이전에 재석에게 자료를 준비해서 준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한국 스케줄보다 일본 스케줄을 준비해야겠네.’

한동안 한국보다 일본에 있는 일정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올해는 정말 바쁘겠어.’

영화의 성공으로 돈을 벌었지만, 재석이 이끄는 회사는 더욱 바빠졌다. 연예계는 성공하기 전에는 일을 찾느라 고생이지만, 인지도를 얻으면 밀려드는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요즘도 매일 전화를 받느라 귀가 화끈거리고 입이 메말랐다.

***

며칠 뒤, 회의가 생기자 주명진이 입을 열었다.

“재석아, 회계 쪽 인원 뽑자. 이제는 우리가 관리할 여력이 안 된다.”

“흐음, 저도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몇이나 뽑아야 할까요?”

“많으면 셋 정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일이 많지는 않아서 둘 정도가 적당해. 한 명이 이걸 전부하려면 너무 많고.”

“그런데 앉을 자리가 있나요?”

둘을 고용해야 하는데 사무실은 좁았다.

“후우, 어떻게 자리 배치해서 만들어 봐야지. 좀 좁더라도 말이야. 그런데 사무실 이전 계획은 더 빨리 세워야 할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회사 커지는 속도가 빨랐다.

“좀 알아보고 다녀야겠네요.”

재석은 그렇게 회사를 이전할 곳을 바쁘지만 조금씩 알아보고 다녔다.

그리고 동시에 전부를 걸어라의 드라마 작가 최규진과 만남을 가졌다.

“갑자기 절 만나자고 해서 놀랐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집필은 잘 되시는지, 그리고 이후에 스토리 진행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예, 어렵지 않죠. 계약대로 대본 수정에 관여하실 겁니까?”

“제가 볼 때 이 스토리대로라면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결말이 헤어지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역시.”

“역시라뇨.”

“그런 슬픈 이야기는 시청자들이 원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최진규는 재석과 만나서 스토리에 관한 내용이 태클이 들어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해는 합니다. 불만 많으시겠죠. 하지만 이대로 가면 저나 작가님이나 다른 배우들도 피곤해집니다.”

“모든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무슨 재미입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공이 그 고생을 하는데, 결말이 불행하면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나.

인간이 당장의 고생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미래에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시당하는 순간 분노와 절망이 차오른다. 괜히 해피 엔딩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일단 지금 이대로 쓰세요. 하지만 곧 시청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겁니다.”

“전 시청자들을 믿습니다. 그들은 제가 만든 스토리를 믿고 따라올 겁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다음 회차가 방영되기 무섭게 최진규는 재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