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63화 (63/152)

<당신의 매니저 64화>

장강호와의 자리에서 재석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소속사가 있으십니까?”

“예, 있죠. 어렵사리 구한 곳이 하나 있습니다.”

어렵사리 구했다는 말에 재석은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오호, 무명 시절에 구한 곳이군요.”

“비슷합니다. 하지만 재계약도 얼마 안 남았고, 현재 이곳에서 내건 조건도 고려 중입니다.”

“고려라면 다른 회사를 찾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장강호는 민경보다 데뷔한 지 오래된 만큼 소속사에 속해 있던 시간도 길었다.

“재계약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 제가 제안을 하나 하죠. 7:3으로 해 드리죠. 계약금은 저희가 따로 드릴 게 없습니다. 하지만 비율만큼은 확실히 챙겨 드리죠.”

재석이 내건 조건은 그에게 있어서 굉장히 신선한 조건이었다. 데뷔가 오래된 장강호지만, 소속사와 계약한 기간 때문에 5:5 상태였기 때문이다.

꽤 파격적인 조건에 장강호가 깊은 생각에 빠져야 했다.

“급하게 결정하실 것 없습니다. 기간이 남았다면 그만큼 고민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술 한잔하시면서 즐기시면 됩니다.”

재석의 말에 장강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죠. 아직 기간은 남았으니까.”

재석도 제안만으로 멈춘 건 이유가 있다. 다른 소속사 찾아 떠나는 사람은 적지 않고, 민경처럼 의리 있게 남아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거다. 그러니 뭐라 할 게 없다.

‘그래도 민경이처럼 끝까지 함께하는 배우라면 좋지.’

재석은 이날 잘 정리하고 장강호의 연락처도 받았다. 계약을 떠나서 그와 간혹 술이나 한잔하며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된 사이가 된 거다.

며칠 뒤, 일본으로 가는 스케줄이 또 잡히게 되었다. 기간은 나흘. 빡빡하게 준비되어 있는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고, 이번에는 잡지 촬영이었다.

전에 했던 인터뷰 중에 잡지사 인터뷰가 있었고, 촬영 일정이 잡힌 거였다.

“나오미 상, 이번에 액수는 확실하죠?”

“물론입니다. 일본 톱클래스 배우 수준입니다.”

“좋습니다. 진행하죠.”

재석과 민경은 이제 거의 한 달에 세 번은 일본을 방문하고 있었다. 일정은 광고와 인터뷰가 많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가 왔다.

재석은 이 중 민경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일을 맡았다.

민경의 수익을 정산할 때마다 매달 몇 억의 돈이 재석의 손에 떨어졌다.

“이 달은…… 10억이네.”

재석은 실감이 안 날 정도로 돈이 왔다 갔다 하니 금전 감각이 무뎌질 것 같았다.

민경은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서도 역시 꾸준히 활동을 이어 나갔다.

“오빠, 일본하고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얼마나 차이 나요?”

“매달 명세서 보내 주잖아.”

“그거 잘 안보거든요. 오빠가 어련히 잘해 주니까…….”

“힘들게 작성한 명세서를 안 보면 무슨 의미가 있냐. 좀 봐라. 아이고.”

“그래도 알려 주세요.”

“3배 정도 차이 난다. 한국에서 1억 벌면, 일본에서는 3억 번다.”

민경은 그간 버는 액수가 달라진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전혀 몰랐다.

“일본 스케줄을 한동안 계속 이어 갈 거야. 인기가 사그라들 때까지.”

빨대 꽂았으니 그걸 쭉쭉 빨아야 했다.

“그럼, 저 부자 된 거죠?”

“으음, 곧 부자가 되는 건 맞다.”

민경은 두 팔 벌려 재석의 품에 달려들었다.

“으, 너무 좋아.”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지, 아니면 재석에게 안겨서 좋은지 구분이 안 갔다.

“심장 떨린다.”

“더 떨리세요.”

대놓고 하는 말에 재석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민경은 다시 멀어지며 말했다.

“올해는 무섭게 돈 벌겠네요.”

“곧 사옥 이전을 할 거야. 그리고 집은 내가 사는 곳 근처로 옮기고 싶다고 했지?”

“네.”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이사를 계획 중이야. 어디가 좋을까 생각 중이다.”

“그럼 같이 찾아요.”

“우리 둘 다 너무 바빠. 그래서 부동산 쪽에 부탁 좀 하려고.”

“좋아요. 좋아요.”

민경이 적극적인 찬성을 하면서 계획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부동산에 일을 맡기자, 금세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 같은 층, 바로 붙어 있는 옆집이었다.

“아무리 가까워도 이 정도면…….”

“왜요?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나가면 딱인데.”

재석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경의 의지를 막진 못했다.

그리고 그 또한 결국 괜찮다고 했다. 바로 옆에서 민경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너, 쓸데없이 나 부르면 안 된다.”

“걱정 마요!”

그간 민경을 겪어 온 재석은 그녀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혹시 몰라 주의를 줬다.

“아오, 영감님 잔소리.”

민경은 귀를 막으면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바로 옆집에 살게 되었다.

“아, 집 크다.”

혼자 살기에는 딱 적당한 크기의 집이었다.

“드디어 전세인가…….”

아직 짐을 다 정리하지 못해 엉망이었지만, 재석은 월세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기쁨을 만끽했다.

잠시 후 짐 정리를 모두 끝낸 재석은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화면 속에서는 때마침 영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창 촬영 중이겠지…….”

재석은 지금쯤 한창 촬영 중에 있을 천만 영화를 떠올렸다.

“올해 말과 내년 초.”

두 작품은 몇 개월 차이로 개봉되며, 둘 다 역대 기록을 갱신한다.

“거기에 투자 좀 했으면 꽤 벌었을 텐데.”

재석이 한참 아쉬워하던 그때, 전화가 울렸다.

“왜?”

(오빠, 저녁 먹었어?)

“아니.”

(같이 먹게요.)

재석은 밖으로 나가 옆집의 벨을 눌렀다.

덜컹!

문이 열리자 민경이 손짓을 했다.

“빨리 들어와요. 음식 식어요.”

집 안에는 이미 따뜻하게 차려진 음식이 놓여 있었다.

“혼자 먹기 심심했어?”

“옆집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오빠 있는데 혼자 먹는 건 그렇잖아요.”

“고맙다. 잘 먹을게. 민경이 때문에 호강하네.”

“고마우면 잘해 줘요.”

“지금부터 잘해 줄게.”

“퍽이나.”

둘은 그렇게 저녁을 먹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아침, 재석은 천만 영화들에 대한 현재 정보를 원했다.

“팀장님.”

“왜.”

“지금 촬영에 돌입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음, 갑자기 촬영 중인 영화는 왜 찾는데.”

“어디서 들은 소문인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 대작 영화를 준비하는 곳이 있다고 들어서요.”

“돈 많이 처먹는 영화가 어디 한둘이냐.”

“대충 50억 이상짜리요.”

재석의 입에서 나온 말에 주명진이 관심을 보였다.

“그런 영화라면 대단한 돈줄을 등에 업고 촬영하고 있을 텐데.”

“한번 찾아 주세요.”

“이유를 한 번만 물어도 될까?”

“저희가 끼어들 수 있는지 해서요.”

“끼어든다?”

재석의 말에 주명진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눈이 커졌다.

“너 투자를 생각하는 거야?”

“아니라고는 말 못 합니다.”

“허허, 참나. 다른 분야에 손대다가 망한 사람 한둘이 아니야.”

주명진은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지만, 재석은 확실한 정보가 있었기에 멈추지 않았다.

“제가 대본 좀 볼 줄 알지 않습니까. 투자금 부족해서 허덕이는 곳이라면 자금을 대 주고 이익이 나면 저희가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해서 그런 겁니다.”

“솔직히 난 투자 반대하는데…….”

“검토하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았다.”

주명진은 재석의 지시대로 돈 잡아먹는 영화를 찾았다. 찾는 게 너무 쉬워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재석아, 찾았다.”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벌써요?”

“충무로에서 돈 먹는 영화 찾으니까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어떤 영화입니까?”

“하나는 간첩 영화고, 하나는 전쟁 영화야.”

“그중에 저희가 끼어들 만한 곳이 있습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60억 이상이 깨졌다.”

60억 이상이 들어갔으니 소문이 나는 게 당연했다.

‘북파공작원과 태극기 펄럭이며!’

재석은 그것들이 이후에도 돈을 얼마나 처먹은 영화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둘 다 100억 이상 깔끔하게 들어간 영화들이지.’

여기에 투자한 회사들은 정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었다.

“재석아, 이 영화 성공해도 돈 얼마 못 받는다.”

주명진은 안전제일이다. 도박과 거리가 먼 인물. 거기에 한국에서는 100억이 들어가면 큰 이익 못 얻는 게 지금까지의 통념이었다.

“아직 그 영화에 끼어들 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전 확인을 하고 싶을 뿐이죠.”

확인이라고 말하지만 절대 확인이 아니다.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갈 생각이다.

“하아, 진짜.”

주명진은 재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너 재주 있는 거 하나는 인정하는데, 걱정이다.”

“팀장님, 한 번만 더 믿어 주세요.”

주명진은 한숨을 내쉬며 재석을 보고 한마디 했다.

“진짜 회사 망하면 나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거야.”

“예, 그러세요. 안 붙잡습니다.”

“단호한 녀석.”

결국 주명진은 다음 날 재석이 원하는 걸 가져왔다.

“후우, 60억 이상 들어간 영화들의 제작사와 거기 대본이다. 그리고 전쟁 영화인 태극기 펄럭이며의 자금 사정이 안 좋아. 거기 제작자이자 감독이 현재 촬영 중인데도 불구하고 투자자를 찾고 있어.”

재석은 그 말에도 영화 대본을 펼쳐 들며 말했다.

“제가 대본을 다 본 뒤에 그 사람을 만날지 안 만날지 정할 겁니다.”

“제발 안 만났으면 좋겠다.”

주명진은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했지만, 재석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회사 자금 빵빵합니다. 일본 한 달만 다녀오면 어마무시하게 돈이 들어오니까요.”

“그 돈이면 회사 건물을 세워도 될 정도야.”

지금 재석이 너무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렇지, 벌써 7월이 시작됐다. 몇 개월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문자영이 찍은 영화는 결과만 보고 받은 상태고, 권진우는 드라마 끝난 뒤에 다시 작품에 돌입했다. 이것들을 다 재석이 직접 관여하진 못하고 어떤 작품에 들어가는지 회의만 했다.

그 관여하지 못한 시간만큼 일본에서 빨대 꽂기는 대성공했다.

다녀오는 족족 막대한 엔화가 원화로 바뀌면서 어마 무시한 돈을 벌고 있었다.

“한 시간 뒤에 다시 말하겠습니다.”

재석은 묵묵히 태극기 펄럭이며의 대본을 봤다.

‘역시 대본만으로도 엄청난 영화야. 이걸 만든 강기만 감독이 대단하기는 해.’

대본을 다 본 재석은 주명진에게 말했다.

“팀장님, 강기만 감독님과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하아, 알았다.”

주명진은 그쪽에 연락을 넣었고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재석아, 오늘 저녁에 볼 수 있으면 보자는데.”

“진짜요?”

“그래.”

100억 넘게 꼬라박은 영화다. 그것도 한 해에 두 개나 그런 영화가 촬영에 들어갔으니, 충무로의 전체 자금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이 일어날 수 있는 액수다.

“그럼 만나야죠.”

재석은 살며시 미소까지 지었다.

*  * *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재석이었다. 그 안에는 먼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전재석이라고 합니다.”

“강기만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더니 강기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찍고 있는 영화에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아주 많습니다. 돈 잡아먹는 영화를 아직까지 찍고 있다는 부분에요.”

“전쟁 영화 특성상 돈을 너무 많이 먹고 있어서요. 그래서 영화가 완성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을 상시 모집 중이죠.”

“얼마나 필요하신 겁니까?”

재석이 운을 띄우자 강기만은 바로 입을 열었다.

“30억이 필요합니다.”

‘젠장,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전부군.’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이 딱 그만큼이었는데, 그만큼 투자해 달라는 거다.

‘이거 주면 당장 일본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당장 돈 벌었다고 좋아했는데 돈 30억이 몇 달간 묶이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혹시 그만큼 투자가 불가능하시다면 20억만 투자하셔도 됩니다.”

강기만은 재석에게 그만한 돈이 없어 보였다. 나이는 너무 젊고, 임민경을 데리고 있다는 걸로 우쭐대는 걸로 보였다.

‘날 얕잡아 봐?’

“그 돈 드리죠.”

재석이 시원하게 한마디 하자, 강기만의 표정이 놀람으로 변했다.

“그, 그만한 돈이 있다는 겁니까?”

재석의 능력은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신생 회사였다. 아무리 날고 기는 회사라도 신생에게 그러한 돈이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 뭐하지만, 돈 있습니다. 현재 가용 가능한 금액이네요. 하지만 그냥 투자하진 못합니다. 아주 상세한 투자 설명회가 있어야 할 겁니다.”

재석은 날카롭게 강기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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