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니저 65화>
‘실수했다······!’
강기만은 재석이 3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하겠다고 하자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태도를 바꾸곤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재석은 돌변하는 그의 태도에 더욱 기분이 상했지만, 비즈니스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대해야 했다.
‘예상대로라면 30억을 넣으면 70억이 넘는 돈으로 돌아온다. 순간의 분노로 이걸 놓칠 순 없지.’
대부분의 영화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투자금의 20퍼센트 수준이었다. 하지만 ‘태극기 펄럭이며.’라면 2배는 충분히 벌어들일 터였다.
“다만 말씀드렸듯이 그냥 다 투자해 드리긴 어렵습니다. 10억씩 3번으로 나누어 입금해 드리죠. 그 많은 돈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갑을 관계는 이걸로 명확해졌다.
‘너무 쉽게 꼬리를 내려서 아쉽네. 조금은 튕겨 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찌 되었건 재석은 너무 싱겁게 일이 마무리되는 게 아쉬웠다.
“그럼, 제가 다시 볼 때는 투자 계획서를 봤으면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먼저 일어난 건 재석이었고 강기만은 뒤따라 나섰다.
“그럼, 살펴 가시지요.”
재석이 집으로 돌아오자 민경이 그 방문을 두드렸다.
“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주 팀장님이 전화 왔어. 투자한다며, 그거 말려 달라는데 무슨 소리야?”
주명진이 투자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민경에게 이야기한 모양이다.
“일단, 설명해 줄게.”
재석은 전반적인 상황을 말해 주었다. 그걸 다 듣고 민경은 의문이 생겼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은 거야?”
“큰돈 움직이는 데 소문이 안 나면 이상하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 그 감독이 오빠를 처음 대할 때 약간 무시하는 거 같았다고?”
“내 착각일 수 있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 내가 돈이 없어 보였나 봐.”
민경은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니, 왜 오빠를 무시해. 처음 봤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세월의 오류지. 살면서 보고, 들은 경험이 고정관념이 된 거야. 20대는 이 정도가 평균이고 30대는 이 정도 이런 거.”
“뭐야, 그게.”
재석은 이미 경험을 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돼서는 그게 한참 잘못된 거라는 것.
“그래서 계약할 거야?”
“할 거야. 그 영화 나오면 너도 깜짝 놀랄걸?”
“근데 부담이 많이 크지 않아? 손익 분기점이 꽤 높은데.”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만큼 이익도 어마무시하지.”
“오빠는 어떤 확신을 가진 거야?”
“확신?”
재석은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지만, 민경은 그 확신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럴 만한 정보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찍은 영상이 있을 텐데······. 촬영본 일부를 달라고 해 볼 테니까, 그거 보고 판단해 봐. 아마 며칠쯤 걸릴 거야.”
재석은 곧바로 강기만에게 연락을 취해 회사 중진들이 이해할 수 있게 일부 영상의 공개를 원했다.
강기만은 재석을 위해 영상 일부를 준비해서 가져왔다.
“회사가 허름하군요.”
“회사의 허름함과 자금은 다르죠.”
“죄송합니다.”
“제가 사기꾼이 아님을 직접 보여 드리죠.”
재석은 회사 가용 자금에 대한 자료가 적혀 있는 서류를 보여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 계좌 역시 확인시켜 주었다.
“정 의심되시면 저랑 같이 은행으로 가시죠.”
강기만은 고개를 저었다.
“믿습니다.”
그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재석의 당당한 태도며 막힘없는 행동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럼, 설명회를 시작해 보시죠.”
강기만은 진짜라는 걸 확인하고 바로 영화의 진행 상황과 현재 어떻게 찍었고 그 뒤에 어떻게 할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도 상세히 설명했다.
이미 대본이 나와 있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설명회였기에 초창기에 투자금을 모집할 때와는 달랐다.
“그럼, 마지막으로 영상을 보시죠.”
강기만은 투자자를 매혹시키는 자료를 준비했다. 지금까지 찍은 전투 신 일부를 보여 준 거였다. 그것도 깔끔하게 편집해서 말이다.
“어떠십니까?”
영상은 10분 정도.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명진과 임민경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재석아, 이 정도라면 가능성이 있어.”
안전제일을 고수하는 주명진이 이럴 정도였으니 민경은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투자금을 더 늘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아직은 불필요합니다.”
“그 말은,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에는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필요 이상의 투자금을 받게 되면 영화의 흥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저희 쪽은 파산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흑자 파산을 말하시는 거군요.”
흑자 파산, 무서운 말이다.
돈을 잘 벌었는데 대부분의 돈을 투자자에게 줘야 해서 정작 제작사는 돈 못 벌고 망하는 상황.
“걱정 마십시오. 이 정도면 흑자 파산은 안날 겁니다.”
재석은 그를 위로했다. 정말 흑자 파산은 안 난다.
계약서까지 다 작성하고 나서 재석은 그와 악수를 나눴다.
“좋은 결과만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 투자금 입금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요?”
“오늘 바로 될 겁니다.”
재석은 말한 대로 투자금을 바로 입금했다.
이날 주명진은 재석에게 어떻게 투자 계획을 세우게 됐는지 물어봤다.
“이미 60억 이상 들어간 영화인데, 거기다 투자할 생각은 어떻게 한 거냐?”
“대본을 봤는데 꽤 내용이 좋았어요. 대본대로라면 저예산으로 찍어도 상당한 수준이 됐을 건데, 이미 60억이 들어갔으면 굉장한 대작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투자 결정을 한 겁니다. 거기에 오늘 영상을 보고 확신하게 된 거죠.”
재석은 미래를 알고 있었지만, 굳이 미래의 정보를 꺼내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 가능했다.
“그럼, 영화 수익은 얼마나 예상하냐?”
“최소 두 배.”
“음? 무슨 소리야.”
“들어간 투자금이 두 배가 돼서 돌아올 겁니다.”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잘해 봐야 20퍼센트인데, 두 배라니. 너무 헛소리하는 거 아니냐. 솔직히 20퍼센트도 많다.”
주명진은 크게 성공해도 20퍼센트, 즉 30억 투자했을 때 6억의 이익이 생기면 대성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뭐, 그때 가 보면 알겠죠.”
일반적인 투자라면 날리거나, 벌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만 미래의 지식을 가진 재석에게는 이건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었다.
‘자, 다음은 뭐냐.’
한 달, 정신없이 일본 출장을 가는 사이 3주가 지났다. 쉬는 날 따위는 거의 없었다.
일요일에 쉬면 그나마 다행이고 돌아오는 날이 일요일이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후우, 힘들다.”
재석이 혼자 집에서 푹 쉬는 날, 핸드폰이 울렸다.
“아, 좀 편히 쉬나 했더니.”
하지만, 전화번호를 확인하자 재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갑자기 전화를 하시다니요.”
(아, 오랜만입니다. 저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잠시 시간이 되면 한 번 만날 수 있는지 해서······.)
“겨우 만나는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할 말은 아니라서요.)쉬는 날 걸려온 전화였지만, 재석은 반갑게 맞이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왔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장강호라면 특히 더 그러했다.
재석은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장강호를 만날 수 있었다.
“이야, 그때 이후로 두 번째입니다.”
“하하하.”
멋쩍은 웃음을 선사하는 장강호였다.
“일단 절 만나고자 하는 이유를 곧바로 들을 수 있습니까?”
“하아, 역시 바로 본론이시네요.”
“서론이 길어 봐야 시간만 잡아먹지 않습니까. 차라리 본론을 먼저 끝내고 친분을 돈독하게 다지는 게 더 이득입니다.”
재석의 말에 장강호는 웃으며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네요. 그럼 바로 이야기하죠. 그때 하신 제안, 지금도 유효합니까?”
“물론입니다. 7:3 유효합니다. 참고로 계약금은 없습니다.”
“흐음······ 솔직히 고민됩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소속사가 다른 조건을 건 모양이네요. 저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좋거나.”
재석은 장강호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가 제시한 조건이 서로에게 맞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을 일이었다.
“고민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왕 만난 김에 가볍게 술 한잔하시죠.”
재석은 편하게 대했다. 분위기가 편해지자,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오갔다.
“이야, 아들이 참 귀엽네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부럽습니다. 전 아직 애인도 없는데요.”
재석은 회귀 전에도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일평생 혼자였다.
“아직 젊으신데요. 거기에 돈도 잘 버니까 여자들이 줄줄 따라붙을 겁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저보다 형님이신데요. 이참에 호형호제하며 지내시겠습니까?”
호형호제하자는 말에 장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좋지! 하하, 그럼 잘나가는 동생 생긴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재석 같이 능력 있는 사람을 동생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장강호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둘은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재석은 장강호의 계약 기간을 물었다.
“기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아마, 한 달 정도 남은 걸로 알고 있어. 그래도 정확한 날짜는 다시 알려 주지.”
“강호 형님, 계약 종료일을 확실히 알려 주시면 제가 직접 계약서를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하하하, 아니야. 내가 직접 회사로 가지. 새로운 식구가 됐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강호 형님이 그런 마음이시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이제 한 식구가 된 겁니다.”
“그렇지 같은 식구지!”
둘은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나서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집에 도착한 재석은 기지개를 피며 미소 지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묵은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잡았다, 장강호!”
재석은 희열에 두 손을 불끈 움켜쥐었다.
“남은 건 관리다.”
* * *
재석은 회사에 출근해 올라온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그중 눈에 띄는 보고가 있었다.
권진우가 말죽거리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주연을 맡아서 작품을 하네.”
곧 권진우의 황금시대가 열릴 것이다.
재석은 권진우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민경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물론 민경 역시도 황금기였다. 재석이 손을 댄 이후부터 쭉 꽃길을 걷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점점 내가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바빠져서 참······.”
민경의 매니저 일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물론 바빠진 만큼 버는 돈 역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으니, 재석은 나름대로 빛나는 업적을 만들어 가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때 주명진이 다가와 영화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이거 문자영이 하면 딱 좋을 영화 시나리오다.”
“팀장님이 추천을 다하시고······.”
“널 보면서 깨달은 게 많았다. 단순히 하는 일만 해서는 어려운 것 같더라. 그래서 나도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보면서 공부 좀 했다.”
“하하하, 주 팀장님 역시 월급 많이 받을 만하십니다.”
“그럼, 나중에 비상금 한 번 만들게 해 줘.”
“선택한 작품이 어떤지 한 번 보고요.”
“진짜냐?”
“작품이 괜찮으면요.”
하지만, 재석의 눈앞에 있는 영화 시나리오는 어린 색시였다.
‘확실히 고민에 고민을 한 흔적이 있었네.’
미래에 잘나갈 영화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년에 개봉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관객 수 2위를 달성하는 작품이었다.
들어간 제작비에 비해 큰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팀장님, 이거 문자영이 되면 러닝개런티로 하세요.”
“음? 뭔가 촉이 왔구나.”
“큰돈까지는 몰라도, 나름 재미 좀 볼 것 같아서요.”
“그래그래, 내 꼭 네 말대로 하마.”
“아, 그리고 신지경도 이 영화에 같이 밀어 넣어 보세요.”
“뭐, 어렵지 않지 근데 그쪽도 러닝?”
“아뇨, 조연이 러닝은 조금 힘들죠.”
“알았다. 이쪽도 그렇게 하지.”
“전 이틀 뒤에 다시 일본 갑니다.”
“이야, 정말 거기 가서 돈 어마무시하게 벌어 오는구나.”
“많이 벌어 놔야죠. 이게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그래, 많이 벌어야지. 이런 기회 또 없으니까.”
물론, 이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꽤 오래갈 기회이기에 재석은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휘휘휘.
재석은 휘파람을 불며 외근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