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73화 (73/152)

<당신의 매니저 74화>

김명진은 오랜만에 정말 힘차게 촬영에 임했다. 그간 오랜 무명 생활로 힘들었는데, 재석으로 인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재석은 김명진을 집에 데려다줬다.

“당장은 사람이 없어서 여러 매니저들이 돌아가면서 스케줄을 관리해 줄 겁니다. 곧 사람을 뽑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어차피 사람을 더 뽑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재석은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계약을 해지해 주겠다고 했으나, 김명진을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마음은 돌리면 되는 거야.’

지금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기에 이민을 계획하고 있으나, 상황이 달라진다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재석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공을 들일 계획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재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김명진은 표정이 아주 밝았다.

“여보, 오늘 왜 이리 좋아 보여요?”

“오늘 아주 배려심 많은 사람을 만나서.”

“누군데요?”

김명진은 오늘 계약한 제이이브라는 회사와 재석이 보인 호의를 이야기하자, 그의 아내는 크게 놀랐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어요?”

“나도 정말 그럴 줄 몰랐어. 그저 잠시 도움만 받을 생각이었는데 계약까지 해 줬어.”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그 유명한 임민경 씨가 있는 회사라면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아마도 그렇겠지.”

“좀 아쉽네요. 그런 사람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해서.”

아내의 표정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 표정을 읽은 김명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연기를 그만두는 게 그렇게 싫어?”

“열심히 했잖아요.”

“난 재능이 없어. 그래서 포기한 거야. 이번 작품을 끝으로 연기를 접을 거야.”

“그 말 못 믿겠어요.”

그의 아내는 김명진의 연기에 대한 갈증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니야, 이번에는 진짜야.”

김명진의 말에는 많은 쓸쓸함이 묻어났다.

아내는 남편의 말이 본심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근데 회사가 어디라고 했죠?”

“아, 알려 줄게.”

김명진은 웃으며 제이이브에 대해 알려 줬고, 아내는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재석에게 직접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찾아가야겠어.’

하지만 김명진의 아내는 재석을 만날 수 없었다. 그의 외부 일정이 너무 많아서 볼 수 없던 것이다.

그래서 미리 연락을 취해 만나서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내용을 전달했지만, 재석은 일본으로 향한 뒤였다.

결국 그녀가 재석을 만나게 되는 건 정말 한참 뒤가 되었다.

며칠간의 일본 스케줄을 끝내고 돌아온 재석은 김명진의 아내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서둘러 회사에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는지‥‥.”

“다름이 아니라 너무 감사해서요. 저희 남편을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요.”

“아닙니다. 제가 약속을 했기에 그걸 지킨 것뿐입니다.”

“그런데 염치없지만, 다른 부탁이 있습니다.”

재석은 다른 부탁이라고 하니 조금 의아해했다.

“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남편은 연기를 향한 열정이 강합니다. 절대로 쉽게 이민을 갈 사람이 아니에요.”

“흐음, 그럼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겁니까?”

“가능할까요?”

김명진의 아내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게 염치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너무 간절하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재석에게는 뜻하지 않은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 하려던 일이었는데 부탁을 받다니.’

부탁을 들어준다는 상황이 됨으로써 이번 일을 해결한다면 김명진과의 계약을 이어 가는 데 훨씬 유리해질 터였다.

“김명진 씨가 그렇게 열정이 많으면서 연기를 포기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재능 때문이에요. 스스로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내분께서는 김명진 씨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있어요. 분명히 있어요. 운이 없어서 빛을 못 봤을 뿐이죠.”

김명진의 아내는 그에게 재능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당장 그의 생각을 바꾸기란 어려울 겁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옆에서 격려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김명진의 아내는 정말 남편을 위해 확실한 내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아내를 만난다면 정말 일평생이 행복하겠어.’

재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해 드리죠.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꼭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에 오래 있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재석은 김명진의 아내를 돌려보내고 주명진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매니저들에게 김명진 씨의 일을 도와주러 나갈 때 임시지만 정식 계약한 연기자처럼 대하라고 이야기 전달해 주세요. 그리고 무명이라고 무시하지 말고요.”

“흐음, 그건 어려운 일 아니지.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방금 왔다 간 손님 때문이야?”

“맞습니다. 약속을 했거든요. 잘 좀 봐주기로.”

“그래도 임시 계약인데 10:0은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돈 받아 봐야 얼마나 된다고 그럽니까. 지금 민경이가 많이 벌어다 주니까 충분합니다.”

“하긴 그렇지. 일본 한 번 다녀오면 십 몇 억 단위 돈이 마구 들어오니까. 권진우도 많이 벌지만, 민경 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주명진도 알고 있다. 회사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다.

“요즘 민경 씨 어떠냐. 일이 너무 바빠서 한 번씩 좀 쉬어야 할 텐데.”

“영화 시작 전에 한 번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 크랭크인 날짜 그러지 않아도 잡혔다.”

“벌써요? 영화 대본이 다 완성됐나 보네요.”

“그리고 배우들도 다 정해졌어.”

“생각보다 제작사가 발 빠르게 행동하네요.”

“우리 쪽에서 돈 준다고 하니까 일이 빨리 진행되는 거지.”

“그래서 날짜가 언제입니까?”

“4월 29일이라는데.”

“4월이 되기 전에 다녀와야겠네요. 일본 일정도 조정해야 하고요.”

날짜가 잡힌 이상 재석은 여러 곳에서 스케줄 조정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상대 배우는요?”

“정우진.”

“그쪽 몸값 장난 아닌데 어떻게 섭외했네요.”

“그래도 민경 씨보다는 싸지.”

“그것도 그렇네요.”

“아, 그리고 감독은 뉴욕에서 영화 관련 학과를 나왔다고 했어.”

“유학?”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그쪽에 좀 있었다더라고. 그러다가 단편 영화 하나 찍고 이번에 상업 영화 찍는다던데.”

“이리저리 돌고 온 사람이네요.”

“뭐, 영화만 잘 찍으면 그만이니까.”

“나중에 만나 보면 재미있겠네요.”

“일단 나이는 젊은 감독이야. 결혼은 안 한 것 같고.”

“민경이한테 접근할 수도 있겠네요. 뭐 일이 바빠서 얼굴보고 대화할 시간조차 부족하겠지만.”

“크크크, 수작질도 시간이 나야 하는 거지. 국내부터 일본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수작질을 해.”

맞는 말이다. 쉬는 날도 겨우 잡는 민경에게 접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재석아, 민경 씨 보호하는 건 좋지만 너무 싸고돌진 마라. 그러다 처녀귀신 된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달라붙을 겁니다.”

“그 전에 네가 차단하겠지. 아주 철저하게.”

주명진의 말뜻은 달랐지만, 철저하게 차단한 상태가 맞기는 맞았다. 연인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내가 이 바닥에 오래 있어 봐서 아는데 인기라는 이름으로, 돈이란 이름으로 한 사람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지.”

“부정할 수 없네요.”

재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하러 가려고?”

“일해야죠.”

재석은 자리에 앉아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

재석의 지시대로 회사의 모든 매니저가 돌아가며 김명진을 관리했다.

그 결과, 김명진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진 상태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 촬영이 모두 끝남과 동시에 계약이 종료되었고, 김명진과 재석은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헤어져야 하다니 무척 아쉽습니다.”

“저도 뒤늦게 좋은 분을 만나게 되어 아쉽지만, 그렇다고 재능 없는 저 때문에 폐를 끼칠 순 없으니까요.”

“글쎄요. 저는 김명진 씨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셨을 뿐이죠.”

재석의 말에 김명진은 피식 웃었다. 이제는 진짜 이민을 갈 준비를 할 차례가 왔다.

“말씀만이라도 기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만일 다시 연기가 하고 싶어지신다면 언제든 돌아오셔도 됩니다.”

“안 됩니다. 돈 못 버는 연기자는 그저 똥 덩어리입니다.”

재석은 그가 미래에 할 대사를 지금 말할 줄은 몰랐다.

“자신을 그렇게 비하하지 마십시오.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죠.”

결국 김명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인 후 그대로 그곳을 떠났지만, 재석은 그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재석아, 저 사람 몇 번 안 봤지만 연기력이 장난 아니던데.”

“팀장님도 느끼셨으면 잘 알 겁니다. 그리고 저렇게 연기를 향한 열망이 강한 사람이 연기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절대 못 하지. 나 같아도 못 해.”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 못하는 사람이다. 마치 도박에 미친 사람처럼 그는 연기에 미친 사람이다.

“금방 돌아오겠죠.”

“이민 결정한 사람이 금방 오겠어. 그래도 일이 년은 갔다가 돌아오겠지.”

“그럼 내기 할까요?”

“하자. 뭘 걸까?”

“올해 하반기에 연봉 재협상. 전 한 달 안에 다시 연예계 복귀한다.”

“좋아. 지면 내 다시는 비상금 이야기 안 꺼내마.”

“좋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합의를 했다.

김명진은 정확히 한 달 만에 다시 재석을 찾아왔다.

“저기…… 염치없게 됐습니다.”

“음, 무슨 염치가 없게 된 거죠?”

“제가 드라마를 하나 찍게 됐습니다. 감독님이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요.”

“뭐, 상관없습니다. 저희와 계약을 하시려고요?”

“예, 하고 싶습니다. 워낙 잘해 주셨고, 이곳이라면 제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흐음, 이번에는 10:0 같은 조건은 어림도 없다는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저희가 제시하는 조건은 7:3입니다.”

김명진은 재석이 제시한 조건에 눈이 커졌다. 생각했던 조건보다 훨씬 후했기 때문이다.

“진짜 그 조건입니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계약하실까요?”

“네, 하겠습니다.”

이날 김명진은 재석의 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고, 그가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도 알게 되었다.

“불멸의 명장, 그것도 이순신 일대기 대하드라마…… 무서운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으셨네요.”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망하면 다시 이민 가야 할지도 모르고요.”

“그러지 마세요. 이제 같은 회사 식구가 됐습니다. 그러니 철저히 준비해야죠. 우선 명장의 일대기를 다른 작품과 책들을 보고 캐릭터 연구부터 해 보죠.”

“이미 몇 개 서적을 구매했습니다.”

“좋은 선택이네요. 그리고 나이별로 목소리 톤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나이별이면, 분노하는 방식도 달라야겠군요.”

두 사람은 계약과 동시에 캐릭터의 방향성을 잡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주명진이 달려왔다.

“재석아, 대박이다.”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73억이다.”

“태극기 펄럭이며 투자금이 들어왔나 보네요.”

“두 배가 넘는 금액이 들어왔어!”

주명진은 살면서 이런 경우를 처음 겪어 너무 크게 놀란 거였다.

“팀장님,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입니다.”

“미, 미안하다.”

주명진은 다시 돌아갔지만, 그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70억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김명진도 궁금해하는 모양새였다.

“영화 투자금이 회수된 겁니다. 30억을 넣었는데 두 배가 돼서 돌아왔네요.”

재석은 무척 담담하게 말했지만, 김명진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정말 놀랍네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입니다. 위험 부담이 큰 만큼 수익도 높죠.”

재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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