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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매니저-74화 (74/152)

<당신의 매니저 75화>

재석이 태극기 펄럭이며의 투자를 통해 거액을 손에 넣자, 여러 제작사에서 투자 요청이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영화에도 엄청난 금액을 거침없이 투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 탓이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투자는 힘든 상황입니다. 현재 벌어들인 수익은 이미 사용할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재석의 말에 영화 제작사들은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재석이 회사를 확장하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며 발길을 돌렸다.

실제로 재석이 회사를 확장하려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모를까, 아직까진 소속 연예인의 수가 많지 않았기에 구태여 확장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 혜정 씨 밑으로 사람을 좀 구해 볼까요?”

“연예인 숫자 더 늘어나서 준비하는 거지?”

“이제 혼자 일하는 건 그만해야죠.”

“하긴, 그럼 몇 명이나 더 고용할 생각인데?”

“둘이요.”

“역시 숫자가 짜구나.”

“셋 정도만 있어도 돌아가면서 느긋하게 휴가를 쓸 수 있잖아요. 아직은 연예인마다 전속으로 붙여 봐야 노는 사람만 늘어날 거예요.”

재석의 바람대로 스타일리스트는 두 사람이 더 고용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혜정은 기분이 좋았다. 혼자 빡빡하게 일 안 해도 돼서 말이다.

“재석아, 돈은 어떻게 할 거냐?”

“지금 당장은 투자할 만한 영화가 안 보이네요. 게다가 제작에 투자하면 반년은 묶이게 될 테니 신중히 생각하려고요.”

“흐음.”

태극기 펄럭이며에 투자하면서 엄청난 거액을 벌어들이긴 했지만, 그를 위해서 오랫동안 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처럼 확실하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금이 묶이는 건 피해야만 했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 투자할 수 없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럼 언제 투자할 건데.”

“곧 오겠죠. 투자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말이죠.”

재석은 올해는 영화 투자보다 다른 걸 봤다. 배우들의 상황이었다.

“장강호 형님의 영화 상황이 궁금하네요.”

“계약하고 나서 바로 작업 들어간 영화가 곧 개봉 예정이고, 현재 문자영의 어린 색시는 개봉한 상태인데 현재 쭉쭉 치고 올라가고 있어. 만약 이쪽에 투자했으면 나름 괜찮은 수익을 올렸을 거야.”

“어차피 그때는 자본금이 부족해서 투자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죠.”

“뭐, 다른 영화에 투자를 해서 더 그랬지.”

“그리고 주유의 다음 작품은 준비되어 있나요?”

“한참 고르는 중이야. 하지만 슬슬 주유는 작품 관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연말에 나갈 만한 작품 하나 준비하죠.”

“선택해 줘.”

“어렵네요. 제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주명진은 재석의 눈이 높다는 걸 알고 있기에 기준을 낮춰 주길 요청했다.

“그나마 눈을 낮춰서 추천한다면?”

“다이어리, 이 영화요. 하지만 기대 수익률은 모호합니다. 큰 이익은 절대 못 볼 거 같다는 게 문제죠.”

“흐음, 알았다. 일단 추천은 하마.”

주명진과 이야기를 끝낸 재석은 김명진에게로 생각을 돌렸다.

‘주유보다는 김명진이 더 시급해.’

재석과 김명진은 시간을 맞춰서 드라마 배역 준비를 진행했다.

“그동안 준비는 확실히 하셨습니까?”

“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김명진은 무려 네 가지의 톤과 그에 따른 감정 표현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오랜 연기 경험이 있기에 해낼 수 있었던 일이었다.

“거의 완벽하네요.”

재석은 스스로가 요청했으면서도, 같은 대사를 이토록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연기자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민경이도 이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괜히 사람들이 명본좌라 부르는 게 아니다.

“뭘요 부족합니다.”

“아니요, 충분합니다. 물론 더 노력하신다면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완벽에 가까워지겠죠. 물론, 연기에 완벽은 없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준비한 걸 감독님에게 보여 드릴까 합니다.”

“저랑 같이 갑시다. 내일 가실 거죠?”

“하지만 바쁘실 텐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항상 바쁘진 않습니다.”

재석이라도 매일 바쁜 건 아니다. 회사에 점점 인원이 늘어나면 날수록 직접 관리할 일이 줄어들고, 보고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재석은 소속 배우들에게 중요한 기점이 되는 부분만 간섭해도 충분할 듯했다.

다음 날, 재석과 김명진은 감독을 만나 준비된 걸 보여 주었고, 그에 이성주 감독이 보인 표정은 압권이었다.

“억!”

그냥 입만 떡 벌렸다.

“이 바닥 생활만 17년인데, 이렇게 철저히 준비해 온 사람은 처음 보네요.”

그만큼 충격을 받았다.

“새로 회사와 계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도움을 받은 건가요?”

“새로 계약한 회사 사장님 덕분이죠. 연기에 필요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회사가 어디입니까?”

“제이이브에서 일하는 전재석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김명진 씨의 담당은 아닙니다.”

“혹시, 임민경 씨가 있는…….”

“맞습니다.”

“아, 그 젊은 사장님!”

이 바닥에 잘나가는 배우가 일반인에게 유명하다면, 그걸 키운 매니저는 그 바닥에서 인지도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들어간 배우들이 점점 알려지고 있더군요. 관심을 두고 있는 배우도 있습니다.”

“누굴 관심에 두고 있으신가요?”

“비밀입니다. 다만, 그때가 되면 꼭 섭외하고 싶습니다.”

“그럼 그때 꼭 연락 주십시오.”

재석과 감독은 악수를 나누며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일정은 잡혔습니까?”

“이미 준비는 끝마쳤습니다. 날짜는 이미 잡힌 상태고, 세트장 역시 이미 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시작하겠군요.”

세트장이 세워진 이상 미루고 있을 시간 따윈 없다.

“정확한 날짜는 이틀 뒤에 결정이 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네요. 이렇게 준비가 철저한 연기자를 만날 줄이야.”

“감독님, 오늘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실까요?”

“아니요. 오늘은 어렵습니다. 준비가 끝났다지만, 다른 배우들의 상황도 확인해야 합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워낙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터라 혹시 모를 사정이 생겼을지도 모르니 미리 확인을 해야죠.”

대하드라마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른 것들보다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네요. 혹시 시간 나시면 연락 주십시오. 곧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재석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재석이 김명진에게 말을 걸었다.

“드라마 촬영이 시작될 때는 매니저가 함께할 겁니다. 담당 매니저가요.”

“진짜로 담당 매니저가 붙는 겁니까?”

“그럼요.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당연히 필요한 일이죠. 그리고 현재 저희 회사는 덩치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죠.”

“아…….”

김명진은 정말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담당 매니저가 생긴다는 게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왜 갑자기 멍해졌습니까?”

“그게 좀 생소해서요. 지금까지 혼자 다녀서요.”

“이제는 달라지실 겁니다. 많이 달라질 겁니다.”

김명진에게 희망은 이미 주어졌다. 그 기세를 타고 날아오를 날만 남아 있다.

“책은 잘 읽고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매일 읽고 있습니다.”

“아주 잘하고 계시네요.”

“저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까요.”

살짝 씁쓸한 말을 내뱉자 재석은 그를 달랬다.

“회사에서 돕겠습니다. 동시에 김명진 씨도 함께하셔야 합니다.”

재석이 그렇게 김명진을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자, 곧바로 민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

“이렇게 정시에 퇴근하는 날도 있어야지.”

“그 새로 계약한 사람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계약은 했다는 건 알지만…….”

“잘됐고, 새로운 드라마 출연할 거야. 워낙 준비가 잘되어 있어서 문제 될 게 없다.”

“그럼 이제 그쪽은 신경 안 쓰는 거야?”

“매니저가 고용되면 보고만 받겠지.”

“음, 그럼 오빠는 다시 내 거네.”

민경은 재석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걱정을 했다.

“얼마나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피부가 푸석푸석하네.”

피부 관리 따윈 개나 줘 버리는 성향 탓에 재석의 피부는 별로 안 좋았다.

“괜찮아. 내가 얼굴로 먹고사는 직업도 아닌데.”

“오빠,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왜 이리 늙은 사람처럼 굴어.”

“걱정돼?”

“당연하지.”

민경이 재석의 볼을 잡아당기면서 대답했다.

“화장실 가서 얼굴 좀 씻어요. 뭐 좀 가져올 테니까.”

재석은 얼굴을 깔끔하게 씻고 나서 거실로 나오자 민경이 한 손에 팩을 들고 왔다.

“누워 봐.”

재석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한쪽에 눕더니 민경이 그 위로 팩을 곱게 붙여 줬고, 민경은 직접 얼굴에 팩을 붙었다.

“이렇게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돼요.”

민경의 말대로 재석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조금 웃겼다.

“크크.”

“왜 웃어요. 주름 생겨요.”

“아무리 생각해도 웃겨서. 내가 이렇게 팩을 하고 있는 상태로 누워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웃겨.”

“뭐, 어때요. 안 늙어 보이기 위해 하는 건데요.”

“하지만 난 연예인도 아니잖아.”

“오빠도 나중에 TV 나갈 수 있어요. 전에도 한 번 나갔잖아요.”

“그거야 잠깐이지.”

“이제 말은 그만하고 가만히 쉬세요.”

둘은 팩을 하는 동안 정말 잠잠해졌다. 그리고 재석은 민경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민경은 살짝 고개를 돌려 재석을 보았고, 재석 역시 민경을 보았다.

둘 다 슬쩍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민경은 팩을 깔끔하게 지우고 다시 재석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이렇게 하니까 얼굴 탱탱하고 좋잖아요.”

“이거 하루 해서 되겠어?”

“매일 하면 되죠. 그리고 저 영화 촬영 시작하는데 같이 움직여야죠.”

민경의 말에 재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민경이 네가 어떤 사람인데.”

재석의 말에 민경이 웃으며 품에 안겼다.

“오늘은 여기에 있어도 되죠?”

“네가 어디 있든 나도 그 옆에 있을 거다.”

“아이, 좋아라.”

둘은 그렇게 연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냈다.

*  * *

‘내 기억 속 지우개’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액션!”

짙은 화장을 한 민경이 기차역에서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손에 쥔 기차표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누군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컷!”

고재한 감독은 재석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아주 젊은 감독이었다. 뮤직 비디오나 다른 쪽에서 활동하다가 이번에 넘어와서 입봉한 감독이다.

“민경 씨, 이쪽으로 와 주세요.”

그는 아주 열정이 넘치는 감독이었다.

“네, 감독님.”

“다음에는 기차표를 꽉 쥐는 게 아니라 누르면서 손톱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이런 식으로…….”

감독의 세세한 지시에 민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시가 끝나면 재석을 한 번 바라봤다.

재석이 몰래 손을 휘휘 저으면서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는 감독의 지시대로 하라는 거였다.

감독 또한 은근슬쩍 재석의 눈치를 봤다. 영화 제작에 가장 많은 액수를 투자한 투자자가 민경의 소속사 사장이자, 매니저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이번 촬영 어떠십니까?”

“감독님이 워낙 잘하셔서 제가 끼어들 게 없습니다.”

“그래도 각색가로 유명하셔서 혹시 바꿀 만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감독님이 잘하고 계셔서 지금은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걱정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재석은 자신이 아주 큰 물주라서 감독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투자를 안 했으면 별로 신경도 안 썼겠지.’

어떻게 보면 그저 수많은 소속사 사장들 중 한 명이었을 거다.

‘저 감독이 이상한 짓만 안 한다면 내가 나설 일은 없겠지.’

재석은 솔직히 저 감독이 너무 젊어서 걱정인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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