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니저 76화>
재석은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감독이 유독 민경에게 신경을 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슈퍼스타이니, 신경을 쓰는 게 맞지만, 달라붙는 모양새가 별로 좋진 않았다.
“민경 씨, 그러니까 이 장면은…….”
“아, 감독님 조금 떨어지시는 게…….”
민경이 알아서 감독과 거리를 뒀지만, 감독은 젊은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 미안.”
겉으로 미안하다고 해도 얼마 있지 않아서 점점 다가왔다.
그 모습에 재석은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왜 민경이한테 저러는 거야.’
재석은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걸어가자 감독이 자연스럽게 민경과 거리를 벌렸다.
“감독님, 너무 가까이 붙으시는 거 아닙니까?”
“네? 무슨 말씀을…….”
“여배우와 감독이 그렇게 너무 딱 붙어 있으면 스캔들 나기 딱 좋은 거 아닙니까?”
“예? 아, 그렇죠…….”
“그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 물론이죠.”
분명 감독의 지위가 높다고는 하나, 막대한 돈을 투자한 투자자에게 비하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로서 기분이 좋진 않네요.”
“예, 조, 조심하겠습니다.”
수틀리면 재석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감독으로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민경은 그런 재석의 모습에, 혼자 몰래 입을 가리며 웃었다.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민경이 재석에게 물었다.
“그렇게 감독님하고 가까이 있는 게 싫었어요?”
“크흠, 그럼 좋겠어?”
“어머, 그럼 나중에 키스신 같은 거라도 해야 하면 어쩌려고.”
“…….”
그 말에 재석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표정만 찌푸렸다.
“에휴, 키스신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찍지도 못하겠네.”
민경은 그런 그를 보며 키득거리며 말했다.
“에휴, 그런 꼴 안 보려면 매니저를 바꿔야지.”
“뭐요!”
민경이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응하자, 재석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오빠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민경은 절대 안 된다면서 격한 반응을 보였고, 덕분에 재석은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나도 어디 못 가겠네.’
집으로 돌아오자 민경은 껌딱지처럼 재석에게 꼭 붙어 있었다.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마요.”
“알았다. 안 한다.”
“오빠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그것만 하지 마요.”
재석의 눈엔 그런 자신의 연인의 집착이 살짝은 무서운 한편, 한없이 귀엽게도 보였다.
시간은 흘러, 영화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일정 또한 잡혔다.
“오빠, 주말에 일정이 잡히다니…….”
“어쩔 수 없어. 영화 촬영하면서 일본 일정도 신경 쓰려면 주말이라고 마냥 쉴 순 없으니깐.”
둘 다 중요했기에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영화 촬영은 민경이 일본 스케줄을 진행하는 동안 그녀가 나오지 않는 장면을 찍으면서 진행됐다.
“후우, 쉬고 싶다.”
“곧 쉴 수 있을 거야.”
“언제요?”
“한 달에 한 번쯤.”
한 달에 한 번 쉰다는 말에 민경이 경악했다.
“오빠, 나 말려 죽일 생각이지?”
민경이 재석을 붙잡고 투정을 부렸다.
재석이 일본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나오미가 미팅을 요청했다.
“현재 일본에서 권진우 상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때문인가요? 아니면 드라마?”
“드라마입니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각 방송사에서 여러 드라마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가 노다지로 취급되었다. 덕분에 과거 유명작들을 다시 확인하며 방송사에서 팔아 달라고 하고 있었다.
“시청률은 얼마나 나왔죠?”
“14퍼센트 정도입니다. 눈꽃연가에 비해 약하지만, 권진우 상이 일본에서 활동할 정도의 인지도는 얻었습니다.”
“한번 해 보죠. 성과가 있다면 좋겠지만, 민경이처럼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라 걱정이네요.”
“이벤트성으로는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제대로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어.’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계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먼저 선점한 놈이 가장 많이 먹는다.’
지금 재석이 민경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무시하다. 매달 결산할 때 들어오는 돈 덕분에 항상 함박웃음을 지어질 정도다.
“그리고 피규어 시제품입니다.”
나오미가 내민 건 민경이를 디자인하여 만든 다섯 종의 피규어였다.
“음, 리얼리티를 많이 살렸네요.”
“예. 정교하게 만들다 보니 크기가 예상보다 커지고 단가도 상승했습니다. 제작 물량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 8천 엔 정도에 판매할 계획입니다.”
“좋습니다. 가격이 상승해서 걱정이지만, 나오미 상을 믿어 보죠.”
“판매는 언제부터 하죠?”
“우선 추첨 이벤트를 진행하여 마케팅을 진행한 뒤 판매할 예정입니다.”
재석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추진하시죠.”
“예.”
나오미는 정말 힘차게 계획을 밀어붙였다.
재석은 마치 실물을 보는 거 같은 피규어를 보며, 그녀의 자신감에 신뢰를 얻었다.
재석과 민경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 첫 추첨은 일주일 뒤에 진행됐다.
추첨에 참가한 인원은 무려 50만 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첨된 사람들이 피규어의 실물을 공개했고, 팬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판매 시작과 동시에 팬들의 문의가 잇달았다.
5종 전부를 구매하면 무려 4만 엔에 달하는 금액인데도 그렇게 구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미 사전 예약에서 3만 개의 주문이 접수되었다.
문제는 당장 만들어 놓은 물량이 적다는 것이었다. 높은 퀄리티 탓에 빠른 속도로 생산하기 어려운 때문이다.
하나 당장에 판매된 수치만으로도 충분한 대히트였다.
재석은 그 소식을 영화 촬영장에서 들었다.
“나오미 상 정말 그 숫자 믿어도 됩니까?”
(사장님, 보고서를 메일로 보냈습니다. 확인하시면 됩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주문이 추가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나오미의 판단이 옳았다. 그리고 그녀를 믿은 재석의 판단도 옳았다.
“대단한데.”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민경의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있었다.
“집에도 하나 놔야겠네.”
피규어를 집에 놓아두면 민경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다.
피규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꾸준히 이어졌다.
예약 대기까지 합산하면 그 숫자가 무려 10만 개에 달했다. 5종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덕분이었다.
“구매자 수가 4만 명이라니.”
부수입 정도로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꽤 짭짤한 수익이 될 듯했다.
* * *
재석은 민철에게 권진우의 일본 일정이 잡힐 거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네! 진우 형이 일본에 가요?”
“일본에 방영된 드라마 덕분이다. 그쪽 팬들이 좀 생겼어. 그러니 권진우에게 미리 말해. 그리고 민철이 너 일본어 할 줄 알아?”
“아니요. 할 줄 모릅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배워. 영어도 배우고. 이제 매니저들도 영어 못하면 어려운 세상이 될 거야.”
“서, 설마요…….”
“내가 한 말이 언제 안 이뤄진 적 있냐?”
“선배님이 말한 건 다 이뤄졌죠…….”
“그럼 공부해라.”
“어, 그럼 나도 해야 하냐?”
주명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하자 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도 영어 해야죠. 해외에서 한국으로 연락 올 텐데. 전 세계로 배우들을 보낼 준비를 해야죠.”
“으아, 영어 잘 못하는데…….”
“이제부터 영어 실력도 연봉 협상 때 기준 중 하나로 삼을 겁니다.”
“윽!”
연봉 협상이란 말에 다들 표정들이 안 좋아졌다.
“한국에서만 활동하면 안 됩니까?”
“무슨 소리!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눈꽃연가가 이례적인 일에 불과했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이제 사라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찾아온 거다.
“하아, 힘드네.”
주명진과 최민철은 한숨을 내쉬며 곤란함을 표시했다.
“해외 출장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 실력을 만든 직원에겐 연봉 500만 원을 인상할 생각입니다.”
재석의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바뀌었다.
“선배님, 지금 당장 학원 다니겠습니다!”
발 빠르게 대답한 건 최민철이었다.
“약속 지켜라.”
“제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습니까?”
“크으.”
주명진은 재석이 허튼소리는 절대 안 하는 인간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재석아, 나 꼭 내년에 인상 받는다.”
“팀장님, 저랑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할 수준은 돼야 합니다.”
“걱정 마라. 내 꼭 내년에는 그런 수준에 도달하리라.”
목적 확실하다 보니 영어는 정말 빨리 배울 수 있어 보였다. 돈 때문이라도 말이다.
* * *
2주일 뒤, 재석은 권진우가 일본 일정을 끝낸 뒤 그로 인한 예상 수익을 계산하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높은 액수인 탓이었다.
“잘 나오는데?”
권진우의 인지도가 낮은 편임에도 예상 수익이 한화로 1억에 육박할 정도였다. 모든 경비를 제하고 남는 게 1억이었으니 상당했다.
“좋은 작품을 찍고 나면 더 좋아지겠지.”
권진우 또한 일본에 다녀온 이후로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민철아, 이제 나도 인기 스타 대열에 합류한 거냐?”
“진우 형도 이제 스타죠.”
“이제 민경 씨랑 동급이 됐을까?”
“에이, 그건 아니죠. 임민경 씨가 일본에서 팬미팅을 하면 너무 몰려서 가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일본 방송사 재경 6국에서 섭외 1순위예요. 돈 싸 들고 와서 제발 출연해 달라고 하던데요.”
“하아, 정말 저 높은 곳에 있네.”
“형도 이번에 더 열심히 하면 확실히 잘될 거예요.”
“근데 내가 이 회사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면 돈 더 받을까?”
“받겠죠. 성공한 드라마 하고 영화가 있는데.”
한참 황금기를 달리고 있는 권진우였기에 지금 그 콧대가 하늘을 찌를 시기였다.
“그렇겠지.”
“왜요. 계약 끝나고 재계약 안 할 거예요?”
“고민 중이야. 다른 회사로 갈지 말지. 이곳에 있어도 잘 벌긴 하는데 더 벌고 싶어.”
“재계약할 때 제가 말 잘해 볼게요. 조건 많이 올려 달라고.”
“그게 쉬울까.”
“아니에요. 형도 민경 씨처럼 대박 하나 더 터트리면 될 거예요.”
“그래, 대박! 하늘의 계단 말고 하나 더 터트려야 해.”
권진우는 아주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민철아, 내가 만약 나가면 너도 같이 가자.”
권진우의 말에 민철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어.”
“형이랑 있고는 싶은데, 여기서 연봉도 잘 오르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 나랑 있어야지. 나 따라와. 내가 지금보다 연봉 더 많이 받게 해 줄게.”
권진우가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 한 말이었지만, 민철은 고민이 되었다.
“형, 그 결정은 형이 다른 곳에 갈 때 하죠. 지금 대답할 수도 없고,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래, 뭐 아직도 계약 기간 많이 남았다.”
권진우는 편하게 생각하며 민철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거다. 결국 민철은 자신과 함께할 거라고 말이다.
“진우 형, 이번에도 진우 형 앞으로 날아온 선물들이 많아요.”
“얼마나?”
“한 100개 될걸요.”
“많네. 그 안에 열어 봐서 괜찮은 건 가져와. 이상한 건 버리고.”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