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76화 (76/152)

<당신의 매니저 77화>

재석이 한참 민경의 영화 촬영장에 따라다니고 있던 그때, 권진우는 새로운 영화 촬영을 다 끝내고 각종 인터뷰를 하고 다녔다.

“안녕하세요, 맥스데이 기자 김만직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간단히 몇 가지 질문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연예계 데뷔 이전과 지금이 다릅니까?”

“데뷔 전에도 설렁탕 먹고 싶고 데뷔 후에도 설렁탕 먹고 싶은데 왠지 안심스테이크가 먹고 싶은 것 같고, 상황적으로나 일하는 데 있어서나 변하겠죠. 변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생각하고요.”

“아, 예. 알겠습니다.”

기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권진우의 대답에 황당함을 느꼈다.

‘이 인간 말하는 게 뭐 이래.’

그는 살짝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그래도 인기스타라서 참고 넘기기로 했다.

“30대 이후에는 은퇴하고 싶다고 하셨던데요.”

“아, 은퇴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그때 되면 안 찾을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많은데요. 하강곡선이 아니라 상승곡선 탈 때 그만두고 싶고, 제 인생을 많이 찾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하고 싶다 그런 건 없어요.”

기자는 권진우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헌혈량이 모자라다고 헌혈을 자주 하시는지요.”

“헌혈은 군대 있을 때 딱 한 번 해 봤는데 영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헌혈은 안 하려고요.”

‘이 인간은 대외 이미지 따위는 신경 안 쓰나?’

헌혈을 하든 안 하든 개인적인 거지만, 기분이 안 좋다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그걸로 끝이 났고, 다음 날 인터뷰 기사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는 인간인가?

-연예인 되고 돈 버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보네.

-제발 은퇴해라.

-병원에 피가 없어서 피를 외국에서 가져온다! 그것도 돈 주고!

-오늘부터 안티다.

?나도 시작한다.

?동참합니다.

?이제 더 이상 권진우 팬 아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확인한 재석은 너무 황당하여 화도 나지 않았다.

“아이고야, 일 뚝 끊기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선 권진우에 대한 불만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재석은 이날 오후에 권진우를 불러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권진우 씨, 이런 인터뷰를 할 줄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이런 인터뷰라뇨?”

권진우는 무슨 일이 터졌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아…… 이겁니다.”

재석이 미리 프린트를 해 놓은 인터뷰 기사를 보여 주자, 권진우는 이게 뭐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게 왜요?”

“이런 인터뷰가 기사로 나가면 일거리가 끊길 거라고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이 인터뷰로 왜 일이 끊긴다는 거죠?”

권진우가 언성을 높이던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네.”

(재석아, 권진우 광고 하나 날아갔다. 권진우의 이미지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다고 제안을 취소하겠다네.)

“후우, 알겠습니다.”

재석이 전화를 끊고 바로 권진우에게 말을 건넸다.

“방금 권진우 씨 광고 하나가 날아갔습니다.”

“네? 광고 섭외가 들어온 것도 없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재석은 회사 내선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민철아, 권진우 씨 광고 계획 잡힌 것들 가져와. 방금 캔슬된 것도 가져와.”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자, 민철이 권진우의 광고 촬영 계획을 정리하여 가져왔다.

“선배님, 방금 광고가 또 취소됐습니다.”

형광펜으로 그어진 두 개의 선이 또 다른 광고가 취소됐음을 알려 줬다.

“이것들은 아직 제안만 받았을 뿐이고, 계약을 진행한 건 아니니 문제 되진 않아요. 문제는 진행 중인 광고에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네?”

권진우는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 선배, 그렇게 되면…….”

“일단 계약서를 확인해 보죠. 민철아, 지금 광고가 진행 중인 것들의 계약서 좀 가져와.”

“예!”

민철은 재빨리 나가서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 지금 이미 광고가 진행 중인 건 두 개였다.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이번 일은 계약 해지 조항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이네요.”

“후우.”

권진우는 재석의 말에 한시름 놓았다.

“다행이네요. 이 정도로 끝나서.”

재석은 꽤 무심하게 말했지만, 권진우는 심장이 철렁했다.

“권진우 씨, 사람이 살면서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면 그때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겁니다.”

재석은 진심을 담아 조언이 아닌 경고를 보냈다.

“한동안 인터뷰는 전부 거절하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에서 달갑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구설수에 들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 그러면 섭외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섭외가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출연료 자체도 줄어들 겁니다.”

“……!”

권진우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모습이었다.

“후우…….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인터뷰 하나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이번 사태를 모두 해명하도록 하세요. 거기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처음 말씀드린 방안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사에 폐를 끼쳤습니다.”

재석은 권진우의 사과에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사태가 더 심각해지진 않았기에 이 정도로 덮겠지만, 다음번에는 상응하는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재석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안하무인이었던 권진우조차 기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진행할 인터뷰에서 대답할 매뉴얼을 드리죠. 그 외에는 어떤 대답도 하지 마십시오.”

“예…….”

권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은 했지만, 모두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이해가 안 됐다. 겨우 인터뷰로만 생각을 했다. 스타가 되었고, 이제 빛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인터뷰가 자신을 이렇게 괴롭힐 줄은 몰랐다.

“일단 돌아가서 쉬고 싶습니다.”

“그러세요.”

권진우가 일어서서 나가자 민철이 그 뒤를 따랐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권진우는 불만을 내뱉었다.

“민철아, 내가 겨우 인터뷰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

“형은 인터넷 안 봐서 모르시겠지만, 지금 시끄러워요. 뭐, 선배 말대로 하면 최대한 빨리 조용해지는 길이기도 할 거예요.”

“너, 지금 내 앞에서 그 사람 편드는 거야?”

“형, 그런 게 아니잖아요. 선배도 형 생각해서 최대한 일을 조용히 끝내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하아…….”

권진우는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지금 일순간의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아우, 진짜.”

“형, 조금만 참아요. 다른 배우들도 이런 구설수에 휘말리면 잠시 몸 사리잖아요.”

권진우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그토록 비난받을 일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에 쉬이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였다.

며칠 후, 재석의 이야기대로 행동하자 상황은 금세 잠잠해졌다.

하지만 재석은 이번 일이 완벽히 해결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권진우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 이상, 똑같은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탓이었다.

“아직은 대처가 성숙하지 못해.”

미래의 권진우와 지금의 권진우는 정말 달랐다.

“성인인데도 너무 격정적이야.”

재석은 어째서 미래의 권진우와 지금의 권진우가 이토록 다른 모습인 걸까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덜 성숙됐다는 결론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쉽네, 아쉬워.”

권진우는 연기자로서의 자질은 차고 넘쳤다. 분명 세계적인 스타가 될 재목이었다.

하지만 정신적 미성숙함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으니 아쉬울 뿐이었다.

“나중에 이야기 좀 나눠 봐야겠어.”

재석은 어떻게든 권진우를 변화시켜 키워 보기 위해 대화를 나누어 보려 했지만, 전혀 다른 이유로 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권진우는 한숨을 쉬며 눈앞에 있는 술잔을 바라보았다.

‘술도 잘 못하는 인간이 독하게 술을 먹다니.’

재석이 권유하기도 전에, 권진우가 애인과 헤어졌다며 술 한잔하자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아…… 사장님, 답답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렇게 헤어집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좀 못 만났다고 해서 마음이 식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죠.”

“하아, 사장님은 애인 있습니까?”

“애인…….”

민경이와 연애 중이었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뇨, 바빠서…….”

“사장님도 저랑 같은 솔로인 거죠?”

“그렇죠.”

“하아…… 구설수에 휘말려서 조용히 지내려고 한 건데 이렇게 헤어지다니.”

“어쩌면 인연이 아니었던 걸지도 모르죠.”

재석은 권진우를 달래면서 조금씩 술잔을 기울였지만, 권진우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막 들이마셨다.

“아이고.”

재석이 한참을 토닥이던 그때, 권진우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꼭 복수할 겁니다. 그 여자보다 잘나가고 더 예쁜 여자 만나서 복수할 겁니다.”

“……그러려면 어디 미스코리아라도 만나야겠네요.”

재석은 복수심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려 한다는 것이 좋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권진우가 너무 힘들어하기에 일단 계속 맞장구를 쳐 주었다.

“제가 그런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뭐,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 바닥에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들도 많고 말이죠. 가령…….”

재석의 입에서 줄줄이 배우들이 흘러나왔다.

“이야, 많네요. 그래요. 저 꼭 그런 여자들 만날 겁니다.”

“예, 만나셔야죠. 그리고 구설수 관해서 말인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전 꼭 그런 여자를 만나야 하는데 사장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제가 여자를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사장님도 힘든 겁니까?”

“어떻게 소개해 주겠습니까. 연락처를 아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이 바닥에서 재석의 입지가 상당한 위치에 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기 연예인들과 모두 교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완전히 별개의 문자라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일단 구설수 문제를…….”

“사장님! 지금 저한테는 이게 중요합니다. 그깟 구설수 아무것도 아니에요.”

권진우 머릿속에서는 벌써 구설수 따위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었다.

‘참 시기적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안 좋다고 해야 하나…….’

자리가 만들어진 김에 이전에 벌어졌던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확실히 매듭을 지었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  * *

다음 날, 재석은 아쉬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는데 점심시간 때 쯤 한 장의 팩스가 날아왔다.

“이건 뭐지?”

날아온 건 내용은 영어였지만, 그걸 보내온 곳은 바로 태국이었다.

“태국?”

눈꽃연가가 아시아권에 퍼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초청까지 올 줄은 몰랐다.

“방송사 채널 원이군.”

태국의 유명한 방송 채널이다.

“태국이 놀러가기는 딱 좋지.”

재석은 일정을 확인하고 곧 영화 촬영 일정이 끝난다는 걸 알았다.

“좋아, 일정도 적당하고.”

민경에게 괜찮은 시간이 될 걸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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