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니저 79화>
중국 사건 이후, 재석은 중국에서 섭외하고 들어올 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촬영 스태프 이외에 다른 이들과는 만남을 갖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걸 승낙하지 않는 곳은 아무리 거액의 제안을 건네도 전부 거절했다.
“재석아,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광고 하나 찍자는데.”
“중국이요?”
“그래.”
“내용을 줘 보세요.”
재석은 서류를 받아 보더니 주 팀장에게 넘겼다.
“여기는 연락해 보세요. 그리고 저희가 원하는 액수를 맞춰 줄 수 있는지 확인하세요.”
“OK.”
재석은 이전처럼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 소란을 피우는 걸 방지하기 위해 중국 일정은 정말 철저하게 관리할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광고 제안 검토를 끝낸 뒤, 일본 일정을 확인했다.
매번 진행했던 것들과 별다른 것 없는 내용이었는데, 재석은 뭔가 다른 걸 시도해 보고 싶었다.
“일본에 있는 한인들을 위해 뭔가 좀 했으면 싶은데.”
재석은 한참 고민에 잠겼다가 문득 일본에 있는 한인 학교들을 떠올렸다.
“아, 그래. 거길 한번 찾아가 보자.”
그는 나오미에게 연락을 취해 한인 학교에 방문해 보고 싶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나오미는 잠시 뒤 도쿄에 있는 한인 학교들 몇 군데를 골라서 메일로 전달해 주었다.
메일에 정리되어 있는 사진 속 학교들은 상당히 허름한 상태였다.
“한인 학교가 이런 상황이었나…….”
재석의 기억 속에 한인 학교는 건물이 좋았는데, 이 사진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아니면 미래에 학교가 이전했거나…….”
나오미가 정리해 준 학교들이 어떤 학교들이 있는지 정리한 서류를 본 결과, 한인 학교라고 다 똑같진 않았다.
어떤 곳은 몇 년 뒤에 학교 이전을 할 정도로 잘나가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그걸 꿈도 못 꾸는 곳도 있었다.
재석은 한인 학교들 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절실한 곳을 선택했다.
“이곳에 방문해 봐야겠어.”
재석은 서둘러 방문할 한인 학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민경도 곧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오빠, 그럼 저도 도울게요.”
민경이 자금을 지원해 주면서 더 많은 선물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근데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냥 우릴 많이 응원해 주는 한인들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해서.”
“흐음, 영감님이 기특한 생각을 하셨네요.”
민경의 말에 재석은 살짝 투덜거렸다.
“아니, 영감님이라고 하면서 어린애 다루는 듯이 하는 건 또 뭐냐.”
“요즘 들어 오빠가 너무 귀엽다랄까?”
민경의 얼굴에는 요즘 웃음꽃이 항상 피어 있었다.
“그럼 이번 일본 일정 끝내고 가는 거야?”
“그래야겠지.”
말을 잇던 재석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그리고 권진우도 일본에 같이 갈 거야.”
“그럼 같이 가?”
“이야기는 할 거야. 하지만 꼭 같이 해야 되는 건 아니니까 강제하진 않을 거야.”
이런 일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재석은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권진우가 참여하려 할지 반신반의했는데, 권진우도 참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뒤에 일본으로 갔는데, 민철도 함께 갔다.
“으아.”
민철은 일일을 하러 떠나는 건데도 해외로 나간다는 사실에 너무 좋아했다.
“입 찢어진다.”
“오빠, 그냥 비행기 타는 게 좋을 수도 있죠.”
“근데 몇 번 나가면 실망하잖아.”
“일하고 곧바로 돌아가야 해서요?”
“맞아.”
재석과 민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좀 더 둘러보고 싶은데 어려운 일이었다.
“전 그래도 오빠만 있으면 돼요.”
민경은 재석의 귀에 속삭이며 말하자 재석이 웃었다.
“고맙다.”
일본에 도착한 민경과 권진우는 제각기 예정된 스케줄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고, 모든 스케줄을 정리한 뒤 방문하기로 한 한인 학교로 향했다.
“여기군.”
딱 사진으로 본 그대로였고, 건물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이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는 거네요.”
결코 공부를 하기에 좋은 환경으로는 보이진 않았다.
“가죠.”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이 학교의 교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이구, 어이구! 오셨군요.”
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자 재석은 그 손을 맞잡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재석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교장이 고개를 돌리자 민경과 권진우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영광스럽게 만드신 분을 직접 만나 뵙게 되다니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교장은 이제 나이가 들어 격정이란 단어가 잊혀 가는 나이인데, 민경과 권진우를 보자 가슴속에 격정이라는 불길이 타올랐다.
“일단 학생들을 위해 펜과 노트 등 학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래된 부분을 보수하시는 데 사용해 주십시오.”
재석이 내민 봉투에는 돈이 들어 있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교장과 이야기를 끝마친 그들은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에 강당이 없어서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였다.
학생들의 반응은 너무 뜨거웠다.
와아아!
운동장에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모여 있었는데, 민경은 아주 어린 저학년 학생들에게까지 유명했다.
민경과 권진우는 학생들과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함께 찍어 주며 사인도 해 줬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필기구를 선물했다.
그렇게 학생들과 한 차례 만남을 끝낸 그들은 학교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민경은 그러던 중 교실을 살피더니 말했다.
“책상과 의자가 너무 낡아 보여요.”
“그러네.”
책상과 의자는 지나치게 낡아서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오빠, 제가 책상과 의자를 바꿔 줘도 괜찮을까요?”
“원하는 대로 해. 네 돈으로 직접 하겠다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럼 바꿔 줄래요.”
“알았다. 그럼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하자.”
그들은 그렇게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한 학급에 들어가 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선정된 반은 저학년 반이었다.
“여러분 안녕!”
민경이 손을 흔들자 초등학생들이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해 줬다.
반면 권진우는 아주 멋지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흐를수록 권진우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재석은 민철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어제 권진우 씨 뭐했어?”
“별일 없었는데요. 그냥 일 끝나고 잘 잤어요.”
“그래?”
권진우의 태도는 점점 더 형식적인 느낌으로 변해 갔갔다.
‘음……. 역시 미성숙해.’
재석은 민경과 대조적인 권진우의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설령 몸이 피곤하다 할지라도 팬들 앞에서는 그것을 감출 줄 알아야 하는 게 연예인이었다. 하지만 권진우에게는 그런 모습이 부족했다.
반면 민경은 권진우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민경에게 더 많은 호감을 보였다.
“와아, 애들이 민경이를 너무 좋아하네.”
“호호호, 뭘요.”
바로 그때, 재석은 한쪽 구석에서 수줍어하며 쉽사리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소녀를 발견했다.
그는 그 소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넌 왜 저쪽에 가지 않니?”
“저쪽에 가기 부끄러워요…….”
수줍음이 많은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소녀를 보고 재석은 직접 가리켰다.
“누구한테 가고 싶니?”
“권진우 오빠요…….”
소녀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권진우를 가리켰다. 멋지게 생긴 권진우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럼 아저씨랑 같이 갈까?”
재석은 조심스럽게 권진우에게 안내를 했고, 권진우는 다른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재석이 데리고 온 소녀를 보지 못했다.
그때 민경이 그 소녀를 보고 다가와 물었다.
“이름이 뭐니?”
“김소연이요.”
“어머, 이름도 어쩜 예쁘니.”
민경은 살갑게 그 소녀를 대해 줬고, 그에 소녀는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은 모습으로 권진우를 바라보았다.
“어휴, 저 오빠가 좋은가 보구나. 진우 오빠!”
“응?”
“여기 어린 팬 한 명 있어요.”
“어, 그래. 안녕.”
권진우는 민경의 부름에 소녀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진우 오빠, 그게 끝이야?”
권진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느 정도 관심을 보였지만, 거기까지였고 그 뒤에도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뭐가 저래.’
권진우가 너무 형식적인 모습만 보이자 민경은 그에게 실망을 했다.
그리고 민철 또한 그걸 보고는 권진우가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선배님, 진우 형이 오늘따라 좀 차갑네요.”
민철의 생각에도 연예인이 저래도 되나 싶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돌아봐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권진우는 이미 다른 이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경도 다른 이들을 신경 써야 했고, 그 소녀는 결국 재석이 돌보았다.
“소연아, 조금 기다려 줄래? 조금 이따가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해 줄게.”
“아니요. 괜찮아요.”
소녀는 포기가 익숙한지 재석에게 멀어져 혼자 자리에 앉았다.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이네.’
재석은 그 아이가 신경 쓰였지만, 그걸 본 건 재석만이 아니었다.
“에구.”
민경도 뭔가 불만이 생겼는지 권진우를 한 번 보다가 다시 아이들을 봤다.
“누나는 저 형이랑 애인이에요?”
민경은 그 말을 듣고 별로 놀라지도 않고 편하게 말했다.
“누난 저 오빠랑은 아무 관계도 아니야. 내가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그리고 애인은 따로 있어.”
애인이 따로 있다는 말에 그 소년은 충격에 빠졌다.
“애인 있어요? 나중에 크면 누나한테 사귀자고 하려 했는데.”
“호호호, 고마워. 근데 미안해. 그때는 나도 나이가 많아져서 안 돼.”
민경은 조카뻘 정도 되는 소년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재석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봤죠? 저 이렇게 인기 많은 거.’
하지만 재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눈치가 없어.’
민경은 순간 저런 남자를 왜 좋아하는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잡힌 물고기 신세였다.
그렇게 재석이 준비한 행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가 되었다. 소연이 속해 있던 반 또한 이제는 하교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교 시간이 되자 바로 학생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권진우도 피곤하다며 따로 먼저 가 버렸다.
재석과 민경도 돌아가려던 그때, 두 사람은 교문에서 소연이 교문 앞에서 쓸쓸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집에 안 가니?”
민경의 물음에 소연은 쓸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어요.”
“집에 아무도 안 계셔?”
“네, 부모님은 일이 끝나야 돌아오시거든요. 항상 늦게 와요.”
“……오빠, 오늘 일정 없죠?”
“없어. 내일 아침 비행기 탈 때까지 시간 많이 남았지.”
“그럼 이 아이랑 같이 있을래요?”
“그럴까?”
재석의 허락이 떨어지자 민경이 소연에게 말을 걸었다.
“이 언니랑 엄마 올 때까지 같이 있을래?”
민경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언제 돌아오시는 알려 줘. 그때 맞춰서 집에 데려다줄게.”
“저녁 7시에 오세요.”
“그리고 집은 어디야? 나중에 집에 데려다주려면 알아야지.”
“여기서 멀지 않아요.”
“그럼 언니랑 갈래?”
“네!”
민경이 소연을 데리고 움직였다. 재석도 그 옆에 붙으며 한 가족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식사도 같이하고, 곳곳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7시가 다 되고 말았다.
소연의 집에 도착하자 소연의 엄마가 바깥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엄마!”
소연이 밝은 목소리로 달려갔고, 소연의 엄마는 소연을 붙잡고 소리쳤다.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니!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부모의 걱정은 당연한 거였다. 재석과 민경은 서둘러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먼저 민경이 나서서 인사를 하자 소연의 엄마는 민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 어…….”
“많이 놀라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