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니저 80화>
민경의 등장에 소연의 엄마는 너무 크게 놀라고 있었다.
“소연 어머니,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아, 아…….”
일본을 뒤흔든 배우의 등장은 그녀의 마음을 쉽사리 진정시킬 수 없게 만들었다.
‘흐음, 이 집은 그리 생활이 넉넉하진 않겠어.’
재석은 모녀의 집을 보고 있으니 정말 어렵게 살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적진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을 재석만 했냐, 민경도 똑같았다. 다만 그걸 드러내진 않았다.
“혹시 식사하셨나요?”
“아, 아직 안 했는데요…….”
“그럼, 저희랑 같이하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래도 될지…….”
“괜찮습니다.”
그렇게 넷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소연의 엄마는 점점 입가에 미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소연이 입을 만한 옷을 사고 마지막으로 소연의 엄마가 입을 옷도 골랐다.
“이거 한번 입어 보세요.”
“네? 하, 하지만…….”
“괜찮아요. 입어 보세요.”
민경은 넓은 아량을 보이며 옷을 사 줬다. 모녀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재석은 소연의 엄마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지금 사무 보조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씩 한국어 일본어 통역도 하고 있고요.”
“통역 자격증은 있으신가요?”
“예. 결혼하기 전에 땄었고, 결혼하면서 일본으로 건너왔거든요.”
“그럼 원래 한국에서 사셨군요.”
“네. 하지만 남편이 떠난 뒤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쭉 살게 됐어요.”
“왜 한국에 돌아가지 못했죠?”
“한국에도 가족이 없어요.”
사정도 참 딱했다. 일본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이곳에 남은 거다.
“그러시군요.”
민경은 그 이야기를 듣자 재석의 손을 잡았다.
“오빠, 저쪽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 좀 해요.”
“소연 어머니,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민경과 재석은 몇 걸음 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고, 재석의 표정은 꽤 진지했다.
“오빠, 가능하겠어?”
“일단 사람이 필요하긴 할 거야. 회사에 고용하면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이 꾸준히 있고, 다른 회사 배우들도 있으니까 전속 통역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재석과 민경의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다시 돌아와 소연의 엄마에게 제안을 했다.
“혹시 저희 회사에 일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저희 회사가 일본 지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항시 통역사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일당을 지급하며 일을 시켰지만, 슬슬 고정 통역사가 필요한 시점이죠. 연봉은 협상을 통해 할 겁니다. 사무직도 하셨으니 통역 일이 없을 때는 사무 일을 하시면 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한류 스타가 늘어날 터였다. 그때가 되면 일본 지사는 지금보다 큰 역할을 해야만 했다.
연예인들이 일본에서도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얻고, 그걸 또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직원을 뽑을 필요가 있었다.
“수익은 지금 다니고 계신 회사보다 더 받으실 수 있도록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구두 약속이었지만, 사장인 재석의 보장이니 이보다 더 확실할 순 없었다.
소연의 엄마는 재석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쉬는 날 따로 나오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채용되었다.
일본에서 정한 법률에 따른 기준을 지키며 고용 계약서를 작성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계시다고 들어, 사장님의 지시로 아이를 늦은 시간까지 돌봐줄 수 있는 곳을 알아봐 두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연의 엄마는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 울지 마세요.”
“흑흑,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 * *
일본 스케줄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재석은 기이한 소문을 접했다.
“팀장님, 다시 말씀해 보세요. 가수 이정환이 매니지먼트 회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그래, 배우 한 명을 소속사에 계약시키려고 하는데 특이한 건 어린 소녀라는 거야. 계약 조건이나 회사의 비전과 실적을 제시해야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하네.”
재석은 그 순간 깨달았다. 그 소녀가 누구인지.
“팀장님, 그거 우리가 먼저 접촉하죠.”
“응? 우리가 먼저 접촉하자니.”
“그 소녀가 누구인지 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주명진은 궁금해졌다.
“누군데?”
“권진우가 출연했던 하늘의 계단에 나왔던 아역입니다. 워낙 귀여운 소녀라서 살짝 탐이 났는데 당시 소속사가 이정환이 차린 소속사였죠.”
“오호, 그렇다면 확실하겠네.”
“저희는 현 회사 자금까지 공개하도록 하죠.”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 비공개로, 비밀 유지각서는 받아야겠죠.”
“정말 탐나는 사람인 모양이네.”
미남이네의 배우, 그리고 의리파 여배우다. 민경처럼 한 번 한 약속은 목숨 걸고 지키는 사람이기에 꼭 데려와야 하는 사람이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좋아, 자료 준비해서 내가 먼저 접촉하지.”
“아뇨, 자료만 준비해서 저에게 주세요. 제가 직접 만나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그쪽에서 깐깐하게 나올 수도 있으니 제가 직접 나가서 대응하는 게 나을 거예요.”
“좋아, 그렇게 하지.”
주명진은 하루 정도 시간을 들여 자료를 준비했고, 그 후 그쪽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이정환이 다음 날 직접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직접 배우를 추천하고 다니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뵙자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이이브에서 이렇게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이걸 보시죠.”
재석은 그에게 조심스레 서류를 내밀었다.
“조건에 대한 소문은 들었습니다. 맞게 했는지 모르지겠만, 일단 준비해 봤습니다.”
이정환은 재석이 건네준 걸 하나씩 다 보고 확인한 뒤에 약간 의심이 들었다.
“이거 진짜입니까?”
“물론입니다. 혹시 의심되는 게 있으신가요?”
“예, 이 재무 진짜입니까?”
“제가 사기를 치면서 일할 거라 보이십니까? 만약 그랬다면 저희 회사에 있는 임민경 씨와 권진우 씨가 먼저 소송을 걸었겠죠.”
이정환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인 임민경과 권진우가 바보같이 속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음…… 일단 제가 다녀본 곳 중에서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한 곳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좋은 곳이라서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러면 이렇게 하죠. 1년 동안 박신연이 무엇을 했는지 매주 업무보고 내역을 보내 드리죠. 도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시 데려가십시오.”
재석의 자신 넘치는 말에 이정환은 정말 신기해했다.
“정말 놀랍네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신뢰가 없으니 신뢰를 줘야죠.”
재석의 말에 이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만한 조건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여러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그가 내민 조건에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제이이브는 직접 접촉해 왔을 뿐만 아니라, 조건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럼 다음에 올 때는 계약할 배우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끝마쳤다.
재석은 아역이 더 생긴 만큼 매니저 고용에 열을 올려야 했다. 그는 이정환이 가고 나서 주명진과 최민철을 찾았다.
“주변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매니저?”
“네, 그것도 많이.”
“갑자기 왜?”
“신인 연기자 오디션을 좀 하려고요. 공개 오디션이요.”
“응?”
공개 오디션이라는 말에 주명진과 최민철이 눈을 깜빡였다.
“오늘 아역 배우 하나 영입한 거잖아. 그런데 오디션은 왜?”
“회사에 여유가 생겼으니 앞으로 신인 발굴에도 조금씩 투자해 볼 생각입니다.”
“흐음.”
주명진과 최민철은 재석의 뜻이 어떤지 알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너무 많은 사람을 들이는 거 아닌지 걱정이었다.
“그래서 신인 연기자 몇 명 뽑을 건데.”
“당장은 한 명, 혹은 둘 정도만 추가로 더 뽑을 생각입니다.”
“그럼 새로 들어올 아역까지 포함하면 최대 셋이네. 기간은 어떻게 할까?”
“1차 현장 심사, 2차 카메라 테스트와 자유연기, 3차로 면접을 진행해 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민철아, 너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해라.”
“갑자기요?”
“갑자기는 무슨. 너 여기서 일한 지 벌써 몇 년이냐? 거기에 팀을 나눌 거다. 1팀, 2팀 이렇게. 그간 주 팀장님 한 명으로 버텼는데 숫자가 늘어났으니 팀을 나눠야지.”
“이야! 축하해, 민철아. 아니, 이제는 최 팀장님이 되는 건가.”
주명진이 승진을 축하했다.
“주 팀장님은 1팀장을 역임하면서 내년에 추가로 이사 직함 받습니다.”
“어!”
주명진도 기대하지 않았던 직함을 받자 놀랐다.
“중간 단계는 없는 거냐?”
“중간 단계가 있을 만한 회사가 아니잖아요.”
재석의 말에 주명진이 잠시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층 하나를 더 임대해서 사무실을 늘릴 겁니다.”
“짜게만 쓰다가 갑자기 넉넉하게 간다?”
“넉넉하게 안 갑니다. 필요에 의해서 가는 거지.”
재석은 올해 데뷔하는 사람들 중 꼭 잡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람 중에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다 잡을 생각이었다. 사람이 늘어난다면 공간을 더 늘려야 했다.
“뭐, 알았다. 준비해 보자.”
그렇게 회사의 덩치는 꾸준히 불려 나갔다.
일정 숫자 이상의 연예인이 모이면서 그에 따라 챙겨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민경이 사들인 건물에 임대해 살고 있지만, 민경이 임대료를 정말 저렴하게 계약해 주고 있어서 가능한 것도 있었다.
일주일 뒤, 이정환은 박신연을 데리고 왔다.
“안녕. 다시 보는구나.”
“어머, 안녕하세요.”
박신연은 재석을 보자 놀란 눈을 하며 인사를 했다. 이정환이 다른 소속사와 계약을 한다고만 알려 줬지, 정확히 누굴 만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계약이…….”
“그래, 맞다. 우리 회사와 계약하는 거다. 작년 겨울에 보고 처음 보는 거니까 시간이 좀 지났구나.”
“반년이 넘었네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재석은 그사이에 바쁘게 지내면서도 박신연을 잊지 않았다.
“그럼 계약서를 보며 천천히 이야기할까?”
“네.”
재석은 직접 계약서의 내용을 설명해 줬다. 박신연은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의 일이니 상세히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이정환도 재석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가만히 앉아서 설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내용을 다 들었으니 계약서에 사인할래?”
“네, 할게요.”
박신연은 아직 미성년자지만 이정환이 보호자 역할을 해서 무리 없이 계약이 진행됐고, 그가 계약서 내용을 부모에게 전달해 줬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박신연을 관리할 신입 매니저가 들어왔다. 주명진이 수소문을 통해 데려온 매니저이고, 인성에서 합격을 받은 사람이다.
“후우, 한 건 끝났나.”
박신연의 일을 무사히 끝마친 재석은 이어서 김명진의 불멸의 명장 촬영과 관련하여 보고를 받았다.
“그쪽은 순조롭다고?”
“네, 감독님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다행이네.”
방영이 며칠 남지 않았고, 1화 편집은 잘되어 가고 있으니 나중에 돈이 나오면 정산이나 잘해 주는 게 답이다.
“그래, 잘됐네.”
재석은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마음 놓고 있을 때 민경이 메시지 하나 보내왔다.
-오빠, 나 공연 하나 보고 싶어. 타타 공연 보고 싶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재석은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부탁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