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81화 (81/152)

<당신의 매니저 82화>

제이이브와 계약을 한 류태룡은 정말 열심히 활동하며 뛰어다녔다.

본래라면 이 시기에 홀로 활동했을 그가 재석 덕분에 이름을 조금씩이지만 일찍 알리게 되었다.

그 덕분이지 몰라도 그는 아직은 단역만 맡게 되었음에도 연기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한편 그동안 별 활약이 없었던 신지경이 연기 시험대에 올랐다.

“주 팀장님, 방송사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고요?”

“그래, 지목해서 들어왔다. ‘대지’라는 드라마의 세 번째 리메이크야.”

‘대지’는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이번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벌써 세 번째 리메이크다.

“아마 신지경이 작년에 출연한 영화를 보고 관심을 보인 모양인데? 그리고 신지경의 성인 역으로 민경 씨가 지목됐어.”

“출연료는 맞춰 준다고 합니까?”

“천하의 임민경인데 맞춰 주겠지. 문제는 민경 씨가 사극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야.”

“그럼 준비를 해야 할 게 많겠네요.”

재석은 제안이 온 드라마 대지의 대본을 봤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볼 것도 없다. 스토리가 워낙 탄탄한 데다가 장기간 하는 드라마다.

단점이 있다면 배우의 연기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진다면 티가 너무 난다는 거다.

“그래서 받아들일 거야? 이걸 받으면 일본 일정에 차질이 생길 거야.”

“그것도 문제네요.”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한꺼번에 촬영이 진행되는 터라 스케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드라마는 방영을 하는 동안에도 촬영이 지속되기에 다른 스케줄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일단 일본 스케줄을 확인 좀 해 봐야겠어요.”

“근데 민경 씨가 꼭 일본으로 가야 해? 그쪽에서 오는 방향은 어때?”

주명진의 제안에 재석은 고민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오미에게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요.”

재석은 이날 저녁 민경과 드라마 대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민경아, 이 드라마 어떻게 생각하니? 일단 너한테 제안이 오긴 했는데 사극이라 걱정이 되긴 해.”

“흐음, 오빠가 보기에는 좋아요?”

“좋지. 스토리도 탄탄하고, 세 번이나 리메이크가 된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거니까. 문제는…….”

“연기겠네요. 인기가 있었다는 건 나머진 연기자의 역량에 달린 거니까요.”

“맞아. 사극이 처음인 너에게 이런 큰 역할이 들어온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굉장한 부담이야. 현대극이라면 적극적으로 추천하겠지만…….”

재석이 쉽사리 추천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근데 이 드라마 아역도 있지 않아요?”

“아역으로는 신지경으로 캐스팅이 거의 확정된 상태야. 신지경도 사극은 처음인데 잘할지 걱정되네.”

“저 도전할게요. 이런 역할은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러면 너도 김명진 씨가 했던 방식대로 해 봐. 원작 소설을 탐독하고, 너 나름대로 캐릭터를 분석해 보는 거야.”

“알았어요.”

“이번에 신지경하고 같이 연습해 보자.”

“오랜만에 보겠네요.”

민경은 신지경과 안 본 지 좀 됐다. 연락은 가끔씩 주고받지만, 얼굴 본 지는 오래됐다.

“지경이는 나도 얼굴 못 본 지 좀 됐다.”

소속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각자 스케줄을 처리하는 터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민경은 재석이 직접 매니저 역할을 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연인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얼굴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하겠다고 연락 넣어야겠네. 아, 그리고 드라마 촬영을 하게 되면 최대한 스케줄을 안 잡겠지만, 일이 있을 때는 한 번씩 주말을 활용해서 일본에 다녀와야 될 거야.”

“으으, 휴일도 없는 거예요?”

“나도 쉬게 하고 싶은데…… 일본에서 들어오는 일이 쉽게 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후우……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는데.”

“힘들겠지만 힘내자.”

아직은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직까지 일본은 커다란 수입원으로 성장할 여지가 컸다.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재석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아, 부모님 집은 해 드렸어?”

“네, 돈 보내 드렸어요. 이미 좋은 집 얻어서 잘 지내고 있죠. 오빠는요?”

“나도 이미 돈 보냈다.”

재석은 벌어들이는 수익이 민경보다는 못하지만, 집 하나 살 정도의 돈은 벌었기에 이미 해 드렸다.

두 사람은 서로 부모을 먼저 다 챙겨 드리고 남은 돈으로 생활할 생각이었다.

“그럼 지경이는 언제 부를까요?”

“일단 둘 다 캐릭터 연구를 끝낸 후에 함께하면 좋겠지?”

일주일 후, 신지경은 학교가 끝나고 회사로 왔다.

“언니!”

“지경아!”

민경과 신지경은 반가운 재회를 하자 서로 너무 좋아했다.

“자, 둘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일 이야기가 먼저야.”

재석이 대본을 들고 와서 두 사람에게 나눠 줬다.

“자, 그럼 각자 맡은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

재석의 말에 먼저 신지경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당한 사건으로 인해 의지가 분명한 것 같아요. 목표가 있으니 지금은 참는 느낌이었어요.”

“수미 역은 어린 시절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기 위해 참는 느낌을 표현한 연기를 해야 해. 대사 하나하나 신중하게 한번 해 볼래?”

“네.”

신지경은 그간 연기 훈련을 꾸준히 받아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높은 수준의 연기를 보여 줬지만, 결론만 말하면 부족했다.

“흐음, 뭔가 참는 느낌보다 당장은 억누르는 느낌으로 한번 해 볼래? 어려우면 민경이가 좀 도와줘.”

“아, 음…….”

민경도 어린 시절의 여주인공에게는 그런 억눌림이 있었지만, 성인이 되면 그걸 차갑게 벼린 칼처럼 서게 된다.

“알았어요.”

민경은 대본대로 연기를 펼쳤다. 표정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가 당장이라도 목을 베고 싶지만 그럴 힘이 없기에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아…… 언니, 정말 대단해요.”

“민경이가 대단하긴 하지만, 너도 할 수 있어. 지경아, 그러니까 힘내. 민경이처럼 억누르는 느낌의 연기를 해 봐. 톤을 조금만 눌러 보자.”

“네.”

신지경이 그렇게 대사를 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곧바로 민경의 연기가 펼쳐졌다.

재석은 거의 감독의 느낌으로 민경의 연기에서 포인트를 잡았다. 문장에서 힘을 줘야 하는 부분, 오히려 빼야 하는 부분까지 서로 이야기하면서 연기를 해 나갔다.

그걸 본 신지경은 재석과 민경, 두 사람의 분위기에 푹 빠져 버렸다.

‘나도 저런 매니저 만날 수 있을까?’

동반자 같은 느낌을 주는 두 사람을 보면서 조금 부러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네!”

재석은 두 사람을 차에 태우고는 먼저 신지경부터 집에 데려다줬다.

“지경아, 다음에 또 보자.”

“네, 언니!”

민경은 신지경이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본 후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옮겨 탔다.

“왜?”

“왜긴요. 여기가 제 자리예요. 지경이 때문에 잠시 다른 자리에 앉았을 뿐이죠.”

“알았다.”

둘은 그렇게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좀 편안하게 쉬었다.

신지경과 민경의 연기 연습이 계속되는 동안 불멸의 장군의 첫 방영이 시작됐고, 엄청난 인기 몰이를 했다.

김명진은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그간 자신이 그동안 품고 있었던 열정을 그대로 쏟아 내면서 대단히 멋진 연기를 펼쳤다.

한 화가 끝날 때마다 시청률은 쭉쭉 올라갔고, 무서울 정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그 반응을 본 김명진은 집에서 몰래 울었다. 그간의 겪었던 마음고생이 떠오르며 감정이 북받쳐 오른 거다.

김명진의 아내는 그 이야기를 재석에게 말하며 감사를 전했다.

“앞으로 더 주목받기 시작할 거야.”

김명진은 불멸의 장군을 시작으로, 더 많은 흥행작을 만들어 내며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각인될 거다.

그리고 며칠 후, 신지경과 임민경, 재석은 대지의 연출자를 만나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자 연출자는 벌떡 일어나 재석을 향해 다가왔다.

“이야, 아주 정확하게 연기를 해서 좋습니다. 대본 그대로의 느낌이 아주 잘 묻어납니다. 성인은 성인대로, 아역은 아역대로 맞는 연기가 아주 좋습니다.”

연출자는 배우들이 캐릭터를 충실히 연구해 왔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는 대본 리딩 때 보겠군요.”

“저도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  * *

찰칵! 찰칵!

수많은 이들이 레드카펫 위를 지나가는 배우들에게 플래시 세례를 터트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영화를 즐기는 영화 축제, 부산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개막식 행사가 있는 날, 민경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사이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안쪽 행사장으로 가서는 다시 재석과 함께했다.

“옷이 너무 야한 거 아냐?”

민경이 입은 드래스가 어깨선이 많이 보이는 옷인지라 재석은 그걸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었다.

“하여튼 영감님이 보수적이야.”

민경은 그렇게 말하는 재석이 싫지 않았다.

“근데 오늘 스케줄이 뭐야?”

“오늘 스케줄은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는 거지.”

부산 국제 영화제가 단순히 영화 시상만 하고 영화를 보여 주는 자리로 끝나진 않는다.

수많은 외국 바이어들이 이곳에 와서 각국의 영화를 교류하며 사고 파는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들 중에는 개봉하기 전 작품들도 많이 있다.

“그럼 제작사에서 만나려는 일본 바이어를 만나야지.”

“언제 만나는데?”

“지금 이거 끝나고 만나는 거지.”

재석은 한참 하고 있는 개막식을 즐기면서 한편으로 흐뭇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재석은 개막식이 끝나길 기다렸고, 민경과 함께 일본 바이어를 만났다.

“민경 히메!”

사람들은 민경을 보자 자연스럽게 히메라는 말을 하면서 진짜 공주를 보는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일본 활동이 계속되면서 일본어 공부를 꾸준히 해서 그런지 간단한 인사와 소통 정도는 통역 없이 가능했다.

“이렇게 히메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이들은 민경의 팬이 되어 있었다.

“호호호, 영광이라고 할 정도 까진 아닌데…….”

민경은 이러한 팬들의 열렬한 지지가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먼 곳에서 오신 손님을 이렇게 서 계시게 할 수는 없죠. 가시죠.”

제작사 측은 일본 바이어들을 이끌고 한쪽에 있는 상영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흔히 바이어들에게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로 쓰였다.

그곳에서 내 기억 속의 지우개를 감상한 일본 바이어들은 영화가 좋았는지 얼굴에 띠며 말했다.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좋더군요. 이걸 일본에서 상영을 할까 합니다.”

그들의 결정을 빨랐다. 일본에도 먹힐 만한 코드가 영화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금액은 대략적으로 얼마나 생각하시나요?”

제작사 측에서 묻자 바이어가 입을 열었다.

“한화로 30억 정도 드리죠.”

대략적인 금액이지만, 재석이 알고 있는 정확한 금액이기도 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거야. 만나야 할 사람이 또 있다는 거고.’

제작사 측에서는 아주 좋아하는 표정이었지만 재석은 이 계약에 끼어들어야 했다.

‘여기서 이 돈 받고 끝나면 안 되지.’

“잠시만요. 그 금액을 받는 것보다 좀 다른 제안을 하고 싶은데요.”

재석의 등장에 제작사 사람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재석이 최대 투자자라 발언권에서 밀렸다.

“히메님의 매니저이신가요?”

“네, 그리고 동시에 이 영화의 최대 투자자입니다.”

최대 투자자라는 말에 그들은 재석의 발언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겼다.

“저는 판권을 매절로 판매하는 것보다 일정 비율로 수익이 배분되길 원합니다.”

“수익을 나누자는 거는 좀…….”

“오히려 그쪽 입장에서도 그게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30억을 투자하여 영화를 가져갔을 경우, 그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반면 수익 비율을 배분하는 형태가 된다면, 판매되는 수익만큼 안전하게 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제작사 측에서는 이러한 재석의 제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장님, 이렇게 나오시면 30억도 받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 30억에서 저와 분배를 하시면 제작사에서 가져가는 금액은 대략 8억쯤이죠?”

“그렇습니다.”

“그 돈 제가 드리죠. 대신 전 수익 배분 형태로 판권을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재석은 절대로 민경의 영화를 30억에 팔 생각이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지우개가 일본에서 거두어들이는 수익이 한화로 300억이다. 그런데 제작사는 이걸 30억에 팔겠다고 한 거다.

‘이 판을 내가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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