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새로 구인 공고를 내기는 했다.
“어차피 사람은 필요하니 말이야.”
원래 이 바닥에서 매니저는 항시 모집이다. 사람 필요한 곳이 한둘이 아니라서 항상 필요 인력을 모집해야만 한다.
“근데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사람을 데려오는지 궁금하단 말이야.”
주명진은 항상 그게 궁금했다. 데려오는 사람마다 성별부터 나이까지 뭔가 공통점 없이 제각기 다르니 뭘 보고 갑자기 데려오는 건지 신기했다. 그나마 이해가 되는 배우는 장강호 하나다.
“장강호는 그나마 연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던 사람이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나머지는 정말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다들 몇 년 안에 나름 성공하긴 했단 말이야.”
보통 연기자에게 적용되는 7년 법칙을 깨고 늦으면 5년 안에 무조건 떴다. 문자영만 해도 어린색시를 찍고 난 뒤에 국민여동생 타이틀을 달았다.
“신지경은 너무 어려서 논외고.”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을 봐도 슬슬 일거리가 잘 잡힌다. 특별하게 잘 봐 달라는 명함을 안 돌려도 말이다.
“오늘 데려온 사람은 얼마나 걸릴까?”
주명진은 살짝 기대가 됐다.
박준기는 테스트까지 모두 통과했지만, 결과적으로 재석과 계약을 맺진 않았다. 그에게 명함을 준 사람이 재석 외에도 있었는데, 그는 재석이 아닌 그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다음 날, 그는 다시 한번 회사를 방문해 사정을 설명했다.
“다른 소속사와 저울질을 한 건 죄송한 일이지만, 저에겐 그쪽 소속사가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절 좋게 봐 주셔서 기회를 주셨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박준기가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재석으로서는 너무나도 아쉬워 붙잡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확고한 의지가 느껴진 탓에 그러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세요.”
재석이 그렇게 박준기를 떠나보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주명진이 재석을 토닥였다.
“이런 건 처음이지.”
“예, 이렇게 거절당하기는 처음이네요.”
“보니까 꽤 탐내는 것 같던데.”
“그랬죠. 딱 올해 안에 크게 성공하겠다는 느낌이 왔거든요.”
“네 촉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 아쉽게 됐네.”
“어쩔 수 없죠. 일이나 하죠.”
“재석이 그렇게 포기하던 그때, 민경에 전화 걸려왔다.
(오빠, 오늘 차 좀 태워 줘.)
“무슨 일?”
(다른 게 아니라 영주 언니 만나려고.)
“아, 그래? 알았어.”
재석은 이영주를 만난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일이 끝난 뒤 민경을 차에 태우고 이영주를 만나러 갔다.
“언니!”
“민경아!”
재석은 이영주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졌어. 잠을 많이 못 잔 것 같은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지 못했지만, 외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언니, 요즘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이영주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재석은 그녀가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다는 걸 한눈에 꿰뚫어 봤다.
‘뭔가 감추고 있어.’
미래의 사건을 알고 있는 재석이기에 그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무척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같이 오셨네요.”
“예.”
“저희랑 같이 놀아요.”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재석은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 사귀시죠?”
“……!”
재석은 민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그게…… 언니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아, 뭐 이미 말한 거 어쩔 수 없지.”
재석은 민경이 어떤 마음으로 이영주에게 말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질책하진 않았다. 그 또한 솔직한 심정으로는 민경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마음껏 말하고 다니고 싶었다.
“그럼 같이 가죠.”
그렇게 셋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술도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재석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왜 안 마시세요? 혹시 저 있다고 안 마시는 거예요?”
그간 재석은 이영주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해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뒀는데, 이영주는 그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
“마셔요. 사장님이 저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아는데, 오늘은 마시세요.”
“오빠, 마셔요.”
결국 재석은 술잔을 들어야 했다.
“좋습니다. 마시죠.”
재석이 그렇게 술을 한 잔 들이켜자, 이영주는 마음이 편해졌는지 술을 마음껏 마시기 시작했다.
민경은 그게 재미있는지 박수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술을 한참 마시고 나니 이영주는 눈이 살살 풀렸다.
“이야, 오늘 정말 기분 좋다.”
이영주의 말에 민경도 똑같이 대답을 했다.
“저도 정말 기분 좋아요.”
반면 재석은 술에 별로 취하지 않았다. 그간 들이부은 술 때문인지 몰라도 주량이 늘었다.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린 것 같아 다행이네. 하지만…….’
결국 이영주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재석은 이영주가 민경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를 돕기 위해 일단 현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잠이요? 잘 못 자요. 불면증이에요. 약을 먹는데도 1시간 이상 못 자더라고요.”
“그럼 식사는 제대로 하나요?”
“밥도 잘 못 먹어요. 그냥 물만 좀 마시고 있죠.”
칼로리 섭취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만큼 몸 상태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정신도 병들어 가고 있는데…….”
가만 놔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혹시 회사와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3개월 정도 남았어요. 왜요, 탐나세요?”
재석은 그 말에 그냥 웃었다. 민경은 둘의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다.
“언니, 그럼 이쪽 회사로 옮겨요. 언니라면 최고의 조건으로 해 줄 수 있어요.”
“조건은 지금도 높아.”
오랜 경력을 쌓은 그녀는 이미 몸값이 상당한 수준이다. 굳이 재석의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딜 가든 충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또 아무 말 안 하네.”
재석은 이영주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자신을 나무라자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저희 쪽으로 오신다면 민경이 수준으로는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회사 내에서 진행하는 복지 프로그램에 반드시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복지 프로그램이요? 그런 게 있어요?”
“현재 진행을 계획 중입니다. 소속 연예인과 직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죠.”
연예인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재석은 그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었다.
다만 조금 더 시간 들여 준비를 한 다음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이영주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재석은 예정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복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눈앞에서 사람 죽는 꼴 보기는 그렇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닌 이상, 아는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으려고 한다면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음…… 괜찮네요.”
“그럼 계약하시겠습니까?”
“네, 그럼 석 달 뒤에 다시 이야기 나눠요.”
“약속하신 겁니다? 그럼 한잔하시죠.”
“좋아요.”
재석과 이영주는 구두로 계약을 약속했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마시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던 그때, 이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취한다. 이제 집에 가야지.”
“아, 그러지 마시고 집으로 가서 마시죠. 민경이 집이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재석은 집에 가겠다는 이영주는 황급히 만류했다.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그녀가 술에 취하기까지 했을 때 내버려 둔다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저희 집으로 가요.”
“그래도…….”
“저 혼자 사니까 너무 외롭단 말이에요. 네? 같이 가요.”
민경의 옆집에는 재석이 살고 있다. 혼자 산다고 외로울 리가 없다. 민경은 이영주와 더 함께 있고 싶은 모양인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녀를 붙잡았다.
“으음…… 그래, 가자.”
민경이 계속 매달리자 마음이 약해진 이영주는 결국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녀는 집에 전화해서 외박을 하겠다고 전달했다.
“언니, 괜찮대요?”
“응, 허락받았어.”
“꺄아, 좋아요. 바로 가요.”
잠시 후 민경의 집에 도착한 이영주는 깜짝 놀랐다.
“이런 앙큼한 것. 애인이 옆집에 사는데 외롭다고 거짓말을 해!”
“아앙, 언니! 나 언니 좋아해요.”
한껏 아양을 떠는 민경의 모습에 이영주는 한숨을 푹 쉬었다.
“좋아,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 다음에는 절대 안 통해.”
“당연히 안 통하죠. 바로 옆에 사는 거 다 들통 났는데.”
민경은 마치 재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그가 원하는 대로 이영주에게 딱 달라붙었다.
‘운 좋게도 민경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이거 하나로 민경이 그녀의 곁에 있으면서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할 수 있다.
“오빠, 안주거리 좀 만들게 뭐 좀 사 와요.”
“어.”
재석은 바로 나갔다.
“너 이렇게 애인 부려 먹는구나.”
“헤헤헤, 가까이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언니는 남자 친구 있어요?”
“있기야, 있지. 하지만 가까이 살진 않아.”
“언니도 독립하는 게 어때요?”
이영주는 민경이 독립을 이야기하자 살짝 솔깃하기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에이, 애인이랑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은데요.”
민경은 재석이 가까이 있는 것으로 정말 많은 위안을 얻고 있었다.
“하아…… 부럽긴 하다. 그런데 애인 때문에 독립했다가 헤어지면 어떻게 해. 너는 사장님하고 그런 걱정은 안 돼?”
“재석 오빠는 저한테 꽉 잡혀 있어요. 전혀 문제없어요.”
“오호, 그래?”
두 여자는 재석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재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 왔어.”
그 순간 두 사람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갑자기 웃었다.
“내 욕했구만.”
“아닌데…….”
“사장님, 혹시 주변에 여자 많아요?”
“소속사 애들 말고 사적으로 아는 여자들은 없습니다.”
“진짜요?”
“네. 제가 거짓말해서 뭐가 남습니까?”
재석이 그걸로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지만 민경은 아직 궁금한 게 남아 있었다.
“오빠, 혹시…….”
“더 이상의 질문은 안 받습니다.”
하지만 재석은 질문을 원천 차단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술이나 마시죠.”
그렇게 재석은 술을 마시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잘 들어가.”
“알았어. 네가 영주 씨 좀 잘 챙겨 줘.”
“응, 알았어.”
재석은 민경에게 적당히 당부를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 근데 오늘 잘 수 있겠어요?”
“음, 모르겠어. 그래도 한번 누워 볼까?”
“누워서 이야기해요.”
“그래.”
둘은 한 침대에 누워서 수다를 떨다가 어느 순간 이영주가 먼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민경도 이어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민경이 눈을 떴을 때 이영주는 자리에 없었고 쪽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