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88화 (88/152)

거기에 더 큰 문제는 당장 일본에서 일거리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 재석의 회사가 유일하다는 점이었다.

즉, 권진우에게 가장 큰 수입원인 일본 일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이, 씨.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기존의 계약보다 더 높은 조건을 제시한 곳이 많다는 거였다. 권진우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과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그쪽에서 일을 시작하는 건 재석의 회사와 계약이 끝난 뒤부터겠지만 말이다.

재석은 권진우 일이 처리 되자 민철에게 새로운 담당 연예인을 정해야 했다.

‘장강호의 매니저를 바꿔 줄까?’

장강호의 인기가 생긴 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줘야 되지 않을까 판단한 거였다.

하지만 장강호는 지금 매니저가 좋다면서 거절을 했다.

“의외인데.”

이렇게 되면 한동안 민철에게는 다른 일을 맡겨야 했다.

“일단 다른 일을 맡겨야겠어.”

‘최대한 빨리 사람을 찾아야겠는데 매물로 나온 연예인이 어디에 있을까?’

재석은 그렇게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주력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계약 기간이 끝나 새로운 회사를 찾아다닌다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재석은 어쩔 수 없이 민철에게 잡다한 뒤치다꺼리를 맡겼지만, 그런 일을 오래 맡길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맡길 연예인을 찾아야겠는데…… 어디 괜찮은 연예인 없을까?’

재석은 민철은 책임지기로 한 이상, 그에게 제대로 된 일을 맡기기 위해 연예인을 찾아다니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계약 기간이 끝나 새로운 회사를 찾는 사람을 발견했다.

“송근석이 나왔어?”

송근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서 경험도 상당하고, 미래에도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이상한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도 그거만 빼면 성격이나 능력은 상당하지.’

재석은 그를 잡기 위해 직접적으로 발로 뛸 생각이었다.

‘기다려라, 근짱.’

송근석의 전 소속사가 연락처를 알려 준 덕분에 재석은 어렵지 않게 송근석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전 소속사와 결별하셨다고요.”

“네.”

송근석은 민감한 질문에도 차분히 대답했다.

그 순간 재석은 그의 눈빛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조건을 제시받았구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이미 나쁘지 않은 조건을 제시받은 상황이기에 다급하지 않은 거다.

‘하지만 그래 봤자 송근석이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시받은 조건이겠지.’

재석은 송근석이 앞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

‘일본에 진출한 뒤, 그가 일본에서 5년간 벌어들인 수익만 수백억으로 알고 있어. 그 외에 것들까지 합한다면 천억 대에 달하겠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이걸 놓치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지.’

재석은 지금이 질러야 하는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어떤 조건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회사에서는 7년 계약으로 3년은 6:4, 이후 4년은 7:3으로 비율을 맞춰 드릴 생각입니다. 물론, 성과에 따라서 조정도 해 드리고요.”

“어!”

송근석은 이런 조건은 처음 들어서 그런지 굉장히 깜짝 놀랐다.

계약 기간이 길긴 했지만, 조건만큼은 그 어떤 회사보다 압도적이었다.

‘이거, 조건이 너무 후해!’

송근석은 조건만 보고는 아주 깜짝 놀랐다. 재석이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과감한 투자가 불러일으키는 오해였다.

재석은 이러한 오해를 종종 겪어 왔기에 그의 속마음을 간단히 꿰뚫어 보았다.

“어떤 부분을 걱정하시는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후하게 주면 회사에 남는 게 없는 거 아닌가? 라는 걱정은 마세요. 남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분명히.”

재석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송근석은 고민에 빠졌다.

‘이거 계약해도 될까?’

그때, 때마침 누군가가 재석과 송근석이 자리하고 있는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재석의 말에 민경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 아, 중요한 일하시는구나…….”

다시 문을 닫으려는데 재석이 불렀다.

“괜찮아. 들어와.”

민경은 갑자기 자신을 안으로 불러들이자 의아했지만 이내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아실 거라 생각되지만, 임민경 씨는 저희 회사의 첫 번째 연예인으로, 제가 직접 매니저를 맡고 있습니다.”

재석이 갑자기 자신을 소개하자, 민경은 그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부른 것인지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임민경이에요.”

민경은 최대한 밝은 미소로 송근석에게 인사를 건넸고, 송근석은 그것만으로도 한결 걱정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사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왜 절 영입하시려는 거죠?”

송근석은 어째서 재석이 자신을 이 정도로 높은 조건을 제시하면서까지 자신을 영입하려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회사들도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전 소속사에서 받았던 조건보다 더 높은 조건을 제시하긴 했지만, 재석처럼 높은 조건을 부른 곳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심을 품은 거다.

재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송근석 씨가 갖고 있는 언밸런스함에 매력을 느끼고 연락을 드린 겁니다.”

“언밸런스함이요?”

“겉모습은 여려 보이지만,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남자다운 반전을 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죠. 저는 그 부분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리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부분만으로는 이 바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사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어릴 적부터 모델 활동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송근석이다.

그는 아직 나이가 어리긴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벌써부터 할 줄 알다니.’

재석은 어린 나이에도 속 깊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송근석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내적인 부분은 직접 만나 보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이죠. 하지만 한 가지는 느꼈습니다. 송근석 씨가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홀로 고군분투해서라도 이겨 내려는 사람이란 걸 말이죠. 그걸 저희 회사가 옆에서 돕는다면 더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홀로 이겨낸다는 말에 송근석은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여태껏 그걸 이해하거나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저의 착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

송근석은 재석이 자신의 노력을 이해하는 듯 보이자 차차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홀로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이겨 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언젠가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겁니다. 저 역시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을 겁니다. 곁에서 항상 도와준 사람이 있었기에 모두 가능했던 일이죠.”

재석의 말에 민경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말하는 곁에서 항상 도와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민경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변하자, 송근석이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세요?”

“네? 아, 조금 덥네요.”

민경이 손부채질을 하며 밖으로 나가자, 사무실 안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재석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내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제 저희 쪽 이야기는 모두 말씀드렸으니 결정만 해 주시면 됩니다. 다만, 저희와 계약하신다면 대학은 꼭 들어가셔서 연기 공부를 계속해 주셔야 합니다.”

송근석의 미래를 위해 덧붙인 말이었다.

송근석은 고민해 볼 시간을 달라며 자리를 떠났고, 재석의 회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  * *

“봉 형님, 배우들 계약은 모두 끝난 겁니까?”

“응, 다 확인했어. CG 쪽도 이미 작업 끝났고, 모두 문제없이 진행될 거야.”

“그럼 바로 대본 리딩 진행하고, 마지막 확인을 하죠.”

“좋지.”

봉도준 감독은 재석과 함께 일을 준비하고는 대본 리딩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초대된 배우들이 매니저들과 함께 자리했다.

재석은 영화 제작자로서 대본 리딩에 참여했다. 하지만 리딩을 이끌어 가는 건 봉도준 감독이었기에 함부로 끼어들진 않았다. 아니, 끼어들 것도 없었다.

“방금 그 신은 좀 더 절망적으로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봉도준 감독은 잘나가는 감독답게 일 처리가 확실했다. 배우들에게 어떤 식으로 연기를 했으면 한다고 주문을 하면서 가닥을 잡아 갔다.

배우들은 각자의 대본에 감독의 요구 사항을 적으며 일을 진행했다.

그렇게 첫 대본 리딩을 끝마친 뒤 회식을 진행했다. 앞으로 힘내서 촬영에 임하자는 취지에 시작한 회식이었다.

민경이 다른 배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재석은 봉도준과 마지막 대본 점검을 했다.

“형님, 회식 자리에서까지 일을 하셔야겠습니까?”

“해야지. 며칠 뒤면 촬영 시작해야 하는데. 앞으로는 편집 일이 늘어날 텐데, 같이해 줄 거지?”

“네?”

이제는 재석에게 편집까지 시키려는 봉도준이었다.

“뭐, 어때. 제작자가 편집을 같이하겠다는데 그걸 말릴 사람은 없어.”

“아이고, 초짜 데리고 뭘 하신다고.”

“감각이 워낙 좋으니까 하는 말이야. 편집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을 테고, 나도 좀 편하게 하자고.”

“속셈이 거기 있군요. 날 부려 먹는 거.”

“어허, 부려 먹다니! 재능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리고 사장이라면 최소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다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봉도준은 자신이 편하게 일하기 위해 재석을 부려 먹을 속셈이었다.

“그렇게 부려 먹으려 하시면 저도 가만 안 있어요. 꼭 복수할 겁니다.”

“어허, 이거 무서워서 같이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재석과 봉도준 감독이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때, 배우들과 이야기를 끝낸 민경이 어느새 재석의 옆으로 다가와 아양을 떨었다.

“오빠, 감독님이 막 괴롭히지 않아?”

“아이고, 생사람 잡네.”

봉도준은 생사람 잡는다면서 재석과 민경의 관계를 의심했다.

‘한번 놀려 볼까?’

봉도준은 고약한 생각을 하면서 민경을 슬쩍 찔러 봤다.

“거, 둘이 그렇게 친한 거 보면 어디 뽀뽀라도 한 것 같은데.”

뽀뽀라는 말에 민경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감독에게 말했다.

“재석 오빠라면 해 줄 수 있어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민경이 너무 당당하게 나오자 봉도준은 떠보기가 애매하게 됐음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해 봐.”

그 순간 민경은 곧바로 재석의 볼에 뽀뽀를 했다. 봉도준 감독과 재석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다른 이들은 각자 마시고 놀기 바빠서 이쪽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민경아, 너 그러다 큰일 나.”

“큰일 안 나. 소문내면 내가 쫓아가서 다리를 부러트릴 거야.”

이제는 아주 대놓고 공표하고 다닌다.

‘무서운 것.’

물론 눈앞에 있던 봉도준 감독은 모든 광경을 지켜봤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스캔들이 터지길 원하는 감독은 없으니까.

“감독님은 입 무겁죠?”

‘이런 요물!’

“크흠.”

봉도준 감독은 당사자도 아니면서 다른 이들은 이 광경을 못 봤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렇게 티를 내다가는 금방 걸릴 겁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전에 이상한 말을 하던데…….”

“바다에 놀러 갔을 때 사모님이 저희 둘 사이를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답해 드렸었어요. 아직은 남에게 말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아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난 이제부터 모른 척하겠다고 하시던데요.”

즉, 알아도 모르는 거고, 봤어도 못 본 걸로 하겠다는 거다.

봉도준 감독은 그제야 자신의 아내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음 알았다.

“비밀 지켜 주시면 다음 영화에도 꼭 나갈게요.”

“안 나와도 돼요.”

봉도준 감독은 발을 빼고 싶었다. 이번 영화만 끝나면 두 사람의 관계가 문제없이 해결될 때까진 자신의 영화에는 민경을 출연시키질 않을 생각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끌어안고 갈 만큼의 배짱은 그에게 없었다.

“차라리 못 봤으면 좋았을걸.”

후회해도 늦었다. 비밀을 알게 된 이상, 봉도준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라도 재석과 민경의 비밀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했다.

*  * *

송근석은 어머니 모시고 함께 재석의 회사를 방문해 계약을 진행했다.

“안녕하십니까. 소속사 대표 전재석입니다. 대견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계약 내용에 대해 바로 이야기를 드리죠.”

재석은 계약 내용을 차분히 설명해 줬다. 그리고 송근석의 어머니가 궁금해하는 점이 있으면 그때그때 해당 부분을 더욱 상세히 풀어서 이야기했다.

설명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고, 모든 설명이 끝난 뒤 송근석은 계약서에 사인을 진행했다.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다면서요?”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면 물론 그만큼 시간을 뺏기게 될 테지만,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하게 된다면 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정작 중요한 일을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안 되니 그 점은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머, 저희 아들의 학업까지 신경을 써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배운다는 건 선택이기도 하지만, 필수이기도 합니다.”

재석은 그렇게 말하며 송근석의 어머니에게 점수를 땄다.

계약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송근석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송근석에게 말했다.

“근석아, 사장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네 학업까지 걱정해 주시고.”

“소속 연예인을 많이 생각해 주시는 분 같아. 정말 잘 계약한 거 같아.”

다음 날, 송근석을 담당하게 된 민철은 송근석과 안면을 트기 위해 만남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아, 새로운 매니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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