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며칠 뒤, 중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민경과 광고 촬영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재석아, 이거 액수가 엄청나다.”
“얼마입니까?”
“40억!”
40억이란 돈을 광고 촬영에만 쏟아붇는다는 말에 재석은 깜짝 놀랐다.
“의심될 만한 숫자네요. 확인 절차는 끝마친 겁니까?”
“나도 의심돼서 그쪽 회사에 다 확인했다. 우리 쪽 조건도 이야기했고, 촬영 관계자가 아닌 이가 촬영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통과됐다.”
“그럼 진짜라는 건데.”
멀지 않은 미래에 중국이 급성장을 이뤄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하나, 아직까진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 이만한 액수는 거의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해야죠.
재석은 이제 중국에서 괜찮은 일거리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할 시기라는 걸 체감했다.
“그리고 중국에 지사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하나 세워서 일거리를 받을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지사가 아니라면…… 작은 소개소 정도?”
“뭐가 됐든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뭐, 작은 사무실 정도 차리는 건 문제도 아니지. 마침 중국에 내 친구가 한 명 살고 있긴 해. 베이징에.”
“친구분이 연예계에 몸담고 사시는 건 아니잖아요.”
“몸담고 살진 않지만, 중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
“네? 변호사라면…….”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아는 사람이 좀 많아. 한국이나 중국이나 법 관련해서 관심 가져다주는 사람 많잖아.”
“아하, 그래서 그쪽을 통해 사람을 알아봐 줄 수 있다는 거네요.”
“주 팀장님, 그럼 그분에게 저희 쪽 고문 변호사를 맡아 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당장 그쪽 관련 문제도 해결해 줄 사람이나, 거기서 계약서 관련해서 즉각적으로 자문을 구할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그럼 친구한테 이야기한다?”
“네, 그러세요.”
주명진은 곧바로 전화를 걸더니 회사가 중국 지사를 내고, 거기에 고문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걸 말했다.
“재석아, 돈만 맞으면 해 준대.”
“너무 가격이 터무니없다면 안 됩니다.”
“걱정 마. 그 정도로 몰상식한 녀석은 아니니까.”
그렇게 재석은 중국 일정을 위해 민경과 함께 중국으로 갔고, 그 뒤에 주명진의 친구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장강민입니다.”
“주 팀장님 친구분을 중국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허, 저도 명진이 직장 상사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팀장님이 전 회사에서 제 상사셨는데, 제가 회사를 차리면서 스카웃을 하게 됐습니다.
장강민은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명진이가 젊은 사람에게 굽히고 들어갈 사람은 아닌데…….”
“월급 잘 챙겨 준다고 꼬드겼습니다.”
“푸하하하!”
그는 재석의 농담도 재미있게 받아 줬다.
민경은 재석의 뒤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인사를 나눴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사업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제가 쉽게 낄 자리는 아니죠.”
“무슨 소리. 민경아, 너도 회사 투자자야.”
재석이 갑자기 민경을 끌어들였다.
“오, 그렇다면 같이 들어야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석은 처음에는 중국 지사를 세우기보다 작은 소개소 형태의 사무실을 차려 점점 크기를 키워 가는 방식으로 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일단은 일거리만 받거나 잠시 차를 빌려 움직이는 방향으로 가는군요.”
“예, 변호사님이 사람을 소개시켜 주시면 그분과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고 싶네요.”
“흐음, 믿을 만한 친구 한 명이 있긴 있습니다. 중국 친구인데 한번 만나 보시죠.”
“오늘은 어렵고, 중국 일정이 끝나고 만나면 좋겠네요.”
“그러시죠. 그쪽에도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재석은 민경과 함께 중국 일정을 소화하고 난 뒤에 바로 장강민이 소개해 준 사람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조창진이라고 합니다.”
그는 한국어가 꽤 유창했다.
“한국어를 하실 줄 아십니까?”
“예, 부모님이 한국인이시거든요.”
“그럼 중국 교포?”
“네, 지금은 중국 매니지먼트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럼 그쪽 일을 관두시고 저희 회사로 이직하시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딱 필요한 사람이 재석의 눈앞에 나타났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해 드리죠.”
재석은 중국에서 차근차근 지사를 통해 일거리를 받고, 다른 한국 연예인도 이쪽 지사를 통해 연결을 시켜 줄 계획을 이야기했다.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선 조창진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야 월급만 잘 맞춰 주시면 뭐든지 해결해 드릴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돈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 그리고 중국에서 일을 얼마나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일본만큼은 유지된다.
“일단 일거리를 잡으셔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사장님.”
조창진은 원래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재석이 차린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명목상 중국 지사장이지만, 일이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기에 작게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임민경을 원하는 곳은 많았다. 눈꽃연가의 여파가 중국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재석이 다시 중국을 찾았을 때 조창진이 내민 스케줄은 10개가 넘었고 전부 다 광고였다.
“사장님, 여기 나온 액수를 전부 합치면 300억이 넘습니다.”
“대단하시군요. 전부 광고로 일을 따 오시다니.”
“임민경 씨가 대단한 겁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중국 톱스타들과도 비교할 만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셨으니 돈이 입금되는 대로 성과급을 지급해 드리죠.”
“네?”
“인센티브입니다. 돈 잘 벌게 해 주셨는데 이 정도도 못할까 봐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감사를 표시했다.
중국에 차린 사무실은 작았지만, 돈 버는 액수는 정말 대륙 사이즈였다.
‘역시 대륙이네.’
재석은 중국 스케줄을 처리하면서 한국에 이 소식을 알렸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제이이브에서 그걸 돕겠다고 말이다.
그는 앞으로 벌어들일 액수를 계산하며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다.
‘미래에는 더 많은 스타들이 움직이지. 그 사람들의 다리만 되어 줘도 그걸 통해 얻은 수수료가 수십에서 수백억 단위까지 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경을 통해 더 넓게 일을 따내야 한다.
‘중국에서 민경이가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
재석은 중국에서 광고 모델료가 들어오자마자 민경에게 정산을 해 줬다.
그러자 민경은 곧바로 그 돈을 사용해서 건물을 사들였다.
“이번에 또 산 거야?”
“네, 사야죠. 그리고 준비할 거예요.”
“뭘?”
“몰라도 돼요.”
이럴 때는 비밀이 많은 여자였다.
한창 꾸미고 싶어 할 나이이다 보니 명품 같은 것들을 살 줄 알았는데, 민경은 생각보다 소박하게 생활했다. 돈을 필요 이상은 쓰지 않고, 물건을 살 땐 실용성을 무엇보다 고려했다.
* * *
재석이 중국에 사무실을 차린 이후, 그를 통해 중국에 진출한 이들이 몇몇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미남미녀 배우로 유명한 이들은 여지없이 중국, 일본으로 가서 홍보를 하고 영상을 찍었다.
그때마다 재석의 주머니는 돈으로 채워졌다. 제이이브에 소속된 연예인이 아닌데도 그들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한 거다.
“제대로야.”
회사로 돈이 쭉쭉 들어오면서 연예인 한 명당 일본의 경우 매달 수십억의 이익이 발생했고, 지사에서 이런저런 세금과 운영비를 다 제외하고도 재석의 주머니로만 1억 원 이상의 돈이 들어왔다.
재석이 그렇게 수익을 계산하며 기뻐하던 그때, 주유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장님, 요즘 주유 씨가 일하는데 힘이 없어 보입니다.”
“아니, 왜죠?”
“다른 연예인들은 잘나가고 있는데 자신만 아닌 것 같아서 약간의 자괴감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재석은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번 상담을 해야겠군요. 주유 씨가 언제 스케줄이 없죠?”
“돌아오는 수요일입니다.”
“그럼 직접 면담을 좀 합시다.”
중요한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재석은 주유와 단둘이 자리하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요즘 기운이 없으시다면서요.”
“예, 그게 좀 그러네요.”
“그렇게 활동적이신 분이 힘이 없다는 게 믿기 어렵네요.”
주유는 무척이나 활동적이며 항상 힘이 넘치는 사람이다.
“우리 솔직해 보죠. 지금 주유 씨의 인기는 점차 올라가고 있고, 이번에 찍은 드라마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주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말하기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도와 드리죠.”
“하아, 다른 게 아니라 요즘 다른 사람들은 외국으로 진출하는데 전 아직 국내에만 있는 것 같아서요.”
재석은 그 이야기를 듣자 절로 웃음이 났다.
“아하, 그 걱정이셨군요. 걱정 마세요. 그건 주유 씨에게 맞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직 안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꾸준히 주인공을 따내고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주유는 그 특유의 활발함 덕분에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 밀어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주연인데 막상 연기를 하다 보면 조연 느낌이 물씬 나서요.”
그럴 거다. 그는 인지도는 있지만, 아직 정말 스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시기였다. 연기를 게을리하는 건 아니지만, 운이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이번에 찍은 드라마 역시 이전에 잘나갔던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 따라 찍은 것 같은 작품이었다.
“주유 씨, 저랑 같이 술 한잔한 적이 언제였죠?”
“네?”
재석은 그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죠. 남자끼리 여기서 이야기해 봐야 뭐하겠습니까. 나가서 폼 나게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죠.”
재석은 주유를 데리고 멋진 술집에 데려가 술을 한잔 마셨다.
“주유 씨, 걱정 마세요. 그리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만 아시고요. 그리고 단순히 이때만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 멀리 보세요. 늙어서도 연기는 계속하실 거 아닌가요?”
“물론이죠. 환갑을 넘어서도 하고 싶습니다.”
“그럼 길게 보세요. 원로 배우들은 배역과 상관없이 그 역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게 조연이든 말이죠. 아, 제가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만 했네요.”
“아닙니다. 틀린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닌데요.”
“그런데 이런 술보다 운동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걸 좋아하시나요?”
“농구죠.”
“하아, 제가 시간 한번 만들어서 한판 붙고 싶네요. 나름 자신 있는 종목이거든요.”
“어, 진짜요?
재석의 말에 주유는 관심을 보였다. 회사 사장이 같은 취미를 가졌다는 것에 말이다.
“물론입니다. 웬만한 구기 종목은 할 줄 압니다. 다만, 발은 좀 개발이라서…….”
“하하하, 저도 똑같아요. 뛰라면 열심히 뛰겠는데 개발이라서…….”
둘은 그렇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러다 재석이 먼저 말을 걸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사적인 자리에서는 호형호제하며 지내죠.”
“좋아요, 형.”
주유가 먼저 형이라 불러 주며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시작되었다.
“주유야, 걱정 마. 내가 2년 안에 널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줄게. 그게 지금이 아니라는 것에 너무 실망 마라.”
재석은 주유의 걱정을 불식시켜 줬다.
지금까지 재석은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켰다. 회사 사람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주유도 그 말을 믿었다.
“형만 믿을게요.”
“아, 그리고 스타가 되고 나서 나 모른 척하면 안 된다?”
“하하하하, 소속 연예인이 사장을 어떻게 모른 척해요.”
“그럼 이거 마시고 야밤에 농구 한판?”
“콜!”
주유와 재석은 한밤중에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부딪쳐도 굴러도 바보처럼 웃어 대며 신나게 농구를 했다.
“형, 농구 잘한다면서요.”
“야, 네가 너무 잘하는 거야.”
재석은 주유의 농구 실력에 상대가 못 됐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에이, 너랑 농구는 못해 먹겠다.”
“하하하.”
운동을 해서인지 기분이 상쾌해진 주유는 웃으면서 재석에게 다가갔다.
“형, 일어나요.”
“아이고, 오늘 마신 술도 다 깼네.”
“이제 집에 가죠. 밤도 너무 깊어졌고요.”
“그래, 집에 가자.”
그렇게 둘은 각자의 집으로 떠났고, 재석은 집에 도착하자 방에 불이 켜져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