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96화 (96/152)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고향이 어딥니까?”

“광주입니다.”

“광주? 무슨 광주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가 이렇게 자연스러워. 누가 봐도 그 동네 사람인 줄 알겠네요.”

“연습을 자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회사 대표님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신 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다 해 먹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설마요. 그냥 제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그럴 뿐인데요. 물론, 돈이 되도록 만들 겁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해서 꼭 상까지 타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상이라뇨, 기대도 안 합니다.”

감독은 기대 안 한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묘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재석의 말에 기분이 좋은 거였다.

“그래도 열심히 해 주시겠다니 감사합니다.”

“한 번 시작한 거 제대로 끝을 봐야죠.”

재석은 화려한 휴일과 고향,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은 채 양쪽 모두 최선을 다해 진행했다.

한쪽에서는 피 흘리고, 폭음과 고성이 난무하는 영화였고, 다른 한쪽은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이 전해지는 영화였다.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을 때, 재석은 고향을 배급사에 맡기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런 예술 영화는 돈이 안 될 것 같으니 받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이런, 염병할 것들.”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지만, 재석은 발로 뛰었다. 배급사에서 안 해 준다면 직접 하는 거였다.

영화사에서도 잘 안 받아 주려는 거 재석이 사정을 했다.

“아, 지금까지 잘 받아 주시다가 왜 이러십니까.”

“전이야 돈 되는 영화 찍었지만, 이건 돈 안 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허, 저 모르십니까. 손해 안 납니다. 손해날 영화를 제가 왜 만들겠습니까.”

재석은 손해 안 난다면서 밀어붙였다. 손해나면 자신이 책임진다고까지 하면서 나서자, 상영관 일부를 잡아 줬다.

“감사합니다.”

재석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 안 한다. 이 영화도 손해 안 본다. 다만 이익이 적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한동안 할리우드에서 밀어닥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밀리는 형국이 된다.

하지만 이것도 여름뿐이다.

“아이고, 힘들다.”

재석은 집에 돌아와서는 반쯤 쓰러지다시피 했다. 그때마다 민경이 외쳤다.

“옷 갈아입고 씻어.”

“힘들어, 귀찮아. 머리 아파.”

바깥일에 지쳐 버린 재석은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오빠도 한동안 일을 좀 줄이던가 해야 해.”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 어려워.”

회사가 커지면서 관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자 점점 감당하기 벅차졌다.

‘슬슬 분업화시켜야 하나.’

각 파트별 최종 결정권자를 만들면 재석이 할 일이 줄어들긴 한다.

“민경아.”

“왜?”

“주 팀장님한테 매니지먼트 사업 맡기면 잘하겠지?”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잘하겠지. 중간에 오빠가 관리하면 되고.”

“하긴, 그쪽 전문가니까.”

재석은 어차피 주명진을 승진시킬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일을 줄일 겸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  * *

“허허허허!”

주명진은 재석이 승진을 시켜 주면서 매니지먼트의 총 책임자로 활동하게 됐다. 물론 재석에게 보고는 올라와야 했다.

“월급도 올라가는구나.”

“예. 그렇다고 딴 주머니 차시지 마시고요.”

“에이,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

“승진했다고 집에 전화할 겁니다. 돈 얼마 받는지도 다 알릴 거고요.”

“아, 젠장. 나 승진 안 해.”

“거 비자금 만들어서 뭐에 쓸려는 겁니까.”

“중요한 취미 활동에 쓰려고 한다.”

“연말 성과금 있을 겁니다. 그건 눈감아 드리죠.”

“진짜지?”

“예.”

연말 성과금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자 정말 뛸 듯이 기뻐하는 주명진이었다.

‘그놈의 딴 주머니 진짜 좋아한다니까.’

재석은 그걸로 제발 이상한 짓만 안 하기를 기도했다.

“재석아, 너도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알게 될 거다. 경제권을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이상한 짓해서 빼앗긴 건 아니고요?”

“크흠!”

이상한 짓이란 말에 주명진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과거에 안 좋은 일 때문에 경제권을 빼앗긴 모양이다.

“전 그런 이상한 짓 안 합니다.”

“넌 안 하나 보자.”

“뭐, 그때 봐야죠.”

*  * *

재석은 민경과 촬영을 하며 밀양과 서울을 왔다 갔다 했다.

밀양에서 1박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서 회사 일이 조금 밀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전보다 재석의 부담이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제작사 쪽 현장은 감독과 재석이 같이 움직여 나가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중간에 민경의 해외 일정이 끼었지만, 문제 되진 않았다.

사무실에 도착한 재석은 자신의 사무실에 영화 시나리오와 대본이 잔뜩 쌓여 있자, 그것들을 제목만 보고 대충 정리했다.

“흐음, 큰돈을 벌어들일 만한 영화가 없어.”

좋은 작품은 있지만, 돈을 많이 벌어다 줄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재석은 고민이었다.

“조금 소소하게 벌어야 하나?”

결국 재석은 몇몇 영화에 분산 투자하여 소소한 이익을 벌기로 결정했다.

영화 고향의 촬영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특별하게 촬영에 지장을 줄 만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촬영이 마무리되자 재석은 조심스럽게 감독에게 제안을 했다.

“감독님.”

“네, 대표님.”

“이번 해외 영화제에 출품을 한번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네?”

감독은 전혀 기대도 안 했던 말을 재석에게 듣게 되자 깜짝 놀랐다.

“편집이 끝나는 대로 해외 영화제에 출품을 해 보는 겁니다. 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도전을 한번 해 보고 싶어서요.”

감독도 이 영화가 상업 영화로 어울리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해외 영화제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영화제에?”

“칸이 어떨까요?”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에 출품하자는 말에 감독은 충격과 함께 재석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작품을 높이 평가해 주셔서.”

“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에 해 보는 겁니다. 물론 상은 못 받을 수 있어요. 워낙 쟁쟁한 작품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 영화를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을 할 번역가들을 구해야겠네요.”

재석은 어떤 이들이 보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에 따른 대비는 할 생각이다.

그렇게 최대한 빨리 영화가 편집되면서 곧바로 번역가들에게 영화 번역을 맡겼다.

재석은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곧바로 칸에 영화를 출품했고, 그쪽에서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야! 그 유명한 칸이야!”

“칸!”

그냥 거기에 간다는 것 자체가 좋은지 민경과 재석은 수상 뭐 이런 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감독님에게도 알려야지.”

재석이 늦은 시간에 감독에게 전화를 하자, 감독도 전화상으로 환호를 했다. 물론 작은 소리로 말이다.

그렇게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칸에 가게 되었는데, 영화 홍보 인터뷰 등을 미리 하여 정말 바쁘게 일정을 준비하고 프랑스 칸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칸에서 볼 수 있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멋지네.”

“그러네요.”

“요트도 있네.”

“타고 싶네.”

칸은 영화제로 유명하지만, 프랑스 휴양지로도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일정 빡빡해서 별로 못 즐겨요.”

재석의 한마디였다.

“쳇.”

“깐깐하기는.”

감독과 민경은 뭔가 통했는지 여기까지 와서 좀 즐기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 재석은 민경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감독 빨리 보내고 우리끼리 놀아야지.’

민경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가 표정 관리를 했다.

이윽고 칸 영화제를 즐기다가 나중에 시상식 때가 됐지만, 셋 다 여기에 와서 그냥 편하게 구경 잘했다는 거 하나로 만족하고 있었다.

“감독님, 시상식 끝나고 술 마시러 갈까요?”

“좋죠.”

감독은 정말 편하게 있다가 갈 생각이었고, 각종 영화 시상식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냥 박수나 치고 즐겁게 웃으면서 축하해 주고 있었다.

차례대로 순서를 말하다가 여우주연상 후보 영화가 나왔다.

그 순간 재석과 민경 감독은 동시에 ‘억!’ 했다.

“오, 오빠, 저거 나 아니야?”

“맞아.”

“이, 이럴 수가.”

전혀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민경이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르자, 세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곧이어 여우주연상이 발표됐다.

“올해에 칸의 여제는 고향의 민경 임!”

민경은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일어서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올라가서 시상을 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엉.”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는 바람에 재석이 달려가 그녀를 도와줘야 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역대 수상자 중에서 거의 통곡을 하는 수준으로 눈물을 흘린 여배우가 되었다.

민경은 울면서 감사하다며 이야기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 재석 오빠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그녀는 울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칸 영화제가 끝나고 감독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그는 자신만 먼저 돌아간다는 사실에 불만을 토했다.

“대표님, 이러시깁니까.”

“때마침 예정된 일정들이 취소돼서 여기까지 온 김에 이틀만 더 있다가 가려고요. 하지만 감독님은 일이 있잖습니까.”

“너무하십니다.”

결국 감독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감독이 떠나자 민경과 재석은 둘만의 데이트를 만끽했다.

미리 예약한 요트를 타고 시간을 보냈고, 멋진 호텔에서 뜨거운 밤을 지새웠다.

찰칵! 찰칵!

민경은 한국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오자, 기자들이 무섭게 쫓아와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그녀가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 영화제에서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몰려든 것이었다.

경호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민경이 가는 길을 터 줬다.

“이번에 소속사 사장님과 연기를 하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칸의 여주인공이 되셨는데 소감 한마디 해 주십시오.”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민경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대신 재석이 한마디 했다.

“인터뷰는 차후에 따로 일정을 잡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된 일정 탓에 지금은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재석은 민경은 데리고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집에서 푹 쉰 뒤에 일정을 다시 잡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너무 많은 인터뷰 요청 탓에 일정이 꽤 빡빡했지만, 민경은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사이 재석은 보고서를 확인했다.

주유가 커피왕자라는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김명진은 의학 드라마, 그리고 박신연은 팔레스의 후속작을 찍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야, 영화는 별거 없는데 드라마는 잘 나가네.”

재석이 신경 쓸 거 없이 잘나가고 있었다.

“커피왕자 찍고 난 뒤에 커피 회사의 고정 모델이 될 텐데.”

주유는 몇 년째 한 브랜드에서 모델로 활동한다. 그 덕분에 매출이 몇 배로 뛰어서, 그 회사에서 주유를 붙잡고 안 놔준다는 썰이 있을 정도다.

“한번 가서 이야기해 봐야지.”

주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드라마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만큼 재석은 직접 가서 응원을 해 줄 생각이었다. 그는 곧바로 주유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

“형!”

“이야, 오랜만이다.”

“형, 부럽네요. 칸에도 다녀오고.

“너도 곧이야. 그리고 거기서 상을 탄 건 내가 아니라 민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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