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매니저-97화 (97/152)

“근데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이긴. 너 다음 드라마 정해졌다는 거 듣고 왔다.”

“아, 드라마요.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하려고요. 그래서 꼭 일본도 갈 거예요.”

“일본 좋지. 하지만 너무 그렇게 어깨에 힘주면 될 일도 안 돼.”

“그, 그런가요.”

“그래. 열심히 하는 건 하는 거고, 긴장도 적당히 해야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 있어.”

“하지만 쉽게 진정하기 어려워요.”

“너무 걱정하지 마. 앞으로 넌 잘될 거야. 돈도 많이 벌고.”

재석의 말에 주유의 표정이 밝아졌다.

“꼭 형 말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꼭 그 말대로 될 거야.”

재석은 그렇게 주유를 응원해 준 후, 한동안 주유의 일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았다.

그리고 일시적이긴 하나, 재석이 직접 자신의 일을 보고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주유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느낀 거다.

덕분에 주유는 기분 좋은 상태로 드라마 첫 리딩에 들어갔고, 감독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렇게 주유의 일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던 그때, 재석은 관심 있던 인물의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음, 지운이 제대가 얼마 안 남았어?”

지운은 현재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진 못했지만, 일거리가 계속 들어올 정도로 연기력도 갖추고 열정도 있는 연기자다.

‘맛있는 첫사랑을 찍을 때는 계약 중이었는데…….’

그때도 마음 같아서는 계약하고 싶었지만, 소속사가 이미 있는 상태였기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번 면회를 가 봐야겠네.”

재석은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면회를 신청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일단 제 명함입니다.”

재석이 명함을 건네주자, 지운은 그 명함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혹시나 해서 찾아왔습니다. 현재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으셨는지 해서요.”

계약 기간이라는 말에 지운은 가볍게 이야기했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회사에서 절 찾아왔고요.”

지운은 오랫동안 꾸준히 연기를 해 오며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 올렸다.

주연은 아니었지만, 히트작에도 출연했던 연기자이니 여러 소속사에서 충분히 탐을 낼 만했다.

“그럼 길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본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어떠십니까?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 드리죠.”

최고 수준이란 말에 지운이 살짝 관심을 보였다.

“근데 제이이브라면 임민경, 장강호, 김명진 이런 분들 계신 곳 아닙니까?”

“맞습니다.”

제이이브 소속의 유명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소속사와 견주어도 꿀릴 게 없는 회사였다.

“그런 곳에서 절 원하시다니…….”

“소속 연예인의 관리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회사보다도 나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지운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당장 답변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먼저 찾아오신 분들이 많으셔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할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늦게 그를 찾아온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너무 늦었나.’

그를 놓치게 된 건 안타깝지만, 재석의 입장에선 그와 계약을 하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건 없었다.

그가 아니더라도 계약할 만한 괜찮은 연예인은 많았다.

“그럼 고민해 보신 후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석은 그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지만 결국 지운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더 조건 좋은 걸 찾아간 거다.

“어쩔 수 없지.”

재석은 깔끔하게 지운을 포기하고는 안준혁이 있는 연기 학원에 찾아갔다. 김조현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김조현을 찾을 수 없었다.

“허허, 이렇게 놓치나.”

지운은 그렇다 치지만, 김조현은 그럴 수 없었다. 반드시 찾아야 했다.

“아직 대학생이니까.”

재석은 연기 학원을 통해 김조현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알아봤다.

그리고 바로 그 학교로 향해, 거기 있는 연극 동아리를 찾아갔다.

똑똑.

재석이 문을 두들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열어 주었다.

“아, 때마침 있었네요.”

재석이 찾던 김조현이 눈앞에 있었다.

“누구시죠……?”

“혹시 저 기억 안 나요? 연기 학원 어디냐고 길을 물어보셨던…….”

“죄송해요. 제가 지독한 길치라서 사람 붙잡고 길 물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요.”

“그렇다면 이건 기억하시죠.”

재석이 보여 준 건 바로 명함이었다.

“아……!”

김조현은 이제야 기억이 났는지 놀라면서 말했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여전히 감이 부족한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연기자로 성공한 것도 참 신기한 일일 정도로 눈치 꽝이다.

‘하긴, 백치미가 있어서 인기가 많았지.’

바보 같은 순수함이 매력적인 사람이 바로 김조현이다.

“그때 만나고 나서 꽤 오래 생각이 나더군요. 혹시나 해서 학원에 찾아갔는데 이제는 그곳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요.”

“예, 그때는 입시 때문에 다녔다가 합격하고 나서는 동아리에 들어와서 연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따로 극단에 들어가진 않았군요.”

“예, 선배들이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 이야기를 좀 들어 볼 차례가 됐겠군요.”

“혹시 이 회사에 들어오라는…….”

“맞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김조현은 그때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관심 없다가 여기서는 바로 관심을 보였다.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다르네요.”

“아,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이 다들 바보라면서 욕을…….”

“하하하하.”

재석이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정말 백치미 가득한 김조현이다.

“계약에 관심 있으시다면 내일이라도 회사로 찾아오세요. 바로 계약서 작성하죠.”

“예!”

“밥은 먹었나요?”

“아뇨, 아직.”

“그럼 나가죠. 제가 식사 대접하죠.”

“감사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김조현은 재석의 뒤를 졸졸 따라나갔다.

‘지운은 안 됐지만, 김조현을 얻어서 이득이라고 해야 하나…….’

미래를 위해 연예인은 계속 늘려야 했다.

‘어이구, 힘들다.’

재석은 회사에 돌아와서 주명진에게 사람 하나 내일 찾아올 거라고 이야기해 줬다.

“또 어디서 길거리 캐스팅했어?”

“네, 힘드네요.”

“적당히 해라. 연예인 한 명 갑자기 늘어날 때마다 그에 맞춰 직원들은 몇 명씩 늘어난다.”

“어차피 필요한 사람들만 받는 거니까요.”

“그래도 좀 유명한 애들은 코디까지 붙여 줘야 해.”

“그래서 주 이사님에게 맡긴 거 아닙니까.”

“아이고, 너 때문에 돈 많이 벌어서 좋긴 한데 힘들다.”

서로 앓는 소리 한 번씩 했지만, 그래도 소속된 배우들을 스타로 만들려고 열심히 움직였다.

“내일 그 사람 오면 가장 빨리 캐스팅될 수 있는 시트콤에 집어넣으세요. 거기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내일 온 사람에게 연극 동아리 사람들 소개받으시고요.”

“알았다.”

주명진은 재석이 지시한 내용 그대로 진행했다.

다음 날, 계약서를 작성한 김조현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일이라는 시트콤에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주명진은 곧바로 김조현과 그의 출근들을 위해 차량을 매니저를 준비해 줬다.

김조현의 동아리 친구들은 김조현 덕분에 편하게 촬영할 수 있다며 정말 좋아했다.

그에 김조현은 자신의 친구들도 계약할 수 없냐 물어봤지만, 주명진은 그건 어렵다고 답했다. 지금은 회사 내에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렵다는 거였다.

다만 이번 시트콤을 찍는 동안에는 계속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에 주명진이 재석을 찾아왔다.

“재석아, 괜찮은 애들 많던데 왜 김조현이냐? 심지어 이번 시트콤에서도 대사 많은 애는 따로 있던데.”

“뭐랄까, 아우라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설명하기 어렵네요.”

“흐음…… 하긴, 얼굴은 김조현이 제일 낫긴 하더라. 비율도 좋고. 하지만 비주얼만으로는 뜨긴 어려울 텐데……. 뭐, 아무튼 네 말이니까 그대로 진행할게.”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네가 확신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그래도 감 떨어지면 말해라. 그러기 위해 회사 임원이 있는 거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회의하고 있죠.”

“그래, 만일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지.”

“그러고 보니 오늘 월말 결산 회의 아닙니까?”

“준비됐다.”

“가죠.”

민경은 일주일 정도 집에서 웃고만 지냈다. 칸에서 받은 상을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놓고 그걸 멍하니 바라보는 거였다.

“그렇게 좋아?”

“좋죠. 솔직히 기대도 안 했는데.”

“나도 네 연기가 좋긴 했지만, 수상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

솔직히 고향의 시나리오 자체는 독특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걸 민경이 뛰어난 연기력으로 그것을 극대화하여 표현해 낸 것이다.

“다 오빠 덕분이죠. 오빠가 상을 받게 해 준 거나 다름없어요.”

“아냐, 다 네가 잘한 거지.”

“아이고, 우리 영감님이 겸손하시네. 잘난 척할 줄 알았는데.”

“사실이니까.”

재석은 본래 이 상을 받게 되었을 여배우를 알고 있다.

그녀는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여배우다. 그런데 민경이 그런 그녀와 똑같이 업적을 이루어 낸 거다.

‘정말 대단해.’

재석은 민경이 대견한 한편, 참으로 신기했다.

그녀와 함께하며 많은 미래가 바뀌고 있었다. 일이 잘되어 가고, 그녀와 연인으로까지 발전했다.

“민경아, 나 가끔 무섭다.”

“왜요?”

“지금 이 순간이 부서질 것 같아서.”

“영감님, 걱정은 그만해요. 이럴 때는 꼭 진짜 영감님 같다니까.”

민경은 재석을 다독이며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말했다.

재석은 민경을 꼭 끌어안으며 이게 진짜 현실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서로 꼭 안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두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에구머니나, 세상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민경의 어머니였다.

“어, 엄마……!”

“어, 어머님……!”

세 사람 다 놀라서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다들 정지해 버렸다.

잠시 후 재석과 민경은 둘의 사이를 이야기하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민경의 어머니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시집 다 갔네.”

“걱정 마십시오, 어머니. 제가 책임질 겁니다.”

“알겠네. 일단 집으로 가게. 난 내 딸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축객령이 떨어지자 재석은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만 남게 되자 민경의 어머니는 민경을 붙잡고 말했다.

“세상에, 너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 걱정 마. 오빠는 저보다 돈 많은 사람이에요.”

“얼마나?”

“한 백억쯤?”

민경이 과장을 섞어서 이야기하자, 민경의 어머니는 두 눈을 깜빡이면서 다시 물었다.

“얼마라고?”

“백억이요, 백억.”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돈이 많은 건 확실했다.

“세상에, 세상에나. 그 젊은 나이에 백억이라니.”

“영화 투자에 몇 번 성공해서 수백억대 부자예요.”

“어머머,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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